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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1화 (31/458)

31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9)

책에 따르면, D랭크 수준의 랭크용병증이 있으면 어디서든 전력으로 인정받는 수준이라고 했다.

“랭크라.

무심코 입을 열었다. 나는 어느 정도의 랭크가 될지 궁금했다.

녀석을 쓰러트리고 꽤 시간이 지났다. 이제 C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여자에게 물었다.

근처에 매달린 여자가 절절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몸도 움찔거린다.

과도한 반가움이 이해가 안 되는바 는 아니다. 여자는 매달려서 이틀을 졸졸 굶었다.

‘인간은 뭘 먹어야 하니까.’

고통스러울 거다. 그녀를 거미줄에 매단 장본인이긴 하지만, 애원해 볼 대상은 나밖에 없다.

물이라도 한 모금 줄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여자에게 물었다.

“너는 용병 랭크로 어느 정도지?”

여자는 일단 대답부터 한다. 그리곤 곧바로 입을 열었다.

“용병 랭크라면. E플러스를 조금 상회하는 수준입니다.”

“다른 애들은?”

“죽은 년은 E, 죽은 놈은 D마이너 정도입니다.”

그냥 다른 애들이라고만 했다. 하지만 죽은 두 일행을 말하는 걸 알아차리고 곧바로 대꾸한다. 다시 되묻지도 않는다.

다시 입을 연다. 목소리가 메말라있다.

“저 레나, 정말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진심으로 돕고 싶습니다. 이렇게 죽고 싶지는 않거든요.”

절박해 보였다.

- 툭.

나는 읽던 책을 석관 위에 내려놓았다. 거미줄을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여자는 불안한 듯 열심히 조잘거린다.

“사실 남자를 독 묻은 단검으로 죽이려고 했습니다. 걸리적거리는 다른 년도 마찬가지구요. 죽여서 다 털어 가려고 했습니다.”

짐작하기 쉬운 이야기였다.

“평소에도 그렇게 동족을 죽이고 다니나?”

여자는 유연한 태도로 대답했다.

“필요한 경우만 죽입니다. 저를 훼손하려고 하는 자들만 죽입니다. 기분을 너무 나쁘게 하거나, 너무 걸리적거리는 자들만 죽이지요.”

여자는 동족 살해를 꽤 가볍게 이야기한다. 그 태도는 싫지 않다.

내가 그걸 꺼릴 이유는 없다.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동행하고 싶어요. 제가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거미줄에 매달려 이틀 굶은 여자는 꽤 정중하고, 적극적이다.

“왜?”

“저는 인간이 싫습니다.”

인간을 싫어하는 인간.

드문 일은 아니다. 과거를, 마왕이강림했을 때를 떠올렸다.

인류를 버리고 마왕 군에 붙은 인간들도 적지 않았다.

유형은 다양했다.

인류를 경멸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염인紙人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것을 고귀한 하나의정서로 여겼으며, 인류를 치는 마왕군에 가담했다.

또 다른 부류는 인류 전체에 대해,

피상적이고 불분명한 복수심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이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분명한 복수심을 가진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마왕군에 가담함으로써 그 목표를 달성하려고 했다.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여자는 어떤 타입일까. 실은, 그냥 살기 위해서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 확률이 가장 높겠지.

“그래? 한편이 되고 싶다고?”

“네. 사용해 주십시오.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니, 잘하겠습니다.”

말로는 뭐든 해 줄 것처럼 이야기한다. 하지만 거리낌 없이 동족마저 죽인다는 여자다. 여기서 풀려나면 도망가는 게 당연하다.

쫓아가 죽이는 것도 번거로운 일이다. 어려운 일이다.

괴이한 해골이 있다고 인간들 사이에 소문을 내겠지. 어떻게든 날 잡아 죽이려고 할 거다.

- 딱딱.

나는 이를 부딪쳤다. 이 여자를 당장 풀어 줄 생각은 전혀 없다.

뭘 물어봐야 할지 곱씹다가, 상태창에 있는 퀘스트 목록을 열었다.

‘이걸 들으면 되겠군.’

물어야 할 단어들이 거기 있었다.

“네크론 신사회에 대해 말해 봐.”

루비아를 쫓아온, 망치와 석궁이그 조직에 속해 있다. 몇 번이고 나를 죽인 놈들이다.

일단 이 녀석들부터 알아볼 필요가 있다. 여자는 어렵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 녀석들을 알고 계시는군요. 네크론은, 인신매매 집단입니다.”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게 본업인가?”

“청부 살인도 하고, 마약 제조도합니다. 하지만 인신매매가 본업입니다. 만만한 인간들을 잡아서 노예로 만듭니다.”

“반항이 심할 텐데.”

“으음, 마음 같은 건 부수려면 금방 부술 수 있으니까요.”

여자는 조금 당황하며, 당연하지않냐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금방 부서지는 건가.’

루비아가 그런 꼴을 당했을 거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가라앉았다.

가만히 침묵했다. 그녀는 내 눈치를 살살 살피다가, 알아서 말을 이어 갔다.

“좀 이상한 점은 있습니다. 인신매매는 확실히 까다로운 일입니다.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지요. 그 조직과 인력으로 돈을 벌려면 다른 방법도 많은데, 인신매매에 유독 집착하는 것 같습니다.”

“누가?”

“그게. 누군지는 모르겠습니다.”

나는 네크론이라는 조직의 수장이 누군지 물어본 셈이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인 게 당연하다.

“계속해 봐.”

“그 조직은, 여기저기 판매망도 잘 구축되어 있습니다. 대도시마다 지부가 없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문득 생각나는 게 있어서 물었다.

“유블람에도 있나?”

“물론 그럴 겁니다. 공권력이 뒤를 봐주거나, 아예 결합해 있거나 하죠.

유블람 경비대는. 아마 후자일 겁니다. 온갖 더러운 일은 다 하는 걸로 알려져 있거든요.”

나는 생각을 정리했다.

‘둘은 분리된 게 아니겠군.’

쫓아오던 두 놈과, 경비대 옷을 입은 다섯 놈은 같은 조직이거나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셈이다.

부숴야 할 녀석들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있었다.

“혹시 놈들에게 유감이 있으신 겁니까?”

여자는 과잉 존대를 썼다. 고개를 끄덕였다. 유감이라니, 물론이다.

눈을 굴려 가며 내 모습을 열심히 살피던 그녀가 말을 잇는다. 어떻게든 비위를 맞추려는 말투다.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왜일까. 그 말투에 호의가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헤헤, 저도 그런 놈들은 싫거든요.

어린아이까지 팔아넘긴다던데, 그런녀석들은 산 채로 불태우는 편이 좋지 않겠습니까?”

웃기는 인간 암컷이다. 자기가 살아남고 싶어서 동료까지 내 눈앞에서 죽인 주제에, 은근히 정의를 말하고 있다.

“싸워 볼 만할까?”

“으음. 쉽지 않을 겁니다. 뿌리가 워낙 깊어서요. 한참 윗선까지 관련되어 있다는 소문도 있고요.”

“죄다 불확실한 소문뿐이군. 잘 모르나 본데.”

“아픈 델 찌르시네요. 하지만 알아볼 수는 있습니다.”

“어떻게?”

갑자기 여자의 목소리에 활기가 깃든다.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하나는 돈을 주고 정보를 사는 겁니다. 저는 T&T의 단원이에요. 어디서 정보를 파는지는 알죠.”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잠깐이라도 장단을 맞춰 줄까.

“돈은 얼마나 있으면 되지?”

“가격도 중요하지만. T&T는 정보 구매자를 추적해요. 누가 샀는지까지 팔아먹을 수 있으니까요. 우리를 추적하는 쪽에서 충분한 금액만제시한다면, 아마 노출될 겁니다.”

나에게 믿음을 심어 주려고 노력하는 듯하다. 제법 귀엽다.

“상도의도 없나?”

“물론 없지요. 세상에 도의 같은 게 어딨습니까?”

석관에 걸터앉아, 다리를 꼬고 여자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어쩌자는 거지?”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나올 거다.

여자가 배시시 웃었다. 하루 종일 굶었는데 저런 웃음을 지을 수 있다니, 제법이다.

“길드 자체가 놈들에 대해 알아보는 걸로 만들면 되죠.”

“말 돌리지 마라.”

“헤햇, 제 길드 등급이 올라가 면됩니다.”

“얼마나?”

“지부장이요. T&T의 지부장은 기록 없이 정보를 열람할 수 있거든요.”

“지부장이라는 게 많이 있나?”

“웬만한 도시마다 있으니까, 적어도 백 명 정도는 될 거예요.”

“그 길드원 숫자는?”

“오천에서 만 명 정도라고 알고 있어요.”

기가 차는 이야기다. 여자는 한눈에 봐도 말단으로 보인다. 제가 속한 조직의 정확한 인원 파악조차 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명확하다. 그런데 지부장이 되게 해 달라고?

거미줄에 꽁꽁 묶인 채 하루를 꼬박 굶고, 걸어 다니는 해골을 앞에 두고 저런 소릴 하다니. 이럴 때<웃음>이란 걸 사용하는 게 아닐까싶다.

“거래를 좋아하는 모양인데, 좋아.

협상을 시작하지. 널 매달아 두고 난 계속 수련이나 해야겠다.”

나는 여자를 버려두고 돌아섰다.

어느새 처지를 잊고 은근슬쩍 기어오르려 하는 게 우스웠다.

저 정도 되는 정보원은 널렸을 거다. 여기서 기다리면서 얼마든지 잡을 수 있다. 다른 던전을 돌아도 마찬가지일 거다.

“자,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여자는 하루를 더 굶었다. 나는 책을 더 읽었다.

그동안 재미없게도 던전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여자를 돌아봤다. 거미줄에 매달려혀를 내밀고, 천장 종유석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아먹고 있었다.

인간이 저런 걸 먹다간 심한 배탈이 날 텐데.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없을 만큼 갈중이 심한 모양이다.

퀭한 눈동자가 애처롭게 빛났다.

- 터벅터벅.

여자에게 다가갔다. 거미줄에 매달려 사흘을 굶었다.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내려 줄 때가 됐다.

그 순간.

- 띠링!

[Dungeon message: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이젠 익숙한, 반투명한 홀로그램.

두 번째 보는 던전 메시지다.

인간들이 쳐들어온 것 같다.

F급 던전에 어울리는 F급 모험가들이겠지.

‘가서 잡을까?’

하지만 큰 고민 없이 기다리기를 선택했다. 놈들을 만나면 이런 저런걸 물어볼 생각이다.

그와는 별도로, 보고 싶은 것도 있었다. 여기 거미줄에, 이틀 굶은 여자가 묶여 있다.

인간 모험가들이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궁금했다. 구경할 생각이다.

여자를 풀어 주지 않고 발걸음을 돌이켰다. 석관 뒤로 숨었다. 얼마지 나지 않아, 바깥에서 요란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왜 아무것도 없어?”

“누가 방금 한 번 다 쓸고 간 모양인데.”

“에이, 재미없다.”

울리는 발자국과 말소리.

남자 셋으로 구성된 모험가 파티였다. 당연히 싸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바깥의 부서진 해골들이 아직 재구성되지 않았다.

놈들은 아무 저항 없이 걸어 들어온 것이다. 하나씩 잡아서 차분히 심문해 보자.

정보원은 많을수록 좋다.

그러나.

“어,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

“밀어야 되나?”

“조정하는 게 있을 거 같은데석벽 저편에서 놈들이 막혔다.

멍청하게도, 기관에 대한 정보도 없이 들어온 것이다.

‘초보자 파티 수준이 저렇지 뭐.’

저 기관도 풀 줄 모른다. 정말 아는 게 없는 무리인 셈이다. 속으로 잠깐 기대했지만, 정보원으로서의 가치는 형편없을 거다.

현실에 눈을 떴다.

‘괜히 설레였군.’

던전 탐험은 어쨌건 목숨이 걸린 일이다. 저 정도 사전 조사도 안 하고 들어왔다면 수준은 뻔하다.

‘그래도 기회는 줄까.’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생각이다.

- 구우우우응!

기관을 조작해 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한쪽에 슬쩍 몸을 숨겼다.

“엇! 열린다! 열려!”

“우오오!”

“이 앞에 서면 자동으로 열리는 건가?”

안으로 들어오는 모험가들. 시골출신들인지 투박하고, 순박해 보이는 남자들이었다. 풀이나 베고 나무나 하면 어울릴 인상이다.

물론 인간의 순박함이라는 건, 어떤 진저리쳐지는 부류를 순화해서 말한 것일 뿐이다.

인간은 자기 외의 다른 것들을 놀라울 정도로 소외시킨다. 순박하다고 불리는 부류들은 그중에서도 더한 편이다.

게다가 이들은 모험가로 살기를 선택했다. 부랑자, 약탈자의 삶을 선택했다. 빼앗고 홈치고 부수기를 선택했다.

평화로운 던전을.

이족異族의 부락을.

‘발견했다!’ ‘공략하자!’

그러나 그곳엔 이미 삶이 있다.

뭘 발견했다는 건가.

뭘 공략했다는 건가.

- 쿵!

완전히 석벽이 열렸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모험가들이 진입하자마자, 홀 내부의 해골들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한 것은.

‘벌써 복구되나?’

- 달그락!

“나, 나왔다!”

“치자!”

“크하하. 이제 포기하시지!”

가장 큰 덩치의 남자가 해골들에게 정체불명의 말을 지껄인다.

뭘 더 어떻게 포기하라는 말일까.

뭔가 손에 쥐고 있기라도 했나?

이미 포기할 건 다 포기한 존재들인데.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남자의 말은 자연스럽다.

포기하면 포기할수록, 더 많은 것을 포기하길 요구받는다. 세계는 그런 식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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