소설리스트

264화 (264/269)

 “……오른손잡이다.”

 하늘의 석양은 이미 검붉어져 있었다. 케실리온의 목소리에는 짙은 살기가 배어나왔다. 그의 칼날에는 조금씩 굳어가는 라일의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긴박감 넘치던 움직임은 멈춰있었다. 

 휘이잉-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을 따라 케실리온과 라일의 머리카락이 앞뒤로 찰랑거리고 있을 뿐이다. 또한, 한 방울, 한 방울 흘러내리는 붉은 피가 연무장을 적셨다. 거미줄처럼 대리석은 줄이 쫙쫙 그어져 흉한 모습을 보였다.

 그 모습이 케실리온과 라일의 엄청난 결투를 대변해주는 것 같았다. 청아한 바람에 몸을 맡긴 라일은 흔들리는 신형을 바로잡기 위해 대리석에 검을 꽂아 넣으며 균형을 지탱했다. 또한 복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움켜쥐며 지혈을 하기 시작했다.

 “그, 그렇군. 처음부터 난 진거였어. 왜 오른손으로 싸우지 않은 거지?”

 “크크…….”

 지혈을 마친 라일은 케실리온을 향해 도리질 치며 물어왔다. 얼마나 치욕스러운지 얼굴은 붉어질 대로 붉어져 있었다. 그의 표정을 보며 케실리온은 조소를 흘렸다. 워낙 낮은 웃음이었기에 불어오는 바람에 묻혀 버렸다.

 라일의 물음을 대신해 케실리온은 검을 쥐며 검무를 추기 시작했다. 처음은 부드럽게 살랑살랑 춤을 추듯 검을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움직임 한 떨기 꽃잎이 떨어지듯 사선을 긋는 케실리온의 검이 부서진 연무장위를 가로질렀다.

 쉭!

 부드럽게 움직이던 케실리온의 몸놀림은 돌연 빠르고 경쾌하게 바뀌었다. 마치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움직이는 그의 발놀림은 가루로 흩날리는 대리석을 하늘로 띄워 올리기에 충분했다.

 쾅!

 “낙(落)!”

 2계의 언어와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이질적이고 강인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언어였다. 그 말이 튀어나온 순간 공간은 폭풍이 몰아치듯 잘려나갔다. 그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케실리온의 검병은 역수로 쥐어졌다.

 칼날이 등 뒤로 향하자 절제되어 있던 케실리온의 눈빛은 더욱 진중해지며 살기로 번뜩였다. 붉은 눈빛으로 넘실거리던 살기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공기처럼 어디든 존재하는 것 같았다.

 “파(破)!”

 쩌저적!

 연무장의 바닥을 내리꽂은 검은 그대로 기운을 폭사하며 연무장을 초토화시켰다. 이미 갈라질 대로 갈라져 있던 연무장은 풀썩 내려앉으며 가루로 흩날렸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케실리온은 검을 제대로 잡았다. 마치 부드러운 비단을 만지듯 조심스러운 손짓이다.

 “유(流)!”

 사라랑!

 한 번의 호흡이 이어지기도 전에 케실리온의 검은 다시 움직였다. 가루로 흩날리는 대리석들이 하늘로 비산하며 케실리온의 검에 따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부드럽기 짝이 없는 몸놀림이었다. 

 엘프가 춤을 추듯 공간을 가르고 검의 길을 이어갔다. 그에 맞추어 대리석의 가루는 검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 검무가 계속되어갈 수록 케실리온의 검은 날카롭고 살기가 잔뜩 배어나왔다. 모든 것을 다 보여주겠다는 듯이 검병을 자유자재로 바꾸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자세로 검병을 잡은 것이다. 

 스악!

 공간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살(殺)!

 파파팍!

 케실리온의 일갈로 하늘로 치솟았던 가루는 사방으로 터져나가며 찢어발기고 터뜨렸다. 모든 것을 베고 지나간 자리에는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이 연무장의 잔해는 모래, 먼지로, 소멸되어갔다.

 스르륵-

 모든 검무가 끝나자 케실리온은 차분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마령검을 회수했다. 채 3번의 호흡이 이어가기도 전에 모든 검무가 끝난 것이다. 케실리온의 호흡은 길었고 오래갔다. 라일이 30번을 호흡할 때 케실리온은 10번으로 족했다.

 모든 것이 앞서가는 자에게 이기는 것은 불가능했다. 라일은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듯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내 대답이다. 설마 방금 전의 검무가 내 무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케실리온의 대답은 결정타였다. 엄청난 검무가 모든 것이 아니라는 것에 라일은 충격을 받은 건지 허탈하다는 듯이 몸을 지탱하던 검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전의를 상실한 것이다. 몇 십 년을 걸쳐 검을 수련했건만 11살 정도의 아이에게 패했다는 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충격에 빠져 있던 라일은 마음을 다잡듯이 이를 악물며 롱 소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무릎을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든 것을 초월한 눈동자였다.

 “확실히…… 나의 패배다. 하지만 이번 수로 결판을 내자. 최고의 기술로, 최고로 강한 그대와 대결하겠다. 그대도 최고의 기술을 펼쳐라. 기꺼이 받아내겠다. 

 “…….”

 케실리온은 라일의 변화에 무표정을 유지했다. 상대가 발악할수록 절망감은 커질 뿐이다. 

 “내 최고의 기술은 ‘골드 피니쉬(Gold Finish)'다. 너의 기술은……?”

 뚝뚝 끊어지듯 라일의 음성은 짙었고 농후했다. 목구멍까지 피가 차올랐다. 내상이 심각했다. 하지만, 그의 신념은 꺽지 못했던지 창백한 얼굴에도 검을 들어올렸다. 골드 드래곤 소드, 줄여서 드래곤 소드(Dragon Sword) 최고의 절초가 바로 드래곤 브레스다. 하지만, 라일은 자신만의 절초를 만들었다. 바로 골드 피니쉬가 그것이다.

 “라일! 정말로 죽을 작정인가? 아직 완성된 기술이 아니야.”

 “크흐흐. 결투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주군…….”

 라일의 대답을 들은 카논 공작은 놀란 얼굴로 외쳤다. 란델 제국의 다른 그랜드 마스터인 카논 공작이다. 그들의 대결을 끝까지 지켜보며 가장 안타까워한 존재도 카논 공작이었다. 카논 공작의 외침을 들은 라일은 희미하게 미소를 띠우며 검을 들어올렸다.

 “그대의 스킬(Skill)은?”

 “…….”

 스륵-

 케실리온은 라일의 물음을 대신하여 검을 들어올렸다. 가볍지만 절제되어 있으며, 절제되어 있는 가운데 자유로움이 느껴지는 기수식(起手式)이었다. 다른 무인들과 다르게 멋은 없었지만 고요함속의 폭풍과도 같았다.

 “만검(萬劍)의 2장 4초 무살(霧殺)이다.”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대단하군.”

 케실리온과 라일은 자세를 잡았다. 짧은 순간 둘은 움직일 것이다. 마지막 대결인 만큼 별 말이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케실리온은 결계 밖에서 쳐다보고 있는 흑발의 여인에게 짧지만 모든 것을 담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온, 지켜봐라. 만검의 마지막 초식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케실리온과 라일은 신형을 날렸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검을 겨누었다는 듯이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고오오오!

 라일은 끔찍한 존재감에 몸을 떨어야했다.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거대한 존재감이었다. 케실리온은 마치 거대한 산이 되어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풍류마신보(風流魔神步)였다. 천마의 천마군림보의 묘리를 합하여 만든 보법이자 신법이다. 감히 케실리온의 앞을 막을 자 누구랴! 

 “끝이다!”

 케실리온은 풍류마신보를 펼치며 라일의 정면을 점했다. 뒤로 돌아서 공격할 필요도 없었다. 귀찮게 옆으로 돌아서 벨 필요도 없다. 오직 정면이다. 상대를 앞도하며 짓누르는 것이 흡혈지존 조제현이자 케실리온이다.

 “무살(霧殺)!!”

 “골드 피니쉬(Gold Finish)!!”

 케실리온과 라일의 마지막 초식이 서로를 향해 펼쳐졌다. 하늘은 은빛과 금빛으로 물들었다. 

제국의 수도(2) - 결투(Duel : 決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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