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8)
지나다니며 해골들의 뼈를 맞춰 줄때마다 던전 친화도가 올랐다. 하지만 남자를 죽였을 때 1% 오르던 것에 비하면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다.
친화도가 5%를 넘자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경보가 울렸었다. 더 올라가면 뭐가 또 생길지도 모른다.
부서진 해골들이 보인다.
쇠도리깨를 든 남자와, 허약한 두 여자에게 부서진 해골들이다.
내가 몇 초도 걸리지 않아 제압한 녀석들.
그들에게.
이 던전의 모두가 부서졌다고 생각하니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쓸쓸함은 순수하지 않았다. 어떤 진득한 불순물이 섞여 있었다.
‘우월감인가.’
내가 쉽게 살해한 인간에게 쓰러진 해골들. 그들에 대한.
- 달그락!
진저리를 쳤다.
고작 이들에게, 그런 걸 느끼고 있기엔 갈 길이 너무 멀다.
어느새 대부분의 해골들을 다시 맞춰 주었다.
5일 정도 지나면 다시 움직이게 될 거다.
- 띠링!
[던전 친화도가 올라갔습니다.]
[6.89%]
해골들의 뼈를 맞춰 주었다.
그리고 납골당 밖으로 나갔다.
사실 안에서 인간을 기다릴 생각이었다. 하지만 문득, 잠시 바람을 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래는 아니고. 잠깐만.’
바람이 불었다.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밤이었고, 어두웠다. 조용하기만 했다.
‘시간을 잘못 골랐나.’
나온 시간을 잘못 고른 것 같다.
한밤중이었다.
굳이 한밤을 골라 납골당에 들어오는 자는 없을 것이다. 손에 든 칼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걸었다.
그러다 재미있는 걸 발견했다. 뒤집어진 수레. 발등에 엮여진 종이뭉치들이 걸렸다.
책들이 어지럽게 땅에 흩어져 있었다. 산적들이 책장수를 습격한 건지도 모른다.
시체는 없었다.
‘책이라.’
나는 글자를 읽을 줄 안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다. 일어난 지 5년이 지난 뒤? 10년이 지난 뒤? 서큐버스님을 만난 뒤였을까?
그분에게 글자와 말을 제대로 배우기는 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다. 전생의 기억 때문일지도.
바닥에 떨어진 책을 집어 들었다.
한 권을 들고 펼쳐 보았다. 달빛이 없다. 내용을 읽기는 힘들었다.
‘안으로 들고 가야 되겠군:
되는 대로 몇 권을 집어 들어 되돌아갔다. 던전 안으로 다시 깊숙히 들어갔다.
- 구우우응!
기관 장치를 움직였다. 다시 석벽을 닫아 놓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끄으응.
거미줄에 매달린 여자가 신음 소리를 낸다. 흘끗 한 번 봐 주고 책에 집중했다. 이곳은 햇불이 켜져 있어서 책 읽기에 좋다.
먼저 손에 잡힌 책은<세계의 비공식적인 무력 집단에 대하여 -
1>라는 이름의 책.
햇불이 잘 비치는 곳에 누웠다. 갑옷을 다 벗어 버리고 바닥에 옆으로 누워 책을 읽었다.
거미줄에 매달린 여자의 애타는 기색이 느껴진다.
안 그래도 저 여자를 좀 더 방치해 두려고 했는데, 딱 좋은 시기에 책을 발견했다.
이 책들이 아니었으면, 스킬 레벨도 안 올라가는 수련이나 계속 하고 있어야 했을 거다.
즐거운 마음으로 첫 번째 책을 펼쳤다. 그런데,
‘좀 웃긴 책이군.’
<세계의 비공식적인 무력 집단에 대하여 - 1>책은 좀 우스꽝스러웠다.
엉뚱하게도 이상한 시만 잔뜩 실려 있었다. 나는 신경질적으로 페이지를 넘겼다.
#27어느 행복한 날 즐거운 하루여자를 취하고 술에 취하고 빼앗은 침대에서 잠들었을 때벌컥 물을 들이켜 누웠을 때기척이 느껴졌다 누군가 있는 건 분명했다 기척은 매우 익숙하게 느껴졌다 나는 중얼거렸다 신기하구나, 누구인지 볼까?
벽으로 움직였다 벽을 통해서인 기척을 확인한다광경을 확인하고 평온해졌다 어디에나 있는 하나의 조각이내 시체를 곱게 정리하고 있었다#41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전쟁 영웅인 나는 노예의 운명을 거부하는 적의 부인을 찔러 죽이고 있었다 전쟁을 투정했지만 학살과 폭력이 좋았다 엄격한 규율을 강요하면서도 마음껏 전리품을 빼돌렸다어느 날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 내 뒤에서 침대 아래에서막사 안에 빼돌려 놓은 전리품 무더기 안에서 들렸다 무슨 소리지?
하지만 찾는 의미는 없다 작은 조각이었기 때문에 그건 모든 곳에 있으니 소리는 금세 내 안에서 들려온다.
바스락,
바스락 창날이 내 가슴에서 그래야 할 것처럼 빠져나온 다부서진 조각으로 돌아갔다 나는 평온해졌다‘이게 뭐람.’
책에는 백여 개의 조잡한 시가 실려 있었고, 끝에는 다음과 같은 짧은 해설이 실려 있었다.
<수백 개가 넘는 버전으로 불려지는 이 시들은, 암살 집단 레드 플레이크가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제작해 퍼트렸다고 추정된다. 많은 권력자들은 음유시인을 불러 이 노래를 청하곤 했다.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 레드 플레이크의 호감을 한 조각이라도 사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대상으로 한 청부를, 부디 그들이 받아 주지 않길 바라며.>
‘뭐 하는 책인지 모르겠군.’
이 책의 어디가 대체 ‘세계의 비공식적인 무력 집단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정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책을 덮는 순간이었다.
- 띠링!
- 지혜가 1 상승했습니다!
‘뭐라고?’
- 달그락!
나는 깜짝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상태창을 확인했다.
‘정말 올랐잖아!’
[해골병사 Lv.9(65)]
[체력-30 힘-39 민첩-39 지혜-10]
정말로 지혜가 1 올라서 10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사태에 몹시 당황했다. 책을 읽는다고 지혜가 오른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그런게 가능했으면 독서가들이 이 세계를 지배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방금 읽은 책은 정말별 내용이 없는 책이었다. 나는 잠시 안절부절못하고 돌아다녔다.
나는 책들을 확보하기 위해 바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땅에 떨어진다른 책들까지 모두 품에 가득 안고 가져왔다.
‘정말 지혜가 오르는 걸까?’
잔뜩 긴장해서 다음 책을 펼쳤다.
<제국 화폐 제도를 죽여라>라는 책이었다. 급한 마음으로 획획 건너뛰며 읽었다.
<.그리고 우리는 당연하게도 위젯을 가지고 있다. 당신의 주머니.
내 주머니에도 있는 그 위젯들. 가슴 큰 여주인 때문에 가는 선술집에서 오리시산産 밀 맥주 값을 치르고, 촉촉한 빵을 씹을 수 있는 위젯말이다.>
<.세이론과 로티, 그리고 위젯에는 보는 바와 같이 상당한 가치의 괴리감이 있다. 세이론과 로티는 함께 가지만 위젯은 어쩐지 홀로 흑떨어져 있다. 제작 기관도 다르며,
가치도 전혀 다르다. 이러한 괴리감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작가의 장황한 서술은 잊어라.
정답은 혐오다. 황실과 귀족들의, 평민에 대한 혐오 때문에 이러한 괴리감이 발생한다.>
<.상당수 귀족과 마법사들은 위젯을 손에 대는 것조차 싫어한다.
위젯 따위가 얼마의 가치를 갖는지 알고 싶어 하지도 않다.>
<.황실과 귀족들은 모든 분야에서 평민들이 넘어을 수 없는 해자를 파고 싶어 한다. 명예와 부, 힘을 뱃속에 가득가득 넣는다. 울타리를 높이 세운다. 깊게 해자를 판다. 그렇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러나.
지혜는 오르지 않았다.
‘혹시.’
검술 수련 때의 일이 생각났다. 마음을 다잡고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읽었다. 하지만, 여전히 지혜는 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동굴 안을 서성였다. 다른 책을 붙잡고 읽었다.
<소년이 사라진 거리>라는 책을 읽었다. 벽을 통과해 다니는 소년에 관한 짧은 소설이었다. 문장은 정갈하고 이야기는 상상력을 자극했다.
즐거운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역시, 지혜는 오르지 않았다.
‘여러 권을 읽어야 하나?’
처음에 올랐던 게 예외적인 현상이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네 번째 책을 집어 들었다.
<추악한 마법사>
지혜가 오르는 상황을 알 수 없었기에, 첫 페이지부터 한 글자씩 열심히 읽었다.
<.마법사란 극히 편의주의적인족속이다. 신분제의 편리함은 모두 누린다. 억압에 따른 반감은 귀족들을 내세워 뒤로 슬쩍 피해 간다. 악역을 떠넘긴다. 귀족을 미워하는 평민들도 아쥬라의 탑은 경외한다. 마법사를 추앙한다. 주인공으로 삼아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타고나지 않으면 마법사가 될 수 없다. 아케인 하트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노력과 수련도 무의미하다. 귀족과 마법사 모두 단순한 우연의 산물. 룰렛을 돌려 운 좋게 얻어 걸린 것에 불과하다.>
<?"마법사들은 그나마도 하지 않는다. 권리는 최고 수준이나 의무는 없다. 생산성은 전무하다.>
이번에는 마법사에 대한 조소와 경멸이 가득 담긴 책이었다. 읽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작가가 살해당하지 않으려나?’
마법사들에게. 그런 걱정이 될 만한 책이었다.
내가 갖고 있던 지식을 점검했다.
아쥬라의 마법사들은 강하다. 지혜롭다. 신비와 기적의 화신이다.
손을 휘저으면 허공에 얼음이 맺힌다. 발을 구르면 땅이 갈라져 용암이 솟아난다.
그들이 모여 사는 탑은 일종의 성역. 탑 근처의 마을 주민들은 마법사에게 봉사하는 걸 무한한 영예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읽고 있는 책은 그 마법사들의 지성을 날카롭게 비웃었다. 도덕성을 거칠게 깎아내렸다.
‘찾아가 볼 생각이었는데.’
내가 겪는 현상에 대해, 마법사들에게 물어볼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쥬라의 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꽤 사라지게 만들었다.
누가 이렇게 마법사를 욕하나 싶어저자를 확인해 보았다.
이름은<캐빈 애슈턴>이었다.
‘도대체 뭐 하는 인간이지?’
물론 저자에 대한 소개는 없었다.
가명일지도 모른다.
찜찜한 마음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그 순간.
- 띠링!
- 지혜가 1 올랐습니다!
‘뭐?’
지혜가 올랐다.
다시 한 번 상태창을 확인했다. 정말로, 지혜가 1 올라 있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두 번째 현상이다. 당황했다.
다른 책들을 계속 읽었다. 제국의 역사에 관한 책, 지리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그렇지만 더 이상 지혜가 올라가는 일은 없었다. 스무 권쯤을 읽었을 때 그만뒀다.
그리고.
머리를 붙잡고 다시 두 책을 살폈다. 읽은 뒤 지혜가 올라갔던 두 권의 책.
<추악한 마법사>
<세계의 비공식적인 무력 집단에 대하여 - 1>
공통점은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저자가, 같았다.
‘캐빈 애슈턴.’
들어 본 적 없는 자였다.
‘흐음.’
이름을 보면 남자다. 이 남자가 쓴 책을 읽으면 지혜가 오른다고? 그냥? 읽기만 하면?
이건 ‘죽은’ 뒤 다시 그날로 돌아가는 것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남은 책에서는 일단 저자부터 확인했다. 더 이상 그 남자가 지은 책은 나오지 않았다.
물론 책을 읽는다고 지혜가 올라가는 일도 없었다.
‘정말 놀랍군.’
도시에 가게 되면, 이 사람이 쓴 책을 더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누워서 이리저리 뒹굴며 책을 읽었다. 시험 삼아 검술 수련도해 봤다.
- 띠링!
[더 이상 수련으로 스킬 레벨을 올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메시지만 간간이 뜰뿐이었다. 역시 안 되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틀이 지났다.
‘이 책이 마지막이군.’
마지막으로 잡은 책.
용병들에 관한 책이었다. 캐빈 애슈턴이 지은 책은 아니다.
전설적인 용병들의 활약상이 쭉 적혀 있었다. 내용은 길지 않았다.
용병들이 서로의 랭크를 어떤 식으로 분류하는지가 제법 자세히 쓰여 있었다.
갓 시작하는 N에서, F, E, D, C,B, A, S 랭크의 분류 기준이 간략히 쓰여 있었다.
‘으음.
나는 주머니에 있는 신분증을 오랜만에 꺼내 보았다.
<밴슨 프레쳐>
클래스: 근접발급: 1143. 7.
랭크: D파이론 용병 조합망치잡이를 죽이고 얻은 신분증이다. 4년 전에 발행된 신분증.
녀석의 랭크는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