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삶에서 깨어나는 것 (9)
하지만.
망치를 한 손으로 휘두르는 데다,
회전 반경도 줄어들어 있다.
반면 두개골은 내 몸에서 가장 단단한 부위. 지금은 높은 둔기 저항까지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망치를 향해 박치기를 한다. 미친 짓임에 분명하다.
나 역시 내 행동이 납득이 가질 않았다. 하지만 짧은 시간 동안 세 번이나 녀석과 싸웠다.
놈과 싸우며 생긴 직감이, 이렇게 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는 쓰러지지 않았다. 녀석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스탭으로 거리를 벌려야 정상.
하지만 놈은 망치에 쓰러지지 않는 나를 보고, 당황한 나머지 발을 헛디뎌 버렸다.
- 퍼덕!
망치가 넘어졌다. 나는 날듯이 달려들었다. 놈의 목에 칼을 박았다.
- 푹!
놈은 팔을 들어 막는다. 손가락이 부러진 팔을 아예 방패처럼 쓸 작정이다. 날카로운 단검이 팔에 깊이 파고든다.
“으아아아!”
놈은 괴성을 지른다. 팔에 힘을 준다. 단검이 근육에 꽉 물렸다. 그대로 놈이 팔을 뒤로 휘두른다.
- 획!
단검을 손에서 놓쳐 버렸다.
- 번쩍!
번개가 친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에 놀라 경추가 달그락거린다.
‘한심하군.’
만회가 필요하다. 손가락뼈를 세웠다. 눈을 공격했다.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끄아아아아!”
놈이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나를 잡고 던져 버렸다.
- 우르릉!
천둥이 울렸다.
나는 바닥에 떨어졌다.
프레쳐라고 했나. 이 녀석은 내가 처음이다. 하지만 나는 녀석이 처음이 아니다. 얼마 되지 않는 시간에 벌써 세 번을 본다.
그만큼 놈에게 익숙하다. 하지만아직도 죽이지 못했다.
원래대로라면 나는 이 녀석에게,
망치 몇 번 휘둘러 부수는 그런 상대에 불과하다.
첫 만남 때는, 그럴 가치조차 없어 발에 걷어차여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운명이었을 거고.
하지만 나는 시간 선에 갇혀 있다.
죽으면 다시 돌아오는 루프에.
놈이 언제 오는지 안다.
어디로 을지,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있다.
내가 여기서 부서지면.
남은 루비아에게 무슨 짓을 할지도 알고 있다.
一 덤석.
던져졌지만 타격은 없다. 조용히 땅에 떨어진 석궁을 잡았다. 화살이하나 남았다.
-끼리릭. 끼리릭.
천천히 시위를 매겼다. 프레쳐는 내게 눈이 찔렸다.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다. 나를 보지 못한다.
소리는 듣고 있을까.
제 숨통을 끊어 줄, 석궁 감기는 소리는.
- 우르릉! 광!
하지만 천둥소리가 요란하다.
- 쏴아아아.!
나는 가만히 섰다. 석궁으로 녀석의 목을 겨냥한다.
“끄으, 끄, 하, 흐으윽!”
세 발자국 떨어진 거리.
사격.
- 피릿!
석궁살이 놈의 목에 박힌다.
“쩍!”
목이 완전히 뚫렸다. 놈이 부러진 팔로 목을 부여잡고 끅끅거린다. 녀석의 앞에 가만히 앉았다.
- 조록!
하지만 뼈가 부러져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성한 팔로도, 뿜어지는 피를 막을 수는 없다.
뚫린 구멍에서 솟아나는 피는 막 터진 샘 같다.
앞에 앉아 있는 내 두개골이 새빨갛게 칠해진다.
- 쏴?아아아!
- 우르르르르!
비가 퍼붓는다. 두개골에 칠해진 붉은 피가 씻어 진다.
피로 칠해질 때도, 피가 씻겨 내려갈 때도 시원함을 느꼈다.
- 쏴아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내 모습을, 완전히 젖은 세미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그녀는 작게 탄식을 뱉으며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시체 좀 뒤져 보라고 시킬까.’
관두는 게 좋겠다. 이런 꼴을 보고 쓰러지지 않은 것만 해도 칭찬해 줄만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이것부터 처리해야겠군.’
나는 상태창을 열었다.
[이름: 없음]
[해골병사 Lv.6(47)]
[체력-29 힘-24 민첩-23 지혜-9]
[분배하지 않은 포인트: 5]
레벨이 5나 올라 있었다.
두 남자를 죽였다.
각각 한 명씩을 죽였을 때는 레벨이 2, 4씩 올랐다. 하지만 둘을 죽이자 5가 올랐다.
다소 과다한 보상인 것 같다.
하지만 납득이 어려운 건 아니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 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많아진다. 같은 상대를 쓰러트려도, 내 레벨에 따라 보상이 전혀 다르다.
나보다 높은 레벨의 상대를 쓰러트릴수록 보상이 높다.
한참 낮은 레벨의 상대는 아무리 쓰러트려도 유의미한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내가 쓰러뜨린 놈들은 여간내기가 아니다.
해골병사 레벨 36의 능력치를 가지고도, 알 수 없는 특전까지 가지고도 연거푸 패배했던 상대들.
생각해 보면, 20년 전 정말로 내가 레벨 1 해골병사였을 때.
저런 인간들을 잡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아예 전혀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묶어 놓고 칼로 찌르지 않는 이상에야.
레벨 1 해골병사 스무 명이 달려들어도, 놈들을 이기기는 어렵다.
‘음.’
결국, 나는 완전히 불가능한 일을 해낸 것이다.
그에 따른 보상이라고 생각하면,그리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적은 건지도.’
어쨌건, 지금은 얻은 능력치를 배분하면 된다.
기본 능력치는 체력, 힘, 민첩, 지혜가 있다.
사실 나는 스탯들의 자세한 상관관계를 모른다. 그냥 어느 정도 체감으로 느낄 뿐이다.
지혜를 올려 본 적은 거의 없다.
처음에는 3인가 4였던 것 같다.
몇을 올려 봤다.
하지만 올려 봐도 아무런 효과 가없었다. 그래서 올리지 않았다.
체력은 공격에 얼마나 버틸 수 있는가를 뜻한다.
힘은 직접적인 공격력과 관련이 있다. 민첩은 움직임의 빠르기다.
힘을 올리면 세상이 더 가벼워지는 것 같고, 민첩을 올리면 세상이 더느려지는 것 같다.
사실.
서큐버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스탯을 올리는 것조차 몰랐다. 포인트를 쌓아 둔 채로 헤매기만 했다.
멍하니 있다 보면 스탯이 자동으로 어딘가에 투자되곤 했다.
스탯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서큐버스님을 만나고 나서부터다.
그분은 내가 인간에게 맞아 죽지 않게 하기 위해서, 무조건 체력을 많이 올리라고 했다.
마스터의 권한으로 억지로 체력 스탯만 잔뜩 찍었다.
그래 놓고, 정작 날 싸움터에 내보내지도 않았다.
던전 마스터로서는 엉망이다. 실격이다. 기껏 던전 서 번트의 체력을 올렸다면, 최전선에 세우는 게 당연하다. 그게 당연한데.
- 달그락.
나는 고개를 흔들었다. 과거를 회상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분을 만나려면. 다시 만났을 때 지켜 주기 위해서는.
혼자 긴 세월을 싸워 나가야 한다.
얼마가 될지도 모른다.
힘에 3을, 민첩에 2를 투자했다.
[힘 24 -> 27]
[민첩 23 -> 25]
이제 남자들의 시체를 뒤질 때였다. 먼저 가까이 있는 망치 잡이의 시체부터 뒤졌다. 쓸 만한 물건은 싹 다 긁어모을 생각이다.
먼저 품에서 지갑이 나왔다. 제법 두둑하다. 어딜 가느라 주머니를 이렇게 채우고 있었을까.
내가 갖고 있어도 쓸모는 없다. 떨고 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상태창을열어 확인했다.
어느새 습관처럼 된 것 같다.
[이름: 레이 루비아]
[사령술사 Lv.l]
[체력-6 힘-5 민첩-6 지혜-12]
[호감도: 3]
- 루비아는 자신이 깨운 해골에 약간의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본 스킬]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특전]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칭호-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기본 스킨과 특전, 칭호는 보이지 않는다. 모두 조건이 있다. 호감도를 올리라는 조건이다.
어떻게 하면 인간 여자의 호감도를 올리는 걸까? 상상하기 어렵다. 인간 여자를 접해 본 경험은 없으니까. 돈을 주면될까?
- 툭!
루비아의 앞에 가죽 주머니를 던졌다. 여자가 홈칫 놀란다.
“주우시오. 필요할 것 같은데.”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리고 다시 상태창을 확인한다.
[호감도: 3]
- 루비아는 자신이 깨운 해골에 약간의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감 도는 여전히 그대로다. 돈을 주는 방법이 잘못됐던 걸까?
“무슨. 무슨 일인 거죠.
루비아가 파르르 떨며 말한다. 어지간히 겁먹은 표정이다.
던져 준 돈에는 관심도 없다.
‘으음. 이걸로는 안 되나.’
그녀에게 던져 준 가죽 주머니는 제법 무거웠다. 짤그랑거리는 소리는 분명 들었을 거다. 하지만 그녀는 돈을 줍지 않는다.
떨기만 한다.
사실 저런 반응이 정상이다. 한참 숨어 있다가 나왔더니 해골이 사람 둘을 죽여 놓았다.
‘좋다고 돈을 줍는 건 무린가.’
나는 머쓱해져 말을 돌렸다.
“당신이 날 일으키지 않았소?”
시체를 뒤지며 물었다. 루비아가 홀린 둣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잠시 혼란스러워 하다 말했다.
“그런데, 음, 괜찮으신 거예요?”
“괜찮냐니?”
“망치로. 머리를 세차게 맞으셨잖아요.”
그랬지.
처음부터 보고 있었던 걸까?
‘얌전히 숨어 있으라고 했는데.’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손에 무언가를 쥐고 있었다. 돌이었다.
“그건 왜 쥐고 있지?”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잖아요.
위기에 처하면 도와 드려야죠.”
제가 일으켰는데, 라고 말하며 루비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나도 조금 놀랐다. 루비아는 점점 침착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나를 도와준다는 말까지.
터무니없는 소리이긴 하지만.
벌써 몇 번이나 겪었다.
내가 부서진 뒤, 그녀는 처참하게 유린당한다.
머릿속에서 그 광경이 스쳐 지나갔다. 떠올리고 싶지 않았지만 잊을 수도 없었다.
- 달그락.
고개를 혼 들었다.
“왜 그러세요?”
“빗물을 털어 내는 거요.”
루비아는 아직도 주머니를 줍지 않았다. 대신 뭐라고 입을 웅얼거렸다.
잘 들리지 않았다.
루비아에게 던져 준 돈은 정확히72로티다.
물론 만져만 보고 액수를 아는 재주는 없다.
[72 노티를 습득하셨습니다!]라고 허공에 글자가 떠서 안 거다.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돈을 주웠다고 글자가 뜨다니.’
신기한 경험이었다. 녀석의 가죽 주머니는 매우 두툼했다. 신체 파손에 대한 작은 위자료로 치자.
놈의 망치. 그 흉기에 벌써 두 번이나 두개골이 부서졌으니까. 루비아를 보고 말했다.
“몇 로티인지는 나중에 세어 보고.”
“것!”
그제서야, 루비아의 커다란 갈색 눈이 동그랗게 떠진다.
“로, 노티를 아세요?”
그 말 때문에 놀란 거구나. 알기는 안다. 써 본 적이 없을 뿐이지. 로티는 제국의 화폐 단위다.
인간의 제국.
실질적으로 무수한 세력으로 찢겨 있다. 그러나 제국이라는 이름 하에 화폐 단위는 동일하다.
“위젯도, 세 이론도 알고 있소. 아,
두갓도 알지. 셰켈도 알고.”
루비아가 놀라서 딸꾹질을 했다.
“어, 어떻게.!”
제국은 위젯과 로티를 쓴다.
100로티는 1 세 이론.
계급 사회인 제국의 가장 큰 적은,기나긴 지협地賊을 지난 저편에 있는 자유 연합이다.
물론 그 공화 주의자들이 쓰는 화폐는 제국과 동일하지 않다. 그들은 자유 두갓과 셰켈이라는 화폐를 쓴다. 25 두 갓은 1 셰켈에 갈음.
노티와 두갓은 은으로, 세이론과셰켈은 금으로 만들어 진다.
녹이면 모두 같아지는 금속. 그 위에 제국은 황제의 얼굴을 찍는다.
월계관을 찍는다.
자유 연합은 의회 조형과 투표하는 인간을 찍는다.
양측 모두 금속 위에 가치와 성격을 부여한다. 녹아서 흐물흐물한 금속 위에 무엇을 찍느냐로 자신의 사회를 중명하려 한다.
루비아가 내게 질문했다.
“저, 위젯은. 모르시나요?”
나는 어깨를 으쪽했다.
“물론 알고 있소.”
위젯은 노티보다 낮은 제국의 화폐세이론, 노티, 위젯 순이다.
“어쨌건, 돈은 당신이 갖고 있으시오. 그게 돈이라는 걸 알아도 나에겐 쓸모가 없으니.”
적선이 아니다.
반짝이는 은화를 쥔 것이 누구인가. 그것이 중요하다.
나는 살점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해골이다.
이 손에 은화를 쥐고 있다면.
돈은 더 이상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