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나른한 눈으로 동족을 잡아먹는 이유 (10)
잡아서 매달아 놓은 저 여자의 말처럼, 세상에 도의 따위는 없다.
- 휙!
포기를 강요한 남자가 도끼를 휘두튼다.
나무깨나 패 본 듯한 솜씨.
팬 나무를 영주에게 다 뜯기는 삶에 지친 걸까.
이제 F급 던전에서 약한 해골병사를 패고 있다.
- 부응!
클래스는 나무꾼 정도겠지.
- 과직!
능숙한 도끼질.
이미 부서졌던 해골들이 다시 한번 부서진다. 아직 힘을 다 되찾지못한, 막 일어난 해골들이 기습에 당해 부서진다.
그나마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게다행. 몸을 숨긴 채 그들을 계속 바라봤다.
“헉. 헉.
해골들은 모두 부서졌다. 한창 무기를 휘두른 남자들이 숨을 몰아쉬었다. 호흡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초짜들이다.
인간 중에서도 격이 한참 낮다. 그야말로 순수한 F급 모험가.
한참 숨을 고른 뒤,
“으홈?”
남자들은 거미줄에 매달린 여자를 바라봤다.
발견이 꽤 늦었다.
대롱대롱 매달린 여자는 이들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구조를 애걸하지도 않았다. 줄곧 조용히 있었다.
남자들이 놀라며 말했다.
“어, 여자잖아?”
한데 그들은 곧바로 구원의 손길을 뻗지는 않는다.
“어떻게 여기 매달려 있는 거냐?
심문을 시작한다. 나는 그들이 하는 짓을 흥미롭게 지켜본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뭐야, 얘. 구해 달라고 안 하나?”
은근히 놀리는 태도를 보인다.
‘바로 안 구해 주나?’
조금 놀랐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납득해 버렸다. 사실 저런 태도가 자연스러울지도.
거미줄에 매달린 여자.
무력하게 구속당한 약자다.
인간이 약자에게 호의를 보이는 건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특히 이런 상황이라면 그렇다. 던전은 야만의 공간이다.
들어온 세 남자가 악의를 발휘해도, 매달린 여자는 악의로 되갚을 방법이 전혀 없다.
호혜적 사상 같은 건 개나 줘 버리면 된다. 보복당할 염려도 없고,
누구 눈치 볼 것도 없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조금 뜻밖인데.’
그러므로 뜻밖인 것은 남자들의 행동이 아니다.
여자가, 구해 달라 청하지 않는 것이 의외.
도끼를 들었던 남자는 허리춤의 물통을 잡는다. 사홀 동안 갈증에 시달린 동족 앞에서, 도끼가 물통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입술이 바짝 말랐는데, 마실래?”
그리고 여자 앞에서 물을 벌컥벌컥 들이 켰다.
물통은 금세 텅 비었다.
남자는 빈 물통으로 허공에 매달린 여자의 머리를 퍽픽 쳤다.
“웃어, 웃어야지. 예쁜 표정 지어봐. 우리가 구해 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그렇지! 왜 여기 매달려있냐니까?”
그들은 손에 든 철봉으로 거미줄을 헤집으며 왁자하게 웃었다. 무방비하게 등을 내준 채 여자를 둘러싸고 시시덕거리는 놈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기다려서 관람하는 보람이 있다.
남자들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며 여자에게 물었다.
“동료 같은 건 없나?”
네 동료들이 여기서 죽어 나갔으면 우리가 그 시체를 고이 들고 나가 장사 지내 주겠다, 라는 의도는 눈곱만큼도 없는 질문이다.
우리가 너를 마음대로 할 건데 훼방 놓을 녀석은 없냐고 물어보는 확인에 불과하다.
아니면 너를 거미줄에 매달아 놓고 괴롭히는 다른 녀석이 있는지 물어보는 거다. 있다면 그 녀석과 협상하거나 싸워야 할 테니.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조금씩 험악해졌다.
언제든 죽이고 짓밟을 수 있는 상대에게 외면당하고 있다. 그 사실이 남자들을 열 받게 만들었다.
그들의 작은 세계에서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야, 지금 우릴 무시하는 거냐?”
도끼를 든 남자가 인상을 썼다.
“그런 처지면 살려 달라고 빌어야하는 거 아니야? 구해 달라고! 제발구해 달라고 부탁해 봐. 엉? 구해준 다음에는 뭘 드릴까요, 하고 공손하게 이야기해야지.”
남자는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아주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민망함조차 느끼지 못하는 태도에 여자가 마른 한숨을 쉬었다.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부끄러움은 쉽지 않은 미덕이다.
“하아.”
“하아?”
남자들의 눈이 가늘게 일그러졌다.
여자는 한마디 한마디를 또박또박 내뱉었다.
“너넨 왜 이렇게 멍청하냐?”
“너는 지렁이가 너한테 말 걸면 안 짜증나? 흐물흐물하게 생긴 것들이왜 이렇게 침을 튀겨 대.”
매달린 여자는 토해 내듯 말한다.
“으, 으응?”
남자들이 당황했다. 잘못 들었는지귀를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그 가운데 한 남자는 심지어 자기 귀를 어루만졌다. 자기 귀가 잘 붙어 있는지 의심하는 것이다.
귀가 일단 멀껑히 붙어 있는 걸 확인하고 손이 슬그머니 내려간다.
“말로는 잘 못 알아듣지?”
가까이 있던 도끼 든 남자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목에 시뻘겋게 핏대가 섰다.
“이, 이년이 미쳤나.
“꺼지라고. 니들 먹물은 가서 서로빼 주면서 놀아, 병신들아.”
보고 있던 나도 조금 당황했다. 격렬한 여자의 말투에는 제법 진정성이 배어 있었다.
진심이 담긴 짜중이었다. 깊은 곳에서 긁어져 나오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홀 굶고 저 정도의 연기를 하기는 어렵다. 여자의 목소리엔 힘이 실려 있었다. 사흘을 굶었는데도 이 순간엔 제법 반짝이고 있다.
앞에 선 남자가 된소리를 내뱉었다. 어디를 어떻게 후벼 버리겠다는 등 신체 구조에 관한 소리였다.
말로만 끝나지 않을 둣 남자가 도끼를 치켜들었다.
- 달그락.
나는 앞으로 걸어 나갔다.
내버려 두면 피를 볼 것 같았다.
흥분해 있어서일까.
세 남자는 내가 걸어오는 것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 뒤에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너희들, 네크론 신사회라고 알고 있나?”
저들의 가치를 품평하게 될 중요한 질문이다. 뭔가 알고 있다면 살려줄 생각이다.
그걸 말하고 있는 동안은, 살려 줄 의사가 충분하다.
“그게 뭐야?”
“뭔 회?”
“히 이익!”
놈들은 질문을 던진 게 일행이라고잠시 착각한 듯했다.
그러나 곧 뒤를 돌아보곤, 깜짝 놀랐다. 나는 갑옷만 입은 채였다. 투구는 쓰지 않았다. 같은 상황에서,
투구를 벗으라는 말을 두 번 듣기는싫었기 때문이다.
다시 천천히 물었다.
“네크론 신사회, 모르나?”
“이, 이게 뭐야!”
“해골이 마, 말을 했어!”
세 남자가 나를 둘러쌌다.
발이 꼬여서 넘어질 뻔한 녀석도 있었다.
“아무래도 모르는 것 같군.”
한숨을 쉴 수 있다면 쉬었을까.
- 달그락.
경추를 움직였다.
갈비뼈를 살짝 들었다 내렸다.
“저게 대체 뭐야!? 가, 갑옷을 왜 입고 있어!?”
“쳐, 치라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녀석들에게 물었다.
“칼도 안 들고 왔는데 너무한 거아닌가?”
장난을 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말에는 진심도 조금 섞여있다. 맨손으로 접근하는데 당장 공격부터 해 오는 건 확실히 따질 만한 일이다.
맨손으로 접근하는 데는 물론 이유가 있다.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단검을 맞고 죽은 은발 여자보다도 약하다.
남자들은 내 말에 대답하지 않는다. 주제 파악을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대신 기합을 넣는다.
“이야 아압!”
한 놈이 들고 있는 철봉으로 나를 후려쳤다. 거미줄을 쑤셨던 철봉이다. 개중 민첩한 녀석이지만,
지루할 정도로 느리다.
손을 들었다. 휘둘러지는 철봉을 그대로 휙 잡아당겼다.
“끼이잇!”
철봉은 자연스럽게 잡아채졌다. 놈이 내게 넘겨주려 한 것처럼.
놈은 앞으로 휘청거리며 넘어졌고,
나는 철봉을 강하게 내려쳤다.
- 빠각!
남자는 머리가 부서졌다. 뇌수와 피가 허공으로 튀었다. 별로 뭐가 담겨 있지는 않아서인지, 뇌수의 색이 조금 열은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건 별로 상관없겠지.’
내 생물학적 지식을 회의적으로 고찰하며,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흐아아악!”
남은 두 남자가 겁에 질려 뒤로 물러났다. 공포가 그들을 빠르게 집어삼킨다.
- 챙그랑!
나는 철봉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겁을 줄 생각은 전혀 없다.
길을 물어보는 것처럼, 그냥 순수하게 물어보고 있다.
“확실히 모르는 거 맞지?”
“히, 히이익!”
남은 둘은 비명을 지르다가, 내가빈손이 되자 뒷걸음질을 멈췄다.
‘음? 멈추는군.’
어쨌건 이곳은 해골병사가 나오는 던전. 그들은 해골을 잡으러 왔다.
갑옷을 입고 있고,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것 같긴 하지만.
어쨌건 해골에 불과하다.
그런 생각이었을까. 도끼를 든 놈과 칼을 든 놈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더니 무기를 꽉 잡았다.
‘호오.’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목격했다.
그럼에도 덤벼들려고 하는 건가 싶어 재미있었다.
“해, 그냥 해골이야! 겁먹지 마!”
저들을 용기 있다고 말해 줄 수도 있다. 아직도, 그들에게 나는 마땅히 부서져야 할 해골병사.
어떻게 보자면 순수한 시선이다.
상황이 좀 이상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고 덤빈다.
많은 자들이 하나의 단면에 아무런 진단도 없이 몰입한다. 그리고 단면과 함께 잘려 나간다.
“가, 감히 내 친구를!”
도끼를 잡은 놈이 크게 소리를 지론다.
“그렇게 따지면 저기 내 친구들은또 어떻고.”
부서진 해골들을 가리켰다. 녀석은내 말에 반박하지 않는다.
놈은 대꾸하지 않는다.
물론 차분한 논의 따위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죽어라 몬스터 어어!! 으아 아아!”
놈이 거세게 도끼를 휘두른다. 도끼 자루가 멋들어졌다.
녀석이 그동안 저 도끼로 쪼개 왔을 나무들이 떠올랐다. 나무들을 대변할 의리는 전혀 없다.
그냥, 무언가를 끊임없이 쪼개야만 하는 삶의 방식에 대해 생각했다.
“이야 아압!”
옆에서는 다른 놈이 칼을 내리친다. 휘둘러지는 도끼날을 슬쩍 피했다. 한 발자국 옆으로 움직여,
칼을 내리치는 놈의 발을 걸었다.
“흐익!”
발 걸린 놈이 넘어지며 도끼 든 녀석의 목을 쳤다.
칼은 힘없이 휘둘러졌다. 이런 ‘순박한’ 자들에게는 칼보다 도리깨와 도끼가 어울린다.
칼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였다.
도끼의 목은 제대로 떨어지지도 않았다.
“끄, 끄에에.
도끼는 목을 감싸 쥐고 자빠졌다.
피는 줄줄 홀렸지만 채 한 치 깊이로도 베이지 않았다. 죽으려면 좀시간이 걸릴 거다.
칼을 빼앗아, 그걸 휘두르던 놈의 가슴에 박아 넣었다.
- 서걱!
칼을 가지고 다니면 역시 칼을 가지고 다니는 놈을 만난다. 칼을 휘두르면 그 칼에 심장이 꿰뚫릴 각오는 되어 있어야 한다.
표정으로 보아, 그런 각오는 전혀 되어 있지 않은 것 같았다.
가슴에 칼이 박힌 놈의 두 눈이 크게 부릅떠졌다.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이었다.
구멍 난 가슴에서 피가 샘물처럼 뿜어졌다. 한 걸음을 옆으로 움직여피분수를 피했다. 칼을 휘둘러 도끼의 목을 깔끔하게 쳐 주었다.
- 데구르르.
도끼의 목이 잘려 나가 바닥을 뒹굴었다. 민망해질 정도의 수준이다.
이 정도로 수준 차이가 나면, 몇을죽여도 경험치가 오르지 않는다.
그러나,
[경험치가 121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134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125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셋을 죽이자 레벨이 올랐다.
내 레벨은 실제 수준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게 되어 있다.
오는 모험가들이 수준이 낮지만,
내 레벨도 터무니없이 낮다. 상태를 확인해 본다.
‘상태창.’
- 띠링!
[이름: 없음]
[해골병사 Lv. 10(66)]
[체력-30 힘-39 민첩-39 지혜-11]
[잔여 포인트: 1]
남은 포인트를 힘에 배분했다. 민첩과 힘은 비슷하게 맞추고 있다.
민첩을 먼저 올리기도 하고, 힘을먼저 올리기도 한다. 두 스탯의 밸런스는 중요하다.
[힘 39 -> 40]
모험가들의 시체를 뒤지기 시작했다. 무덤에서 일어난 뒤, 시체를 뒤지는 일이 잦다.
갓 죽은, 갓 죽인 시체들이다.
‘이 짓도 하다 보니 익숙해지나.’
칼을 찔러 넣은 가슴팍을 뒤지고,
옆으로 멘 배낭을 뒤졌다.
사후경직으로 굳어 가는 몸을 단단한 손뼈로 점검한다.
- 짤그락.
놈들의 지갑은 얄팍했다. 몇 로티 되지 않았다. 다만 식량은 제법 풍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