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삶에서 깨어나는 것 (11)
- 쏴?아아아.
- 우르릉! 광!
기억에 있는 동굴. 그곳에 가기 전해야 할 일이 있다.
새롭게 숨이 끊어진 시체 두 구를 처리해야 한다.
내가 나온 무덤에 놈들을 던졌다.
두 녀석의 시체가 굴러가며 관 속에서 포개진다.
- 퍼벅!
적당히 포갠 두 구의 시체.
그 위에 다른 관을 올려 버렸다.
번거롭게 흙을 뿌리는 것보다 그 편이 편할 것 같다.
누군가 여기서 시체 두 구를 발견할 수도 있다.
수상하고, 부자연스럽게 덮어진.
루비아를 용의자로 삼지는 않길 바란다. 아마 그럴 거다.
그녀가 처리했다고 생각하기엔, 두 남자는 지나치게 건장하다.
“이제 갑시다.”
알고 있는 동굴로 향한다.
- 터벅터벅.
이십 분 정도를 걸었다.
‘저기군.’
작은 입구를 확인했다.
음침하게 수풀로 가려진 입구.
그곳에서 삼 년을 산 내 눈에는 훤히 보였다.
길을 돌아 내려갔다.
“내가 먼저 들어가겠소.”
“조심하세요.”
여자는 나를 걱정한다.
‘내가 사람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는군.’
동굴의 입구에 도착했다.
입구라지만 작은 틈에 가깝다.
1미터도 되지 않는 직경.
- 달그락!
손가락뼈로 입구를 잡았다.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뼈밖에 없는 몸.
‘간단하지.’
“짐을 주시오.”
“넷!”
루비아에게 짐을 받아 들었다. 망치와 석궁에게서 빼앗은 짐이다. 식량과 무기, 가죽 같은 것들.
- 쿵.
짐을 바닥에 놓았다.
짐을 쌌던 망치의 겉옷을 풀어서 손에 감았다. 루비아를 위해서다.
차가운 손가락뼈가 닿으면, 놀랄지도 모르니까.
“다리부터 들어오시오.”
루비아는 잠시 흠칫했다.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알 수 없는 구멍으로 다리를 넣으려는 것이다.
망설이는 건 자연스럽다.
“옷.!”
쑥 뻗어 오는 다리에 겉옷을 감싼 손을 내밀었다. 새하얀 다리를 잡아 받아 주었다.
“.고마워요.”
“갑시다.”
다시 짐을 싸서 들었다.
박쥐도 살지 않는 동굴.
‘벌레도, 거미도 없지.’
이상할 정도로 황량한 곳이다.
안에서 삼 년을 살았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입구 근처에서 노는 동물은 있어도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는다.
나를 의식해서는 아니다.
동물들도 날 그리 두려워하지는 않으니까.
‘좀 이상한 곳이긴 해.’
- 달그락.
약간의 뼈 무더기.
그것밖에 없는 동굴이다.
누구의 뼈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 동굴에는, 또 다른 -움직이는- 뼈.
그리고 살아 숨 쉬는 여자 한 명이 더해졌다.
앞장섰다.
- 터벅터벅.
안으로 천천히 들어갔다.
조금씩 넓어지는 공간.
얼마나 걸었을까.
루비아의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하아.
가파르게 내어 지는 숨소리.
- 스르르.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진다. 재빨리 그녀의 몸을 받쳤다. 뾰족한 바위에라도 부딪히면 다치게 된다.
‘긴장이 풀려서인가.’
배려 없이 한참을 걷기만 했다. 약한 육체를 가진 여자다.
신경 쓰고 있다고는 해도 적응이 조금 어렵다.
이 여자를 어떤 식으로든 이용할 생각이라면, 조금 더 제대로 돌봐줄 필요가 있다.
짐을 풀었다. 망치잡이의 겉옷으로 여자를 덮어 주었다.
바닥에 눕히면 목이 불편할 거다.
_ 툭.
누운 여자의 머리를 허벅지 뼈로 받쳐 주었다.
‘너무 딱딱할까?’
하지만, 누운 그녀는 몹시 편안한 표정이다. 풍성한 갈색 머리칼이 하얀 뼈 사이로 감겨들었다.
빛은 새어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차분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다. 일단 위기는 극복했으니.
‘정리를 해 볼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1. 소멸될 경우, 다시 처음 무덤에서 깨어날 때로 돌아온다.
2. 레벨은 1로 초기화. 하지만 스킬과 스탯은 누적. 배분하지 않은 보너스 포인트까지도 마찬가지.
생각해 보면 무척 유리하다.
레벨은 1에서 올리는 게 당연히 훨씬 쉽다.
레벨 업을 몹시 쉽게 할 수 있다.
스탯을 누구보다 쉽게 쌓을 수 있는 것이다.
‘자살할까?’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죽으면 다시 무덤으로 돌아간다.
석궁과 망치를 죽이면 레벨이 5 오른다. 그리고 다시 죽으면 무덤으로 돌아간다.
‘여기서 자살하면.
계속 그 일을 반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끊임없이 스탯을 올릴 수 있는 것이다.
- 달그락.
고개를 저었다. 무모한 짓이다.
일단 첫 번째로.
언제까지 다시 무덤으로 돌아가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
얼마나 다시 살아날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기현상이 언제까지나 지속되리라고 보는 건 무모하다.
죽으면 다시 돌아오는 조건.
그것부터 알아내야 한다.
‘무덤 근방에서 죽으면 다시 돌아가는 건가?’
- 달그락.
고개를 저었다. 서큐버스님에게 죽었을 때를 생각했다.
거긴, 여기서 한참이나 먼 곳이다.
‘일단은 살아가 보자.’
먼 미래에, 서큐버스님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나를 깨운, 내 허벅지 뼈에 머리칼을 감고 자는 이 여자.
그녀는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한다.
‘따듯. 한가.’
이 여자 곁에 있으면 나는 약간의 온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런 온기는 나쁘지 않게 다가온다.
잠시 함께하는 것도 괜찮겠지.
벽에 조심스럽게 몸을 기댔다.
여자가 펼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감을 눈도 없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으려 했다.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의식이 조금은 희미해져 갔다.
텅 빈 눈구멍.
그곳으로 빛이 들어온다.
후두골 안쪽이 간질거린다.
빛의 초점이 모이듯,
멍하니 흩트려 놓고 있던 의식이 서서히 모아지기 시작한다.
수풀에 가려진 좁은 동굴 입구.
그 틈으로도 빛이 새어 들어온 것이다.
고개를 숙였다.
루비아를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쌔근거리며 자고 있다.
평온해 보이는 얼굴.
‘악몽은 안 꾸나 보군.’
그렇게 좋아한다는 책도 한 권 못 들고 여기까지 도망쳐 왔다.
안락하게 쉴 수 있는 곳은 꿈속 정도겠지.
루비아를 깨우기가 망설여졌다.
스스로 눈을 뜰 때까지 기다려 주기로 했다.
그 순간이었다.
- 띠링!
[튜토리얼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첫 번째 밤에서 살아남기’ 완료.]
[보상: 시나리오 슬롯 1개추가]
[현재 슬롯: 1/2]
[동화율이 내려갑니다.]
[94.25%->93.71%]
‘튜토리얼? 동화율?’
낯선 단어들.
어제 떴던 퀘스트라는 단어는 들어 보기라도 했다.
그러나 튜토리얼이니 시나리오니,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말들이다.
‘역시 내가 미쳤거나.’
알 수 없는 마법이 적용되고 있는것이다.
- 달그락.
머리를 뒤로 기댔다.
미쳤다면 어디서부터?
마법이라면 어딜 가서 물어봐야 하지?
- 딱딱.
나는 손가락뼈로 두개골을 몇 번 두드렸다.
첫 밤은 정신없이 지나갔다.
워낙 정신이 없어서, 그냥 넘겨 버리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의문을 풀고 싶다. 약간 조급해 지는 느낌이 든다.
멍하니 고민하고 있을 때.
“으, 으응.
루비아가 신음 소리를 내며 서서히 깨어났다.
그녀는 일어나 살며시 눈을 마사지한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흐, 하으으.
“더 자도 괜찮을 텐데?”
“흐꼭!”
그녀가 깜짝 놀랐다. 딸꾹질을 한 뒤 홉, 하고 숨을 크게 들이킨다.
‘좀 부주의했나.’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다.
역시 인간 여자를 대하는 건 익숙하지 않다. 잠시 굳어 있던 루비아가 천천히 손을 내렸다.
“꾸, 꿈이 아니었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꿈이 아니었구나. 꿈이 아니었어.
루비아는 몽롱한 표정으로 말하다 갑자기 기침을 했다.
“크홈! 음!”
목이 칼칼한 듯했다. 수통을 가져다 줬다.
- 꿀꺽꿀꺽.
“아. 고마워요. 혹시, 제가 갑자기 쓰러졌던 거예요?”
“그렇소.”
그녀는 짐에서 육포를 꺼냈다.
가늘게 찢어 나에게도 권하려다 멈칫한다.
나는 어깨를 으쏙했다.
아래턱뼈 아래 텅 빈 공社그리고 아무것도 없는 갈비뼈 아래쪽을 가리켰다.
“혼자 드시오.”
“아. 죄송해요.”
루비아는 내 눈치를 보며 육포를 우물우물 씹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마른 육포를 씹었다.
얼굴에 약간 활기가 돌아왔다.
루비아를 가만히 바라봤다. 시선이 계속 마주쳤다. 약간 머쓱함을 느꼈다.
어제 들은 이야기나 좀 더 해 보기로 했다. 밑도 끝도 없이 질문을 쑥들이 밀었다.
“복수할 거요?”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그 자리를 삼촌이 빼앗았다.
루비아는 수통을 내려놓고는, 조용히 손을 모았다.
의외로 어조는 차분했다.
“복수를.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너무 무서웠어요. 이런저런 걸 생각할 수가 없었어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제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성에 있던 사람들이 울면서 이야기하고.”
“거기 있었으면 죽었겠지.”
“그럴까요?”
“당연한 소릴.”
남았다면 죽는 건 당연하다.
지금의 루비아는 모르겠지만, 처음 그녀를 지켜 주지 못했을 때 쫓아온 석궁은 ‘영주님’ 운운했다.
그녀의 삼촌일 것이다. 그는 조카를 죽이려고 악질 청부업자 둘을 보낸 것이다. 혹시나 모를 화근을 없애기 위해서.
루비아가 한숨을 쉬었다.
“성에 계시던 분들. 다들 저한테 참 잘해 주셨는데. 잘 계실까 걱정이에요.”
조금 숨을 고르던 루비아가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복수를 해야 하는 걸까요? 제가 지금 가면, 저를 위해 싸운다고 또 많은 사람들이 죽어 갈 텐데. 그게 너무 무서워요.”
도망쳤던 건가.
그리고 날 일으키고.
갑작스러운 상황에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같은 편이 생겼다고 좋아하던 그녀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의 루비아는 잔혹하게 간살奸殺당했다.
문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복수라면 나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서큐버스님을 위해.
하지만 용사에게 복수하는 일은 꿈만 같은 일이다.
터무니없는 힘의 격차를 논외로 치더라도, 용사라는 것들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건 마왕 강림 후.
10년을 기다린다?
그때나 나타날 용사들을 위해?
게다가 그 시간서이라면.
아직 서큐버스님을 만나지도 않았을 때다. 복수보다 중요한 건 그분을 지켜 드리는 것. 하지만 어떻게 찾을지도 막막하기만 하다.
나는 갑자기 침울해 졌다.
“왜 그런 심각한 분위기예요?”
서큐버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그건 마음에 담는다. 꺼내지 않는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하기로 했다.
“그냥 궁금한 게 많아서.”
“뭐에 대해서요?”
“.나에 대해서.”
물론 거짓말은 아니다.
시간에 갇혀 있다. 반복되는 루프는 나에게 가장 큰 의문이다.
“어.!”
내 말을 들은 루비아가 잠시 흠칫한다. 턱을 괴고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미안해요. 해골 씨가 ‘나’라고 말하는 게 잠깐 어색하게 느껴졌어요.
왜 그랬을까요? 1인칭 단수가 인간만의 것도 아닌데.”
“답은 당신이 해야겠지.”
“책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인간들의 이야기만 너무 읽었거든요.”
“무슨 이야기지?”
“저자의 ‘나’에만 익숙해 졌어요. 저자는 모두 인간이죠.”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들 1인칭으로 자기 서술을 해요. 나름대로 풍자와 객관을 섞어 3인칭으로 쓰려고 하는 책도 있지만,
결국은 1인칭이에요. 책을 쓰는 사람은 어차피 모두 1인칭이니까.”
루비아는 말을 이었다.
“사실은, 제가 ‘나’라고 입 밖에 내는 것도 가끔은 어색하다니까요? 책을 읽다 보면 대부분 화자는 남자거든요. 아, 해골씨는 남자예요?”
- 달그락.
나는 몸을 움찔거렸다.
뭐라고 해야 할까?
동물의 성별이란 건 생식기 구조로 인해 판별된다.
생식기는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다. 나에게는 남은 건 달그락거리는 하얀 뼈밖에 없다.
골격을 보고 생전의 성별을 판단할 수 있다고 한들, 지금은 뼈도 살도 없는 그저 뼈에 불과하다.
구분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잠시 고민하다 적당히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