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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6화 (6/458)

6화 삶에서 깨어나는 것 (6)

이제 기습의 묘를 누릴 수는 없다.

망치를 든 놈은 체격이 좋다. 키만 훌쩍 큰 것이 아니다. 어깨도 다부지게 딱 벌어져 있다.

- 과광!

석궁을 든 놈보다 훨씬 강해 보인다. 이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일단 둔기 저항은 먹혔지만.’

계속 맞으면 위험한 건 당연하다.

망치를 피할 수 있을까?

루비아가 건네준 단검으로, 제대로한칼 먹일 수 있을까.

해골병사로 20년을 살아왔다.

삶이라고 부를 수 있다고 한들, 밀도 있는 삶은 아니었다. 멍하니 헛되이 보낸 세월이 많았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

그런 생각을 가지기는 어려웠다.

나는 그냥 해골이었다. 감정도, 감각도, 무언가에 막힌 듯 와 닿지 않았던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저 하얀 뼈로 살아갔다.

- 철퍽!

망치를 든 녀석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놈이 이를 악물었다. 온몸이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망치가 몸을 돌린다. 앞으로 무게를 실어 한 발을 디딘다.

- 철퍽!

흙탕물이 어둠 속으로 튄다.

- 스숙.

망치 자루를 넓게 잡고 있던 손을 좁힌다. 위쪽을 잡은 손을 아래로슥 가져갔다. 스핀을 준다.

- 흑!

빠르다. 망치를 등 뒤로 젖힌다.

- 피리리릭!

몸무게를 실은 회전 일격.

둔기임에도 불구하고 날카로운 파공성이 울렸다.

- 철퍽!

나는 오른쪽으로 피해 있었다. 풀 플레이트도 단번에 우그러뜨릴 만한일격.

‘방금은 저걸 맞고 살아남았다는 건가?’

둔기 저항의 대단함이 새삼 느껴진다. 아무리 봐도, 저걸 맞으면 즉사 외에는 답이 없다고 생각되는데.

하지만 여유롭게 감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었다.

- 부응!

녀석은 해머를 고쳐 쥐고 다시 횡으로 휘둘렀다.

말려들면 으스러진다. 아무리 특전이 있더라도, 저건 위험하다.

- 철퍽!

발을 디뎌 움직였다. 가로로 날아오는 해머를 간신히 피해 냈다.

“음?”

망치를 쥔 녀석이 의아한 눈빛을 띠었다. 놈의 왼쪽 입꼬리가 비뚜름히 올라갔다. 웃는 표정이다.

“움직임은 느리네? 맞고 버티길래대단한 놈인가 생각했는데.”

- 덤석.

녀석이 해머를 고쳐 잡는다. 문득공기가 싸늘해진다.

- 붕!

이런 커다란 전투망치는 리치가 길다. 파괴력이 매우 강하다. 무게로 모든 걸 부숴 버린다.

그런 만큼, 공격 속도가 느리다. 공격과 공격 사이의 텀이 길다.

- 부응!

하지만 녀석은, 갑자기 연속으로 해머를 휘둘러 댄다.

간격을 파고들기엔 너무 짧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전투망치의 약점을 힘으로 커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무기는 힘 자체가 최고의 기술.

“이것도 한번 피해 볼까?”

완연히 여유를 되찾은 얼굴.

녀석이 망치를 반대로 돌려 잡았다. 머리 뒤 고리 부분이 앞이다.

- 피릿!

날카로운 파공성. 바람이 찢긴다.

‘길다.’

아까보다 더욱 리치가 길다. 놈은 앞으로 두 발을 내디뎠다. 손은 어느새 망치 자루 끝부분.

망치를 휘둘러 끌어 ‘당긴’다.

뒤로 물러나기도, 앞으로 파고들기도 여의찮다.

휘두르는 속도가 너무 빨랐다. 공격 범위가 갑자기 늘어났다.

급하게 몸을 숙였다.

하지만.

- 덜컥.

- 달그락!

나는 이미.

놈의 앞에 끌려와 있었다.

망치의 뒷부분. 긴 스파이크에 걸려서 끌려온 것이다.

스파이크 부분은 갈고리처럼 끝이 슬쩍 구부러져 있었다.

‘이런.,

한 번 걸린 갈고리는 쉽게 빠지지 않았다. 게다가 내 몸은 걸 곳이 훤히 다 보인다.

어깨뼈에 걸린 스파이크. 아가미에꿴 낚싯바늘과 같다.

- 콰직!

놈이 내 손목뼈를 밟는다. 밟고 짓이겨 힘을 주고, 다시 밟는다.

덩치에 비해 무척 빠르다. 덩치만큼 무겁다. 손목뼈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다.

- 달그락.

아직 버텨 주기는 한다. 괴로웠다.

아픈 것은 아니다. 짓눌려 있는 것이 괴롭다.

단검을 쥔 손에 힘을 줬다. 그러나 놈을 벗어나지 못했다. 놈은 나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얼마나 버티나 볼까?”

해머가 역수로 쥐어진다.

- 쿵! 쿵! 쿵!

놈은 망치로, 절굿공이처럼 나를 찧어 대기 시작했다.

- 띠링! 띠링! 띠링!

메시지가 계속 뜨기 시작한다.

[둔기류로 타격 당했습니다. 특전이 발동합니다! 둔기류 저항: 4이]

[둔기류로 타격 당했습니다. 특전이 발동합니다.]

[둔기류로 타격 당했습니다.]

[둔기 류로.]

녀석은 나를 차분히 부숴 갔다. 일정한 높이에서 찧는 망치는 목가적인 느낌마저 주었다.

- 쿵! 쿵!

“거참, 이상하게 잘 버티네.”

온몸의 뼈가 거의 바스러졌다. 공이처럼 찧는 해머에 짓이겨 진다.

살지도 죽지도 못하는 상태로 점점 진창 속에 파묻혀 간다.

- 쿵! 쿵! 쿵!

역수로 망치 자루를 잡고 찧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놈은 어깨 위로 해머를 높이 들었다. 위에서 내려칠 생각인 것 같다.

망치가 단두대처럼 떨어진다.

- 퍼걱!

하지만 두개골은 잘 부서지지 않았다. 상쾌하게 부서지는 소리는 없다.

단단한 뼈는 진창으로 한층 더 처박힌다.

두개골 안으로 진흙이 들어찬다.

망치는 정강이뼈를, 어깨뼈를 향해 휘둘러진다.

망치는 화가 난 기색이다.

발로 걷어차도 쉽게 부스러져야 할 해골. 거기에 이렇게 힘을 써야 한다는 사실이 화가 난 걸까.

망치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놈의 힘에도 문제는 없다. 바닥이 진창이라 시간이 걸린 거다.

단단한 모루 위에 있었으면 더 나았겠지. 더 빨리 부서졌겠지.

놈이 소리친다.

“안 부서지면!”

- 콰직!

“부서질 때까지 부순다!”

- 과직!

두개골이 경주와 분리된다. 이미 몸은 진흙 속에 파묻혀 있다.

폭력 앞에 놓인 해골병사에게 선택지는 몇 없다.

아래로 처박히거나 부서지거나. 어느 쪽도 아름답지는 못하다.

- 번쩍!

번개가 쳤다.

두개골이 분리된 내 눈에 다른 놈이 보인다.

“끄, 끄, 꼽.!”

석궁이 죽어 간다. 내가 단검으로 입속을 잔뜩 휘저어 놓은 놈이다.

찢어진 입에서 피가 흐른다.

“끄, 끼, 끼히.

놈이 벌레처럼 꿈틀거린다. 망치에게 계속 손을 뻗었다. 망치는 놈을 무시한다. 석궁의 눈에서 생명이 꺼져 간다.

“친구, 미안해.”

망치는 석궁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상황이 어쩔 수가 없네.”

“히, 끼히익.r털썩. 석궁은 파르르 떠는 손을 드디어 아래로 떨어뜨린다.

그 순간.

- 띠링!

[경험치를 225 얻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幻‘레벨. 업?’

사람 하나 죽였다고 레벨이 2나 올라가다니.

황당할 정도의 일.

물론, 기껏 얻은 포인트는 분배하지 못했다.

분배해도 음직일 방법은 없다. 팔다리는 전부 바스러져 있다. 허공에든 창을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 콱!

망치의 스파이크가 두개골에 구멍을 낸다.

- 파직!

두개골이 쪼개진다.

“앵? 이렇게 치니까 또 금방 쪼개지네?”

놈이 망치 뒤쪽 스파이크 부분을 대견한 둣 쓰다듬는다.

방금 죽은 제 동료 따위는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기색.

의식이,

다시 한 번 새까맣게 칠해 진다.

- 번쩍! 번쩍!

벼락이 연거푸 친다.

- 우르릉! 광! 콰광!

천둥이 굉음을 낸다. 벼락이 커다랬던 만큼 천둥소리도 크다.

폭우가 내리는 한밤이다.

‘설마.’

확실하다.

‘죽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왔다. 짧은 시간에 같은 일이 세 번이나 반복됐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유는 알지 못하지만 반복되는 건 틀림없다. 어떻게 해야 할까.

폭우가 내리는 묘지에서 벌써 세 번 죽었다. 쉽게 이 장소를 빠져 나가려면. 결론은 간단하다.

여자를 놓고 도망치면 된다.

놈들의 목적은 여자다. 해골 따위에 관심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도망쳐서 뭘 한다는 건가.

그렇게 이 장소를 벗어나고 나면 행복이 기다리나. 그럴 리가 없다.

아주 잘 알고 있다.

20년 동안 해골병사로 살면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우리가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지.

- 달그락.

해골병사의 성장에는 한계치가 분명하게 그어져 있다.

인간은 다양한 재능을 가진다. 다양한 소질이 있고, 스킬을 익힐 수 있다. 그 가능성이 매우 열려 있다.

수많은 길이 그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해골병사는 가장 약한 인간. 가장 깜깜하고 어두운 인간. 아무 재능도 없는 인간,

어떤 재능도 소질도 의지도 없는 인간과 비슷한 기준이 적용된다.

오히려, 그보다도 낮을 것이다.

해골병사는 그저 달그락 소리를 내며 돌아다닌다. 오크와 같은 힘은커녕, 고블린과 같은 독기나 날카로운 이빨도 없다.

고블린은 생동감이 있다. 살아 있다. 욕망이 있고 의지가 있다.

하지만 나와 같은 해골병사는 그런 욕망조차 없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토벌되는 것.

그저 약간의 경험치가 되는 것에 불과하다.

섬길 신도 없으며 눈물을 삼켜 줄 왕도 없다. 무덤에서 일으켜져서, 지시에 따라 멍하니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인다.

마물과 인간.

두 편의 전쟁이라도 벌어진다면.

적의 화력을 소모하는 최선두의 대열에 선다. 아주 작은 효용을 위해 끝도 없이 희생되어 간다. 완전한 죽음을 거듭 맞는다.

마왕들이 강림했을 때.

그때가 떠오른다. 그들은 마치, 해골병사는 아무렇게나 소모해도 되는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언제나 최전선에서 부서지는 용도였다.

사실 그 효용은 오히려 마이너스일지도 모른다.

해골 무리가 힘없이 쓰러져 가는 모습을 보며, 인간의 사기가 고취되는 걸 생각한다면.

내 상념을 상태창이 방해한다.

- 띠링!

[계승되었습니다.]

[이름: 없음]

[해골병사 Lv.l(38)]

[체력-29 힘-23 민첩-18 지혜-9]

[분배하지 않은 포인트: 2]

[계승된 이후 두 번째 죽음을 달성하셨습니다.]

[사망기념관]

1 - 사령술사를 위하여.

최후의 순간, 당신은 한 사령술사를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사령술사와의 관계에서 기본 호감도 20을 얻고 시작합니다.

2 - 둔기는 위험해.

둔기에 부서지며 죽었습니다. 모든 둔기에 대한 물리 저항이 40 오른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3 - 두개골 보호법 (new!)

2연속 두개골이 파괴되어 죽었습니다. 당신의 두개골은 조금 더 단단해 질 필요가 있습니다. 두개골의 물리 저항력이 10 올라갑니다.

4 - 써 보지 못한 단검 (new!)

당신을 죽인 적에게, 당신은 손에 쥐고 있던 단검을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했습니다. 단검술 Lv.10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이번 회차에 적용할 특전을 선택해 주십시오.]

은※ 특전은 누적되어 적용되지 않습니다.]

또 사망 기념관이 나왔다. 내가 죽음을 경험할수록, 누군가가 기꺼워하는 것 같다.

이제는 뭘 골라 볼까? 나는 네 가지 선택지를 차분히 들여다본다.

첫 번째 특전은 사령술사의 호감도를 20 올리는 것이다.

지켜 줄 수 없는 여자의 호감을 사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결론을 내린 바 있다. 이건 넘어간다.

두 번째 특전은 둔기 저항. 그 동안은 이걸 선택했다. 괜찮았다.

세 번째 특전은 두개골을 보호하는 특전. 머리가 깨지면 끝이긴 하다.

하지만 둔기 저항보다 여러모로 효율이 떨어질 거다.

가장 위협적인 무기가 둔기니까.

역시 둔기 저항이 좋을까? 하지만 나는 곧 마음을 굳혔다.

‘4번.’

4번을 선택할 생각이다.

별로 망설이지 않았다.

똑같이 루비아가 나타나고, 망치와 석궁이 나를 공격할 것이다.

이번에는 반격을 하고 싶다.

‘단 검술.’

게다가 레벨 10.

매력적이다.

제대로 된 스킬을 얻는 것이다.

20년 동안 살아왔다.

그러나 그 동안 제대로 된 스킬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가진 스킬들을 살펴보았다.

- 되는 대로 휘두르기 Lv.8- 부실하게 막기 Lv.6- 어설프게 찌르기 Lv.4- 적당히 구덩이 파기 Lv.5- 무턱대고 앞으로 달려들기 Lv.4- 손에 잡히는 대로 던지기 Lv.6- 두개골 굴리기 Lv.l같은 것들밖에 없다.

한숨이 나오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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