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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2화 (22/458)

22화 누구를 책망할 것인가 (9)

- 끼릭. 끼리릭.

석궁에 살을 감았다.

“그래, 주, 죽여!”

남자가 발작하듯 소리친다. 그의 오른쪽 손목을 다시 밟고,

- 피슛!

석궁살을 고정된 오른쪽 손바닥에 박아 넣었다.

- 퍽!

개량형 석궁의 관통력은 뛰어났다.

살은 손을 지났다. 반 이상 바닥을 뚫고 바닥에 박혀 들어갔다.

두 발에도 살을 박아 넣었다. 팔다리가 바닥에 고정되었다.

살과 뼈를 헤집는 고통이 심한지입에 피거품을 물고 있다.

피거품이 숨을 막는다. 여관 주인은 끅끅대며 한참을 괴로워했다.

고통은 지리멸렬하고 단순한 감정이다. 관람에 큰 즐거움은 없었다.

- 툭.

조금이라도 높이 들려 애쓰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발버둥이 멈췄다. 방 안이 고요해졌다.

- 띠링!

[경험치가 149 올랐습니다.]

나는 추한 시체가 된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일단 한 놈을 죽였다. 하지만 뒷맛이 조금도 개운하지 않다.

말하자면, 이 녀석은 루비아를 죽인 놈들의 이너 서클도 아니다.

쓰레기 같은 놈이긴 하지만, 그 집단에서도 이용하고 버리는 피라미에 불과하다.

‘허무하^.’

한참을 발버둥쳐서,  고직 여기에 도달했다는 거다. 그리고 이제 더 이상 나아가지도 못한다.

힘이 없기 때문에,

성벽 안으로 뛰어들 수는 없다.

망치와 석궁을 보낸 영주가 있는에라스트의 성벽으로도.

루비아를 죽게 만든 경비대가 있는유블람의 성벽으로도.

두 도시에 공통적으로 엮여있는네크론 신사회라는 조직에 대해서도, 어디서부터 찾아가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방 안을 뒤졌다. 얼마 되지 않는 돈을 챙겼다. 그 외에 건질 만한 물건은 나오지 않았다.

한구석에 놓여 있던 풀 플레이트메일밖에 없다.

- 철컥.

나는 갑옷을 입었다.

여관 주인을 죽이기 전.

갑옷이 어디에서 난 거냐고 여관주인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마음에 짚이는 게 있었다.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있으니까.

달그락거리며, 혼자서 각반을 끼고건틀렛을 끼고 투구를 썼다.

- 찰그락.

몸 전체가 가려졌다.

겉으로만 본다면 해골이라고는 알수 없을 정도였다.

그럴듯한 한 명의 기사와 같다.

잠시 가만히 서 있었다. 이 옷을 입고 그녀와 함께 걸었으면 좋았을 것이다.

- 뀨뀨.! 뀨뀨뀨.!

혼자 산길을 걷는다. 2월이다.

이곳은 제국 남부다.

남부는 눈이 일찍 녹는다. 눈 내린 겨울 풍경이 금세 부옇게 없었던 것이 된다. 하지만 겨울의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

- 저벅.

흙을 밟는다. 돌맹이를 밟는다.

눈 없는 산길을 걸어간다.

지금은 녹아 버린 눈 위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갓 사령술사가 된 여자와 있었던 일을 생각한다.

눈을 맞았던, 후두골 안쪽이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 달그락.

몇 번이고 생각했던 것처럼, 강해져야 한다.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며 안정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방법은하나. 레벨을 올리는 것이다.

빠르게 레벨을 올릴 수 있는 방법은 인간 사냥이다.

하지만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건 곤란하다. 산길에 숨어 아무나 공격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인간의 강함은 겉보기와 비례하지 않는다. 그들은 파격적인 존재다.

마물의 경우 한눈에 강함을 판단할 수 있다. 겉으로 보이는 판단은 대체로 정확하다. 고블린과 트롤, 오우거를 일렬로 놓아 보라. 마물의 강약은 보이는 그대로다.

하지만 인간은 개개인의 편차가 매우 크다. 겉보기로도 가늠할 수 없을 때가 많다. 기묘할 정도다.

겉으로는 약해 보이는 여자아이가,

터무니없는 힘을 내기도 한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어딘가가 왜곡되고, 뒤틀려 있다. 균일하지 않다.

바로잡을 방법은 모른다.

굳이 바로잡아야 할 필요도 전혀 느끼지 못한다.

다만 조심할 뿐.

만만해 보인다고 아무나 공격하단큰일이 난다는 이야기. 단숨에 사망의 골짜기에 던져진다.

무덤으로 다시 돌아가게 될 거다.

‘던전으로 가야 해.’

그게 내 결론이다.

나는 던전으로 가고 있다.

얼핏 보면 이상한 짓이다. 던전은 준비된 인간들이 찾아온다. 호전적인 인간들이 구태여 찾아오는 곳이던 전이다.

그런 곳으로 가는 행위가 미친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맞다.

던전으로 오는 인간들은, 그 강함을 측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험자의 강함은 그가 찾는 던전에 거의 정확하게 비례한다.

이를테면 조악하게 달그락거리는해골병사만 있는 곳에, 대마법對魔法 갑주를 입은 사자 기사단이나 재의 수도회가 가지는 않는다.

고블린 소굴을 토벌하는 데, 아쥬라의 마법사나 검주劍초들이 가지는 않는다.

불문율이랄 것도 없다.

당연한 일이다.

잡아 봤자 정말이지 아무 이득도 없는 곳에 가는 인간은 없다.

인간들은 자기와 맞는 수준의 던전에 들어간다.

F 랭크의 던전을 예로 들어 보자.

그곳에는 1레벨에서 15레벨 정도의 모험가들이 들어간다.

갓 모험을 선택한 자들이 들어간다. 그 이상의 인간이 들어가 봐야제대로 된 경험치를 얻을 수 없다.

- 달그락.

나는 깊은 산 속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가까운 던전들을 생각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던전이 하나 있다.

<망령의 납골당>.

첫 삶에서 삼 년 정도 머물렀던 던전이다.

에라스트 근처의 동굴 미로에서 삼년을 살았다.

빠져나온 뒤 정처 없이 걸었다.

짐승과 사람을 피해 돌아다니다가그곳에 도착했다. 왠지 모르겠지만 끌리는 장소였다. 들어가 보니 나와 같은 해골들이 가득했다.

내가 삼 년을 머물렀던 던전.

망령의 납골당, 이라는 이름만 보면 그럴싸하게 들린다. 하지만 사실,

실속은 전혀 없는 초라한 던전이다.

초보 모험가들이 연습용으로 거쳐 가는 곳.

일종의 담력 시험장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아주 낮은 난이도를 가진 던전. 훔쳐갈 것도 없는 연습용에 불과하다.

그다지 흥분할 것도 없이 픽퍽 때려 부수면 되는 해골병사들로 구성된 던전이다.

나를 포함해서.

‘거기서 수없이 부서졌지.’

모험가들의 연습용으로 몇 번이고 짓밟혀 부서졌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몇 주가 지나면 다시 일어나곤 했다. 달그락거리며, 그리 넓지 않은 던전 안을 헤매던 기억이 아련하다.

기억을 되짚어갔다.

망량의 납골당은 제법 특기할 만한점이 있다.

안쪽에 트인 공간이 있는 것.

특수한 기관 장치가 있다. 돌 퍼즐을 맞춰서 석벽을 누르면, 서서히안쪽으로 향하는 문이 열린다. 그곳에 던전 보스가 있다.

‘거기서 지내면 괜찮겠군.’

던전 보스가 있던 홀.

나는 그곳에 숨어 있을 생각이다.

기관 장치로 열리는 석벽 안에.

거기 숨어 지내면서, 던전에 들어온 인간들을 하나둘씩 끊어 먹을 생각이 다.

그러다 보면.

레벨 업이 되어 있을 거고.

낮은 레벨의 인간들을 죽여서 더이상 레벨 업이 되지 않을 때쯤,

다른 던전으로 이동하면 된다.

오래 머무를 곳은 아니다.

그 던전.

깊고 어두운 산속에 있다. 그림자몇 겹 드리운 좁은 동굴 입구.

안은 음침하다. 초라하다. 곳곳에 물웅덩이가 고여 있고, 뼈 잔해는 곳곳에 쌓였다.

‘입구에 몇 갈래 길이 있었지.’

다만 메인 루트가 아닌 쪽은 금방 막힌다. 길을 잘못 들었다면, 그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는 곳. 재미는 없지만 공략은 쉽다.

그럴듯한 트랩도, 동굴을 지키는 룬도 없다. 약한 인간들이 즐겨 들어온다. 해골들을 부수고, 가벼운 여훙을 즐기는 곳.

던전 내부를 자세히 떠올리며 산길을 걸었다. 생각에 빠져 걷자 걷기가 훨씬 덜 지루했다.

- 철컥. 철컥.

한참을 걸었다. 쉼 없이 빠르게 걸어서일까. 플레이트 갑옷이 철컥거리는 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문득 의식해 보면, 내 걸음걸이가 상당히 빠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쫓기듯 걷고 있다. 내 무력함에 쫓겨서 초조하게 걷고 있다.

‘다 왔군.’

도착했다. 여기가 던전 앞.

- 구우우우.!

입구 주변은 매우 어두웠다. 마치,

던전의 짙은 어둠이 밖으로 흘러나온 것 같았다.

하지만.

속으로 쿡, 하고 실소했다.

이 던전의 핵심 방어 요소는 몬스터도 아니고, 미로도 아니다. 그냥 이런 음침한 곳에 던전에 있다는 사실 하나다. 겉으로 보기에 좀 으스하다는 것. 그게 전부다.

‘분위기만 있지.’

나오는 몬스터는 약하고 미로는 간단하다. 웬만한 인간들은 그 사실을다 알고 있고.

‘하지만.,

이제 내가 여기 들어간다. 내가 본격적으로 모험가 사냥에 개입한다면, 이 던전의 레벨이 조금 올라갈지도 모른다.

인간들이 제 동료를 하나둘 잃어갈 때, 던전에서 위화감을 느낄 때.

그때 이곳을 떠나면 된다.

[망령의 납골당]

[던전 랭크: F]

[적정 레벨: 卜 15]

[현재 레벨에서는 조금 어려울 수 있는 던전입니다.]

[적정 클리어 인원: 3?4인]

‘이게 무슨 말이지?’

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자.

허공에 기괴한 메시지가 떴다.

마치 나에게 말을 거는 것 같은 메시지다. 이젠 어디 들어가는 것까지 띄워 주나.

문을 그대로 밀었다.

- 쿠구구궁.!

커다란 던전 입구가 열린다.

‘여기서부턴 눈 감고도 훤하지.’

이 안에서 3년이나 살았다. 어차 피별 함정도 없지만.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 터벅. 터벅.

발소리가 던전 안에 울린다. 바닥은 평범한 돌. 바닥에 쏟아진 뼈 무더기 몇 개와 쏟아진 재가 있다. 잠시 재를 쳐다보고 앞으로 갔다.

세 개의 갈림길이 있다. 가장 오른쪽이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다른 곳에 간다고 해도 볼 것도 없다. 그냥 시간만 더 쓸 뿐.

오른쪽 길로 들어갔다. 나오는 계단을 오르자 주위가 탁 트였다.

‘이런 곳이 있었지.’

꽤 큰 공터가 기다리고 있다. 공터는 고요하다.

- 타닥타닥.

화롯불이 안을 밝히고 있었다. 모험가들이 공통적으로 쉬어 가는 곳처럼 보인다.

‘이제 보니 아예 놀이터였군.’

던전 안에 아예 모험가들의 캠프 비슷한 게 있다니. 던전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공간이었다.

공터를 거쳐 아래쪽으로 진입했다.

다 말라붙은 덩굴이 곳곳에 얽혀 있는 곳을 지났다.

덩굴을 가만히 바라본다.

덩굴 중에는 종종 살아서 꿈틀거리는 것들이 있다. 팔다리를 감고 피부를 녹이거나 사지를 뜯어 버리는 것들이 있다. 물론 이런 F급 던전에 그런 덩굴은 없다.

여기 있는 덩굴.

그것들은 그저 말라붙은.

어떤 것도 잡아당기거나 저지할 수없는.

죽은 지 오래된 덩굴이었다.

가장 약한 해골들이 달그락거리며 돌아다니는 이곳에 어울리는 덩굴이라고 생각했다.

모험가들이 고개를 숙여 지나가기가 귀찮았는지, 덩굴을 적당히 정리해 놓았다. 그 덕에 나도 들어가기가 수월했다.

- 달그락.

조금 걸어가자 소음이 났다.

‘던전 지키는 녀석들인가?’

대화는 없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만 나니 모험가는 아닐 거다. 천천히 걸어갔다.

확인해 본다. 과연 해골이다. 일부러 기척을 내며 걸었다.

- 달그락!

해골이 뒤를 돌아본다.

한 손에 녹슨 칼을 들고, 다른 손에는 방패도 없이 허공을 허우적거리며 이쪽으로 다가온다.

‘문지기 녀석인가.’

해골병사에게 이름은 없다.

그냥, ‘문 지키던 녀석’이 있었던 정도만 기억한다. 가장 먼저 부서지던 녀석. 그리고 다시 조립되던 녀석이다.

덧없고 가여웠다. 녀석은 진지하게 문을 막아선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의미도 없다. 인간들은 그저 즐길 뿐이다. 녀석을 쓰러뜨리고, 다시쓰러뜨리고, 다시 쓰러트리는 것을.

나도 저 녀석과 같은 입장이었다.

말도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저 멍하니 이 동굴 안을 떠도는 입장이었다.

목적도 지향도 없다. 욕망도 갖지 못한다. 그저 멍하니 걸어다니는, 어떤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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