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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5화 (35/458)

35화 동굴에서 날개가 퇴화하는 이유 (3)

레나는 짐을 정리했다. 시체에서 나온 장물을 정리하는 태도가 능숙해 보였다.

‘많이 해 본 솜씨 같은데.’

자기가 죽인 시체에서 물건을 챙긴다음, 암시장으로 향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그려졌다. 역시 위험한 여자다.

“대충 다 챙겼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싼 짐은 그리 크지 않다. 대부분의 큰 짐들이 남아 있다. 조금 의아한 눈으로 보자 레나가 살짝 웃으며 말했다.

“여러 번 다녀갈께요. 지금은 들 힘이 없어서요.”

고개를 끄덕였다. 기관 장치에 대해 설명했다. 홀 안쪽과 바깥쪽을 분리하는 장치.

“비석은 여기에 있고.

숨겨진 조작 장치의 위치와 어디에뭘 맞춰야 하는지 알려 줬다.

“뱀, 부엉이, 말 그림 순으로 비석을 돌리면.

“아, 이렇게 하는 거군요.!”

레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간단한장치긴 하지만, 한 번 본 것만으로도 쉽게 따라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이해가 빠르다.

구우우응- 쿵, 하며 석벽이 열린다.

“이번에는 닫아 볼게요!”

레나는 기관 장치를 몇 번 조작해 열고 닫다가, 다시 석벽을 연채로 터벅터벅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럼 다녀올게요!”

“조심해라.”

무심코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내말에 레나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발걸음은 멀어졌고, 나는바닥에 놓여 있는 무기들에 시선을 줬다. 그리곤 레나가 매달려 있던 거미줄을 바라봤다.

홀 안의 공기가 조금씩 식어 갔다.

괜히 허전했다. 함께 있었다고 들뜨기라도 했던 걸까? 사홀 간을, 일방적으로 방치해 놓았으면서.

- 붕!

감상을 떨쳐 내고 싶었다. 한 손으로 바스타드 소드를 휘둘렀다. 허무한 짓이었다. 검술 레벨은 더 이상 오르지 않았다. 퀘스트는 끝났다.

한 시간 정도가 흘렀다.

가만히 있느니 나가서 인간이라도 사냥할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 띠링!

[Dungeon Messeage: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숫자 - 5명]

‘으음?’

갑자기 경보가 울렸다.

다섯 명의 모험가가 안으로 침입했다는 경보였다. 별거 아닌 경보. 던전에 침입자가 발생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싸늘하다.

차가운 칼날이 파고드는 듯하다.

레나와 관련이 있나?

시기가 묘하다. 여자가 밖으로 나간 지 한 시간밖에 안 되어, 모험가 다섯이 쳐들어온다. 연관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놓아주자마자 배신당한 걸까?

‘기대하고 있었나.’

결국 믿고 있었다. 배신감이 얼룩처럼 가슴에 내려앉았다. 물론 섣부른 판단이다. 레나와 아무 관계없는 모험가 다섯일 수도 있다.

어쨌건 나는 최악을 가정한다. 그편이 안전하다.

‘각오해야겠군.’

레나는 내가 전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저 그런 모험가들을 데려오진 않았을 거다. 그녀가 데려온다면 나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전력이다.

- 스르릉.

검집에 넣고 있던 바스타드 소드를천천히 뽑아냈다.

- 툭.

검 끝을 살짝 석관 위에 걸쳐 놓았다. 비스듬한 자세로 기다리고 있다. 칼날을 바라봤다. 충분히 날카롭다. 칼을 보려면 날을 보면 된다.

하지만 주인을 보려면 자루를 봐야한다.

시선을 안쪽으로 당겼다.

가죽으로 된 칼자루를 본다.

이 칼의 주인은 먹을 것만 잔뜩싸 가지고 다니던 녀석이었다. 가죽으로 감긴 칼자루는 때 묻지 않았다.

누덕누덕 닮지 않았다. 만들어진 지얼마 되지 않은 칼이다.

하루에도 수십 자루의 칼이 이런 상태에서 주인을 잃어버린다. 칼자루가 낡는 것보다 주인의 목이 날아가는 편이 훨씬 빠르다.

던전 안으로 들어오는 녀석들은 어떤 칼자루를 쥐고 있을까? 충분히 낡은 칼자루의 소유자라면 내 머리가 부서질지도 모른다.

- 터벅터벅.

가까이 다가온 듯하다. 발자국 소리가 던전 곳곳에 울린다. 던전 벽면은 고르지 못하다. 소리가 어지럽게 반사된다.

“어이. 정말 여기 괜찮은 게 있는 거야?”

남자의 목소리다.

“흐흐, 도망치는 건 아니겠지?”

또 다른 목소리. 굵고 낮다.

“이런 데서 뭘 어떻게 도망쳐요?”

‘레나?’

그녀의 목소리였다.

‘도망친다고?’

“던전이라더니 아무것도 없네, 정말인가 본데?”

“그럼 제가 거짓말하는 줄 아셨어요?”

목소리에 교태가 섞여 있다. 두 번 들으니 레나가 확실했다. 나가자마자 정말 누군가를 데리고 들어오는 건가.

“밖에서 하는 것보다 여기가 훨씬낫죠, 안 그래요?”

레나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발자국소리가 석벽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기관 장치를 조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 구우우웅. 쿵!

석벽이 열리며 천장에 쿵, 하고 부딪힌다. 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던 전안에 크게 울린다. 안팎으로 먼지가 흩날린다.

의아했다.

홀 안으로 들어오는 인간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 석관에 걸터앉은 채로 그들을 멍하니 바라봤다.

숫자는 다섯.

레나와 남자 넷이다.

그런데, 그들은 제대로 된 무장을 하지 않았다. 갑옷도 무기도 없었다.

그냥 천 옷이 끝이었다.

모험가도 사냥꾼도 아니다. 인간남자였고 그걸로 끝인 자들. 던전을 공략하는 태세는커녕, 저러고 돌아다녀도 이 세계는 저들에게 안전한가 싶어서 고개가 갸웃거려질 정도였다.

“히이이익!”

남자들은 나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무심코 뒷걸음질을 쳤다.

아무래도 몬스터가 있을 걸 예상하고 들어온 놈들이 아닌 것 같았다.

여기가 던전인 줄 모르고 온 건가싶었다. 혹은 던전인 줄 알고도,

“으헉! 뭐야!”

누군가의 꼬임에 휩쓸려 생각 없이 들어와 버렸다거나. 대단한 강심장이라면 강심장이고, 생각 없이 산다는 면에서는 박수를 쳐 주고 싶을 정도다.

“해, 해, 해골이잖아!”

남자들이 나를 가리키며 홈칫 놀란다. 아직도 도망가지는 않았다. 나는 레나를 바라봤다.

설명을 요구할 생각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그녀는 젖어 있었다.

몸과 머리카락이 촉촉하다. 검은색눈동자와 머리카락이 물기를 머금어 반질거렸다. 나는 레나를 추궁했다.

“이게 다 뭐냐?”

그러자 레나가 씩 웃으며 말했다.

“죄송한데요, 얘네 좀 죽여주실 수 있나요?”

“아악!”

그녀의 손목을 쥐고 있던 남자의 손목을 슬쩍 돌려서 그대로 꺾으며,레나는 당황한 남자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촉촉하게 젖은 검은색 머리카락을 흔들며 금세 이쪽으로 타닥타닥 다가왔다.

“어, 어어!”

멍청한 표정을 한 침입자들은 당황했다. 상기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너, 지금 뭐 하는 거냐? 너 혼자서도 처리할 수 있지 않아?”

정말이지, 어디서 이런 민간인들을 데려온 건지 모르겠다.

경보가 뜰 때.

홀 안으로 남자들이 들어올 때. 여자가 나를 배반하려고 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건.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준비되지 않은 남자들이었다.

무기 하나 안 들고 이런 던전까지 기어드는 저 자신감은 대체 어디서나 오는 건지 궁금하다.

레나는 이미 내 쪽으로 빠르게 걸어왔다. 남자들과 거리를 벌리며 멍청한 표정의 그들을 비웃었다. 살짝짜중을 실어 그녀에게 물었다.

“뭐 하는 짓인지 궁금한데.”

레나가 몸을 살짝 뒤틀며 말했다.

“으으, 삼 일 동안 씻지도 않은 상태로 도시에 들어갈 순 없잖아요.

좀 봐주세요.”

“그래서?”

씻지 말라고 한 적은 없다.

“계곡에서 씻고 있었는데 저놈들 이오더라고요. 자기들을 대놓고 유혹하는 거 아니냐면서, 슬슬 빠져나가려고 했는데 그럴 분위기가 아니던데요? 아예 거기서 덮쳐 버릴 것 같았거든요.”

“여기까지 끌고 올 건 없잖아?”

“네. 사실 제가 죽일 수도 있지만,

시체를 처리하기도 번거로워서레나가 말을 흐렸다.

- 달그락.

뼈로 한숨을 표현했다.

고의적이다. 저들을 구태여 여기까지 끌고 왔다. 내가 해치워 주길 바란 거다. 반쯤은 장난기가 서려 있지만, 목적은 분명하다.

신뢰성의 제고다. 저 넷의 죽음은 우리의 관계에 바치는 첫 제물이 된다.

나는 남자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황당하게도 내가 모아 놓은 짐 더미에서 무기를 하나씩 집어 들고 있었다.

“같이 공격하면 될 거야! 주위를 보니 움직이는 건 저 해골 하나뿐인걸?”

“웬 요망한 계집인가 했더니, 이런데 숨어 사는 마녀였어? 혼 풀을 내준 다음 신전에 넘기자!”

날 보고 홈칫 놀라던 놈들이, 어느새 금방 의기가 양양해져 있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레나, 궁금한 게 있는데”

“예! 뭐든 말씀하세요.”

“저런 자신감은 대체 다 어디서 나오는 거지?”

“그러게 말이에요. 구멍 좀 뚫어서빼내야겠어요.”

칼을 고쳐 잡았다.

굳이 꺼지라고 해 줄 만큼 친절하지도 않다. 짐도 없는 걸 봐서 근처도시의 인간들. 죽일 거라면 빠르게 처리한다.

- 팟!

석관을 디디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 서걱!

“커, 커헉!”

똑바로 찌른 바스타드 소드에 한남자의 심장이 뚫렸다. 살과 근육은종이처럼 찢겨졌다.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입과 가슴으로 피를 뿜어내며 털썩, 무릎을 꿇었다.

[경험치가 14 올랐습니다!]

[던전 친화도가 0.09% 올랐습니다!]

한 녀석의 즉사를 보고도, 그들은내 움직임에 조금도 반응하지 못했다. 찌른 칼날을 뽑아내 곧바로 회전 시켰다. 나란히 서 있는 두 녀석의 그대로 베어 버렸다.

- 좌록!

- 좌르륵!

피가 뿜어졌다. 시체 두 구가 풀썩풀썩 바닥에 쓰러졌다.

[경험치가 9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11 올랐습니다!]

[2연격! 상대가 너무 약합니다. 검술 숙련도가 오르지 않습니다.]

[던전 친화도가 0.2% 올랐습니다!]

“끼, 끼히익.!”

한 명 남았다. 그는 몸을 돌려 도망가려 했다. 민망할 정도로 무방비한 등을 칼로 찔렀다.

- 서걱!

등을 찌른 칼날이 가슴을 뚫었다.

다시 뽑아냈다. 피가 앞으로 솟구쳤다. 그는 비척거리며 세 걸음을 걸었다.

끄힉, 하는 단말마를 뱉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제가 쁨은 피 웅덩이에 얼굴을 묻었다.

[경험치가 18 올랐습니다!]

[던전 친화도가 0.12% 올랐습니다!]

한참 낮은 레벨의 놈들. 경험치도거의 들어오지 않는다. 던전에 새롭게 네 구의 시체가 생겼다.

나는 유언도 묻지 않고 칼을 휘둘렸다. 듣는다 해도 지켜 줄 의향도 없다.

삶에서 떠난 자리, 몇 마디 주절거림이 남아 보아야 아무런 의미도 없다.

- 달그락.

나는 돌아섰다. 칼에서 피를 털어내고 남은 것은 천에 닦았다. 네 남자를 몇 번 숨도 쉬지 않은 사이모두 죽여 버렸다. 내 숨은 아니다.

“하아.

레나의 숨이었다. 그녀는 몸을 파르르 떨었다.

- 휘이이익!

그녀가 휘파람을 분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휘우! 짜릿하네요.”

인간 숫자가 줄어드는 게, 자신의쾌감과 직결되는 것 같은 감상이다.

그녀의 감상을 품평하지 않았다. 레나가 이쪽으로 와서 시체를 뒤졌다.

“쓸 만한 건 역시 없고. 죽였다는 걸 의의로 삼아야겠네요.”

원래 그녀가 갖고 있던 짐을 제외하고 별다른 건 없는 듯하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강탈하고 살해하는 세계에서, 좋은물건은 강한 자들이 갖게 된다.

“약한 자들이었다.”

“그렇죠. 힘겹게 한 푼 두 푼 모아서, 쌓아 두면 당연한 것처럼 간단히 빼앗겨 버리는 자들이죠. 이들이 가여우신 건가요?”

“동정해야 하나? 그들은 널 빼앗으려고 했다.”

“헤햇, 그 순간만큼은 저들도 강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잔뜩 흥분했겠죠. 아, 여기요.”

시체에서 주운 지갑을 레나가 나에게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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