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화 (2/458)

2화 삶에서 깨어나는 것 (2)

스킬 목록은 대부분 익숙하다.

‘다시 봐도 한심하군.’

두개골 굴리기가 새 스킬로 추가되었다. 원래 없던 스킬. 부서진 몸에서 두개골을 굴리는 일 따위, 20년 동안 해 본 적 없었으니까.

마지막 순간에 해낸 것이다.

죄책감과 분노로.

서큐버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린다. 다 꿈은 아니었다는 건가.

멍하니 감상에 잠겨 있던 순간.

- 우르르 롱! 광!

다시 한 번 천둥이 울린다. 그리고 예상하지 못한 소리를 들었다.

“망자亡者여!”

천둥에 섞여 누군가의 외침이 들린다.

여자의 목소리.

처음에는,

낯선 목소리라고 생각했다.

“망자여! 내가 그대를 깨웠습니다!

내 말 들리시나요?”

로브를 입은 여자가 보인다.

그녀는 파헤쳐진 내 무덤 근처에 서서 소리친다.

관 속에 누워 밖을 올려다봤다.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여자가 걸친 것은 사령술사들이 자주 입는 진회색 로브.

옷이 누군가에게 저렇게 어울리지 않기도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령술사들을 본 적 있다. 그들도 저런 로브를 입었다.

하지만.

여자가 입은 로브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크기도 맞지 않는다. 걸친 모양새도 어색하기만 하다.

로브를 걸친다면.

손가락 사이로 사르르 흘러내리는 붉은 비단으로 된 로브가 어울릴 법한 여자다.

이런 밤에 봐도, 자연스럽게 그런 이미지가 떠오르는 여자였다.

“망자여! 콜록, 콜록.”

여자가 기침을 한다.

어울리지 않는 진회색 로브는 온통 비에 젖었다. 굴곡진 몸매가 그대로 드러난다.

- 달그락.

나는 여자를 가만히 올려다봤다.

여자의 목소리와 얼굴. 묘하게 익숙하다. 처음 듣는 게 아니다. 처음 보는 게 아니다.

얼굴뿐만이 아니다.

‘기억에 있다.’

이 상황이.

머리가 아파 오기 시작한다. 기억을 되짚어 간다.

‘분명히.’

20년 전 얼치기 사령술사의 의식으로 인해 깨어났던 날.

그때의 무덤이고, 그때의 폭우.

그렇다면 이 여자가.

상황이 점점 더 분명해졌다.

꿀꺽.

여자가 내 음직임을 본다. 목울대 너머로 꿀꺽 침을 삼킨다.

그러더니 뒤에서 무언가를 끙끙대며 가지고 왔다.

“망자여! 이걸 타고 올라오세요!”

사다리.

기억이 점점 자세히 되살아난다.

이것마저 똑같다.

얕은 무덤이다. 사다리 같은 게 없어도 충분히 나갈 수 있다. 물론 있어서 나쁠 건 없다.

‘꿈이라도 꾸는 건가.’

꿈이라면, 사실 해골병사로 살아왔던 지난 20년도 꿈같은 시간들이다.

악몽도 꿈이니까.

지루하고 질척한 악몽이었다. 마지막 3년을 제외한다면.

- 달그락.

사다리를 잡고 움직여 나왔다.

로브를 걸친 여자 앞에 섰다. 무덤 밖으로 나와 선 것이다.

밖이다.

밤의 묘지에는,비와 그녀와 내가 있다.

- 쏴아아아.!

무덤 안에 있을 때보다.

비가 얼마나 거세게 오는지 더 분명하게 느껴졌다.

- 번쩍!

눈앞의 여자를 본다. 나보다 머리 하나는 더 작다.

여자가 한 걸음 다가온다. 로브가 펄럭인다. 선이 고운 얼굴이 살짝 드러났다.

냉소적인 표정이 어울릴 만큼 딱떨어지는 이목구비지만,  표정에서 어딘지 어설픔이 잔뜩 묻어난다.

다시 비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다.

한 치 앞을 보기 힘든 밤이다.

작살 같은 폭우가 미친바람에 휘감겨 쏟아지고 있다.

1?I~I~I"一I~? ?

비가 뼈마디를 부술 듯 두드린다.

강물을 쏟아 붓는 것 같다.

두개골을 두드려 쏟아지는 빗물이 턱뼈를 타고 주르르 흘러내린다.

- 휘이잉!

바람에 휘감긴 빗방울이 목과 둥의 경추 마디마디로 파고든다.

- 두두두!

몸을 타고 빗물이 흐른다. 뼈를 두드린다. 소리들이 세차게 울려 퍼진다.

- 철퍽.

빗속에서 한 걸음을 내딛는다.

그럴 때마다 질척해진 땅속으로 발이 깊이 묻힌다.

- 우르릉! 쾅!

중간 중간 섬광이 하늘을 가른다.

그게 아니면,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

“마, 망자여.!”

여자가 뭔가 결심한 듯 주먹을 쥔다. 내게 소리친다. 하지만 나는 앞에 선 여자를 잠시 무시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중이다.

눈앞에서, 서큐버스님이 죽어 가던 모습이 아직 선연하다.

몸이 부서지던 감각이 선명히 남아있다. 천천히 주위를 둘러본다.

좀 더 적응할 필요가 있다.

- 삐그덕.

목과 함께 머릿속이 돌아간다.

분명하다.

‘꿈이 아니다.’

해골병사는 꿈을 꾸지 않는다.

‘죽은 것도 아니라면.’

여기는 처음 무덤에서 일어나던 그날. 확신은 더해져만 간다.

20년 전의 그날이 분명하다.

주위를 돌아본다.

폭우로 묘지가 훼손되고 있다. 비석이 쓰러진다. 봉분이 파헤쳐 진다.

심한 경우는.

아예 관이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내가 묻혀 있던 무덤은 딱 그걸 면한 정도.

내 무덤의 비석은 앞으로 쓰러져있다. 비석의 뒷면을 바라본다.

읽을 수 없었다. 딱히 내 이름이나 삶이 궁금한 것은 아니다.

한적한 01=산의 초라한 묘지.

대단한 인생이 아니었을 것이다.

20년 동안 해골병사로 살아가며 여러 가지를 알았다.

살아서 뛰어났던 녀석들.

그들은 해골이 되어서도 남들과 다르다. 처음부터 해골기사가 되고 마법사가 된다.

해골에도 급수가 있는 것이다.

우스운 일이지만 해골사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나는 해골전사도, 해골기사도 되지못했다. 그저 낮은 능력치의 해골병사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그랬고,

20년 동안 쭉 그래 왔다. 살아서도 비슷했을 것이다.

별 볼일 없는 묘소. 초라한 묘지.

그나마 객사는 면했었나.

“저. 망자여! 으음. 여길 좀. 봐 주시겠어요?”

한참 다른 생각을 하고 있자니, 어울리지 않는 로브를 입은 여자가 내게 다시 소리친다.

어설프다.

아득한 기억이 살아온다. 아직 말도 못 했을 때의 기억.

나는 여자가 누구인지 안다.

‘그때 그 녀석.’

기억은 확신이 된다. 그 여자다.

20년 전 -혹은 지금- 나를 처음에 무덤에서 꺼냈던 여자.

나는 상황을 거의 받아들였다.

‘이건 분명히.’

과거로 돌아왔다.

그 결론밖에는 없다.

믿기 어려울 것은 없다. 크게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다. 움직이는 해골병사로 20년을 살아왔다.

어떻게 과거로 돌아왔냐는 의문을 가지다가, 일단 그건 잠시 접어 둔다. 어차피 이런 내 존재조차도 나는 납득하고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듣고 볼 수 있는지도, 생각할 수 있는지도.

나는 일개 해골병사다.

세상은 내 이해와 지식을 까마득히 넘어서는 것들로 가득하다.

실은 그런 것들밖에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과거로 돌아온 일.

이것도 그저 내가 알 수 없는 마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무지는 편리하고 포기는 달콤하다.

그나저나.

‘서큐버스님.’

과거로 돌아왔다면,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분을 찾아야 하는데.

하지만 거기에서 생각이 멈췄다.

찾았다고 해서.

다시 지킬 수 있을까?

- 달그락.

쏟아지는 빗속에서 팔을 움직여 본다. 초라한 하얀 팔이 보인다. 평범한 인간 남자에게도 쉽게 꺾이고 부러지는 팔이다.

이 팔로, 다시 만났다고 그분을 지킬 수 있을까?

무언가를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러다, 앞에 서 있는 여자를 다시 의식한다. 그녀가 말을 걸어왔다.

“저. 망자님.?”

한눈에 봐도 이 녀석은 굉장히 긴장하고 있다. 뭐 어쩌라는 거냐는 느낌으로 여자를 바라봤다.

내 고개가 그녀를 향해 돌아가자,

여자가 세차게 소리친다.

“으흠. 제 이름은 루비아! 만나서 반갑습니다, 망자여! 그대를 내 복수의 초석으로 삼겠습니다!”

무언가 준비된 외침이다.

무슨 엉뚱한 소리를 하는지 알 수 없다. 나는 녀석의 복수 같은 데 조금도 관심이 없다.

내 복수도 하지 못하는 해골이다.

멋대로 날 초석으로 삼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 우르르릉!

여자의 외침과 함께 우레 소리가 울리고.

- 띠링!

경박한 소리가 머릿속에 울린다.

‘뭐라고?’

시나리오? 전혀 알 수 없는 이야기다. 낯선 글자를 치우고 싶었다.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글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 중에서도.

<레이 루비아>라는 글자가 유독 반짝인다.

‘뭐지?’

반짝이는 글자에 손이 닿았다.

머릿속에서 종이 울렸다.

- 띠링!

[이름 : 레이 루비아]

[사령술사 Lv.l]

[체력-6 힘-5 민첩-6 지혜-12]

[호감도 : 3]

- 루비 아는 자신이 깨운 해골에 약간의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 스킬]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특전]

- 호감 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칭호-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루비아라고?’

확인하라는 것처럼, 글자는 사라지지 않는다. 여자는 그런 나를 멍하니 바라본다.

- 쏴아아아.!

비를 맞으며 여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 달그락.

어깨를 으쑥했다.

여자의 능력치를 보니 참 초라해 보인다.

물론.

내가 처음 나왔을 때.

해골병사 Lv.l 때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나는 대부분의 능력치가 한 자릿수였다.

하지만 쓸 만한 인간 남자의 평균능력치가 10 정도.

‘높은 건 지혜 스탯 하나군.’

하지만 지혜 스탯은 활용도가 낮다. 마법에 관련된 거라고 들었다.

이 녀석이 마법사일 리도 없을 터.

여러모로 부족하다.

그나저나.

‘어떻게 남들의 상태창 같은 걸 볼 수 있게 된 거지?’

서큐버스님과 3년을 지냈어도, 그분의 상태창을 본 적이 없다. 다른 인간이나 마물들도 마찬가지.

특별한 마법이 아니면, 자신의 레벨과 능력치는 자기만 알 수 있다.

“으, 으흐음.

여자가 젖은 입술을 달싹거린다.

“말은 역시 못 알아들으시는 거죠?

그래도 일단 성공이네. 내 편이 하나는 생긴 걸까.

루비 아는 눈물을 홀리며 혼자 감격하고 있다.

‘정신이 이상한 여자인가?’

감상에 잠겨 있는 여자를 건드리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불필요한 오해를 조장하는 것은 더 꺼림칙한 일이다.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리고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네 편이라니?”

굳이 따지는 건 아니다.

크게 반대할 이유도 없다.

하지만 물어볼 수는 있다.

이를 딱딱거리며 발성을 해냈다.

발성은 어렵지 않았다.

과거로 돌아오기 전의 내 목소리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해골 역시 말은 할 수 있다.

해골로서의 발성을 익힐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지.

“히곡!”

- 펄쩍!

루비아가 깜짝 놀라 뛰어올랐다.

왜 이렇게 놀라나.

“아아.”

나는 다시 입을 열며 한 발짝 다가갔다.

- 터벅.

고개를 갸웃했다. 내 동작 하나하나가 그녀에게는 충격인 모양.

“히, 히익!”

- 터벅.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아, 아앗!”

루비아가 작게 소리를 지른다.

- 철적.

제 가슴을 부여잡고 뒤로 덜컥 넘어진다. 녀석의 로브가 진흙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더 놀라게 하면 곤란할 것 같다.

일단 접근을 멈췄다. 한 손에 들어오지도 않는 가슴을 붙잡은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놀라지 좀 말고.”

“해, 해, 해골이. 마, 말을 하다니요?”

말을 하는 게 그렇게 놀랍나.

20년 전.

나는 무덤에서 깨어나 사령 의식으로 해골병사가 되었다.

‘바로 이 녀석 덕분인 거지.’

물론 그때는 이렇게 말을 하지는 못했다.

생각은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이를 움직여야 소리를 낼 수 있는지, 전혀 몰랐으니.

과거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천천히 재생되기 시작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된다.

초보 사령술사인 여자.

루비아는 여기서 곧 참혹한 꼴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산산이 부서진다.

뼈가 부서져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지게 된다.

낭떠러지 아래.

차가운 얼음 계곡으로.

거기서 부서진 뼈를 재생하는 데한참이 걸렸다.

차가운 얼음장 밑에 잠겨 달그락거리며 1년 동안 있어야 했다.

그곳에는 얻을 게 아무것도 없다.

대비해야 한다.

‘곧 적이 나타난다.’

돌이켜 보면.

내가 지키지 못했던 것이, 서큐버스님뿐이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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