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24화 (24/458)

24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2)

“쿠오오오!”

제법 공격적인 소리가 들린다. 해골들이 내는 소리.

기관 장치로 열린 석벽 안쪽에서기다리던 녀석들이다.

‘상위 해골이군.’

석벽이 열린 곳.

상위 해골병사 넷이 이쪽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밖의 다른 해골들과 조금 다르다.

같은 해골인데 좀 더 크고, 약간흉악한 느낌이다.

든 무기도 그럴듯하고.

첫 삶을 살아갈 때. 이 던전에서 3년을 보냈을 때가 떠오른다.

그때에는 이들이 정말 대단하게 느껴지곤 했다.

같은 던전에 있을 때.

그때는, 말하자면 이 녀석들의 근처에 가기도 겁이 날 정도였다.

“안녕?”

“쿠우오오!?”

하지만.

지금은 아직 말조차 하지 못하는 녀석들이 귀엽게 느껴질 정도다.

이 녀석들은 잘해 봐아^ 레벨 15에서 20 정도의 해골병사.

나는 명목상으로는 레벨 10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스탯으로 따지면 이미 레벨 70에 가깝다.

20년 전에는, 고작 이 정도의 녀석들이 두렵다고 생각하면서 납골당에서 어슬렁거렸던 거였군.

“쿠어어.r녀석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다가온다.

비웃을 건 없다.

사실 나도 아주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서큐버스님이 성심성의껏 가르쳐주셔서 말을 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분은 자기 마력까지 나에게 불어넣어 가며, 말을 가르쳐 주었다.

자신이 따로 보충할 수 없는 종류의, 양이 한정되어 있는 마력을 나에게 상당히 넣어 주신 것이다.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것이 가엾다면서.

사고는 언어로 만들어진 인식의 영향을 받는다. 말을 배우지 못한 이해골들은, 아쉽게도 그만큼 정밀한사고 능력이 떨어진다.

이들이 제대로 된 싸움을 하지 못하는 건, 꼭 능력치가 터무니없이 떨어져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쿠오오!”

커다란 바스타드 소드를 든 녀석이 선두에 있다. 녀석이 나를 향해 돌진해 온다.

들고 있는 바스타드 소드. 그것만큼은 그럭저럭 쓸 만해 보인다.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났다.

저들은 왜 저렇게 내게 필사적으로 달려드는 건가?

석벽이 열리면 바로 공격하라고 세뇌된 걸까.

‘여긴 사령술사도 없는데.’

이 던전에 숨어 있는 네크로멘서.

의도를 가지고 명령을 내릴 사령술사 따위는 없다.

같은 해골들뿐이다.

그런데도 왜 저렇게 열심인가. 뭘바라고 저러는 걸까.

이런저런 망상 속에 빠져 있을 때녀석이 코앞까지 도달했다.

슬쩍 걷어찼다.

- 퍽!

녀석이 뒤로 요란스럽게 날아갔다.

제법 멀리까지 광하고 날아가, 돌로 된 관에 부딪혔다.

그리고 손에 든 커다란 바스타드소드를 놓쳤다.

- 챙.!

바스타드 소드가 돌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홀 안에서 쩡그렁 하고 커다랗게 울렸다.

“우어어.!”

‘너무 세게 걷어찼나.’

- 달그락!

- 달그락!

다른 녀석들 셋도 각자 무기를 꼬나들고 내게 달려든다.

기관 장치 안쪽의 이 공간.

홀.

여기에 대해, 알게 된 건 들어가서일 년도 지난 뒤의 일이었다.

홀은 인간으로부터 보호된다.

덜 침략 받는다. 기관 장치와 석벽에 의해 보호받고 있으니까. 물론 들어올 수 없는 건 아니다.

준비성 있는 모험가들은 많다.

그 부류들은 던전의 모든 것에 대해 미리 알고 들어온다.

깊숙이 숨어 있는 녀석들까지 모두 때려눕힌다. 던전 공략율 100%에즐거워하며 돌아간다.

하지만 여기는 F 랭크의 던전.

초보용 놀이터다.

여기 들어오는 인간 가운데, 준비성이 있는 녀석들은 드물다.

많은 인간들이 이 기관 장치의 존재를 모른다.

별것도 아닌 기관 장치.

별것도 아닌 석벽.

하지만 어쨌거나, 여기서 분리와 특권이 발생한다.

이 석벽 너머의 녀석들.

그들은 엄연히 특권층이다.

납골당이라는 초라한 던전.

그 안의 약한 무리들.

인간 모험가들에게 장난감처럼 짓밟히는 그 집단 내부에서도, 계급이있는 것이다.

이들은 망령의 납골당 안에서 가장강하다. 그런 주제에 가장 안전한곳에 숨어 있다.

그리고 다른 약한 해골들을 여기로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 콰직!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려드는 녀석을 발로 걷어차 멀리 날려 보낸다.

“싸우기 싫다니까.

정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순순히 당해 주기도곤란하다.

갑옷이 막아 주긴 하겠지만.

언제까지 맞아 주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나는 칼을 들고,

- 쌩!

달려오는 세 해골들을 향해 휘둘렀다. 그리 무겁지도 않은 한손 검이세 해골의 무기에 연속으로 세 차례 맞았다.

- 쩌엉!

크게 쇠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세 녀석이 손에서 무기를 놓쳤다.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녀석들이든 무기가 내 무기보다 훨씬 크다.

무겁다. 내가 가진 힘이, 그 무게와 크기를 다 쳐낸 것이다.

- 쩡!

- 챙!

- 채챙!

무기 세 개가 동시에 멀리 날아가바닥을 나뒹굴었다.

“쿠오오.!”

녀석들도 휘청거리며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 털썩. 털썩. 털썩.

그러고 셋 모두 아예 주저앉아 버렸다. 뒤로 자빠져 주저앉았다.

겁먹은 것도 고통 때문도 아닌, 순수한 물리력의 반발 때문이었다.

지금 내 힘은 그 정도는 된다.

“귀찮게 하지 마라. 인간을 잡으러온 거다.”

“우어 어어.!”

하지만 녀석들은 다시 일어난다.

끝까지 나에게 달려든다.

피아 구분이 안 되나.

솔직히 같은 편을 들어 줄 생각은 없지만. 인간들을 처리하면 녀석들에게도 편할 텐데.

이 던전에서는 편안한 기분이 느껴진다.

나처럼 달그락거리는 해골들이 모여 있어서 그런 것도 있을 거다. 하지만 묘하게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홀 안으로 들어오자 더 그랬다. 아마 이 안에, 이 던전을<던전>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있지 싶다.

이 던전에서 당분간 지낼 예정이다.

이 해골들이 일어날 때마다 다시쓰러뜨려서야, 일이 피곤해진다.

한번 벗어 볼까.

- 탈칵.

갑옷을 벗어 놓았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석관에 고이 넣어 두었다.

“우어?”

달려들던 해골들이 멈췄다. 나를 동족으로 인식한 건가 싶다.

‘이제야 되는군.’

그 순간이었다.

- 쿠구궁!

약한 진동이 울리며, 저 안쪽에서관이 열렸다.

돌로 된 거대한 관 밖으로, 발을내밀고 나오는 녀석이 있다.

- 쿵!

‘저런 녀석은 본 적 없었는데.’

갑옷 비슷한 걸 몸 여기저기에 입은 해골이다.

물론.

제대로 된 갑옷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발끝에서부터, 손끝, 머리끝까지 제대로 가려진 내 갑옷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녀석의 것은 몸 여기저기에 철판을 조금씩 덧씌운 것 같은 갑주다.

‘저런 놈이 있었다고?”

나는 이 던전에 3년을 머물렀다.

그런데도 저런 녀석은 처음 본다.

물음표가 떠오르는 순간.

- 띠링!

[던전 보스: 납골당의 우두머리]

[랭크: F플러스]

[플레이어의 레벨: 7]

[적정 클리어 레벨: 25]

[난이도 판정: 자학_虐!]

[솔로 플레이로 도전합니다!]

‘이건 대체 뭐야?’

관에서 뛰쳐나오는 놈보다도, 허공에 떠 있는 창이 훨씬 더 신경 쓰였다.

“스케에에에엘.!”

조금 독특한 괴성이다.

다른 해골보다 머리 두 개는 더 크다. 놈이 이 던전의 보스라는 건가?

그건 알겠다.

하지만 플레이어라는 건, 난이도판정이라는 건 무슨 소리인지 전혀 모르겠다.

- 쿵! 쿵!

놈이 위협적으로 땅을 울리며 달려든다. 내겐 초라해 보이기만 하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습다기보다도,

조금 짜증이 났다.

아마 놈을 봤으면 기억이 날 거다.

처음 본 건 확실하다.

그렇다면.

저 녀석은, 여기에만.

밖에서 다른 해골들이 수없이 부서져 나갈 때에도.

석벽까지 내린 채.

관 안에만 납작 엎드려 가만히 숨어 있었던 건가.

“구오오오오!”

“우어어어!”

녀석이 일어나자, 자빠져 있던 다른 해골들이 다시 달려들려 한다.

관에서 일어난 놈은 한 손에 커다란 방패를 들고, 다른 손에는 도끼를 들고 있다.

왼손으로 방패를 앞세우고, 오른손은 뒤로 빼서 도끼를 쥔 채 언제든 휘두를 자세를 취하고 있다.

-훌쩍!

녀석이 나에게 뛰어들었다.

오른쪽 무릎을 꿇다시피 해서 몸을확 낮춘다. 왼손의 방패로 위를 막으며, 오른손의 도끼를 수평으로 휘둘러 나를 치려 한다.

뒤로 슬쩍 빠졌다.

- 획!

도끼가 허공을 가른다.

‘납골당의 우두머리라.’

석벽 바깥의 다른 해골들이, 홀 안으로 들어오는 걸 막은 것도 녀석인 것 같다. 여기서 통솔력을 발휘하는 것 같으니.

내가 이 던전에서 3년을 달그락거릴 때도, 기관 장치를 여는 법은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홀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그러려고 할 때마다, 홀 안에 있는 다른 해골들이 나를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혼자만 잘 숨어 있었다는 거다.

봐주는 것도 그만할까 싶었다.

나는 막기만 하던 자세에서, 발을디뎌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강하게 칼을 내리쳤다.

‘우두머리’가 방패를 위로 들었다.

- 광!

내 일격의 위력은, 녀석의 상상 범위 밖에 있었던 듯하다.

“쿠어어 억!”

철이 덧대진 좋은 방패였다. 그렇지만 내 속도와 힘은 녀석이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녀석이 후들거렸다.

방패 위에서 불꽃이 일었다. 다른 녀석들은 아예 근처에 다가오지도 못했다.

- 쾅!

다시 방패를 내리쳤다.

힘과 속도만으로도 충분했다.

녀석은 방패를 놓쳤고, 나는 발을 걷어찼다.

- 빠각!

‘우두머리’는 뼈가 몇 군데 부러진 채 한참을 데구르르 굴러갔다.

- 파앗!

덤벼드는 다른 해골들에게 몸을 날렸다. 한 번에 녀석들을 모조리 걷어찼다. 뼈와 뼈를 분리했다.

이제 녀석들은 달그락거리며 감히 반항하지 못했다. 몸을 일으키지도못하고 끙끙대고 있었다.

- 달그락!

‘저 녀석은 다시 일어나는군.’

우두머리는 달그락거리며 다시 일어났다.

- 터벅터벅.

나는 천천히 녀석에게 걸어갔다.

제 편을 모두 잃은 우두머리는 나에게 또 달려들었다.

다시 칼을 내리쳤다. 방패와 무기를 모두 날려 버렸다.

- 쨍그랑!

방패가 흔들리고, 도끼가 저 멀리돌바닥에 떨어진다.

움직임을 보니, 기껏해야 레벨이30쯤 되는 녀석인 것 같다.

그러니까 녀석은, 내가 서큐버스님을 지켜 주지 못했을 때보다도 약하다. 이런 폐허의 대장 노릇이라면 그 정도로 충분한지도 모른다.

- 달그락.

변덕처럼, 녀석에게 무기를 다시 쥐어 줬다.

“다시 해 봐라.”

말을 알아들을까?

녀석이 달그락거리며 달려든다.

- 챙!

다시 한 번에 칼을 휘둘러 도끼를날리고, 발로 방패를 차서 날려 버렸다. 그리고 걷어찼다.

“고작 이 정도인가?”

다시 도끼를 쥐어 줬다.

- 챙그랑!

쳐내서 날렸다. 다시 쓰러뜨렸다.

몇 번을 반복했다.

어느새, 녀석이 뛰어나온 관 근처로 가 있었다. 관에 손을 짚고 녀석을 바라봤다.

그 순간.

- 띠링!

[경험치가 1 올랐습니다.]

[납골당의 핵에 도달했습니다.]

[종족 값이 해골로 판명되었습니다.]

[레벨 30까지 1분마다 경험치가 오릅니다.]

‘응?’

손을 짚고 선 석관을 가만히 바라봤다.

- 띠링!

[경험치가 1 올랐습니다.]

1분이 지나자, 다시 경험치가 1 올랐다.

‘이 관이. 망령의 납골당의 핵.’

어떤 던전은 핵을 가진다.

핵이 발하는 에너지에 끌려 특정한마물들이 몰려든다.

마력을 가진 핵이 없더라도 던전이 구성되는 경우도 있다.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F급 던전인 망령의 납골당은 의외로 핵이 있는 경우인 것 같다.

‘이런 게 있었다니.’

나도 모르고 있었다. 녀석은 그동안 이걸 독점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여기에 있을 때도, 계속.

나눠 쓴다면 모두가 레벨 30이 될 수 있었다.

그런데, 다른 녀석들의 레벨을 올려 주기 싫어서 아예 자기만의 관으로 쓰고 있었다.

이미 자신은 30에는 도달했을 텐데도, 아무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거다.

짜증이 났다.

이 멍청한 녀석이 아니었다면, 이납골당의 모두는 진작에 레벨 30에 도달할 수 있었을 거다.

십수 년 전의 나까지 포함해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