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39화 (39/458)

39화 동굴에서 날개가 퇴화하는이유 (7)

“마, 막아!”

가장 많이 흐트러진 1열이 나를 공격한다.

다리를 축으로 몸을 빠르게 회전시키며, 방패로 무기들을 세차게 후려쳐 냈다.

- 깡! 까강!

겨눠지던 무기들이 튕겨 나갔다.

힘과 힘의 대결이다.

다행이다.

여기 있는 인간들 가운데 나보다 강한 자들은 없는 듯하다. 비슷한 수준도 없다.

‘제법 쓸 만해진 건가.’

다시 한 번 발을 세차게 디디며 방패를 휘둘러 밀어붙였다.

- 까강!

앞쪽의 침입자들은 이미 연기에 중독 되었다. 무기를 떨어트리고 괴로워하는 자들이 많았다.

돌파는 어렵지 않았다.

“크, 크허억!”

“독연毒煙이다! 뒤로 빠져!”

- 털썩! 털썩!

힘에 밀린 남자들이 뒤로 자빠져간다. 하나씩 쫓아, 죽여 끝을 내는 건 당연히 무리다.

그러나.

이미 무너진 대열을 돌파하는 것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다.

- 싁!

- 쉬익!

제1열을 돌파했다.

앞쪽에서 두 자루의 창이 나를 찔러 왔다. 2열의 창잡이들이다.

하지만 던전 통로는 좁다. 숫자의 우위가 빛을 잃는 곳이다.

‘어떻게든 빠져나간다.’

전부 내 책임이니까.

집중해서 앞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검술 Lv.5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 서걱! 서걱!

좌우로 찔러 오던 두 자루의 창은 아예 창대가 잘려 나갔다.

- 툭! 툭!

잘라진 앞부분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진다.

“히 익!”

“푸하! 후아! 역시 이놈이었어!”

창날을 잃은 녀석들이 뒤로 황급히 물러간다. 뒤로 도망가서 거칠게 참았던 숨을 쉰다.

날 저지하려는 확고한 의지 같은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레나는 몸을 숙이고 내 뒤에 바짝 붙어 오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도망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연기는 금방 흩어질 거예요.”

레나가 내게 속삭였다. 한때 통로에 가득 퍼져 매캐했던 연기가 다른 곳으로 퍼지며 조금씩 걷혀 가는 게보였다.

- 팟!

서둘러 걸음을 내디뎠다. 지휘관 같은 녀석이 뭐라 뭐라 외쳤다. 그러나 놈들이 빠지는 속도보다 내가 접근하는 속도가 빨랐다.

가까이 붙었다.

창을 쥔 녀석들은 더 이상 거리의 우위를 차지하지 못했다.

왼팔에 든 방패로 레나를 보호하면서, 오른손에 든 바스타드 소드를 마구 겨누고 휘둘렀다.

- 깡!

- 서걱!

- 퍽!

대부분 철과 철, 혹은 철과 나무가 부딪치는 소리였다.

굳이 하나하나 죽이고 갈 여유도,

이유도 없었다.

가장 뒤쪽에 있던 활잡이들은 무슨 이유에선지 이미 바깥으로 나간 것 같았다. 아직도 콜록거리는 몇 명의침입자들을 걷어 내고 입구 쪽으로 나갔다.

‘.살아남은 건가?’

멍청한 선택을 해서 안쪽에 계속남아 있었다. 그러나 탈출에 성공했는지도 모른다.

왜 여기에 남아 있겠다고 생각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옆에 붙은 레나가 말했다.

“푸하.! 뭔가. 이상한데요? 죽자고 들어오던 거에 비해 너무 쉽게 길을 열어 줬잖아요.”

그렇기는 하다. 심지어, 마치 돌파되기를 원했다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당연히 우리를 못 막을 거라고 생각한 것처럼 말이에요. 여기서 죽었어도 이상하지 않은데.”

“바깥에서 활이라도 겨누고 있을 나는 방패를 앞에 세우고 던전 문을 열었다.

- 끼이이익.

던전 문이 열렸다. 바깥의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한 달 가까이 접하지 않았던, 청명한 하늘이 보였다. 적당히 건조한공기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하늘 아래,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서 있었다.

재질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갑옷이다.

푸른 갑옷에는 멋지게 용이 상감되어 있었다.

옷도 먼지 한 톨 묻지 않을 만큼 깨끗하게 관리된 상태.

얼굴은 20대 후반으로 생각될 만큼 젊었다. 누가 봐도 미남이라 고할 만한 깔끔하고 정중한 인상.

하지만 그 얼굴에서는 기묘한 악취가 나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구덩이에 가득 쌓인,

수많은 시체들에서 나는 악취 같은 것이었다.

남자의 깔끔한 표정 아래, 수백 수천 구의 시체가 감춰져 있는 것 같았다.

- 쓰윽.

남자는 버릇처럼 제 머리를 톡톡 쓰다듬었다. 잘 넘겨진 가느다란 머리칼은 회청색으로 시들어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이건 아닌데.”

남자가 인상을 찌푸렸다.

청명한 가을 하늘이.

적당히 건조한 맑은 공기가 동시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가 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쳤다.

남자가 불평했다.

“이 따위 걸로는. 두 마법사는커녕 근위대에도 못 닿을 건데. 완전히 시간만 낭비했잖아.”

푸른 갑옷을 걸친 남자가 옆을 돌아봤다.

‘옆?’

거기에는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쩔쩔매고 있었다.

비단옷을 입은 남자.

주변의 다른 기사들.

그리고 활을 내리고 얌전히 서 있는 궁수들이 보였다.

있는지도 몰랐던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아.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의 존재감이 너무 강했다. 모두 거기에 먹혀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였다.

내가 비단옷을 입은 남자도, 주변에 서 있는 다른 기사들도 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은.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가 비단옷을 입은 남자에게 말했다.

“너.”

“예, 마스터!”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움찔하며 몸을 곧추세웠다.

“제보가 과장됐잖아. 자살해라.”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몸을 덜덜 떨었다. 그가 몸을 떨 때마다 뱃살과 가슴살이 출렁거렸다.

그동안 쌓아 왔던 직감이 외쳤다.

어떤 본능 같은 것이 미친둣이 울부짖었다.

‘도망쳐라. 도망쳐라. 도망쳐라.’

하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앞에서 벌어지는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자, 자, 자.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손을 떨면서 품을 뒤졌다. 저거, 설마 진짜 자살하려는 건가?

“농담이야, 영주. 제보자를 자살시킬 수는 없지. 그런다고 다 죽이면 누가 제대로 된 제보를 하겠어? 안 그래?”

영주라고 불린 남자는 말도 못 하고 떨기만 했다.

그리곤 무언가 자기를 옭아매던 것이 한 번에 탁 풀린 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푸른 갑옷을 입은 남자가 내 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고요하다. 그는 나와 같은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고 있다.

그런데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정말 발소리가 나지 않는지, 내가 그걸 듣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잘 구분되지 않았다.

그 순간 세계에는 레나도, 다른 주위의 누구도 없고 오직 나와 그 남자만이 존재했다.

- 우우우.!

남자가 허리에 찬 검을 검집째로 천천히 휘둘렀다.

궤적이 보일 만큼 느렸다.

지루할 만큼 느렸다. 졸음이 느껴질 만큼 느렸다. 공간을 질질 끌어오는 것처럼 느렸다.

어디로도 피할 수가 없을 만큼,

느렸다.

[스킬 - 위압이 발동됩니다.]

[저항해 주사위를 굴립니다!]

[힘이 너무 낮습니다. 주사위를 던지려는 손목이 움직이지 않습니다.]

[지혜가 너무 낮습니다. 주사위를 굴리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지배당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무기도, 방패도 들 수가 없었다.

- 퍽!

머리에 강렬한 충격이 가해졌다.

[측정할 수 없는 검술 랭크로 공격이 가해졌습니다! 모든 저항력이 무시됩니다.]

[레벨 차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회피 확률이 원천적으로 사라집니다.]

머리가 반으로 쪼개진다.

푸른 기운을 띠는 새하얀 검집이 몸을, 죽은 루비아가 샀던 갑옷을 아예 반으로 갈라놓는다.

레나는, 저 여자는 어떻게 되는 거지.?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의식이 꺼져 버렸다.

- 덜컥!

날도 서지 않은 검집이, 천천히 두개골부터 가르고 지나가던 감각은 잔상처럼 남아 있었다.

- 철컥! 철커덕!

몸을 흔들었다. 하지만 불쾌한 감각은 잘 떨쳐지지 않았다. 확인을 위해 팔을 들었다.

- 툭툭!

두개골을 함부로 더듬었다. 평평하다. 구멍도 틈새도 없다. 단단하고 훌륭한 두개골이다.

아주 잘 붙어 있다.

‘꿈?’

두개골이 갈라진 건 꿈속에서 벌어진 일일까?

- 달그락!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꿈 따위가 아니다.

당연하다. 해골병사는 꿈 따위를 꿀 수가 없다. 미칠 수도 없다.

전부 실제로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분명히 죽었다.

주위는 아주 고요했다.

쌔액, 쌔액 하는 누군가의 숨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깊이 잠든 숨소리가 희미하게 울려왔다.

‘숨소리?’

어딘지 익숙한 소리였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돌아봤다. 모포 위에 잠든 여자가 있었다.

- 철컥!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 쳤다.

- 퉁!

그러다 벽에 부딪쳤다. 소리가 흘안에 퉁퉁거리며 울렸다.

“으으 으음.

여자가 잠꼬대를 하며 살짝 몸을 비틀었다. 아는 얼굴이다.

아는 정도가 아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같이 있었다. 함께, 던전을 탈출하려 했다.

‘레나.’

그녀였다.

- 띠링!

[계승되었습니다!]

[이름: 없음]

[이름: 없음]

[해골병사 Lv. 14(70)]

[체력-34 힘-40 민첩-39 지혜-11]

[자동 진행. 변착회귀突華回歸의어 스커리 네 (uskoreniye)를 사용 완료로 체크합니다.]

[동화율이 내려갑니다.]

[93.54%->92.49%]

눈앞에서 상태창이 떠오른다. 머리에 박히는 둣 또렷하다.

다만.

어떤 단어는 처음 나타날 때는 흐릿하게 표시되었다.

그러다 시간을 두고, 점차 명확한 글자가 되어 나타났다.

<변착회귀의 어스커리네>라는 단어가 그러했다.

머리가 아프다.

실제로, 지끈거렸다.

한동안 가만히 서서 움직일 수 없었다. 무언가 미세한 균열이 가는것 같은 느낌.

‘변착회귀의. 뭐라고?’

이런 걸 이해하려면 지혜를 올려야하나. 전혀 들어 본 적 없는 생소한 단어와 어감.

나중에 포인트가 남으면 한번 쭉올려 볼지도 모르지만.

사실 힘과 민첩, 체력에만 투자해도 항상 부족한 게 포인트.

지혜는 마법의 위력에 직결되고,

나는 마법과는 거리가 멀다.

- 달그락.

머리를 흔들었다. 일단 내가 알 수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자.

‘다시 살아났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무덤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주위는 고요하다.

미친 것처럼 쏟아 붓던 폭풍우도,

머리가 덜덜 울리게 만들 정도로 커다란 천둥소리도 없다.

회색 로브를 걸친 얼치기 사령술사도 없었다. 나를 부르던 애타는 외침이 없다. 내 움직임 하나하나에 깜짝 놀라던 그 여자가 없다.

‘루비아.’

그녀는, 이제 사라진 걸까?’

처음은 항상 밤의 묘지였다. 비, 그리고 그녀와 함께 시작했다. 크게 도움은 되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지켜 주려다 몇 번이나 죽었다.

행동 하나하나가 어설픈 데다 세상을 온통 책으로 배운 여자였다.

하지만 그렇게 죽어야 할 여자는 아니었다.

그 누구도 그런 식으로, 비참하게 난자당해 죽으면 안 된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런 도덕이나 이상 따위는 없다.

학대와 고문은 어디에나 넘친다.

약탈과 살해는 세계의 일상. 어차피모두가 시체를 먹고 산다.

다만.

그녀는 나를 무덤에서 일으켰다.

처음으로 반가워했다.

호감을 보였다. 별거 아닌 행동들에 놀라고 감격해 주었다.

이곳은 던전.

망령의 납골당.

레나를 거미줄에서 막 꺼내서, 모포 위에 눕혀 주던 때로 돌아왔다.

‘루비아의 죽음은 확정된 걸까?’

다시 그녀를 만났던 시점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걸까, 싶었다.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루비아는 비참한 꼴을 당했다.

그녀가, 그대로 과거에 묻혀 버렸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했다.

- 띠링! 띠링! 띠링!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머릿속에는 계속 경박한 소리가 울리고 있다.

눈앞의 허공은 계속 반투명한 푸른 창들이 메워 가는 중.

[사망기념관]

[계승된 이후 다섯 번째 죽음을 달성하셨습니다.]

[이번 죽음에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개념이 적용되었습니다. 관련된 특전을 얻을 수 없습니다.]

[다른 특전을 강화할 수 있습니다.

몇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1. 사령술사를 위하여플러스

2. 둔기는 위험해3. 두개골 보호법40화 동굴에서 날개가 퇴화하는이유 (8)

‘이해할 수 없는 개념?’

하긴.

그 공격 앞에서 나는 꼼짝도 할수 없었다.

느긋하게 한 발짝 내디딘 남자.

그가 뭉툭한 검집으로 갑옷째 내 몸을 천천히 가를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대체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어떻게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F급 던전, 망령의 납골당.

자기가 산 칼도 제대로 휘두를 줄 모르는 놈들이 잔뜩 오는 곳이다.

그런 녀석들만 상대하다 보니 제대로 대처를 못 한 걸까?

- 달그락.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푸른 갑옷의 남자는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20년 동안 달그락거리면서도,

그런 수준은 본 적이 없다.

어차피 내가 논평할 만한 수준은 아니겠지만.

그런 식으로 죽을 수 있다는 게아예 이해되지 않았다. 그가 검, 아니 검집을 휘두르던 모습을 다시 한번 천천히 되새겨 보았다.

하늘에서 막 엉기기 시작한 눈발처럼 새하얀 검집.

아무런 무늬도 새겨지지 않은 그검집은 지휘자의 연 주봉 같았다.

아주 느리고, 평온하며, 느긋한 템포를 표현하는.

그 속도로 휘둘러진 검집이 나를 반으로 갈라놓은 것이다.

아직도 혼란스럽다.

어쨌거나.

지금은 눈앞에 뜬 것에 집중해야한다. 특전 강화.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선택이라면. 1번이지.’

망설일 건 없다.

1번 특전에는 플러스가 붙어 있다.

한 번 강화되었다는 뜻.

무언가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미 강화된 걸 다시 선택하는 게효과적이라고 생각했다.

뭐든, 1차 강화보다 2차 강화가 어려울 테니까.

“1 번.”

[1 번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돌이킬 수 없습니다. 신중하게 고르세요.]

[확정/다시 선택]

“확정.”

[특전을 강화 중입니다.]

한참 동안 그 메시지가 떠 있다.

후회하고 있지는 않다. 다른 쪽이더 실용적일 가능성도 있다.

사령술사(네크로멘서)의 호감도를올리는 특전.

호감도라는 건 일방적이다. 타자의호감이 반드시 내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특전을 선택한다.

루비아를 다시 못 만난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그 여자를 다시 만났을 때.

나에게 좀 더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전을 강화했습니다!]

[동화율이 떨어집니다.]

[93.04%->92.49%]

공간 어딘가가 살며시 열렸다.

어둠이 스멀스멀 기어 와 발끝에 닿았다.

발가락에서부터 조금씩 위로.

나를 한 겹 한 겹 부드럽게 휘감기 시작했다. 가만히 서서 그 어둠에 몸을 맡겼다.

[특전을 자동으로 장착합니다.]

특전: 네크로멘서의 연인 (new!)

- 모든 사령술사(네크로멘서)와의관계에서 기본 호감도 20을 얻고 시작합니다.

- 사역 관계를 맺은 사령술사의호감도가 추가로 10 상승합니다.

- 당신의 존재는 사령술사의 영감을 자극합니다. 당신 근처에 있는사령술사의 네크로멘시 숙련도가5% 빠르게 상승합니다.

- 영웅급 특전입니다. 다른 영응급특전이 활성화될 때까지 강제로 이 특전이 선택됩니다.

‘으음.’

아예 다른 특전을 선택할 수도 없다라. 게다가 포인트 투자는 아예 날아가 버린 건가 싶었다.

‘호감도 집중 특전인가.’

어쨌건 내가 선택한 일이다. 회의는 갖더라도 불평은 할 수 없다.

- 터벅. 터벅.

나는 갑옷을 입은 채로 걸었다. 홀 안의 정적을 깨뜨리지는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걸었다. 그리곤 골몰히 생각에 잠겼다.

지금까지의 죽음들과 달리, 이번죽음에는 의문들이 많이 남는다.

첫 번째.

나는 왜 던전에 계속 남아 있으려고 했을까?

이 고민을 붙잡고 계속 걸었다.

언제부터 였을까.

던전 안에 박혀서 한 달쯤 지났을 때였나?

아마 그 즈음일 거다.

의식이 점점 흐릿해졌다. 제대로 판단을 할 수가 없었다. 생각과 생각을 이어 갈 수가 없었다.

던전 속에, 그늘 속에 꼭꼭 숨어있고만 싶다고 생각했다.

멍하니 달그락거리며 허공을 보고 있으면 그저 괜찮을 것 같았다.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왜 그랬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는 어렵다. 허공에 무슨 메시지가 뜬 것 같기는 했다. 의식이 이미 흐려져 있을 때라 잘 기억도 나지 않았다.

좀 더 생각해 보자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친화도 때문인가?’

5%, 10%를 넘긴 다음에는.

어디에 쓰이는 건지 도무지 알 수없었던 것.

던전 친화도.

확실히, 그게 올라가면서 점점 던전 안에만 있고 싶어졌던 것 같다.

다른 생각을 할 수 없게 되었지.

‘10%가 되기 전에 나가야겠군.’

기준을 10%로 잡는다면, 머물 수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저번 삶과 비슷한 식이라면. 아마도 열흘 정도이려나?

바빠질 것 같다. 나는 아직도 째근쌔근 잠든 레나를 바라봤다.

그녀에겐 미안한 점이 많았다.

처음에는 그녀를 의심했다.

일단 써먹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신뢰는 없었다.

그녀는 나와 자신이 동족이라고 말하며 적극적으로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그녀의 말을 홀려들었다.

놓아주자마자 뒤통수를 치더라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쯤은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그녀를 부려먹었다.

그런데 레나는 놀라울 정도로 나에게 충실했다. 남자들을 진지하게 유혹했다. 유품들을 성실하게 팔아먹었으며, 민첩하게 모험가들의 목을 따기도 했다.

나와 ‘그러기로 했다.’는 것만으로는 그녀의 적극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그 일은 레나의 적성과 취향에 딱알맞아 보였다.

‘참 잘해 줬어.’

게다가.

그녀는 던전에 틀어박힌 나를 위해서, 던전 주위에 깔 함정까지 잔뜩 준비해 줬다.

모든 걸 망친 건 결국 나였다.

- 달그락.

‘이번엔 잘해야지.’

결심하고 있는 순간.

허공에 글자가 깜빡인다.

‘이건가.,

다시 한 번,

반짝이는 ‘레나’라는 글자에 손을 가져다 댔다.

- 띠링!

[이름: 레나]

[도적 Lv.5]

[체력-13 힘-11 민첩-17 지혜-11]

[호감도: 11]

- 레나는 당신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기본 스킬]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특전]

-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칭호- 호감도를 올리면 개방됩니다.

같다. 역시 능력치가 뛰어나다. 이번에는 그녀를 제대로 키워 봐야겠다. 나는 차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마지막 순간까지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려 했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으으음"

레나가 얕은 신음을 뱉는다.

입을 살짝 벌려 하아, 하고 갇혔던 숨을 뱉어 낸다. 서서히 잠에서 깨어난다. 눈가에는 아직 피곤이 잔뜩 묻어 있다.

한쪽에 기대어 선 채로 그녀를 가만히 바라봤다. 세상모르고 자고 있던 그녀가 생각보다 금방 일어났다.

회귀回歸의 시간은 그녀가 슬슬 잠에서 펠 때쯤인 걸까?

아니면, 내가 생각에 잠겨 홀을 걸은 게 소란스러웠나.

“끄으웃.

레나가 굳은 몸을 이리저리 돌린다. 예전과 비슷한 표정.

“피곤하면 더 누워 있지 그래? 삼일 동안. 매달려 있었지 않아.”

솔직히 매달아 놓은 당사자가 할말은 아니었다.

“흐웃. 네.?”

작게 숨을 내쉬던 그녀가, 내 말에 황당한 표정을 짓는다. 그런 표정을 지을 것까지는 없지 않나.

“아니면 여관으로 가든지. 며칠 푹쉬는 것도 괜찮을 텐데.”

레나가 눈을 끔뻑거린다.

왜 저런 식으로 날 쳐다볼까.

- 짤그랑.

여행자들의 짐에서 모은 은화 몇 개를 그녀의 곁에 떨어뜨렸다.

“혼자 쓰기엔 충분하겠지.”

레나가 홈칫 몸을 움츠렸다.

“어. 저한테 갑자기 왜 그래요?”

“무슨 소리야?”

“왜 갑자기 친절해지셨어요? 그러면 무섭잖아요, 기사님.”

왜 친절해졌냐고?

할 말이 없었다.

딱히 한 것도 없는데. 대꾸할 말을 찾아 잠시 머뭇거렸다.

떠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입을 닫고 있다고 그럴듯한 말이 떠오르진 않을 듯하다.

되는 대로 뱉어 냈다.

“그래? 난 원래 친절한데.”

레나가 멍한 표정을 짓는다.

대답을 잘못 골랐던 걸까. 어색한 침묵을 깨기 위해 말을 이었다.

“어쨌건, 내 동료가 되기로 한 거아니었나? 편하게 지내라.”

조금 당황한 것 같던 그녀는 갑자기 표정이 변했다.

제 가슴팍 살짝 아래에 손을 대고마구 웃기 시작했다.

“아. 아하하. 아하하핫.

왜 웃지?

웃을 때 흔들리는 가슴을 살짝 받치는 걸까. 가슴팍 아래에 손을 대고, 몸을 들썩이며 웃는다.

‘버릇인가?’

저번에도 웃을 때 저런 모습이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하하핫. 뭐예요, 기사님. 진짜 재미있어.”

“뭐가 어쨌다는 거지?”

“한숨 자고 일어나니까, 갑자기 성격이 확 변해 버리셨네요?”

웃는 얼굴이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일까.

레나의 머리 위에 떠 있는 글자를 살짝 늦게 발견한 것은.

- 띠링!

[레나의 호감도가 6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17]

라는 메시지가, 반투명한 창 안에떠 있었다.

‘작은 차이로군.’

잡담을 나눈 게 긴장 완화에 도움이 된 걸까? 호감도가 올랐다. 저번보다 약간 더 오른 것 같다.

한참을 웃어 대던 그녀가 품 안에 손을 넣는다.

‘음.’

그 품에는 작은 단검. 맹독이 든 유리병. 폭탄에 불을 붙일 성냥갑이 있겠지.

하지만 그녀가 내게 건네려 꺼내는 것은,

어머니의 유품이라는 펜던트.

줄 달린 작은 장식을 내게 건넸다.

“이거, 받으세요. 드리려고 했는데웃다가 잊어버릴 뻔했네요.”

저번과 같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이번에는 눈꼬리와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다는 점정 도다.

“이거, 어머니의 펜던트예요.”

빛이 바랜 장식. 길게 늘어진 줄.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나에게 주는 신뢰의 증표인가?”

레나의 얼굴이 살짝 물들었다.

“어엇.! 깜짝 놀랐네.”

살며시 상기된 얼굴로 그녀가 말 을이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속으로 그 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신한테 들었지.’

한 달 전 그녀가 한 말이다. 혹은,

잠시 후 나에게 할 말이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대로 알려 줬다가는, 미쳤다는소리밖에 듣지 못하겠지.

“중요하지 않으니 넘어가지.

말을 얼버무렸다. 나는 레나의 안색을 슬쩍 살폈다.

처음에 그녀에게 펜던트를 받을 때에는, 어차피 그녀를 믿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심장이 담긴 병을 놓고 가도 신뢰하지 않는다. 그 심정에 가까웠다.

지금은 그녀를 경험했다.

믿고 있다. 이제는 낙엽 한 장 주워 주지 않아도 신뢰할 수 있었다.

어느 쪽이든, 펜던트 같은 게 의미가 없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제, 그녀의 이야기는 나에게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나는 적당히 말을 이어 갔다.

“감정이나 약속들. 그런 건 물건에 담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너한테 의미 있는 게, 펜던트 자체는 아닐 테니까.”

처음 그녀에게 펜던트를 받을 때와 논조는 비슷하다.

하지만 그 태도는 전혀 달라져 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레나가 건네준 펜던트.

줄이 달린 그 장식을, 다시 그녀의 하얀 손에 살며시 쥐여 주었다.

“어어.

레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건 그대로 네가 갖고 있어라.

어머니의 펜던트라고 했나?”

“네, 맞아요.”

“그럼 네 어머니 얘기를 들려줘.

그편이 더 신뢰가 갈 것 같은데.”

레나가 동그랗게 뜬 눈을 깜빡였다. 그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조금 복잡한 표정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하루에 세 명씩꼭 사람을 잡아먹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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