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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7화 (37/458)

37화 동굴에서 날개가 퇴화하는이유 (5)

20년 뒤 서큐버스님을 만난다면,

다시 지켜 줄 정도의 능력을 갖게 된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이 던전 안에서 죽으면, 저들처럼되나요?”

레나가 달그락거리는 다른 해골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몇몇은 그럴 거다. 정확히는 몰라.”

그때였다. 모험가가 침입했다는 경보가 다시 울렸다. 레나의 유혹 없이 들어온, 오래간만의 순수한 모험가였다. 우리는 하필 홀 안에 있었다. 몇 구의 해골이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입구 쪽을 향해 걸어갔다.

모험가를 조우했다.

놈은 혼자였다. 덩치가 무척 컸다.

이런 던전에 들어오기에는 그럭저럭 강해 보였다.

“호, 해골 주제에 꼴같잖은 갑주를 걸치고.

하지만 말을 섞을 가치가 있을 정도로 강하지는 않았다. 녀석이 도끼를 휘두르기도 전에, 몸을 회전시키며 바스타드 소드로 목을 날려 버렸다. 이런 수준의 놈들은 지겹게 죽여 왔다. 지겹고 충분하다.

- 데구르르!

잘린 목이 바닥을 구른다.

- 띠링!

[던전 친화도가 0.35% 올랐습니다!]

[14.57%/100%]

[경험치가 391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포인트를 분배해 주십시오: 1]

슬슬 레벨이 오를 때가 됐던 건가.

‘상태창.’

[이름: 없음]

[해골병사 Lv. 14(70)]

[체력-33 힘-40 민첩-39 지혜-11]

[잔여 포인트: 1]

체력에 1을 분배했다.

몸에 퍼져 가는 상쾌한 기분을 느끼고는, 모험가가 바닥에 떨어트린 도끼를 주웠다.

[전투용 도끼를 습득했습니다!]

‘흐음.’

제법 질이 좋았다. 도끼날을 엄지와 검지 끝으로 잡고, 스르록스르록곡선을 따라서 문질러 보았다. 날카로움이 느껴졌다.

이만하면 훌륭할 것 같았다. 날이 무척이나 잘 갈린 데다, 뒤쪽이 두툼해서 무게감도 좋았다.

대기만 하면 뭐든 쩍쩍 잘려 나갈 것 같은 도끼였다.

‘괜찮은데.’

그런데, 요즘 마음에 좀 걸리는 게있었다. 던전에서 지내며 살육을 계속할수록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머리가 멍한 느낌이 들며 기분이묘하게 편안해졌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사흘, 나흘이 흘렀다.

일주일이, 이주일이 지났다.

비슷한 일을 반복했다.

얼마 전부터 들던, 몸이 미묘하게 붕 뜨는 느낌이 더 강해졌다.

이건 뭘까, 고민하고 있을 때 레나가 나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좀 오래 나가 있을 거예요. 일주일 정도 있다가 올게요! 여기를 떠나기 전에 준비할 게 있어서요.”

“그러든지.”

- 달그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던전에 혼자 남았다.

며칠이 더 지났다. 침입자는 오지 않았다. 정신이 흐릿하고 몸이 편안해지는 느낌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강해졌다.

입구에서 머물러 있던 나는 홀린 듯 던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러고 싶었기 때문이다. 칼을 휘두르는 것도 도끼를 휘두르는 것도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안쪽으로 터덜터덜 걸어 들어가자 느릿하게 어슬렁거리는 해골들이 보였다.

그들 근처로 다가갔다.

느릿느릿하게 움직임을 맞춰 걸어 다녔다.

- 달그락. 달그락.

- 터벅. 터벅. 터벅.

박자를 맞춰 걷는다. 머리가 멍한 느낌이 들며 기분이 편안해졌다. 모든 걸 잊고 가만히 던전 내부를 배회하고 싶었다.

멍하니 달그락거리며 걸어 다니고,

벽에 기대거나 바닥에 누워서 이를 딱딱거리니 참 편했다.

- 띠링!

[던전 친화도가 20을 넘었습니다.]

[던전이 당신을 집어삼키려고 합니[주사위 굴림을 시작합니다!]

[지혜: 11]

[저항 굴림에 실패했습니다.]

[해골병사의 본성에 굴복합니다.]

‘이게. 뭐야?’

의식이 흐릿해진다. 어디선가 띠링,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이건. 던전 경보다.

[Dungeon message: 침입자가 들어왔습니다!]

[모험자가 침입했습니다.]

[숫자: 1]

한 명이다.

흐릿해지고, 멍해지는 기분을 조금씩 견디며 던전 입구로 걸어가 보았다.

레나였다. 그녀는, 등에 엄청나게 커다란 배낭을 메고 있었다. 무언가무거운 것이 잔뜩 들어간 둣 레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었다.

저 배낭은 뭘까,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물어볼 만큼 궁금하지는 않았다. 나는 천천히 턱을 움직여 물었“이번에는 혼자네?”

모험가들을 유인해 오지 않았다.

“네, 이제 슬슬 여기에서 벗어날 때가 온 것 같아요.”

레나가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 제법 들떠 있었는데,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내 눈치를 살폈다. 약간 서운한 표정.

관심을 바라는 표정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으음.

아쉬웠다. 여기에 더 남아 있고 싶었다.

“조금만 더 있어 보지.

내 태도에 레나의 표정이 변했다.

인간 남자를 수십 명씩 죽일 때도 찡그려지지 않던 표정이 조금 구겨졌다. 예상하지 못한 문제에 부딪힌 얼굴이었다.

“어, 어어.

그녀는 당황한 것 같았다.

“정말 안 가실 거예요? 위험한데.

인간들이 대규모로 들이닥칠 텐데요.”

나는 입을 열었다.

“응. 안 갈래.”

입에서 저절로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던전에 더 머무르고 싶었다. 마치 몸에 거미줄이라도 쳐진 것 같았다.

뼈마디 마디가, 이 던전에 머물러있기로 각각 결심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황한 레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에게 물었다.

“어느 정도 머무르실 건데요?”

“글쎄.”

“어. 같이 가고 싶은데. 정말, 하루만 더 기다릴게요.”

“으음.”

그녀는 던전 입구 근처에 쭈그리고 앉았다. 조금 지친 표정으로, 고단하고 불안한 모습으로 나를 바라봤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표정이 그다지 신경 쓰이지 않았다.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그냥이 안에 가만히 있고 싶은 마음이 훨씬 더 컸다. 다른 건 부차적인 문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나는 나를 기다려 줬다.

하루가 완전히 지났을 때였다. 나는 여전히 떠나지 않았다. 레나 역시 나를 떠나지 않았다.

‘왜 안 가지?’

궁금했다.

나는 서큐버스님을 만나기 전까지,

나를 기다리는 누군가를 접해 본 경험이 없다.

아무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나에게 시간을 쓰고 나를 가만히 보아 주지 않았다.

던전에 쳐들어와서 나를 짓밟고 부쉈던 모험가와 용사들은 물론이고,

강제로 나를 휘하로 편성한 10년 뒤의 마왕군 역시 어떤 방식으로도 나를 기다려 주지 않았다.

아무렇게나 최전선에 투입했다. 부서지면 버렸다. 강해지도록 시간을 주지 않았고 돌봐 주지 않았다.

누군가 나를 위해 자신의 시간을 공백으로 둔다는 것.

이건 신선하고, 말하자면 따분함과는 거리가 멀고, 부드럽고 따듯한 상황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계속 방치했다. 계속 기다리게 했다. 어쨌건 이 던전에 머물러 있을 생각이다.

하루가 다시 지났다. 레나가 나에게 물었다.

“정말 안 가실 거예요?”

“확인해 볼 게 있어서.

“뭘 확인해 보실 건데요?”

“으음.

잘 모르겠다. 나는 그냥 이 안에 머물러 있고 싶다. 이 안에서 꼭꼭 숨어서 달그락거리고 싶다.

레나는 하루를 더 기다렸다.

그녀는 처음에 거의 제 몸통만 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왔었는데, 사흘동안 던전 안팎을 오가면서 배낭의 크기는 하루하루 급격히 줄어들었다. 식량이라도 들어 있었나?

하지만.

역시 배낭에 대해 물어볼 만큼 궁금하지는 않다.

오늘도 한차례 밖에 갔다 온 뒤,

그녀가 나를 독촉한다.

“전 정말 가요. 우리 계획은 다 어떻게 된 거예요?”

얼른 가자고, 레나가 손을 내밀면서 불평을 했다. 그녀의 불평은 매우 온당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그 순간이었다.

- 띠링!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숫자: 40 이상]

굳이 경보가 없더라도, 수많은 침입자가 들어왔다는 건 바로 알 수 있었다.

던전 입구 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쿵쿵거리며 이곳으로 쳐들어오는 소리였다.

“아아.

레나는 탄식했다.

“결국 끝이네요. 하아.”

그녀가 한숨을 내뱉었다.

나는 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오는 것 같았다. 몽롱했던 정신이 약간은 깨어나는 것 같았다.

여전히 흐릿한 정신으로 생각해도이건 위험하다.

침입자 40명 이상. 들어오는 인간들을 전부 F급 모험가라고 가정해도, 저건 위험한 숫자다.

적들이 코앞까지 닥친 현실에 몽롱했던 정신이 조금씩 깨어났다. 아직도 시이는 약간 흐릿했다.

혼자 던전 안에 숨어서, 현기중 나는 세상 같은 건 바라보지 않고.

햇빛도 피하고 인간들의 칼날도 피해 숨어 살고 싶다는, 붕 뜨고 현실감 없는 감정.

그건 여전히 나를 뒤덮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발톱이 정작 던전 안으로 들어온 데에야, 눈을 뜨지 않을 도리가 없다.

결국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건 알고 있었다.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신호는 충분했다.

위기는 모두 기척을 낸다. 항상 몇 번이고 사전에 자신을 알린다.

그럼에도, 나는 그냥 눈을 꾹 감았다. 이 구멍 안에 처박혀 남아 있고 싶었던 것이다.

‘왜. 그랬지?’

뒤늦게 의문이 든다.

나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었던 걸까? 궁금했다. 이런 결말은 분명한데, 대체 왜 안에서 머리를 박고 있었던 것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 던전과 상관이 있는 걸까?’

정신이 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몸은 잘 움직이지 않았다.

던전 깊숙한 곳에서 나를 계속 끌어당기는 것 같았다.

밖으로. 벗어난다는 생각을 하기가 어려웠다. 두려웠다.

- 덜그럭! 덜그럭!

내가 가만히 있자 레나가 나를 잡고 흔들었다.

“이거 보세요! 뭐예요! 뭔가 진지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굴더니, 큰 꿈이 있는 것처럼 굴더니 왜여기에서 이러고 있는 거예요. 이젠끝이라구요. 아직도 정신이 안 드세요?”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 서큐버스님.

- 루비아.

- 복수. 엠버. 아쥬라의 탑.

그것들마저도.

머릿속에 기억으로는 뚜렷하게 있지만 감정에는 한 꺼풀이 덧씌워진둣 생생하게 와닿지 않았다.

나는 레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나와 대비되어, 그녀의 눈동자는 생생했다. 살아 있었다.

머리 어딘가에서, 핑 도는 어지러움이 느껴졌다.

- 달그락.

나는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벗어. 나야겠지?”

“그럴 수 있겠어요?”

“해 봐야지.”

“하아.

레나가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선두, 제1열.

방패를 든 자들이 있다. 방패에 걸맞게 짧은 한 손 무기를 들었다.

이 던전에 사는 해골들을 두드려 부수기 좋은 둔기들이다.

레나와, 레나가 죽인 은발 여자와 함께 왔던 쇠도리깨 남자.

철제 그레이터 쉴드를 들었던 그 남자가 떠올랐다.

그런 자들 십수 명이 열을 맞춰다가오고 있다.

서너 명이라면 몰라도 저런 숫자를 뚫을 자신은 없다.

어떻게 해 보기 어렵다.

- 쿵! 줌!

<주거침입죄: 사형>이라고 쓰인 낙서를 지나 침입자의 대열이 바닥을 찧으며 다가왔다.

- 달그락!

해골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멋모르고 인간 침입자들을 향해 걸어갔다. 나름대로 세차게 칼을 휘둘렀다.

-깡! 까앙!

먹혀 들어가는 건 한 합도 없다.

해골들의 공격은 밀집된 방패들에 민망할 정도로 쉽게 막혔다.

- 까앙!

둔탁한 쇳소리만 던전 안에 힘없이 메아리 쳤다.

멍청한 공격이다.

협공을 하고 싶어도, 던전의 해골들은 내 통솔을 따라 주지 않는다.

무턱대고 걸어가, 침입자에게 칼을 휘둘러 공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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