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화 부역자와 불타는 자 (1)
“뭐라고?”
그 자리에, 덜컥 걸음을 멈췄다.
- 딱!
놀라서 이를 부딪쳤다.
홈칫 굳는 반응을 본 레나는 웃기 시작했다. 가슴 아래에 손을 댄 채.
웃을 때의 버릇이 맞는 것 같다.
내게는 어떤 버릇이 있는지 생각했다. 반복된 행위를 버릇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패배하거나 부서지는 것을 내 버릇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 달그락.
나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계속 웃는다.
어딘가 허물어진 웃음소리가 동굴 벽을 투두둑 때리며 메아리친다.
“아하하핫. 별거 아닌 말에도 금방 놀라시네요. 장난이에요.”
“장난?”
그녀가 웃음기 띤 얼굴로 고개를끄덕였다.
“네. 농담이라구요.”
그녀가 샐쭉 입을 내민다.
“저만 잔뜩 놀라고 있어서 억울했거든요?”
레나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가에 남아 있던 잠은 어느새 싹 벗겨져 있었다.
“갑자기 적응이 안 됐단 말이에요.
자고 일어나니까 놀래는 말만 하셨잖아요. 우연인지, 아니면 관찰력이 뛰어나신 건지.”
“관찰력?”
“네. 정확히 딱딱 짚어 들어오셨잖아요? 제가 약한 곳들을. 아무튼 고마워요. 뾰족뾰족한 분이라고 생각했는데.”
“뾰족하다고?”
나는 손을 들어 바라봤다. 확실히 살은 덮여 있지 않다.
“하핫. 몸으로 웃기는 거예요? 경계심이 많아 보였다구요. 뭐, 이런세상에서 해골로 살다 보면 그게 당연하지만.”
레나는 중간에도 몇 번씩 쿡쿡 웃으며 말했다.
“어머니 얘기, 진짜 궁금해요?”
- 달그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를 더알고 싶었다.
“거리의 여자였어요. 남자들을 만족시켜 주는 일을 했죠. 그나마 비싸게도 못 받았어요. 들러붙는 놈팡이들만 잔뜩 이었지.”
레나는 그 뒤를 이어 간단히 모친의 삶을 구술했다. 중립적이고 담담한 어조였다.
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이야기는 금방 끝났다.
“결국 성병과 우울중에 쪼개져서죽었어요. 정작 자기 손에는 몇 푼 쥐지도 못하고.”
레나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관성이 붙는 것 같았어요. 모멸감이라는 건, 그렇잖아요?”
무슨 말인지, 그녀가 왜 저런 표정을 짓는 건지 머리로는 잘 이해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는 짧게 끼어들었다.
“삶에 적응하지 못한 건가?”
네 어머니는, 이라는 말이 앞에 생략되어 있는 물음이다.
“마비되지 못한 거죠, 뭐.”
레나는 손끝으로 펜던트 가장자리를 문지르듯 몇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제 품에 집어넣었다.
- 달그락.
나는 조용히 레나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빤히 그녀를 바라봤다.
다시 한 번 눈이 마주쳤다.
심장이 있었다면 박동이 조금은 빨라졌을지 모른다. 더욱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 뜻뚜루?月처음 듣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 반투명한 푸른색 상태창이 떴다.
[레나의 호감도 상한선이 한 단계 올라갔습니다!]
[현재 상한: 20]
[변경 후 상한: 40]
[현재 호감도: 17]
‘뭐라고?’
잠시 감상에 빠져 있는데, 기괴한효과음이 내 감상을 산산이 조각냈다.
‘호감도 상한이라니.’
그런 게 있다는 말인가?
루비아의 호감도가 20에서 올라가지 않던 것이 생각났다.
‘상한선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이긴 하다. 나는 레나를 바라봤다.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그녀에게 어떤 처우를 할 것인지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
예전과 같다.
다시 놓아준다.
달아나도 좋다. 배신해도 좋다. 원하는 대로 하게 놓아둔다.
저번 생에서 그녀를 무척 곤란하게 했다. 그러니 이번에는, 그 빚을 갚는 기분으로 살아가 준다.
‘으음.’
순간, 나는 스스로의 생각에 위화감을 느꼈다.
‘이번 생이라니.’
죽은 뒤, 다시 돌아가 반복하는 삶을 완전히 전제하고 있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위험하다.
‘이미 달라졌어.’
다섯 번을 죽었다. 그러자 다시 살아나는 시점이 달라졌다.
이 세계엔 루비아가 없다. 이미 비참하게 죽었다.
루비아의 죽음은,
<확정된 과거>
돌이킬 기회는 없다.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 회귀回歸가, 무조건 보장되는 어떤 단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불안했다.
‘정말 돌아갈 수 없을까?’
강해진 다음 다시 만나서, 제대로지켜 주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혼자 두기는 아무래도 불안했던,
옆에서 어떻게든 해 주지 않으면 안되는 여자였는데.
아직도 그 모습이 생생하게 기억나는 갈색 머리칼의 사령술사는, 난도질당한 시체로 과거로 묻혀 버린 것이다.
- 달그락.
마음이 무거웠다.
다음 회귀는, 눈앞에 있는 레나의 죽음마저 확정된 시점일지 모른다.
갈비뼈 안쪽의 공기가 싸늘하게 가라앉는 것 같았다.
긴장감에 온몸이 조여 왔다.
- 툭툭.
긴장에서 벗어나기 위해 칼자루를 손끝으로 몇 번 두드렸다. 작은 소리가 홀 안에 울린다.
레나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다.
침묵하는 그녀에게 말했다.
“이야기. 고맙다.”
“고맙긴요. 저도 갑자기 하고 싶어져서 한 건데요, 뭘.”
“도시에서 쉬고 와.”
“네.?”
“열흘만 넘기지 말고.”
열흘을 넘기면 곤란하다. 던전이내 정신을 먹어 버릴지도 모르니까.
레나는 내 말에 당황했다.
“놓아주셔도 되는 건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으으.”
레나는 작은 침음을 내며 눈을 깜빡거렸다.
“싫어?”
레나가 후우, 하고 한 번 숨을 몰아쉰다.
“아니요. 알겠어요.”
저번과 조금 다른 식으로 대화가 흘러간다. 내가 놓아주는 걸 좀 더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저건 네가 팔아 둬. 내가 장사를할 수는 없잖아?”
“하핫. 그래야죠.”
레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짐을 정리한다. 역시 능숙한 태도다. 적당히 짐을 챙긴 레나는 던전 입구를 향해터벅터벅 걸어갔다.
나는 그녀에게 들리도록 혼잣말을 했다.
“누군가 강에서 몸을 씻고 싶다면,
몸에 무기를 지니고 들어가는 편이 좋겠지.”
레나는 내 쪽을 한 번 보더니 피식 웃고 던전을 떠났다.
- 달그락!
중요한 것 하나를 잊고 있었다.
석벽을 열고 닫는 법. 기관 장치작동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열어 놓고 있어야겠군, ’
하룻밤이 지났다.
기다림은 불안하지 않았다. 루비아를 기다릴 때와 다르다.
레나는 자기 몸 정도는 어떻게든 지킬 여자다.
타자의 목에 단검을 쑤셔 주거나,귀에 독액을 부어 넣는 일이 그녀에겐 자연스럽다.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걱정할 필요는 없다.
특히 남자라면 훨씬 더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여자다.
나는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틀째 되는 날, 던전 안에만 있기에는 조금 답답해 밖으로 나갔다.
밤이었다. 바위에 걸터앉아 달을 바라봤다.
안으로는 새어 들지 않는 달빛을 몸으로 맞이했다.
그듬이 었다.
서른 날에 가까운 그듬은 가을의산을 비추고, 음침한 납골당의 닫힌 문은 스산히 그을렸다.
가을밤에 우는 풀벌레 소리는 다정했다. 취한 것처럼 칼을 허공에 들어 보았다. 달빛 대신 별빛이 내려앉아 나를 흘끗거렸다.
- 달그락!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책이 쏟아졌던 수레.’
책장수가 산적에게 습격이라도 당한 것처럼, 수레에서 쏟아진 책들이 널브러져 있는 장소가 있었다.
레나를 매달아 놓고 산책을 하다 발견했었다.
이곳에서 멀지 않다. 멀더라도, 일단 그곳에 가 보아야 하는 이유가거기서 발견한 책 중에는, 그저 읽기만 해도 지혜 수치가 오르는 책들이 있었다.
‘캐빈 애슈턴이었나.’
그 저자가 쓴 책 두 권.
반드시 입수해야 한다.
- 팟!
나는 땅을 박찼다.
수레가 엎어진 장소까지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엎어진 수레밖에 없었다.
책은 없었다. 주위를 몇 번 돌아봐도 마찬가지였다.
아무것도 없었다.
달그락거리며 주위를 몇 번 빙빙 돌다가 깨달았다.
‘시점을 착각했다.’
이미, 책들은 납골당에 있다.
내가 던전 한구석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이 시점에서 살아난 것이 처음이라, 혼동이 온 것이다.
땅을 박찼다. 망령의 납골당 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아직 해골들은 회복되지 않은 상태였고, 던전은 아주 조용했다. 독서에 좋은 환경이다. 구석에 놓아둔 책들을 금방 발견했다.
<세계의 비공식적인 무력 집단에 대하여 - 1>
‘캐빈 애슈턴.’
저자를 확인하고 진지한 태도로 책을 펼쳤다. 이미 다 읽은 책이었지만 지혜 플러스1을 얻기 위해서 못 할건 없다.
<.수백 개가 넘는 버전으로 불리는 이 시들은, 암살 집단 레드 플레이크가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기 위해 제작해 퍼트렸다고.>
마지막 페이지를 읽었다. 역시 정보라고 할 만한 것은 전혀 없었다.
- 툭.
긴장된 마음으로 책을 덮었다.
그 순간.
- 띠링!
[지혜가 1 올랐습니다!]
‘됐다!’
- 달그락!
지혜 1이 올라갔다. 사실 별거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뭔가 발견했다는 생각에 춤이라도 추고 싶은 기분이었다.
읽은 책을 다시 읽었는데 지혜가 오른 것이다.
‘상태창.’
일단 상태창을 호출했다. 확인부터 하고 싶었다.
- 띠링!
[이름: ]
[해골병사 Lv. 14(70)]
[체력-34 힘-40 민첩-39 지혜-1 幻[스킬]
- 검술 Lv.5푸른 창이 내 능력치를 보여 줬다.
분명했다. 11이었던 지혜 스탯이 12가 되어 있었다.
지혜는 따로 올리지 않았다. 쓸모가 체감되지 않는 스탯이라 버려두었다. 민첩이나 힘만 올렸다.
하지만 어떤 능력치든지, 오르는 게 싫을 리는 없다.
‘다른 걸 읽어 보자.’
캐빈 애슈턴이 쓴 책을.
이번에는<추악한 마법사>를 꺼내들고 다시 읽었다.
아쥬라의 마법사들에 대한 조소와경멸이 잔뜩 담긴 책이다. 아까보다도 진지한 태도로 읽었다.
<.아케인 하트를 갖고 태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노력과 수련도 무의미하다. 귀족과 마법사 모두 단순한우연의 산물. 룰렛을 돌려 운 좋게 얻어걸린 것에 불과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나는 어차피 마법을 쓰지 못하는 존재.
지혜가 올라도 역시 쓸모는 없는 건가 싶었다.
- 툭.
책을 덮는 순간.
역시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혜가 1 올랐다.
‘이제 13인가?’
어쨌거나 능력치가 오른다는 건 좋은 일이다. 나는 괜히 들떠서 철컥철컥 던전을 걸어 다녔다.
몇 시간이 더 흘렀다.
아침이 되었을 시간이다.
햇빛은 들어오지 않지만 짐작은 가능하다.
- 띠링!
[던전에 침입자가 발생했습니다!]
[숫자 - 1명]
한 명이다.
던전 입구로 걸어가 보았다.
‘레나로군.’
“어, 오셨네요!”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발견했다.
던전으로 들어오는 그녀의 얼굴은꽤 밝아 보였다.
도시에서 이것저것 장만해 온 것같았다. 들고 온 가방을 한쪽에 놓아두고 그녀가 말했다.
“저, 옷은 어때요?”
처음에는 품평을 거절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튕기지 않고 봐주기로 했다.
‘다른 옷이군.’
입고 있는 옷이 다르다. 전에 사왔던 검은색 야회복은 아니다.
하긴, 이번에는 모험가들을 끌어들이자는 계획 따위를 세우지 않았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소매가 풍성했던 야회복과는 달리,이번에 산 가죽 재킷과 바지는 제법음직이기 편해 보였다.
“어때요?”
“실용적으로 보이는군.”
“끝인가요?”
“좋아 보여. 주머니가 많아서 기능적일 것 같은데?”
레나가 입을 샐쭉하게 내밀었다.
“늘씬한 라인이 훌륭하다든가, 뭐이런 감상은 없는 건가요.
“아니에요. 다음은.
레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리고 옆에 놓아둔 커다란 가방에서 둘둘 만 무언가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