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화 동굴에서 날개가 퇴화하는이유 (4)
[2로티 91위젯을 습득했습니다!]
몇 푼 되지 않는 돈이다. 지갑을 받아 들고 레나에게 물었다.
“이 날씨에 계곡에서 목욕이라니,
안 추운가?”
“겨울도 아니고 그냥 가을인데요,
뭘.”
툭, 하고 지갑을 다시 레나에게 던져 주었다.
[2로티 91위젯을 건네주었습니다!]
“목욕은 여관에서 해라.”
“같이 하실래요?”
대꾸하지 않았다. 레나가 흠, 하고헛기침을 몇 번 하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뭘 해?”
“그냥 기다리는 것보다는. 제가인간들을 꾀어 오는 거죠. 그럼 기사님이 처리하시는 거예요.”
“글쎄.
밖에서 인간을 사냥하는 것. 가만히 앉아 침입자를 기다리는 것. 레나가 제안한 방식은 그 중간쯤에 있다.
“미끼를 자처하는 건가?”
“저는 그게 쉽고 편해요. 적성에 맞거든요. 알아서 잘 데려., 쿨럭!”
레나가 기침을 했다. 며칠 굶어 몸이 쇠약해진 데다, 찬물에 들어가서 감기라도 걸린 걸까?
- 딱딱.
나는 이를 부딪쳤다. 별달리 좋은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다. 맡겨 보기로 했다.
“그럼 여기 좀 더 머물러 있어야겠군.”
기침을 삼킨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길어도 한 달 정도 만요. 너무 오래 있는 건 위험하겠죠. 그동안 잔뜩 끌어당겨서, 바짝 털고 가는 거예요.”
한 달이라. 어차피 그 이상 있으면 레벨도 제대로 오르지 않겠지만. 레나가 말을 이었다.
“모험가들이 계속 실종되면, 영주가 신경을 쓰게 될 테니까요.”
그 말을 듣자 궁금해졌다.
“그들은 어차피 사회의 쓰레기 아닌가? 모험가 따위를 왜 영주가 걱정해 주지?”
“듣는 모험가들 서운하겠어요. 나름대로 사회 분업의 일익을 담당하지 않나요? 마물로부터 인간을 보호해 주는걸요.”
“정말?”
“아- 니요. 다 놈팡이들이죠. 치안이나 불안하게 만들고. 민폐 그 자체인걸요. 하지만 웃기죠. 영주들은 모험가를 격려해요.”
“지방 영주들이 모험가를 격려한다고? 인증받지 않은 무장 집단 아닌가. 무척 경계할 것 같은데.”
“그러게 말이에요. 하지만 제국 황실도, 영주들도 모험가들을 격려하죠. 급수가 높으면 심지어 수당까지 준다니까요.”
“왜 그렇지?”
레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표현할 단어를 찾는 것 같았다.
“어, 그게. 적이 있으면 좋으니잠깐 침을 삼키던 그녀가 바닥에 앉아 말을 이었다.
“바깥에 괴물이 있다고 소리를 쳐야죠. 위협은 과장될수록 좋고 괴물은 무시무시할수록 좋아요. 그래야 안에서 피를 빨아먹기 좋거든요.”
“으음.
“그러니, 모험가들을 신경 써 줘야하지 않겠어요?”
레나가 내 팔을 툭툭 치며 웃었다.
“이런 괴물들과 맞서 싸우는 분들인데.”
나는 대꾸하지 않았다.
“저는 근처에서 정보를 더 모아 볼게요. 아이템도 좀 사구요. 주신 돈으로!”
레나가 씩 웃고는, 터벅터벅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갔다.
던전 안.
다시 하룻밤을 보냈다.
- 투둑! 투두둑!
네 구의 시체는 홀 안쪽 동공에 던져 버렸다.
석관에 기대앉았다.
별반 피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훈련되지 않은 인간 넷을 죽였다.
그들의 강함?
Lv.l 해골병사보다야 낫겠지.
하지만.
지금 내 실질 능력치는 Lv.66에 달한다.
죽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손으로 툭 털어 낼 먼지.
동굴 안에 처박힌 네 남자는 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런데 어떤 불편한 긴장이 마음을 간질였다.
죄책감.
그들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삶의 무게.
그것은 사라지지 않고 뼈 위에 얼룩처럼 자꾸 내려앉았고, 마음 밑바닥에는 축축한 물길이 들어왔다.
그 감정에 침몰하기는 쉬웠다. 가라앉아 있기는 쉬웠다.
하지만.
더 깊은 바닥에서 의문이 피어올랐- 달그락.
이상하다. 이런 감정은 역시 이상하고, 수상쩍다고 생각했다.
왜 나는 죄의식을 느끼는가?
왜 나만 죄의식을 느끼는가?
20년간 해골병사로 살아갈 때 나를 공격했던 모험가들.
그들이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한번도 보지 못했다.
어딜 감히 해골이 덤비냐고 멸시하며, 손에 쥔 무기를 힘껏 휘둘러 진압하기나 했지.
저들끼리 계급과 이념을 놓고 싸우다가도, 우리를 제압할 때면 언제나 단단히 함께 뭉쳐서 덤벼든다.
나는 인간들에게 경험 치였고 도구였다.
이제 내가 그들을 진압할 수 있는 입장. 그들 가운데 일부지만, 말이다. 나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란 법은 없다.
괜히 인간의 입장에서 인간의 행복을 생각하면서 죄책감을 느낄 필요는 없다.
그들도 해골의 입장과 해골의 행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으니까.
나는 어차피 인간이 아니다. 그들과 동족이 아니다. 레나가 하고 싶었던 말이 조금씩 이해되는 것 같았다.
다시 하룻밤이 지났다. 레나가 돌아왔다. 깨끗하게 씻은 상태였다. 젖은 몸을 모두 꼼꼼히 닦았는지 머리에도 옷에도 물기는 없었다.
“옷 괜찮나요?”
“적어도 깨끗하기는 하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그러지 말고 좀 자세히 봐주세요. 써먹을 만할까요? 그냥 제취 향으로 골랐거든요. 어때요. 인기가 많을까요?”
나는 뭐 어쩌라는 거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네가 유혹할 인간 수컷이 아닌데?”
“그래도 제삼자의 객관적인 시선이라는 게 있잖아요?”
레나가 내 앞에 서서 몸을 빙그르 돌며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비평을강권당한 나는 천천히 그녀를 바라봤다. 새로 사 입은 검은색 야회복 아래로 곧게 뻗은 날썬하고 하얀 다리가 드러났다. 가죽 벨트를 찬 허리는 잘록하게 들어가 있었다. 가슴은 별로 크지 않았지만, 부드럽게부풀어 있었다. 라인과 밸런스가 좋아 몸 전체가 탄탄한 모습이었다.
“혼자 걸어가고 있으면, 다들 쫓아올까요? 온다고 해 줘요. 아니면 다시 사러 가야 하니까.”
“그럴 것 같군.”
“헤헤. 그럼 이걸로 확정!”
그 순간이었다. 레나가 몸을 살짝 비틀며 팔을 뻗자,
- 투툭!
풍성한 야회복의 소매에서, 단검이확 하고 튀어나왔다.
“어때요? 쓸 만하죠?”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다.
유혹과,
살육의 나날이 계속되었다.
그녀는 내가 처리하기 적당한 만큼 서너 명씩 남자들을 유혹해서 데려왔고, 나는 계속 초대받은 모험가들의 목을 땄다.
죽음의 초대였다.
이 근처를 지나는 모험가들의 씨를 말리는 협업은 나쁘지 않았다. 나보다도 레나가 즐거워했다.
“즐거운가?”
“네!”
“어떻게 그렇게 사람들을 잘 데려오는 거지?”
“아직 그럴듯한 유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라구요.”
“응?”
“인간 말이에요. 노예나 시체로 전락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저 아직 제대로 된 유혹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레나가 입술을 달싹거리며, 눈웃음을 쳤다.
“물건이나 잘 팔아라.”
나는 모험가들의 짐을 그녀 쪽으로 밀어 놓았다. 유품을, 모험가들이 남긴 장비를 처분하는 것은 레나의 몫이었다. 하지만 왔다 갔다 하는 게조금 과하게 느껴졌다. 밤낮으로 두 번이나 던전과 도시를 오갈 때도 있었다.
“어딜 그렇게 오고 가는 거냐?”
“한 번에 많이 가져가는 건 별로라 서요. 의심을 사기도 쉽지 않겠어요?”
하지만, 자꾸 왔다 갔다 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면 내가 의심이 들었다. 도시에서 누구를 만나는 걸까?
뭘 하는 걸까?
단순히 물건을 처분하러 간다기엔왕복 횟수가 많다. 도시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었다.
아무래도 뭔가 숨기고 있는 것 같았다. 던전에 머무르는 시간은 점점적어졌고, 같이 있을 때에도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다.
어차피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처음에 떴던 시나리오 창.
거기서도, 그녀가 언제든 뒤통수를칠 수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럼에도.
써먹어 보기로 결정했다.
최악의 경우라도, 나는 죽으면 그만이니까.
- 띠링!
[Dungeon Message: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숫자 - 4명]
여느 때처럼 메시지가 떴다.
레나는 얼굴이 상기되어 있는 세 명의 남자를 데리고 던전 안으로 들어왔다.
그럭저럭 장비를 갖춘 모험가였지만 고급품은 아니다. 적당한 수준의사냥감으로 보였다.
나는 그들이 접근해 오기를 기다리며 동굴 벽에 적시되어 있는 문구를 가만히 바라봤다.
‘초보자 놀이터’라는 문구와, ‘두개골은 깨지 마시오.’라는 문구는 지워져 있다.
거기에는 새로 새긴 문구가 있다.
<주거침입죄: 사형>
레나가 새긴 문구였다.
- 서걱!
그리고 나는, 새로 들어온 녀석들에게 그 문구를 충실히 집행했다.
잘린 목에서 뜨거운 피가 뿜어졌다.
레나의 초대를 아무도 거절하지 않는 걸까? 모험가의 무리는 그야말로 끝이 없었다.
무방비하게 던전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녀석들이 정말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녀석들이 달그락거리는 다른 해골들과 마주치기도 전에, 나는 던전입구에서 남자들의 목을 쳐서 떨어트리고, 석궁을 쏘아 죽였다.
종종 약한 무리를 데려올 때는, 레나도 단검으로 남자들의 목을 그었다. 내가 셋을 죽이면 레나가 한 명을 죽이는 식이었다.
하지만 내가 전부 다 죽일 때가더 많았다.
레나는 자신에게도 조금 맡겨 달라며 가끔 투정을 부렸다.
나는 말없이 무시했다.
그녀에게 경험치를 넘겨주는 게 조금 꺼려졌기 때문이다.
어느 날 그녀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렇게 남자들을 잘 데려오지?”
그러자 레나가 말했다.
“그냥 모집하면 돼요. 쉬워요. 산길만 걸어가도 잘 모이는걸요? 인간은일 년 내내 발정기니까요. 저 같은 경우는 특정한 시기에 집중되어 있긴 하지만.
“그다지 알고 싶지 않군.”
“알고 싶지 않아도 좀 들어 줘요.
동료의 욕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그만.”
“도와줄 수 있다구요. 온몸이 다딱딱한 분이 왜 그러실까.”
인간에게 희롱당하는 건 매우 당황스러운 기분이었다.
우리는 시체를 계속 만들었다. 레나는 정말로 이들을 동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건지, 조금의 공감도하지 않는 건지, 죽이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과 교미를 꿈꿨을 인간 수컷들의 숨을 끊으면서,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인간을 죽이면서 괴로워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나와 레나의 레벨은 조금씩 올랐다. 하지만 효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해골이다.
레벨 업 때마다 내 능력치는 1씩올랐다. 반면에 레나는, 레벨 업 때마다 한 번에 스탯이 3씩 올랐다.
인간은 대체로 레벨 업을 하면 스탯이 2씩 오른다. 3이라면 흔히 말하는 영재인 것이다.
‘따라잡히겠군.’
죽이지 않으면 위험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은 차이가 많이 났고, 레벨 업이라는 게 사실 그렇게 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대로 일 년 정도가 지나면 이 근처를 지나는, 혹은 이 근처에 사는 남자 모험가의 씨가 마를 거라고 생각했다.
레나가 이야기했다.
“이건 인간에게도 좋은 작업이라구요. 성비라는 게 자연적으로 1.1 :
1 정도라고 하더라구요. 너- 무 발정한 인간 수컷들 으은. 이렇게 죽여주지 않으면 곤란한데요.”
그녀는 이어서, 사정射精의 욕망은죽음의 욕망과 닮았기 때문에, 자신이 옳은 일을 해 주고 있는 거라고 밝은 얼굴로 말했다.
나는 그녀의 논리를 품평하지 않았다. 레나가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헛소리를 늘어놓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 푸슛!
모험가의 심장을 뚫은 칼이 뽑힌다. 따뜻한 피가 세차게 뿜어지며내 하얀 뼈를 덥혔다.
[경험치가 118 올랐습니다!]
[던전 친화도가 0.14% 올랐습니다!]
이렇게 경험치만 오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