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6)
- 챙!
가운데 있던 해골이 철추로 도리깨를 막아섰다.
- 붕!
하지만 공격은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남자는 해골이 살아 움직이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시 도리깨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 빠각!
“우어어.!”
턱뼈를 얻어맞은 해골이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철편의 회전 반경이 작았다. 한 번에 해골의 턱이 부서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금이 가 너덜거렸다.
- 부응!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도리깨를 옆으로 세게 휘둘렀다.
- 과직!
도끼를 들고 있던 해골의 갈비뼈가 걸려서 부러졌다. 부러진 갈비뼈 조각이 데구르르 바닥에 굴러갔다. 도끼를 든 해골은 충격을 이기지 못해 나가떨어졌다.
“벌써 둘이 끝났잖아?”
남자가 여유롭게 킥킥거렸다.
“압!”
“하앗!”
곁의 두 여자도 자기 역할을 했다.
폰자는 메이스를 들고 달려갔다. 쓰러진 해골을 마구 공격했다. 레나는 턱뼈에 금이 간 해골의 뒤로 돌아 가다리를 때렸다.
롱소드를 든 해골이 남자에게 공격을 해 온다.
하지만 긴 칼은 느렸다. 제대로 된 파공음조차 나지 않는다. 남자는 그레이터 쉴드를 살짝 들었다.
- 찡!
강철로 된 쉴드가 롱소드와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무게도, 강도도 쉴드가 더 강했다.
- 달그락!
해골은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언제나 그래 온 것처럼 뒤로 물러섰다. 남자는 때를 놓치지 않았다. 발을 딛어 앞으로 뛰쳐나갔다.
- 붕!
쇠도리깨를 함부로 휘둘렀다. 그난잡한 폭력에 해골은 골반 부서졌다. 중추가 부서진 해골은 불만도 뱉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남자는 해골을 짓밟고 피식 웃었다.
“미안하지만, 너 같은 놈은 해골이아니라 인간이었어도 나한테 한참 안됐어.”
“쿠어어어어.!”
남은 해골 하나가 달려들었다. 남자는 몸을 뒤로 했다. 원심력을 실어 강하게 도리깨를 휘둘렀다.
- 피릭!
강맹한 파공음이 울린다. 해골은방패도 없었다. 제대로 된 방어 자세를 취하지도 못했다.
- 빠각!
도리깨에 걸린 무기가 멀리 날아갔다.
- 채애앵!
무기가 돌바닥에 부딪쳤다. 던 전안에 메아리가 울렸다.
“후후. 심판이다!”
고취되어 제멋대로 외친다. 여자들은 소리로 고개를 젓는다.
이미 죽은 해골들은 신의 심판을 받지 못했다. 너절한 한 남자의 심판을 받고 있었다.
‘이런. 체력이 별로 없는데.’
[체력을 회복 중입니다. 8.71%
모험가들이 난장을 피우는 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린다. 나는 석관 옆에 바로 누워서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곤란하다.
하필 탈진 상태일 때 녀석들이 쳐들어왔다. 해골들이 용감히 싸우고있지만, 사실 별 전력이 되지 않는다. 좀 더 엄격히 이야기하자면, 약간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아직 체력이 10%도 회복되지 못했다. 5%가 넘어가면 탈진에서 벗어나 움직일 수는 있다.
그 상태에서 일어난다면?
저들을 금방 제압하지 못하면 이쪽이 금세 곤란해진다. 10%는 채우는 편이 안전할 거다.
적의 숫자는 셋. 누워서 가만히 녀석들의 수준을 짐작해 본다.
하나는 나와 싸웠던 경비병보다 살짝 약한 수준. 나머지 둘은 레벨이 그보다 더 떨어져 보인다.
침입자들의 움직임을 보면, 사실처리하는 것 자체는 쉬울 것 같다.
어떻게 음직여야 할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머릿속에 그대로 그려진다.
‘이게 스킬 레벨 업의 효과인가.’
능력치가 크게 오른 것은 없다.
다만 검술을 얻었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나는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어차피 혼자 싸우는 거다. 회복할 수 있을 때까지 회복한 뒤 움직이는 편이 좋다.
“후후! 이것이 심판이다!”
남자가 외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하지만 이 세계에 심판 따위는 없다. 승패를 나눠 줄 심판도 최후의 종언을 선고할 심판도 없다. 악마와 폭력이 다닥다닥 붙어 집을 짓고 사는 곳이 이 세계다. 서로가 서로의 눈을 뽑고 혀를 뽑을 준비에 한창이다. 어디에 심판이 있을까. 굳이 말한다면 우리는 우리 모두에게 심판이다.
[체력을 회복 중입니다. 8.94%
“정말 멋져요!”
“너희들도 잘했어. 하하하!”
무언가 만지작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녀석들이 대화하는 틈을타 조용히 갑옷을 입기 시작했다.
사실 검술을 수련할 때는, 갑옷을벗어 놓고 있었다. 움직이기 거추장스러웠기 때문이다. 갑옷을 입으면 체력 소모가 더 빨랐기도 하고.
- 철컥.
먼저 투구를 썼다. 바스타드 소드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상태창을 계속 확인했다.
[체력을 회복 중입니다. 9.05%
[체력을 회복 중입니다. 10.1%
‘이 정도면 됐겠군.’
갑옷을 입고, 바스타드 소드를 꽉끌어 쥐었다.
- 철컥. 철컥.
한창 서로 지분거리던 모험가들이 조금 경계하는 목소리를 낸다.
“그런데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요?”
“응? 무슨 소리?”
“금속 소리 같은 거요. 철컥 거리 들렸을 거다. 들으라고 낸 소리니당연하다.
“어디서?”
“석관 쪽이요.”
“그, 그래?”
“혹시 남아 있는 거 아닐까요?”
“레나 씨가 가 봐.”
“흠! 아니야. 내가 가지.”
- 저벅저벅.
모험가들이 걸어온다.
- 달그락.
나는 칼을 잡고 일어났다.
이 홀에서 싸우던 녀석들은 한창머리에 열이 받은 멧돼지였다.
혹은 눈이 벌개져서 양을 쫓던 늑대들이었다.
하지만 전투도 끝나고 시간이 꽤 지났다. 모두 한차례 흥분이 가신상태. 타이밍으로 봐도, 이 즈음에서 베어 주는 편이 적절하다.
“히, 흐억!”
가까이 오던 남자가 놀라 뒤로 한걸음 물러간다.
“리빙. 아머인가? 저, 저런 건 없다고 들었는데?”
“듣다니요?”
은발의 여자가 물었다.
“아, 그게.! 저건 대체 뭐야?”
남자가 얼버무리며,
- 턱.
한 걸음 뒤로 물러선다. 남자 하나와 여자 둘로 구성된 모험가 파티.
어떤 식으로 처리할까? 녀석들은 아직 서로 말하기에 한창이다.
“해골병사 아닐까요?”
“해골이 무슨 저런 걸입어!”
나는.
녀석들에게 먼저 말을 걸기로 했다. 제압한 뒤 물어봐도 된다.
하지만 제압 과정에서 실수로 죽여 버리게 될지도 모른다.
적당히 휘둘렀는데 그만 목이 잘려버린다거나.
제압용으로 팔다리를 쳤는데 꽃처럼 뜯겨 나가면서 과다하게 출혈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여자가 둘.’
인간 여자는 약한 동물이니 조심해야 한다. 나는 궁금한 게 많다. 먼저하나를 물어보자.
“너희 말이야.”
끼홋, 하는 소리를 내며 은발의 여자가 놀란다.
“기관은 어떻게 해제한 거지?”
“기. 사님?”
가죽옷을 입은 여자가 말한다.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끼어든다.
이런 갑옷은 기사나 입는 거긴 하겠지.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준다.
“그래. 조용한 곳을 찾아서 수련하고 있던 중인데.”
그러자 남자가 경계하는 투로 대답“얼굴부터 좀 보여 주시오. 대화를 하려면서 투구를 쓰고 있는 사람이 어디 있소?”
“흉터가 있어서 곤란한데.”
투구를 벗으면 바로 싸우게 될 거다. 나는 거절했다. 하지만 남자의 요구는 꽤 거세다.
“그럼 우리도 말 못 해. 당신처럼 수상한 사람한테는!”
“투구를 벗으면 말해 줄 건가?”
“그래! 어서 투구를 벗어!”
남자의 목소리는 격앙에 가득 차있었다. 거기에는 통찰이 부족했다.
F급 던전을 탐험하는 모험가에게 통찰을 바라기는 어려운 일일까. 초급모험가답게 공포 정도는 갖고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공포도 없었다. 나직하게 받았다.
“그럴^F?”
“그럼!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 수상하다고!”
남자의 표정이 제법 험상궂게 일그러진다. 그의 손에는 쇠도리깨와, 그레이터 쉴드가 들려 있다. 투구를 벗는 것은 어렵지 않다. 이 투구는 가면이다.
약자 앞에서 가면을 벗는 것은 쉽다. 자신을 그대로 강요할 수 있다.
눈치를 보거나 숨길 필요가 없다.
꾸미지 않아도 되고 상냥해질 것도 없다.
“투구를 벗으면 잘 대답해 줄 건가?”
“그래!”
남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체력을 회복 중입니다. 10.9%]
저들을 눈앞에서 바라보고 있다.
무기를 쥔 자세를 바라보니 한순간한순간 더 명확해져 갔다.
‘내가 이긴다.’
압도적으로 이긴다. 모두 내 범위 안에 이미 들어와 있다. 순식간에 항거 불능으로 만들고, 평생 아무것도 월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시체로 만드는 건 더욱 쉽다. 셋이 전력으로 도망친다고 해도 잡을 자신이 생겼다.
- 툭.
나는 투구를 살짝 만져 본다.
이 가면은 내가 저들에게 베푸는 서툰 배려인 셈이다. 이 호의에는 상당히 순수한 면이 있다.
남자는 그 사실을 모른다. 가면을 벗기를 요구한다.
사람들은 종종, 책임질 자신도 없는 진실을 격렬히 요구한다.
- 철컥.
투구를 벗었다.
“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 은발 여자의 것이었다. 여자는 메이스를 허공에 획, 하고 휘두르며 뒷걸음질을 쳤다.
“으허 억!”
“히 익!”
남자와, 가죽옷을 입은 여자가 각기 놀라 숨을 들이킨다.
“왜 놀라지? 납골당 안에 해골이 있는 건 당연하지 않나.”
여기는 납골당이다. 어제의 인간들이 뼈다귀가 되어 걸어 다니는 건당연하다.
지금까지도 해골들을 부수며 여기까지 온 자들 아닌가. 놀라는 건 무척이나 부자연스럽다.
- 달그락.
나는 투구를 벗은, 고개를 좌우로 갸웃거렸다.
“사, 사람이 아니었어요!”
가죽옷을 입은 레나가 소리친다.
예상이 빗나갔다.
던전의 침입자인 남자와 두 여자.
그들은 투구 안에 인간이 있기를 기대했다.
세 사람이 투구 안쪽에서 상상하던 것. 그건 통로에 있던 시체들을 만든 정체불명의 살해자였다.
예상한 공포는 일상이 된다.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예상하지 못한 일상은 공포가 되어 버린다.
납골당에서 해골을 만나도, 예상하지 못했다는 사실만으로 잠시 겁을 집어먹게 된다.
물론,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에, 에잇! 오히려 잘됐어!”
곧 남자가 진정한다. 그리곤 말을 이으며 앞으로 튀어 나갔다.
“해골이면 처리하기 더 쉽지!”
- 부응!
인간 남자가 몇 번 쇠도리깨를 휘둘렀다. 텅 빈 허공을 철편이 가른다. 놈과 나 사이에는 아직 꽤 거리가 있다. 원숭이 같은 몸짓을 가만히 바라봤다.
놈이 제 근처에 서 있는 여자들에게 말한다.
“놀랄 거 없어! 해골이 우연히 갑옷을 주워 입은 거야! 여기는 F급던전이고. 저런 해골 정도는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구!”
적응이 빠르다고 해야 할까? 그는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상황을 표현한다. 실제로 그 말을 믿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해가 빈약한 만큼 표현도 빈약하다.
F급 던전이고 결국 그곳의 해골,
그러니까 ‘내’가 이긴다. 그게 결국 녀석이 상상할 수 있는 한계다.
가죽 갑옷을 입은 여자가 옆에서 끼어든다.
“그치만, 갑옷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걸요?”
“장식만 그런 거야. 봐 봐, 해골 따위는 뭘 입었어도 쉽게 때려눕힐 수있다고. 얼른 저 녀석들 해치우고우리가 갑옷을 가지자!”
남자가 여자들에게 가르치듯 이야기한다.
- 부응!
녀석이 조금씩 앞으로 전진한다.
그레이터 쉴드로 제 몸을 잘 가린 채. 그는 제가 든 무기를 크게 휘두론다.
‘정열적이라고 해야 하나.’
고릴라가 암컷에게 키를 과시하듯두 발로 서서 돌아다니는 모습 같다. 그 몸짓에는 내가 가질 수 없을 뜨겁고 동물적인 게 있었다. 아주약간은, 부러워 보이기도 한다. 그런 정열과 욕망이.
“내가 한 번에 머리를 날려 주지!”
어째 쇠도리깨의 철편이 돌아가는소리보다, 저 남자의 외침이 더 요란하다.
- 쩡! 쩡!
원숭이가 가슴을 두드리듯, 놈이 커다란 방패를 쇠도리깨로 두드린다. 쇠도리깨는 짧은 편이다.
도리깨의 자루도 철편도 더 길게해서, 양손으로 휘두른다면 타격력은 더 강해질 거다.
하지만 그는 대신 한 손에 그레이터 쉴드를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