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6화 (266/269)

 “주, 죽여라.”

 “라일경!!”

 케실리온의 상념은 신파극이라고 찍고 있는 것처럼 외치는 라일과 코리안 공작가의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돌아왔다. 죽은 듯이 쓰러져 있던 라일이 간신히 몸을 추스르며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었다.

 “……죽음도 죽을 가치가 있는 놈이 죽을 수 있는 법이다.”

 라일의 외침에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비웃음을 날리며 케실리온은 몸을 틀어 시온과 알파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녀석은 죽일 가치도 없었다. 또한, 유색의 비드를 얻기 위해서는 이정도의 자비는 필요한 법이다.

 혹여, 페이린이 쓸 대가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정도의 포석은 깔아놓아야 한다. 한마디로 라일을 살려주는 것은 일종의 떡밥인 셈이다.

 “죽여라! 날 비참하게 만들 참이냐! 나의 기사도…… 쿨럭!”

 저벅, 저벅-

 등 뒤에서 들려오는 라일의 절규어린 목소리에 케실리온은 일부러 큰 발자국 소리를 내며 황제와 귀족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마음이 변해 라일을 죽일까봐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라일은 제국의 큰 전력이다. 그가 죽는 다면 큰 손실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날 죽여…….”

 케실리온은 끝끝내 라일의 외침을 무시하며 시온과 알파의 곁에 섰다. 그제야 무심히 라일을 돌아보며 비릿하고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놈은 죽일 가치가 없다. 구차하게 살아남아 다가갈 수 없는 태양을 보며 한탄하라.”

 고오오오!

 케실리온은 그 말을 남기고 좌중을 둘러보며 살기를 뿌렸다. 특히 레딕과 카이룬을 향해 시선을 마주치며 무언의 압력을 선사했다. 말하지 않아도 그들은 알 수 있었다.

「건드리면 죽는다.」

 그것이 레딕과 카이룬이 느낀 감정이었다. 그들은 한 차례 몸을 떨며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추기경인 케실리온이 사라지자 성녀는 부상당한 라일에게 치유의 손길을 건네며 황제에게 머리를 살짝 숙이며 물러섰다. 

 “그럼 폐하. 회의에서…….”

 “조, 좋소. 일주일 뒤 회담을 열겠소.”

 황제는 떨리는 몸을 바로 잡으며 성녀에게 회담기일을 정하는 것으로 결투를 마무리 지었다. 또한, 오늘 있었던 일은 함구 될 것이다. 적어도 귀족들 입에서는 결투에 관한 이야기는 오르내리질 않을 것이다.

제국의 수도(3) - 약속(Promise)

     

 “힘에 왜 집착하는 건가?”

 “글쎄…….”

 폭포수를 통해 생겨난 시냇물에 발을 넣으며 풍운지가 제현에게 물었다. 주위에는 꽃들이 만발해 아늑한 느낌을 풍기는 곳이었다. 지옥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따스함이 깃든 곳이었다. 그 따스함에 수련으로 땀범벅이 됐던 옷도 마음도 마르는 것 같았다.

 겨우 몇 년의 수련으로 무공을 완성해가는 제현을 보며 풍운지는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모든 것이 뛰어난 제현이었다. 힘든 수련에도 말 한마디 없이 참아내는 인내심과 어려운 자세는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가장 완벽한 자세를 구축하는 등 뛰어난 면모를 보였다.

 “꼭하고 싶었던 말이 있네.”

 “…….”

 아늑함을 느끼고 있던 제현은 중요하다는 듯 한 분위기를 풍기는 풍운지를 쳐다보며 말없이 머리를 끄덕였다.

 “약속의 의미를 아는가?”

 “약속?”

 “무인에게 있어서의 약속 말이네. 그건 의지이며 신념이네.”

 제현은 모르겠다는 듯이 풍운지를 쳐다보며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렸다. 수련하며 의미모를 말을 많이 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뜬구름 같은 소리를 하니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수밖에 없었다. 

 찌푸려진 얼굴을 봤기 때문인지 풍운지는 소리 내어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 그런 표정 짓지 말게. 중요한 이야기니까.”

 “…….”

 제현은 말을 아끼며 천천히 풍운지와 눈을 맞췄다. 허공에 부딪힌 둘의 눈빛은 진지함이 묻어났다.

 “의지와 신념은 중요하네. 상승의 길을 열어주는 길이라고 할까.”

 “의지와 신념…….”

 “가령 자연을 깨닫는 것을 말하네. 자연은 인간에게 많은 것을 공유하고 있지. 바로 중단전. 육체를 완성시킨 무인은 중단전을 열고 상승을 길을 간다. 즉, 검강을 뿜으며 어검술을 펼치는 단계에 이르지. 그게 바로 의지와 신념이네.”

 제현은 진지하게 말하는 풍운지의 설명을 놓치지 않았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중요한 이야기 같았다. 지옥에 처음 발 디뎠을 때 가장처음 따뜻한 손길을 건네준 사람, 왠지 모르게 강인한 모습을 보이는 사람. 제현은 마음속에서 풍운지를 동경하고 있었다.

 “자연의 깨달음을 얻는 다면 우주로 향하는 깨달음이 존재하지. 그게 바로 상단전 일세 상단전이 열리면 모든 무공은 완벽해지기도하며, 허술해지기도 할 것이네. 그게 바로 진정한 강함일세.”

 “허술함이라니. 그건 또 무슨 말이지?”

 “때로는 허술함이 완벽을 뛰어넘기도 한다네. 그것만 명심한다면 자네는 고수가 될 것이네. 가령 적은 것을 소유할 때 보다 못하다는 것이네. 기운도 과하면 독이 되며, 무공도 깊으면 독이 되네. 논지에 어긋났지만 자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약속을 반드시 지키라는 것이네.”

 풍운지는 약속을 강조했다. 맑게 빛나는 눈빛 속에서 강함이 느껴졌다.

 “약속은 무(武)를 상승으로 이끌 것이네. 그것만 명심하게. 육체의 중심, 자연의 진리, 우주의 미래. 그것은 모두 약속에서 비롯된다네.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의지와 신념을 저버리는 것과 같네.”

 제현은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는 것을 느꼈다. 점점 몸이 가벼워지며 정신이 맑아졌다.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타게 부르는 것도 아니요. 화내며 부르는 것도 아니었다. 웃으며 말하는 여인, 지옥에서는 고작 어린 아이에 불과했던 딸이 있었다.

 “케실리온! 몇 번이나 불렀는지 알아?”

 “흠. 어디까지 했지?”

 “약속을 저버리는 것은 의지와 신념을 저버리는 것과 같다.”

 케실리온은 피식 웃으며 시온의 애검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자연스럽게 딸려오는 시온의 검은 당연하다는 듯이 케실리온의 손에 안착했다.

 “약속을 어기지 않은 자. 상승의 길을 열게 될 것이다. 육체의 중심, 자연의 진리, 우주의 미래가 보일지니라. 이것이 만검의 묘리다. 한번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라. 그것만 지킨다면 반드시 마신(魔神)의 경지에 오를 것이다.”

 자신의 애검을 가져갔다는 것에 화가 난 것인지 뾰로통한 얼굴을 한 시온이 짧게 케실리온을 흘겨봤다. 잠시 침묵이 흐르던 둘 사이에 묘한 기운이 감돌더니 돌연 앞으로 쏘아지며 주먹이 앞으로 나섰다.

 팍- 파팍!

 “평심(平心)을 유지하는 것도 강함을 이끌어낸다. 네 자세는 올바르지 않다. 천마소수(天魔素手)는 상대의 손목을 감싸듯 움직이는 것으로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는데 있다. 그 점에서 넌 약하다.”

 팟!

 케실리온은 왼손으로 시온의 손목을 살짝 감듯이 몰아치며 시온의 애검인 빙화의 검병을 이용해 왼손으로 목을 노리는 시온의 손을 쳐냈다. 그렇게 한참을 겨뤘을 까. 케실리온이 자세를 변경하며 무시무시한 기파를 뿜어댔다.

 파파팟!

 “마령심법(魔靈心法)의 응용. 마령지기(魔靈志氣)다. 저번 결투에서 라일이라는 녀석이 펼쳤던 골드 소드와 유사하지. 하지만 우리 지옥계 무인이 펼치는 것은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 시키며 거리를 벌리는 데 이용되는 기술이다. 내력 소모가 크기 때문에 잘 사용하지 않지.”

 케실리온은 친절하게 설명하며 시온의 애검을 아래로 내렸다. 이 모든 것이 시온에게 만검의 2장을 가르치기 위한 포석이다. 설명하는 것을 모두 귀담아 듣는 시온을 보며 케실리온은 천천히 빙화를 뽑았다.

 스르릉-

 “이번으로 무공전수는 끝이다. 나머지는 네 몫이다.”

 검병을 통해 전해지는 차가운 기운에 케실리온은 표정을 굳혔다. 역시 주인을 가리는 검이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날카로운 감촉과 서늘함을 기운으로 눌러버린 케실리온은 만검의 2장을 천천히 펼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날은 저물어갔다. 오늘을 마지막으로 무공전수를 끝낸 것이다. 3일간 속성으로 가르쳤다.

 “하아- 하아.”

 시온은 거칠게 흐트러진 숨결을 바로잡으며 케실리온을 쳐다봤다. 과거를 회상하듯 어둠을 직시하는 눈빛에서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모든 무공을 전수받은 시온은 마음속에서 뭔가 가득 차오르는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무공만 있었다면 잃지 않았을 것이다.

 “수고했다. 오늘도 부탁하지.”

 “응. 오늘로 3일째네.”

 “오늘은 약간 특별하다. 자정이 지나면 내 방으로…….”

 “알았어.”

 시온은 케실리온의 말에 웃음을 띠우며 점점 어두워지는 공간으로 신형을 날렸다. 밤마다 누군가 습격하기 때문에 이렇게 케실리온이 지시한 것이다.

 “아! 알파에게 쌍월이 뜨면 내방으로 오라는 말도 해라.”

 스르륵-

 케실리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온의 신형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혼자 남은 케실리온은 방으로 이동했다.

제국의 수도(3) - 약속(Prom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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