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7)
해골병사들은 녹슨 무기를 쓴다.
혹시라도.
눈먼 칼날에 피부가 스친다면 파상풍에 걸릴지 모른다.
방패를 들면.
그런 일을 봉쇄할 수 있다.
효율적인 무기다.
‘작정하고 들어왔군, 그래.’
양손으로 휘두르는 것과 달리, 공격에 실패하더라도 그레이터 쉴드로몸을 보호하면 된다.
안정적이다.
칭찬해 주고 싶은 무기 선택.
하지만.
‘느리다.’
무엇보다 엉성했다. 파고 들어갈 틈이 너무 많았다. 맞아 주고 싶어도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히야앗!”
남자가 돌진해 들어왔다.
몇 초 동안 펼쳐질 그의 움직임도,
대응할 내 움직임도 허공에 선이 그어진 것처럼 보인다.
별 생각 없이도 몸이 움직인다.
- 부응!
휘두르는 쇠도리깨를,
一 철렁!
검신으로 슬쩍 감았다. 뒤로 잡아당겨 흑 멸쳐 낸 뒤, 동시에 앞으로 다시 칼을 휘둘렀다.
- 쨍그랑!
떨쳐낸 쇠도리깨는 뒤쪽 바닥에 떨어 졌고,
-서걱! 푸슈우웃!
앞으로 휘두른 칼에, 남자의 팔이 잘렸다. 아무것도 쥐지 못한 팔은허공에서 빙그르르 돌다가, 은발 여자의 얼굴 위에 피를 확 뿌리며 떨어 졌다.
“아아 아아악!”
승부는 한순간에 났다.
남자는 방패를 써 보지도 못했다.
힘과 속도의 차이도 컸다. 무엇보다 스킬이라는 걸 체감했다.
검술의 효과.
남자가 도리깨를 휘두를 때, 모편과 자편의 연결 사슬에 칼끝을 꽂았다. 뒤로 강하게 잡아당겼다.
도리깨를 휘두르던 그의 팔이 앞으로 크게 끌려 나왔다.
잠시 돌출된 어깨를 깊이 내리쳐잘라 냈다. 이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처럼 몸에서 펼쳐졌다.
이런 결과가 되리라는 건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놀랍기는 했다.
자신만만하게 소리 지르던 남자를 바라봤다. 팔이 잘린 절단면이 넓었다. 출혈은 몹시 컸다.
“구와아아아악!”
가만히 서서, 인간 수컷이 팔이 잘린 채 바닥을 구르는 걸 내려다본다.
썩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구, 구와아아아아아!”
비명을 크게 내지른다. 현실에서도망치려 필사적인 듯하다. 고통과박탈감, 출혈로 그 얼굴이 매 순간마다 여위고 일그러져 간다.
“끼야아아아아!”
“히, 히익!”
남은 두 인간들도 비명을 질렀다.
두 인간 암컷은 도망칠 틈도, 숨을틈도 잡지 못했다.
은발의 여자는 반쯤 정신이 나가 비명을 멈추지 않았다. 가죽옷을 입은 여자는 놀라 숨을 들이켰다.
피를 본 것보다도, 한순간에 난 승부가 그들을 놀라게 만드는 것 같았다.
공포에 질린 나머지, 여자들은 무기를 들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팔이 잘린 남자는 구와 아아악 하는 멱따는 비명을 지르며 동굴 바닥을 계속 피로 칠했다. 포션, 포션이라고 소리를 지르며 은발의 여자를 바라봤다.
그 순간이었다.
가죽옷을 입은 여자가 은발의 손에서 재빨리 남자의 가방을 빼앗았다.
그리고 나에게 그 가방을 던지며 말했다.
“저, 저는 살려 주세요!”
여자가 나에게 목숨을 애원한다.
‘재미있군.’
조출한 제 목숨을 붙잡고 어떻게든 놓지 않으려 애쓰는 타입.
확실히 이런 자들이 더 재미있다.
어떤 자들은 죽음 앞에서 공황에 빠진다. 놀라 울부짖는 것이 그들이 하는 전부다. 상황을 이해하길 거부한다. 땅에 머리를 박는다. 도망가려고만 한다.
하지만 또 다른 부류가 있다.
위기 앞에서 더 적극적으로 되는 자들. 그녀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저는 아는 게 많아요! 뭔가 물어보려고 하셨잖아요! 다 말해 드릴께요! 저는.!”
이 여자와 같은 자들이다. 여자는내 눈치를 필사적으로 살핀다.
죽음 앞에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간다. 적응이 빠른 걸 넘어, 본능적인교활함을 내비친다.
물론 우둔하고 둔탁한 것들보다야 이편이 낫다.
훨씬 더 말이 통하는 대상이다.
엉뚱하게도, 루비아가 떠올랐다.
그녀가 이런 성격이었다면, 더 오래 살아남았을까.
어떤 식으로 살아남았을까.
“아, 아아악!”
감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은발여자의 비명은 끊이지 않는다.
그녀는 발버둥을 친다.
남자의 팔을 제 몸에서 쳐낸다. 피를 뿌리며 몸부림치던 그를 바라봤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죽었나?’
몇 초 전까지만 해도 바닥을 구르면서 절규하고 있던 것 같은데, 막숨이 끊어진 듯하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던전 친화도가 올랐습니다!]
[현재 친화도: 6.15%]
레벨이 올랐다.
놈 하나를 죽인 게 그 정도 의미는 있었던 모양이다.
레벨과 함께 던전 친화도가 올랐다. 던전 친 화도는 어디에 쓰이는 건지 모르겠다. 다른 해골들에게 호감을 사니 올랐다, 방금은 인간을 죽이니 올랐다.
어쨌건, 지금은 이걸 보고 있을 때는 아니다. 허공에 뜬 창을 한쪽으로 치워 뒀다.
은발 여자를 바라봤다. 그녀는 앉은 채 몸을 뒤로 뺀다. 치렁치렁한 은색 머리카락이 온통 피에 묻어 어지럽다. 머릿결은 좋은 듯하다.
“으, 으아아!”
바깥으로 도망가려고 하는 걸까.
간신히 땅을 딛고 일어나, 등을 돌린다.
그 순社가죽 옷을 입은 여자가, 품에서 단검을 꺼냈다. 손에 쥔 단검 끝이 파르스름하게 빛난다. 뭔가 묻어 있는데, 라고 생각했을 때.
- 획!
깔끔하다. 그 자세에는 가지런한 느낌마저 든다.
많이 던져 본 솜씨다. 자세도 자세거니와, 단검을 던지는 모습에는 약간의 망설임마저 없다.
- 픽!
“끄허억.!”
은발의 둥 뒤에 단검이 박힌다. 이상한 점이 있다. 등에 단검이 박혔다. 그런데 은발은 제 목을 감싸 쥐고 쓰러졌다.
- 터벅터벅“커, 커허어억.!”
가까이 걸어가 보았다.
여자의 얼굴에 푸르스름한 혈관이 새파랗게 돋아난다.
죽음이 돋아나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이다. 입가에 피거품을 문다. 입주변이 시커떻게 변하고 있다.
‘독인가?’
“컥!”
은발 여자는 그대로 고꾸라졌다.
뒤를 돌아봤다.
가죽옷을 입은 여자는 얌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헤헤.”
여자가 살짝 웃는다.
이 여자가 단검을 던진 거다.
그녀는 왼손 엄지를 펴고, 오른손으로 감싸 잡는다.
그대로 가슴에 오른손을 가져다 댄다. 저 손짓을 알고 있다.
제국 남부에서 쓰이는 손짓.
죽을 때까지 복종하겠다는 표현이다. 낯간지러운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여자였다.
“내가 그 표식을 알아볼 거라고 생각하나?”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치 준비된 것처럼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기사님께서는 인간의 세계에 조예가 깊으신 둣 보이니까요.”
역시 적응이 빠르다.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여자는 내 눈치를 살살 살피더니말을 이어 갔다.
“저는 T&T 길드의 레나라고 합니다. 암살과 도둑질, 정보를 다루는 길드입니다. 그중 필요하신 게 없으신지요?”
들어 본 적 없는 길드다. 그러나 설명에서 구미가 당긴다. 여자에게다 가가며 추궁했다.
“방금 멋대로 단검을 던지더군.”
“저년이 도망가면 기사님의 일이 귀찮아지지 않겠습니까?”
아니다.
어차피 나라면 쉽게 따라잡았을 거다. 속이 보이는 수작을 부리는 여자다. 그녀가 독 묻은 단검을 던진데 는 다른 목적이 있다.
은발과 자기 가운데서, 자신을 유일한 생존자로 만드는 것. 함부로 죽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이다.
처음 만났을 때.
이들과 대화할 의사를 내비쳤다.
듣고 싶은 게 많기 때문이다.
루비아를 죽인 무리들. 인신매매집단. 용병단의 녀석들. 에라스트의 영주. 그라스미어의 경비들. 그들은 어떤 집단인가?
지금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
안내가 필요하다.
은발의 여자가 살아 있으면 선택은 유연해진다. 이 녀석에게서 들어도 되고, 저 녀석에게서 들어도 된다.
동전을 던져 한쪽을 본보기로 죽인다음 시작해도 된다.
고문을 한다고 해도, 어쨌거나 여벌이 있으니 편리하다.
그런 내 두 가지 선택지를 여자는 하나로 좁혀 버렸다.
“레나라고 했지. 항상 그렇게 독묻은 단검을 가지고 다니나?”
“여자의 몸인데, 독이랑 단검 정도는 항상 들고 다녀야 하지 않겠습니까?”
자연스러운 둣 대답하지만, 지금 그녀는 제법 긴장하고 있다. 살짝 깨물고 있는 입술이 보인다. 이 자리의 생사여탈권은 나에게 있다.
그걸 또렷이 인식하고 있는 모습이다. 나는 언제든 그녀를 죽일 수도,
고문할 수도 있다.
“나한테 무기를 쓸 생각은 안 했나? 그게 너희의 기본일 텐데.”
“한눈에 봐도 제 상대가 되지 않을 분입니다. 용병 길드에 가도 c랭크는 되실 분인데요. 게다가 독이 먹히지도 않을 것 같으니, 목숨을 구걸할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용병 길드라.
그래. 그곳으로 가야 한다. 날 안내해 줄 수 있는 여자다.
칼을 완전히 내렸다.
- 덥석.
레나의 목을 잡아들었다. 맥박이 뛴다. 저항은 전혀 없이 얌전히 온몸에서 힘을 빼고 있다.
구석으로 천천히 걸어들어 갔다.
홀 한쪽 구석에 낡은 거미줄이 걸려있다. 꽤 높다. 이 납골당에 한때 거대 거미들이 살았다고 한다. 지금은 없다.
나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남은 것은 이런 거미줄뿐이다. 끈적하고단단하며, 탄력이 좋다.
거미줄을 짠 자의 협조가 아니라면, 커다란 동물이 걸려들어도 벗어나지 못하고 죽고 만다.
썩히기엔 아깝다.
이럴 때라도 써먹어 보자.
- 획!
커다란 거미줄에 그녀를 내던졌다.
거대 거미가 쳤던 끈적한 줄이 레나의 몸에 감겨든다. 예쁘장한 얼굴에 긴장이 서린다.
“거미의 먹이로 두시는 겁니까?”
“대답만 잘한다면 그럴 리가 없지.”
사실 여기에 거미 같은 건 없다.
스스로 숨을 참거나 혀를 깨물지 않는 한 레나는 안 죽을 거다. 물론절대 그럴 확률은 없어 보인다.
이 여자는<목에 칼을 들이대도>
자살은 안 할 타입이다.
“여기에 온 전후 사정부터 얘기하는 게 좋겠군.”
레나는 죽은 남자의 시체를 곁눈질했다.
“사실 저놈을 등쳐먹기 위해서 쫓아갔습니다.”
여자가 침을 꿀꺽 한 번 삼키고 말을 잇는다.
“멍청한 녀석 같았지요. 부유하게태어나 아이템을 마구 쓰면서, 던전을 놀러 다니는 것처럼 하는 놈들이 있습니다. 그런 타입이죠.”
내 눈치를 살핀다.
“은발 저년도, 비슷한 목적으로 쫓아온 것 같았습니다.”
“등쳐먹으려고 했다고?”
“예;’
글쎄다.
고작 등쳐먹으려고 쫓아왔다고 하기엔, 독 묻은 단검을 가져온 건 좀과한 것 같다.
단검에 묻은 독이 해골에게 먹히는 것도 아니다. 누가 봐도 사람을 찌를 준비를 단단히 해 온 거다.
“솔직해지자고.”
레나를 거미줄에 매달린 채로 놓고 뒤돌아섰다.
모든 걸 내려놓기를 바란다. 아직 그녀는 그럴 준비가 되지 않았다.
“뭘 말할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 쓸 만한 것들을 머릿속에서 정리해 보라고.”
“저, 저기.r조금 더 절박해진 후에 대화하면 좋을 거다.
은발과 남자의 시체가 바라봤다.
쓸 만한 걸 찾아 시체를 뒤졌다.
‘포션은 쓸 만하겠군.’
[최하급 힐링 포션을 손에 넣었습니다!]
[하급 힐링 포션을 손에 넣었습니다!]
[하급 최음 포션을 손에 넣었습니다!]
뭔가 엉뚱한 포션이 있는 것 같지만 하지만 무시했다. 식량도 잊지 않고 챙긴다.
매달려 있는 여자에게 먹여 줘야한다. 물론 저 인간 암컷이 충분히 고분고분해질 때의 이야기다.
유용해 보이는 아이템을 회수한 뒤시체를 구덩이에 굴려 넣었다.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기관 장치를 내렸다.
一 구우우응??????!
여자는 부서진 해골들과 함께 흘안쪽에 갇혔다.
살려 달라는 말이 몇 번 나온 것 같다. 이미 살려 뒀는데 뭘 저렇게 애타게 울부짖는지.
밖으로 나와 걸었다.
몇 걸음을 걸을 때마다 부서진 해골들이 눈에 밟혔다.
처음으로 눈에 띈 것은 예전에 입구에 살던 문지기 해골이었다.
내가 석관에 넣고, 한참 동안 레벨을 올려 줬던 녀석. 몸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있었다.
‘좀 심하군.,
끝까지 반항한 듯했다.
빠르게 일어날 수 있도록 몸을 한데 맞춰 주었다.
- 띠링!
[던전 친화도가 올랐습니다!]
[현재 친화도: 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