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4)
- 띠링!
[‘문지기 해골’의 호감도가 4 올랐습니다!]
[‘던전: 망령의 납골당’의 친화도가0.4% 올랐습니다!]
[0.4%/100%]
문지기 해골의 호감도와, 던전 친 화도라는 게 올라간 것이다.
‘으음.
글쎄. 호감도는 모르겠지만.
던전 친 화도라는 게.
딱히 별 쓸모는 없어 보인다.
여섯 달이 지났다.
- 쌩!
그동안 기관 장치를 알아내서 안쪽으로 들어온 녀석은 하나도 없었다.
갓 모험자가 되려는 녀석들이 장난치는 곳이니만큼. 너무 이상한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 쌩!
[809,999/810,000]
[체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습니다.]
[더 움직일 경우 전신 탈골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남은 체력: 0.17%]
남은 한 번이다.
- 쌩!
[퀘스트 클리어!]
[810,000/810,000]
[보상: 검술 Lv.5 습득]
[한 번도 쉬지 않고 성실하게 검술을 수련했습니다.]
[추가 보너스가 주어집니다.]
[힘 플러스2, 민첩 플러스2.]
- 털썩.
[체력을 회복합니다.]
[0.171%.]
[0.174%.]
몇 시간 쉬면되겠지.
그리고 다시 수련에 돌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여느 때와 달랐다.
[검술 재능이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현재 재능: Lv.l]
[더 이상 수련으로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없습니다.]
[더 높은 재능을 구입해 주세요!]
‘끝인가?’
여기서 끝이라는 건가.
재능이라는 게 한계가 없는 건 아니구나. 하긴 이대로 계속 나아간다면, 어처구니없이 강해지는 것도 가능하겠지.
아무 조건 없이, 그냥 검만 휘두르면 되니까.
‘용사 포인트였나.’
던전을 공략하고, 그 포인트라 는걸 받자 자동으로 재능이 생겼다.
이걸 지속하려면. 다른 던전을 찾아야 한다는 걸까.
하지만 다른 던전의 위치는 잘 모론다. 계획을 가지고 세계를 조사한 게 아니다.
10년차부터는 마왕 군과 인간의 전쟁에 휘말려서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했고.
정보가 필요하다.
‘인간을 심문해 봐야겠군.’
역시 지금이라도, 그걸 하는 게 옳았다.
‘으음.’
몸을 정상으로 만드는 데는 한 시간 정도가 걸린다.
멍하니 ‘던전의 핵’을 바라봤다. 돌로 된 관 안에는 다른 해골 녀석이 경험치를 얻고 있다.
처음으로 관에 들어갔던 문지기 녀석은 밖으로 나갔다.
녀석이 레벨을 얼마까지 올린 뒤나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 루비아의상태창은 보였는데, 다른 해골들의상태창은 보이지 않는다.
지금은 다른 녀석의 경험치를 올려 주고 있다. 나는 아직 저 관을 사용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녀석들을 모두 레벨 업시켜 준 다음, 가장나중에 들어갈 생각이다.
쉬는 김에, 상태창을 띄워 보았다.
[이름: 없음]
[해골병사 Lv.8(64)]
[체력-30 힘-38 민첩-39 지혜-9]
잡다한 기본 스킬 아래, 빛나는[검술 Lv.5]가 눈에 띄어 제법 뿌듯했다.
그때 였다.
- 띠링!
[Dungeon message: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 현재 던전 친화도: 5.4%
- 친화도가 5%를 넘으면 초기 경보가 제공됩니다.
- 친화도가 올라갈수록, 던전의 다양한 기능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마침 잘 들어왔군.’
오랜만의 인간이다.
좋은 먹잇감이 들어왔다.
수련이라는 명목으로, 던전의 침입자들을 너무 오랫동안 방치해 두고 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 띠링!
[탈진 상태입니다!]
[움직일 수 없습니다.]
[탈진 해소까지: 58 : 42]
F급 던전, <망령의 납골당>.
그 앞.
막 안으로 들어가려는 세 명의 모험자가 있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
“F급은 수당이 얼마나 나와요?”
몸에 딱 붙은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의 질문.
여자는, 무장이 잘 되어 있는 남자에게 애교 섞인 눈빛을 보낸다. 그러자 천 옷을 입은 은발의 탐험가가그녀를 비웃는다.
“레나 씨, 수당 보고 가는 건 아니지. F급인데. 이건 그냥 연습용이라고 생각하면 돼.”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는 보이지 않게 이를 악문다.
“어, 그런가요? 아하하. 폰자 씨는 똑똑하시네요!”
하지만. 가죽옷을 입은 여자는, 입으로 뱉는 말과 머리로 하는 생각이 전혀 달랐다.
‘여우같은 년. 자기는 아예 따로 생각하는 게 있으면서. 남자는 독으로 죽이고, 저년은 칼로 천천히 찢어서 죽여야겠어. 건방진 은발을 다잡아 뜯으면서 몸을 칼로 조금씩 그어 줘야지.’
은발의 여자가 비웃는 표정을 유지하며 대꾸한다.
“으음, 그 정도도 알아보지 않고 온 거야? 갑옷이 아깝네?”
노골적인 도발.
‘수상한 년이 계속 귀여운 척을 하네. 역겹잖아? 긁어 봐야겠어.’
은발 여자의 생각. 두 여자 사이에보이지 않는 불꽃이 튄다.
그때.
“하하하. 여러분, 폰자 씨말이 맞아. F급 던전은 사실 안에 있는 몬스터를 그냥 때려 부수는 용도지.
하지만 레나 씨도 궁금한 걸 질문하는 태도는 아주 좋다고. 언제든 물어보도록 해. 그럼 간단히 브리핑을 할까?”
위세 좋게 체인 메일을 걸치고, 커다란 그레이트 쉴드를 등에 찬 남자.
그가 상황을 정리하듯 말했다.
허리에는 제법 짧지만, 한 손으로 휘두르기엔 상당히 무거워 보이는 쇠도리깨를 차고 있다. 둔탁해 보이는 도리깨는 한 대 맞으면 그대로 뼈가 바스러질 것 같았다. 아니, 뼈를 부수기 위해 만들어진 무기 같았다.
“네!”
“잘 들을께요!”
두 여자는 남자를 향해 눈을 빛내며 돌아섰다. 남자를 으쪽으족하게만들어 주려는 의도였다. 남자가 거들먹거리며 말했다.
“주요 몬스터는 해골들이야. 좀 큰 거미들이 있긴 한데, 그건 한참 안으로 들어가야 나오고. 이젠 그것도 다른 모험가들이 다 죽여서 없다더라.”
“해골이요? 해골은 안 죽였어요?”
가죽 갑옷의 여자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질문한다.
이렇게 한 번씩 뻔한 부분에 대해추가 질문을 해 주면, 이런 남자들은 자기가 뭐라도 된 듯 기분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필요한 일이다.
죽이기 전에 살살 근육을 풀어 주는 것이다. 칼이 잘 들어가도록.
“하하, 레나 씨는 정말 초보구나.
해골은 죽여도 시간을 두고 다시 조립되거든. 이제 알겠지?”
톡톡, 하고 남자가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의 머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러면서 은근히,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손을 넣어 여자의 두피를 지분거린다.
“여기 두개골만 부수지 않으면 말이야. 그래서 연습으로 때려 부수기딱 좋지.”
“와아. 신기해요. 조금 불쌍하구요.”
가죽옷을 입은 레나는 남자가 혐오스럽다고 생각했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았다. 대신 눈을 촉촉하게 적시며 순진한 척을 했다.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그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은발의 여자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방금 전까지 레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쇠도리깨를 든 남자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두 여자를 모두 원했다.
“그래, 레나 씨. 개네 는 그러기 위해 있는 거라고. 부서졌다가 계속다시 조립되고, 다시 조립되고. 그러기 위해 있는 거야.”
“신관들이 대규모 정화 작업이라도 해 주면 다시 안 살아나겠죠?”
레나가 질문했다.
“그렇지. 하지만 그걸 누가 하겠어? 계속 만들어져야 하는데. 대가 끊겨 버리는 거지. 연습용 해골은 언제든 필요하다구.”
“그렇구나.
“.흥.”
은발이 코웃음을 쳤다.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갈까?”
두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만 믿고, 뒤에서 졸졸 사이좋게 잘 따라와. 알았지?”
징그러운 목소리로 말하며, 남자가앞장섰다.
“자, 여기 뼈 무더기가 보이지? 이게 조립되면서 해골병사로 일어날 수가 있어. 조심하라고. 엄청 느릿느릿하지만 말이야. 하하하하.
남자가 도리깨를 허공에 싁싁 휘두르는 포즈를 취했다.
- 획! 획!
혹시 눈먼 도리깨에 맞을까 봐 불편해하며, 은발 여자가 남자에게서 물러났다.
그리곤 남자에게서 떨어진 걸 자연스럽게 처리하기 위해, 궁금하지도않은 걸 질문했다.
“이 잿더미는 뭐죠?”
바닥에 모아진 잿더미를 보고 여자가 묻는다.
하지만.
남자는 그 재가 뭔지 몰랐다.
“아, 그거? 신경 안 써도 되는 거야. 무시해.”
모르는 게 나올 때는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된다.
남자는 자기가 모르는 건 알 필요가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 터벅터벅 셋은 돌바닥을 지났다.
남자는 이 길을 모두 알고 있다.
수 년 전에 많이 와 봤던 길이다.
애초에 그는 이걸 던전 공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둘 다 내 것이야.’
여자 공략이라고 생각했지.
“갈림길이 있어요! 어떡하죠?”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 레나가 두려운 척 말한다.
“허허. 내 직감을 한번 발동해 볼까? 왠지 두 곳은 막히고 한 곳은 뚫려 있을 거 같은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믿어요!”
레나가 주먹을 꼭 쥐며 말했다.
물론 직감이 아니라는 사실은 남자도, 여자도 이미 알고 있다. 남자는 앞장서 여유롭게 걸어갔다.
- 철컹. 철컹.
함부로 걷는 남자가 든, 쇠도리깨 자편들이 서로 부딪쳐 울린다.
사실 남자의 준비는 만전이다.
해골들에게 최적화된 조합.
그래이트 쉴드. 그리고 뼈를 부수기 딱 좋은 쇠도리깨.
한 방이면 모두 나가떨어질 것이고, 남자가 다칠 확률은 없다.
잠시 걸어가자 모험가들이 쓰는 공터가 나왔다.
화롯불이 곳곳에, 환하게 밝혀져있었다.
“아가씨들, 좀 쉬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남자는 이제 두 여자를 아가씨들이라고 부른다. 이미 상대를, 전혀 동료 모험가로 보지 않는 태도.
그는 이런 던전을 오기엔 랭크가 높은 모험가다. 머릿속에는 초보 모험가인 두 여자들에게 완벽한 모습을 보여 줘서, 침대 위에 한꺼번에 둘을 눕힐 생각밖에 없었다.
그걸 생각하니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짜릿짜릿한 감각이 오는 것 같았다.
‘크흐흐. 한 년은 이렇게 하고.
다른 년은.
아래로 묵직하게 피가 쏠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피로해서가 아니라, 그것 때문에 걷기가 불편했다.
몸에 착 달라붙은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 레나의 애교가 그를 더 자극했다.
그들은 얼마 걷지도 않은 상태에서 쉬었다.
“이제 가죠.”
몇 분 정도 걸었을 때.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가 천장을 가리켰다.
“천장에 덩굴이 말라붙어 있어요.
막 살아서 움직이는 건 아니겠죠?”
“레나 씨, 좀 상식적으로 생각해.”
은발의 여자가 퉁명스럽게 끼어들었다.
“하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여긴 F급 던전이야. 그냥 나만 따라와.”
남자가 자신만만하게 대답한다.
커다란 그레이터 쉴드를 들어 보이며.
F 급 던전.
플러스와 마이너스가 붙어서 F플러스, F마이너스로 세세하게 나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던전은 여섯 단계로 나뉘어진다.
A급부터 F급까지. F급은 가장 낮은 단계의 던전이다. F급 던전이 되려면 몇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물론, 던전의 분류에 있어 출현 몬스터가 기준이 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외에도 몇 가지 조건이더 있다.
F급을 예로 들어 보자.
첫 번째.
함정이 없어야 한다.
마법은 물론, 기관 장치 둥으로 만들어진 함정이 없어야 한다.
바닥을 밟으면 칼날이 촘촘히 박힌 아래로 푹 꺼진다거나.
독이 든 늪으로 빠져 버린다면. 출현 몬스터가 아무리 약해도 그걸 F급 던전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두 번째.
길이 쉬워야 한다.
처음 들어가는 자도 쉽게 길을 찾고, 한참 들어갔다가도 어렵지 않게 다시 나올 수 있어야 한다.
몬스터가 거미밖에 없어도.
추적 스킬 없이는 안에서 빙빙 돌다 굶어 죽을 미로라면.
그걸 F급 던전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대신 D랭크 미로라거나, C랭크 미로라고 부른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기준이 있다.
하지만 간단히 말해서 F급 던전은 쉽다. 그냥 쉽다. 살아 움직이는 덩굴 같은 건 있을 수가 없다.
- 파삿!
남자는 쇠도리깨를 말라붙은 덩굴에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