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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화 (3/458)

3화 삶에서 깨어나는 것 (3)

레이 루비아.

나를 깨운 사령술사.

이 여자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루비 아에게 곧바로 말을 걸었다.

“따라오시오.”

“따, 따라오라니요?”

20년 전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곧 산적 두 명이 나타난다.

‘그때는 당했지.’

처음으로 해골을 일으켜 본 사령술사. 방금 일어난,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해골병사.

독 오른 고블린 한 마리도 제대로 못 당해 낼 조합이다.

인간 산적들을 상대로 뭘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사람도 해골도, 참혹하게 유린당하고 파괴당할 뿐.

‘지금은 다를지도.’

나는 20년을 살았다.

시간을 거슬러 왔다.

Lv.36 해골병사의 힘을 갖고 있다.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워도.

훈련되지 않은 인간.

훈련되지 않은 산적 정도는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역시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군.’

산적이라는 건 정규군이 아니다.

전투력이 균일하지 않다.

하지만 우습게 볼 수만은 없다. 그만큼 그 위험도는 각양각색이니.

‘게다가 20년 전.’

이때의 정확한 정황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렴풋하다.

어느 정도의 적인지 모른다. 일단 숨어 있는 편이 좋을 것이다.

- 달그락.

나는 손을 들었다. 루비아에게 손짓을 했다.

“여자.”

그녀는 말도 제대로 못 한다. 여전히 당황하는 기색이다. 그녀의 이름을 불러 보기로 한다.

정신이 조금 들지도 모른다.

“루비아.”

그제야 여자가 몸을 흠칫한다.

“이리 오라니까.”

- 딱딱.

이를 부딪친다. 여유가 없다.

내가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산적들이 여기로 왔던 건.

얼마나 빨랐는지는 기억에 없다.

하지만 서둘러서 나쁠 건 없다.

“따, 따라. 오라고요?”

겁먹은 말투로 그녀가 입을 연다.

산적에게 겁먹은 게 아니다.

나에게 겁먹은 거다.

“산적들이 여기에 올 거다. 어서.”

다시 루비아에게 손짓했다.

“말을. 할 줄 안다니. ”

루비아가 아직도 멍하니 서서 중얼거렸다. 여자는 사소한 사항에 집착하고 있다.

나는 조금 차가운 태도로 여자에게 그 사실을 지적했다.

“움직이는 건 왜 안 놀라고?”

나는 움직이고 있다. 손짓을 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말을 하는 것에만 놀라운 건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뱉어 놓고 보니 실언이었다.

이미 그녀는 충분히 놀란 상태다.

방금 전, 내가 무덤에서 일어났을 때부터 놀란 기색이었으니.

실언은 얼버무리기로 했다.

“이쪽에 숨어. 시간이 별로 없다.”

손가락뼈를 들었다. 묘지로 올라오는 길의 반대편을 가리켰다. 수풀이 무성한 쪽이었다.

루비아와 함께 숨을 생각이다.

산적들이 나타난다면 저쪽 길밖에 없다. 그들이 무덤에서 솟아날 리도 없다. 이런 날씨에 수풀에 숨어 있을 리도 없다.

그러고 보니 이상한 점이 있다.

一 ㅘ?}?]??]■.I비가 거세다. 의문이 든다. 아무리 산적이라도, 이런 날씨에 누굴 덮친다는 말인가.

뭔가 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게 있을 거다.

이런 날씨에, 산적이 왜, 굳이?

“아. 아아.

루비아를 바라본다. 그녀는 아직 당황하고 있다.

수풀로 숨으라는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여자 개인이 멍청하거나 둔해서라고 하기 어렵다.

나는 그녀가 갓 일으킨 해골.

막 무덤에서 일어난 해골이, 여기에 숨으라는 둥 터무니없는 말들을 하고 있다.

‘피하긴 해야 하는데.’

가만히 있다간 나도 괴로워진다.

멀찍이 떨어진 절벽을 바라본다.

20년 전 저 아래로 걷어차였다. 차가운 얼음 속에 일 년이 넘게 갇혀 있었다.

이번에는 다를지도 모르겠다.

‘부서져서 그대로 죽을지도.’

- 달그락.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싫다. 일단은 살아남는다. 비장한 각오는 아니다.

새로 주어진 삶. 달그락거리는 해골 병사로서의 삶에 그리 큰 집착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내던질 정도로 완전히 무심하지도 않다.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다시 서큐버스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처음으로 돌아왔다. 예전과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계는 인간의 것.

그러나.

아주 깊은 곳이라면.

숨어 사는 데 성공할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그분과 함께.

“산적이 왜 저를. 빼앗을 것도 없는데?”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다. 루비아의 말이 나를 상념에서 깨운다.

아직도 멍한 얼굴이다. 바보 같은 질문이다. 답을 주는 건 쉽다.

‘빼앗을 게 없다고?’

- 달그락.

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루비아가 걸친 옷을 가리켰다.

“로브.”

손에 든 날붙이를 가리켰다.

“단검.”

다음으로, 그녀 자체를 가리켰다.

“쾌락.”

“그, 그게 무슨.!”

루비아가 당황한다.

당황할 것도 없는, 당연한 이야기에 저런 반응이라니. 여자의 형편없는 능력치를 떠올렸다.

거기에 더해 어리숙하다. 무언 가복 수까지 추구하는 것 같다.

그게 무덤에서 해골을 일으킨 목적인 것 같다.

‘거추장스럽군.’

그냥 버리고 갈까.

두 명의 산적이 나타날 거다.

하지만 혼자 숨어도 된다. 무시하고 내 갈 길을 가도 좋다. 남은 이 여자가 어떻게 되건 알 바 아니다.

산적에게 어떤 꼴을 당하고, 어떻게 울부짖고, 어떻게 몸이 칼이 그어져도.

- 우드득.

나는 주먹을 쥐었다. 뼈가 서로 모아 져 소리를 낸다.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싫군.’

서큐버스님의 최후가 겹친다.

괴로운 기억이 떠오른다.

게다가.

이 여자는.

나에게 처음으로 삶을 부여한 자.

- 덤석!

나는 루비아를 잡아끌었다.

그녀가 놀라서 크게 눈을 떴다.

- 훌쩍.

여자를 쉽게 들어 올렸다. 그리고 당황한다.

“무, 무슨 힘이 대체 이렇게.!”

나는 레벨 1의 해골병사. 그러나20년 동안 쌓은 꽤 높은 근력을 가지고 있다. 허약한 인간 여자 하나 정도는 쉽게 들고 갈 수 있다.

“해, 해골병사가 이렇게 세다는 얘기는. 전혀 못 들어 봤는데.!”

어지간히 놀란 모양.

“적응하시오.”

“흑!”

구박하긴 했지만.

사실 이 정도면 적응이 느리다고 타박하는 건 야박한 일.

말하는 해골을 접하고 당황하지 않을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그 해골을 일으킨 네크로멘서라도.

그 순간.

“히히히 힘!”

말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들려오는 방향은 올라오는 길 쪽. 산적들이 나타날 거라고 생각한 바로 그 방향.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이런. 늦었나.’

시간을 너무 지체하기는 했다.

루비아를 조용히 안아 들었다.

“쉿!”

손가락뼈를 그녀의 입술에 가져다 댔다. 촉촉하게 젖은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다.

그녀를 안은 채 빠르게 수풀로 다가갔다. 긴 수풀 사이에 몸을 눕혀 숨겼다. 숨을 수 있을까.

“하아. 하아.

“조용히.”

- 우르르!

- 콰광!

폭풍우가 친다.

우레 소리가 몸을 울린다. 시야는 어둡다. 땅은 질척하다.

저자들이 누구든, 어떤 이유에서 여자를 쫓든지.

수색을 포기하기 좋은 환경이다.

몸을 숨기기 좋다.

그렇게 날씨에 희망을 건다. 거리는 지나치게 가까우니까.

멀리 도망치기엔 늦었다.

- 달그락.

엎드린 채로 고개를 들었다. 가만히 앞을 바라봤다.

- 철픽! 철픽!

산길에서 푸른색 말이 나타난다.

말이 질척한 진흙 길을 걷는다. 지친 듯 울음소리에 피곤이 섞인다.

“히히 힘!”

- 철퍽! 철퍽!

곧 두 번째 말이 나타났다.

- 번쩍!

- 우르르! 광!

번개가 칠 때마다 정신을 집중했다. 놈들이 가진 무기와 외형을 살폈다. 처음으로 나타난 녀석. 그 녀석은 장전된 석궁을 들고 있었다.

석궁 두 개를 겹쳐 놓은 모양새의 개량형.

‘저런 석궁을 본 적이 있지.’

개량형 석궁. 그 살은 석벽에 박힌다. 방패를 뚫는 위력이 있다.

두 번째로 나타난 남자.

뒤에 따라오던 자. 그는 거대한 망치를 등에 메고 있다.

망치의 무게 때문일까. 남자의 푸른 말은 유독 더 지쳐 보였다.

- 철퍽!

어깨에 망치를 멘 남자가 먼저 말에서 뛰어내렸다. 망치와 함께 뛰어내렸다. 그러나 사뿐한 기색이다.

- 철적!

석궁을 쥔 남자도 이어 뛰어내렸다. 두 남자의 옷차림은 비슷했다.

가죽에 철제 징이 박힌 옷.

‘산적이. 아닌가?’

20년 전. 그때는 산적에게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

하지만 이상한 점이 많다.

잘 제련된 무기를 갖고 있다.

기능적인 갑주까지 챙겨 입었다.

그런 산적은 드물다. 말까지 타고 있다. 그건 더 이상 산적이 아니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범상치 않은데.’

사냥꾼의 냄새가 난다. 사람을 사냥하는 사냥꾼. 직업적으로 사람을 썰어 본 느낌의 인간들이다.

예전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녀석들에게 당했다.

하지만 지금은, 해골병사로 20년을 굴렀던 경험을 갖고 있다.

색다른 것이 느껴진다.

엎드린 상태로 조용히 녀석들을 바라봤다.

- 사각! 사각!

풀숲을 헤치는 소리. 위치를 짐작해 본다. 소리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번개를 기다린다.

- 번쩍!

번개가 칠 때마다 그 방향을 바라봤다. 다행히, 루비아는 조용히 있다.

- 쏴아아아.!

비가 더 거세진다.

- 사록! 사르록!

남자들은 몇 분 정도 더 수풀을 헤쳤다. 묘지를 둘러봤다. 그리곤 곧 인상을 찡그렸다.

“날씨가 너무 안 좋은데. 일단 돌아가지.”

- 번쩍!

둘은 서로 눈짓을 교환했다. 다시말 위에 올라탔다.

“가자!”

놈들이 길 아래로 내려갔다. 점점 확실해진다. 놈들은 산적이 아니다.

- 우르르! 쾅!

번개에 이어 천둥이 울렸다. 땅에 엎드려 있는 루비아의 몸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살짝 고개를 들으며 물었다.

“된 걸까요?”

- 퍽!

루비아의 머리칼을 잡고 다시 아래로 처박았다.

“쉿.”

“아, 아앗.!”

놈들이 돌아간 것은 연기다.

번개가 쳤을 때 놈들은 눈빛을 교환했다. 의미가 짐작이 가는 눈빛.

추격이다.

놈들은 이 근처에 사냥감이 있는걸 알고 왔다.

‘지금쯤.’

놈들은 이곳을 겨냥하고 있다.

멀리서 석궁을 메긴 채.

버티는 게임이다. 루비아가 오래 버티면 목숨을 얻을 수 있다.

사냥꾼들이 오래 버티면, 글쎄. 많은 걸 얻을 수 있겠지.

인간들을 오래 관찰했다.

젊고 반반한 여자라는 건 여러모로 비싸게 먹히는 물건이다.

특히 이 여자는.

하얗고 부드러운 몸을 가진 데다,

비판적으로 봐도 인간들이 입을 모아 미인이라고 할 만한 얼굴.

- 우르릉!

한참이 지났다.

몇 번의 천둥이 더 칠 동안 계속 엎드려 있었다. 갈비뼈 사이로 축축한 진흙이 들어찼다.

미약한 불쾌감이 느껴졌다.

‘여자가 힘들겠군.’

인간의 몸은 기다림과 잘 맞지 않는다.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찌뿌둥함을 이기지 못한다. 온도에도 약하다.

역시, 괴로워하는 게 느껴진다.

- 우르릉!

“엄살 피우지 마시오.”

천둥에 숨어 일부러 매몰차게 말했다. 20년 전의 일이 어렴풋이 떠오론다. 그때는 의미를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이 여자는 저 두 사냥꾼에 의해 처참하게 강간당한 후 납치된다.

차갑고 축축한 시간이 흘렀다.

- 스르륵.

길가 수풀 속에서 사냥꾼들이 다시 나타났다.

‘역시.,

비에 젖은 몸이 추워 보였다. 석궁을 든 남자는 한껏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망치를 든 남자는 몸을 오들오들 떨었다.

한참 동안 숨어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었던 모습.

‘이런 짓이 익숙한 놈들.’

어디서 온 자들일까. 목표는 뭘까.

어떻게 여기에 나타난 걸까.

스치고 지나가는 의문들.

저번 생에는 녀석들에게 곧바로 당해서 그런 걸 생각할 틈도 없었지만. 그때는 부딪히면 이길 가능성 따위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심스레 가능성을 고민해 본다.

- 쏴아아.

- 철퍽.

녀석들이 조금씩 다가왔다.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수색 작업이 이루어진다. 아까보다 훨씬 더 신중하다.

- 철퍽.

- 철퍽.

우리를 향해 가까이 오고 있다. 이를 악문 루비아의 몸이 크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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