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동굴에서 날개가 퇴화하는 이유 (2)
중부와 남부.
큰 강을 낀 비옥한 평야들.
온도도 습도도 살기 알맞고, 품질좋은 과일과 채소들도 흔하게 잘 자^는 곳.
그런 곳에는 마물들이 발을 붙이지 못한다. 마왕 강림 전에는 꿈도 꿀수 없다.
강을 낀 곳, 자원이 풍부한 곳, 땅이 비옥한 곳들.
달빛이 부드럽고 꽃이 아름다운 곳은 철저히 인간의 것이다.
- 툭.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레나의 몸이 모포 위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쌔근째근 잠자는 숨소리가 곧 홀 안에서 작게 울린다.
‘잠들었나?’
여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자는 척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자는 삼일 밤낮을 거미줄에 매달려 있었다.
먹지도 못했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을 거다.
모험가들에게 빼앗은 여행용 모포를 한 겹 더 위에 올려 주었다.
이 여자에 대해 생각해 볼 시간은 많다. 받아들이기로 한 내 결정을 가만히 돌이켜 보았다. 잘못된 판단은 아니라고 믿고 있다.
목표를 향해 혼자 움직이기에는 이런저런 제약이 많이 따른다.
일단 인간을 아는 자가 필요하다.
내가 머지않아 죽일 무리도 인간이고, 10년 뒤, 20년 뒤에 죽일 무리도 용사라는 이름을 가진 인간들이‘으음.’
- 달그락.
실은 동료라는 걸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루비아를 동료로 만들려다 실패했다.
20년을 달그락거리면서.
서큐버스님을 제외한다면 나에게 동료 같은 건 하나도 없었다. 모험가들은 던전을 쳐들어오며 서로를 동료라고 불렀다.
나에게는 그런 게 없었다. 서로를 구하다가 죽을 동료는커녕, 손을 잡고 있어 줄 누군가조차 없었다. 잠든 여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이 여자는 동료가 될 수 있을까?
- 달그락.
나는 고개를 저었다.
잠시 함께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료는 아니다. 그런 친숙한 단어를 사용하는 건 무리. 여자는 제멋대로 내게 동질감을 말한다.
그러나 나는 거리감을 느낀다.
이 수상한 여자가 하는 말을 듣고,
하는 행동을 볼 수는 있다. 하지만 마음은 알 수 없다. 앞으로도 모를 것이다.
유용성은 확실하다.
신뢰성은 글쎄.
혼자 생각에 빠져 있던 중.
- 띠링!
언제 나와 같은, 귀에 익은 경박한 소리와 함께.
<그녀를 T&T 길드 지부장에 앉혀보세요! ‘어둠 속의 조력자’ 시나리오가 활성화됩니다.>
<높은 호감도에 방심하지 마세요!
그녀는 언제든 당신의 뒤통수를 때릴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말이었다.
나는 픽 하고 웃었다. 경추를 달그락거렸다. 세세하게도 알려 준다고 생각했다. 알려 준 내용은 그리 싫지 않았다.
‘언제든 뒤통수를 칠 수 있다고?’
고마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해골이다. 인간에게 뒤통수를 맞을 수 있는 관계를 맺는 것조차 어렵다.
배신당하고 음모에 빠지는 것 정도야 해골이 아니라 인간이라도 당한다. 그 정도면 환영이다.
나는 잠이 든 여자를 바라본다.
여자는 쌕쌕거리며 깊이 잠들어 있다. 그녀의 숨소리는 규칙적이다.
반짝이는 ‘레나’라는 글자에 손을 가져다 댔다.
- 띠링!
[이름: 레나]
[도적 Lv.5]
[체력-13 힘-11 민첩-17 지혜-11]
[호감도: 11]
- 레나는 당신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본 스킬]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특전]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칭호-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역시 호감도를 올리지 않으면 기본스킬과 칭호, 특전은 볼 수 없는 것도 같다.
그런데.
‘언제 호감도가 올랐다는 거지?’
별로 한 것도 없는데, 나에 대한그녀의 호감도는 11을 기록하고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여자였다.
레나의 능력은 준수했다.
인간은 개체차가 크다.
터무니없는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자도 있고, 성장 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자들도 있다.
아직 특전이나 칭호는 확인해 볼수 없다. 하지만 레나는 분명 재능이 뛰어나다. 빠르게 레벨을 올린다면, 오래지 않아 나를 추월할지도 모른다.
도중에 이 여자를 죽이게 된다면,
혹은 죽이고 싶어진다면. 그 시기를잘 잡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잠든 여자를 바라봤다.
“으음.
레나는 서서히 깨어났다. 잠이 묻은 얼굴로 나를 바라본다. 앞으로 5년 동안은 잠들어 있을 것 같던 여자는 채 하루가 지나지 않아 깨어났다. 꿈도 꾸지 않고 꼭꼭 잠 속에 파묻혀 있던 여자는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일어났다.
그녀는 아, 하고 탄식을 뱉었다.
품에서 무언가를 뒤졌다. 나는 실수를 깨달았다. 조금 불안해졌다.
품에 무슨 위험한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에게는 온갖 특별하고 기상천외한 무기가 있다.
휴대용 폭탄이라는 것도 있다.
품속 어딘가에 숨겨져 있을 그 폭탄을 꺼내 던지면, 나는 날아가 버리게 된다.
온몸의 뼈가 깨져서, 죽지는 않더라도 여자는 확실히 놓치게 되겠지.
너무 방만했는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인간의 몸을 뒤진 적은 없다. 루비아도 그렇고레나도 그렇다.
그들이 어떤 것을 가지고, 숨기고있는지 알지 못한다.
쓸모없이 예의를 차리고 있었던 듯하다. 아무도 나에게 기대하지 않는 것을 무심코 지키고 있었다.
칼을 잡은 손에 힘을 줬다. 언제든 여자의 목을 날려 버릴 수 있도록 자세를 잡았다. 하지만 기우였던 것 같다. 레나가 품에 손을 넣어 뒤지는 태도는 느긋했다. 무기는 아닐 것 같았다.
“저.
레나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에 줄 달린 작은 장식이 있다.
낡고 조잡하다.
십자 모양으로 교차된 가운데에는 작은 큐빅 하나가 걸려 있다. 레나가 날 보고 말을 걸었다.
“이거, 어머니의 펜던트예요.”
“펜던트?”
“네.”
팬던트는 목에 거는 장식품이다.
길게 줄을 늘어뜨린다. 보통 이런건 가운데에 보석을 박는다. 여자의 것은 그냥 줄 달린 보랏빛 큐벅처럼보였다.
큐벅은 빛이 바랬다. 주변부는 조금 닮아 버린 것 같았다.
어디서도 이런 걸 팔 것 같지는 않았다. 골동품 가게에서도 취급하지 않을 거다.
어머니의 펜던트라는 말이 딱히 거짓말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진품이라고 해서, 나에게의미를 갖는 건 아니다.
“왜 이런 걸 나한테 주지?”
“신뢰의 중표예요. 저를 풀어 주셨지만, 완전히 믿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서요.”
웃기는 말을 한다고 생각했다.
신뢰는 가슴 깊은 곳에서 차오르는 주관적 정서다. 어떤 정물도 그 중표가 될 수는 없다. 나는 팬던트를받지 않았다. 믿기로 한다면, 낙엽한 장 주워 주지 않아도 믿을 수있다.
“싫어.”
“네?”
“말하지 않았나? 싫다고.”
레나가 주춤한다. 손에 펜던트를쥔 분위기로 볼 때, 상당히 의미가 있는 물건처럼 보이긴 한다. 약간 곤란해 보이는 표정이다.
“이 펜던트, 진짜입니다만.
“믿지 않으려면, 심장이 담긴 병을 두고 가도 믿을 수 없잖아?”
줘도 뭘 이런 걸, 이라고 생각하면서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이를 딱딱거렸다.
“도움이 되는 선까지만 서로 이용하자는 거다.”
이런 말을 하면서도, 나는 눈앞의 여자와 어떤 종류의 관계를 맺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서큐버스님이나, 몇 번씩 그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루비아처럼, 지켜주고 싶다는 감정은 없다.
물론 그녀라는 개인을 신뢰하는 것도 아니다.
제 동족인 인간들을 아무렇지 않게 죽인 여자가, 내 뒤통수는 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터무니없다.
일단은, 눈앞의 여자를 사용하고 싶다. 원하는 걸 제공해 주고, 내가원하는 걸 제공받고 싶다.
신뢰나 지켜 주고 싶다는 말랑말랑한 감정 대신 그런 게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핫.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에, 펜던트를 거절당한 여자가 앞에서 작게 웃음을 뱉는다.
“역시 이런 건 바보 같죠?”
얼굴이 밝다. 여자는 다시 제 품에 펜던트를 넣는다.
그 순간이었다.
- 띠링!
[레나의 호감도가 3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14]
묘한 포인트에서 호감도가 오르는 여자였다. 나는 화제를 돌렸다.
“잠은 잘 잤고?”
“네. 덕분에요. 어느 던전부터 갈까요?”
“랭크대로 가지.”
“그럼, <메마른 지하 묘지>를 다음목적지로 잡을게요. 준비할까요?”
“준비가 필요한가?”
“사실 기사님과 함께라면, 여긴 별다른 준비도 필요 없을 것 같긴 해요.”
<메마른 지하 묘지>는 E랭크 던전이다. D나 C랭크 던전으로 가면 경험치는 많이 주겠지. 하지만 한 단계씩 올라가는 편이 안정적이다.
그곳으로 지금 가 볼까?
하지만 신경 쓰이는 게 있다.
이 안에서 해골들의 뼈를 맞춰 주고, 던전에 침략한 모험가들을 죽일 때마다 변화하던 게 있었다.
던전 친화도.
던전 친화도라는 건, 어떻게 쓰이는 걸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지금까지를 가만히 되짚어 봤다.
친화도가 5% 올랐을 때는 던전 경보가 떴다. 던전에 누가 들어왔는지 표시됐다. 침입자가 들어왔다고 경보가 울렸다.
10%, 20%가 오른다면 뭔가 다른 게 주어질지도 모른다.
“으, 으흠.”
옆에서 레나가 헛기침을 했다.
“뭘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나에게 묻는다.
혼자 생각에 빠져 그녀를 너무 방치했다. 거미줄에 매달아 놓고 사흘을 내버려 뒀다. 그런데 풀어 주고도 멍하니 방치해 두고 있었다. 레나를 바라봤다.
“너, 마을에라도 다녀와라.”
“예?”
“합류하겠다며? 제대로 자고 오지 그래.”
간단히 먹이긴 했다. 그러나 이런 걸로는 한참 부족하다. 모포를 깔긴했지만, 잠도 동굴 바닥에서 잔거다.
레나는 상당히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살아 있는 인간은 정기적으로 씻는 과정이 필요하다. 몸에 묻은 땀과 소금기를 물로 씻어 내야한다. 이런 던전에서, 그런 일을 할수는 없다.
“어어.
여자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들어 나를 살펴본다. 놀라서 나를바라보다가, 믿기 어렵다는 듯한 태도로 말했다.
“이렇게 놓아주셔도 되는 건가요?
정말로요?”
나는 여자를 가만히 바라보곤 반문했다.
“싫어?”
“아, 아니죠! 다녀올게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여자는 몸을 아직 일으키지 않고 있다. 너무 빨리 도망가 버리면 신뢰를 잃을 거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는 걸까.
나는 모험가들에게 빼놓은 짐 더미를 살펴봤다. 짐에는 이런저런 잡다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작고 비싼 것이나, 딱히 크게 돈이 될 만 한건 없어 보였다.
짐은 F급 모험가들의 삶을 닮았다.
하나같이 부피가 컸다. 별다른 쓸모는 없었다. 환금성이 떨어지는 것들뿐이었다. 값어치가 없었다.
- 쨍그랑.
무기들을 선별해 놓았다.
이건 적어도 쇠 값은 받을 수 있다. 전부 다 팔면 조금은 돈이 될 거다. 내가 가져가서 팔 생각은 없다.
괜히 여자를 풀어 준 게 아니다.
이 물건들은 모험가들을 죽여 얻은 장물이다. 사기나 공갈, 절도로 얻은 장물보다도 훨씬 위험하다.
하지만 레나는 암흑가의 길드에서일한다고 했다.
물건을 처리할 방법은 남아돌 거다.
“가격만 맞는다면, 물건의 출처 따위엔 관심 없는 인간들도 많겠지?”
“물론이에요.”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짐을 가리켰다.
“짐 모아 놓은 거 봐.”
“예!”
“네가 알아서 처리해라. 팔아서 뭘사든, 그대로 쓰든.”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레나는 언제든 그대로 도망가 버릴 수도 있다. 나를 버릴 수 있다. 여기서 놓아주면, 토벌대라도 데리고 공격해 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어차피 인간 도시에 혼자서 몇 번이고 보내야 한다. 레나 혼자서, 나를두고 행동하는 일이 많아야 한다.
옆에 두고 항상 감시하는 식이라면효용은 터무니없이 떨어진다. 살려두기로 결심했다면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게 당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