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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2화 (42/458)

43화 부역자와 불타는 자 (3)

모든 것들이 사라진 느낌이었다.

그 와중에도 레나는 낡은 상자와 나무 그릇들 위에서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전부 챙기고 있었다.

“부지런하군.”

“손만 뻗으면 주울 수 있는데, 내버려 두면 너무 아깝잖아요?”

- 짤그랑.

레나가 내게 주머니를 건넸다. 던전에서 주운 돈 가운데는 동화가 많았지만, 은화도 꽤 있었다. 살짝 녹슬었지만, 가치는 그대로인 둣,

[41 로티 74위젯을 습득했습니다!]

돈을 받을 때 허공에 창이 떴다.

‘제법 되는군.’

내가 입고 있는 갑옷을 하나 살 수 있을 만한 돈이다.

레나에게 주머니를 돌려줬다.

그녀가 열심히 돈을 모으는 사이에, 통로에 늘어뜨려진 쇠사슬을 칼로 툭툭 건드려 보았다.

- 철컹! 철컹!

쇠사슬 소리가 던전을 울렸다. 역시 아무런 반응이 없다.

침입자를 알리기 위한 쇠사슬들이 야단스레 쩔렁거려도, 던전 안에선 무엇 하나 나타나지 않았다.

- 광! 광!

방패로 벽을 강하게 쳐 보았다. 저 안쪽까지 메아리가 울렸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에서는 끽소리도 없다.

몇 걸음을 더 걸어가 다시 난동을 피웠다. 헛수고였다. 허탈했다.

“잠시 만요.”

레나는 지도를 다시 확인했다.

우리는 돔형으로 된 공터의 가운데에 섰다.

납골당의 홀보다 다섯 배는 넓었다. 세 배는 높은 천장을 거대한 석조 기둥들이 받치고 있다.

“위를 보세요. 다 비어 있네.”

레나가 손으로 위를 가리켰다.

“으음.

텅 빈 새장 수십 개가 매달려 있다. 검게 녹슨 철제 새장. 인간 하나가 몸을 웅크리면 꽉 찰 듯하다.

자세히 들여다봤다.

높이별로 족쇄 세 개가 장착되어있었다. 위에 하나, 가운데 둘, 아래쪽에 둘이었다.

“여기에요.”

레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원래는 수십의 해골과 스펙터가비명을 지르며 달려드는 장소인데.

- 쿵!

나는 바닥을 방패로 쳐 보았다.

“.조심할 것도 없겠네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여기가 끝인가?”

레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심층부까지 온 거예요. 열흘 만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열흘 만?”

“이 던전 정보가 그때 갱신된 거란 말이에요. 일부러 최신 정보로 구했는데.”

“모험가들이 들어온 게 아닐까?”

레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시잖아요? 이건 토벌 같은 게아니에요. 마치.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안에 있던 거주자들이, 전부 다어딘가로 이사라도 간 것 같아요.

이렇게 깔끔하게 사라지기도 쉽게 않겠는데요.”

이사라.

실은 그보다 가까워 보이는 말이 있다. 적출이다.

E급 던전, <메마른 지하 묘지>의해 골들은 모조리 적출되어 있었다.

던전의 핵으로 보이는 것도, 해골도“무슨 일인지 상상이 안 돼요. 조금만 더 일찍 왔다면 알았을까요?”

“거기 휘말렸을지도 모르지. 일단 올라가자.”

레나와 함께 던전 밖으로 천천히 걸어 나갔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조금씩 탄식을 터트렸다.

“여유롭게 보니까 참 넓긴 하다.

텅 빈 던전도 괜찮네. 타일도 다 깔려 있구요.”

거주자가 없는 던전은 하나의 멋들어진 건축물 같았다.

“여기서 살아도 되겠어요. 넓고 좋네. 우리가 가지면 안 되나?”

나는 달그락거리며 웃었다.

해골들로 가득 찼을 던전이 텅 비어 버렸다. 이제 여기는 산적의 소굴 같은 게 될 확률이 높다.

전략적 가치가 있다면 정규군이 관리하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무법자들의 위험한 은신처가 될 거다.

“다른 던전으로 가야겠군.”

레나가 잠깐 고민하더니 말했다.

“다음은 바로 D급 던전인데. 조금 부담스럽지 않으시겠어요?”

“무슨 던전이지?”

“중형 거미들이 나오는 던전이에요. 뒤틀린 볼트라는 이름을 갖고 있지요.”

중형이라면 어느 정도일까, 라고 생각했을 때 그녀가 말을 이었다.

“키 1미터 정도의 거미들이에요.

독액을 내뿜고, 화염에 약하죠.”

- 툭툭.

레나가 배낭을 들어 보였다.

“여기 빈 병을 잔뜩 담아 가야 할거예요. 던전 앞에서 화염병을 제조해야겠죠.”

“거기, 이미 이것저것 들어 있는것 ^은데?”

“그렇긴 하지만, 기름통이나 빈 병을 잔뜩 넣고 다니진 않아요.”

“그러지.”

도시에 들르는 일이 귀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레나의 말을 듣는 편이 좋을 것 같다.

“가는 길에 인간들을 좀 사냥하실 생각인가요?”

“글쎄.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 근처에서 날뛰고 싶지 않았다.

‘푸른 갑옷을 입은 인간.’

그 남자가 떠올랐다. 사실 그가 나타나는 건 어차피 한 달 후다. 지금은 어디 있을지 전혀 모른다.

하지만 이건 기분상의 문제였다.

하얀 검집이 천천히 내려오며 갑옷 째로 나를 분리하는 감각은 지금 생각해도 서늘했다.

“조용히 가자.”

“인간이 없는 길로요? 그러면 이쪽이에요.”

레나가 등고선이 겹겹이 쳐진 부분을 가리켰다. 그 지점을 보자 퍼뜩 떠오르는 게 있었다.

‘처음에 갔던 길이잖아?’

루비아와 첫날밤을 처음으로 살아남았을 때, 그라스미어로 가기 위해 택했던 고산 루트다.

그리고 우리는 트롤을 만났다.

설원 트롤은 사냥꾼 다섯을 순식간에 물어 죽인 뒤, 근처에 있던 내두개골을 손으로 쪼개 버렸다.

- 달그락!

한차례 머리를 혼든 뒤 레나를 보고 물었다.

“혹시 여기 트롤이 출현한다는 이야기는 없었나?”

“거기까진 못 알아봤어요. 트롤은 워낙 활동 범위가 넓어서,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알기가 어렵죠.”

“그냥 인간이 있는 쪽으로 가지.”

“그러면 이 도시를 거치는 게 좋을 거예요.”

레나가 한 지점을 가리켰다.

- 딱딱.

무심코 이를 부딪쳤다. 레나가 나를 흘끗 쳐다보고 말했다.

“유블람이라는 도시예요.”

계절이 달라졌다. 함께 걷는 여자도 달라졌다.

뽀드득 눈 소리 대신, 발에 밟히는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냈다.

레나가 앞장섰다. 곧, 단풍 사이로익숙한 회색 성벽이 보였다.

“다 왔네요.”

유블람이다. 저 도시에서 루비아는걸어 나오지 못했다. 수레에 실려쓰레기처럼 버려졌다.

- 달그락.

“왜 그러세요?”

레나가 뒤를 돌아본다. 미간이 살짝 좁아져 있다.

티를 안 내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여기까지 오는 이틀 내내 나를 신경 썼다.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으신 거 같은데, 얘기 안 해 주시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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