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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4화 (44/458)

45화 부역자와 불타는 자 (5)

미행은 계속되었다. 거리는 일정하게 유지됐다. 계속 한 명이었다.

‘이상하군.’

으슥하고 좁은 골목을 계속 돌아다니고 있다. 덮칠 만한 상황인데도,공격이 들어오지 않는다.

따라붙는 자들의 숫자도 더 늘어나지 않았다.

물론, 감각에 잡히지 않는 자들이더 따라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느껴지는 기척은 그저 평범한 한 명의 인간.

생각해 보면.

나에게 느껴질 정도다. 정말 평범한 인간일 확률이 높다.

미행을 파악하는 법 따위는 모른다. 감이 좋다고도 할 수 없다.

검술 레벨이 오르면서 주위에 대한감각이 조금씩 넓어졌을 뿐.

- 저벅저벅.

얼마나 걸었을까. 따라오던 인간이 거리를 좁히기 시작했다. 나는 벨 준비를 했다.

- 철컥.

칼자루를 잡고, 왼발을 축으로 몸을 숙이며 뒤로 돌아섰다.

하지만 눈앞에 나타난 것은,

하얀 수염의 노인이었다.

‘저 노인은?’

“어라, 저 할아버지였나요, 줄곧 우리를 쫓아오던 게? 힘도 좋네요.”

대장간 앞에서 봤던 노인이었다.

우리를 한차례 유심히 훌어봤던 노인이다.

하얀 수염을 손으로 쓰다듬은 뒤,다시 골목으로 들어갔던.

마약 중독자인지 아닌지, 레나와처음 이야기를 나눴던 노인이었다.

나는 주위를 경계하며 칼자루에 손을 올렸다. 미행하던 자가 모습을드러냈다면, 갑자기 주위에서 공격이 가해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저 노인이 몇 걸음 앞으로 다가올 뿐이었다.

“자네들.

“말해라.”

“따라오게.”

“따라오라고?”

나는 당장에라도 칼을 뽑을 준비를 하고 있다. 저런 모습이라도 인간의전투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래. 여기서 시간을 끌면 위험하네.”

“이 골목 말인가?”

“아니, 이 도시.”

노인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것 같았다. 몸은 뼈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는 눈빛은 제법 또렷했다.

‘뭔가. 이상한데.’

직감이, 이 노인을 따라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레나를 돌아봤다.

그녀도 나와 비슷한 느낌을 받는지고개를 끄덕였다.

“가 보죠, 뭐. 이 할아버지는 중독자가 아니네? 그것만으로도 따라갈 가치는 있을 거 같아요.”

“.그렇지. 금방 알아봤군.”

노인은 우리를 인도했다. 골목을제 손바닥 보듯 잘 아는 것 같았다.

금세 작은 집에 도착한 노인은 주머니에서 키를 꺼냈다.

“들어오게.”

- 끼이익.

문이 열렸다. 쇠 냄새가 흑 끼쳐왔다. 안에는 각종 무기가 전시되어있었다. 무기를 모르는 내 눈에도 그럴듯해 보이는 명품이었다.

“차는 권하지 않겠네.”

노인이 말을 이었다.

그는 여기까지 들어오며 몇 번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의자도 권하지 않겠어. 빨리 이도시를 떠나게.”

“그게 무슨 말이죠, 할아버지?”

레나가 턱을 괴고 물었다. 하지만 노인은 레나를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나를 향하고 있었다.

‘왜 나를 저렇게 보는 거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침묵했고, 레나가 말했다.

“이왕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쫓아오고, 부른 거 아닌가요? 좀 자세히 말해 주세요.”

노인은 줄곧 나만 바라봤다.

“경비병들이 다시 되돌아오기 전에 도시를 떠나게.”

- 철컥.

나는 건틀렛을 낀 손으로 깍지를끼었다. 경비병들에 대한 이야기다.

내가 물어야 한다.

“되돌아오다니?”

“말 그대로일세. 지금은 없지만, 오늘 중으로 되돌아올 거야.”

“아까 성문에는 경비들이 그대로 있던데요?”

- 툭.

나는 레나를 제지했다.

“조금<다른>녀석들에 대한 이야기인가? 경비 복장을 하고 있지만,

흉악한 범죄자인 녀석들.

노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맞네! 뭔가 알고 온 건가?”

“계속 이야기해 줘.”

“그들은, 이 도시에서 반항하는 자들을 모두 사형시키러 갔다네.”

“사형이요?”

레나의 반문. 나는 가만히 있었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6번의 죽음을 거듭했다.

그중에서, 나는 처음으로 ‘운이 좋은’ 상황을 마주하고 있었다.

갑자기 골목에서 누군가 나타나,

내게 마구 정보를 쏟아 낸다.

지금까지 대로라면.

이런 정보는, 같은 장소에서 최소한 서너 번은 죽은 뒤에야 얻어 낼수 있는 것.

죽고, 다시 죽어서 상황을 거듭 파악한다. 정보를 줄 만한 자들을 알아내어, 그들의 약점을 잡거나 호감을 사는 과정이 필요할 거다.

황당할 정도로.

‘???운이 좋다?’

생각해 보면.

그건 적절한 표현은 아니었다. 그렇다기보다, 무언가 부자연스럽다.

“당신은. 대체 왜 그걸 나에게 말하고 있지?”

나는 집 안을 훌어보며 물었다. 정갈하게 정리된 집이었다.

이상할 정도로, 진열된 무기가 많다는 걸 제외한다면.

“그 갑옷.”

노인이 내 갑옷을 가리켰다. 똑바로 뻗었음에도 손가락 끝은 떨리지 않고 있었다.

근력이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이다.

“그 갑옷, 내가 만든 거네. 도로에 있던 대장간도 내 가게야.”

a.r“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일세.”

노인이 작게 숨을 골랐다.

“그거, 내가 마지막으로 만든 갑옷이라네.”

어지러웠다. 이건 여관 주인의 집에서 빼앗은 갑옷이다. 루비아가 샀을 갑옷이다.

“이 갑옷을 당신이 만들었다고?”

“그래. 마지막으로 만든 세트라네.

자네, 계속 그걸 걸치고 있더군.”

그야 당연하다. 벗는 순간 인간들이 모두 나를 공격할 것이다. 나는고 개를 끄덕였다.

“그랬지.”

“갑옷이 어지간히 마음에 들었던게야, 하하하.

웃음이 어딘가 허탈하다. 굳이 오해를 해소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노인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네. 그리고. 그 갑옷을 산 여자가 생각나더군.”

거기서 말이 끊겼다. 루비아를 말하는 게 분명했다.

“작년 겨울인가?”

노인이 흡, 하고 숨을 크게 들이켰다.

“어떻게 알았나?”

“그냥. 이 갑옷을 구한 게 그때 즈음이다.”

노인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라스미어에서 태어나, 이 도시출신의 아내를 만나 이주해 왔지.

40년을 살았네만. 요즘은, 이 도시에서 너무 많은 죄를 본다네.”

그의 얼굴에 죄책감이 가득했다.

방관자의 죄책감이었다.

노인이 무슨 말을 삼키고 있는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정확히 이야기해 주시오. 무슨 죄책감이란 말이지?”

- 꿀꺽.

침을 삼키고 노인이 말을 이었다.

“영주가 마약을 재배하고 있다네.

파는 건 물론, 이 도시 사람들에게 아편을 조금씩 배급하고 있다네. 강제 중독이야. 거절하거나, 불만을 말하는 자들은 모두 죽이거든.”

레나가 끼어들었다.

“할아버지는?”

“나는. 쓸모가 있으니까.”

노인이 뒤편을 돌아봤다. 진열된 무기들을 바라본다. 그 목소리에는 진한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내가 경비대의 무기를 만든다네.

약 먹으면, 작업을 못 한다고 우겼지. 그렇게 살아남았네.”

“협박할 것도 없는 혈혈단신이라그런가, 그냥 내버려 두더군.”

“경비대는 어떻지?”

“크흠, 구태여 말할 것도 없다네.

영주의 개가 되어 있어. 삼 년 전이었나 싶네. 범죄자 같은 놈들 열댓 명을 데려왔지. 경비대에 꽂았어. 그 뒤로 더 끔찍해졌다네.”

나는 직접 묻기로 했다.

“네크론 신사회라고 알고 있나? 들어왔다는 경비가 그놈들인가?”

내 말에 노인이 눈만 끔택였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떠돌긴 하네만, 함부로 혀를 놀리면.

크홈, 하고 노인이 기침을 했다.

“이제 소문조차 돌지를 않는다네.

나는 도시에 갇힌 노인에 불과해.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

레나가 끼어들었다.

“우리한테 이렇게 말해도 돼요?”

“죽이기밖에 더하겠나. 자네들, 모험가 같은데, 그. 던전에 가려는 거지? 거미굴 말일세.”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하게. 경비대도 거기로 갔네.

사람들을 산 채로 거미에게 던지려고 말이야. 지금 가야 만날 게야. 자네들이 목격자라면, 살려 두지 않을걸 세.”

“으으.

레나가 몸을 움찔거리곤 노인에게 질문했다.

“그걸 다 알면서도, 할아버지는 여기서 안 떠나요?”

노인이 피식 웃었다.

“누가 놓아주나?”

“그래도 몸 하나 빼내긴 어렵지 않을 텐데. 중독도 아니잖아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내 아내가, 여기서 나고 죽었네.

이 도시에 묻혀 있고. 내가 달리 어딜 가겠나? 부인이 묻힌 곳에서 죽어야지.”

“하아.

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노인에게 질문했다. 문득 생각나는 게있었다.

“혹시. 이 도시에 서점은 없소?”

“서점? 서점이라. 왜 그러지?”

잠시 멈칫했지만, 이 노인에게는 말해도 될 것 같았다.

“캐빈 애슈턴이라는 자가 쓴 책이 있나 싶어서.”

“모르는 이름이야. 처음 들어 보네.

책방 같은 건 없지. 영주의 도서관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들여보내 줄 리가 만무하다.

일단 그건 포기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이걸 받게나.”

노인이, 철로 된 검은색 병을 꺼내며 말했다.

“잡화상에서 보니 거미 굴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던데. 내 마지막갑옷을 입어 준 보답이네.”

“이게 뭐지?”

“거미굴에 가게 된다면 이걸 쓰게.

물에 1 : 30 비율로 희석해도 웬만한 기름과 비교도 안 될 거야.<그라스미어의 불>이라네.”

레나의 눈동자가 크게 떠졌다.

“그, 그건.!”

그라스미어의 불이라. 그 불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서큐버스님은 내 머리를 무릎에 눕혀 놓고 책을 읽기를 좋아했다.

허벅지에 닿는 딱딱한 촉감이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분은 책을 읽다, 재미있는 부분이 나오면 내게 소리 내어 읽어 주시곤 했다.

- 철컥.

그분의 이야기가 떠올라, 나도 몸을 달그락거리며 물었다.

“절대 꺼지지 않는다는. 액체로된 불길이 이건가?”

“내가 태어난 곳의 비전이지. 평생한 병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네. 걸작을 만드는 데 써먹을까 했지만.

만들어 봤자 저 악마들에게 주는데뭣 하러 그러겠나?”

“이런 걸 줘도 되는 거요?”

선뜻 받아들이지 않았다. 가치가범상치 않다는 건 분명하다.

말하는 투로 보아, 뛰어난 대장장이가 평생 한 병이나 가질 수 있으면 다행인 물건이리라.

“물론이지. 받아도 되네.”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하시오.”

“나는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네. 시간이 얼마 없어. 이<불>을그냥 버리기는 아깝고 말일세.”

노인은 말을 돌렸다.

“줄 사람이 없나?”

“모두가 중독 됐네. 영혼까지 저들의 노예야. 도덕도, 가치도 없어졌네.”

“약만 받으면 그만이게 됐다는 소리군요?”

레나가 끼어들었다.

“그렇지.”

“하지만 할아버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아닌 거 같은데요?”

노인이 클클거리며 웃었다.

“눈치가 빠른 여자군. 이걸로. 할수 있는 걸 해 주게.”

“똑바로 말하지 그러나.”

“크흠! 경비대는 오늘 밤이면 돌아올 거야. 지금 거미 굴로 가게. 그리고 모두 태워 버리게.”

“하, 그럴 줄 알았어.”

레나가 한쪽 입 꼬리만 올리면서 피식 얼굴을 찡그렸다.

“놈들이 돌아온다면, 내 집에 왔던 자네들을 추적할 거야. 내게 무슨 말을 들었다고 생각하겠지. 자네들을 죽이려 할 걸세.”

“놈들을 먼저 치게. 기회는 한 번이라네.”

팔짱을 끼었다. 건틀랫을 철컥거렸다. 레나는 와, 대단한 협박이네, 라며 입 꼬리를 씰룩거린다.

노인에게 물었다.

“무슨 원한이 있는 거요?”

“칠십오 년을 비겁하게 살았네. 눈치나 슬슬 살피면서, 그저 내 몸 하나만 건지려고 발버둥 쳤지. 부인이죽은 뒤, 내 삶에는 작은 꽃밭 하나 없었다네.”

한숨을 쉰 노인이 말을 이었다.

“죽지 못해 사는데 영주가 도시에 마약을 뿌리더군.”

“언제부터?”

“삼 년 전부터일세. 부인이 살아있다면 어땠을까 싶었어. 살해당했겠지. 정의감이 강한 성격이거든.”

“견디기가 힘들더군. 그렇게 생각하니 말일세. 그러던 와중에 자네들을 발견한 걸세. 어때, 이 한심한 부역자의 협박에, 넘어가 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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