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46화 (46/458)

47화 부역자와 불타는 자 (7)

레나는 와이어를 설치한다. 독 바른 덫을 곳곳에 깐다. 덫은 발목을 문다. 트랩은 침을 쏘아 낸다.

레나는 덫의 위치를 다시 확인한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안에서 잘 안 풀리면.

그 뒤는 듣지 않아도 안다. 여기로 도망쳐 나오자는 거다.

물론 정말 잘 풀리지 않으면, 여기까지 나오기도 어려울 수 있다.

“가지.”

깊고 어두운 동공으로 들어간다.

나선으로 된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에는 친절하게도, 나무로 된 난간까지 있다. 한 걸음 한 걸음 저벅저벅 내려간다. 레나는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고 있다.

동공은 음험하고 위험해 보인다.

함부로 몸을 들이밀다간 죽을 거라고, 주위의 말라 죽은 나무들이 충고하는 듯하다.

하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차피D급 던전에 불과하다.

서큐버스님과 살던 던전은, 인간들이 A마이너급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나는 그런 던전을 장난처럼 유린하는 용사들을 상대해야 한다.

동공 안으로 걸어 들어가자 오히려 밝아졌다. 곳곳에 빛을 내는 구슬이 박혀 있다. 여덟 개씩 박혀 있는 구슬이 거미의 눈동자 같다.

작은 철문 앞에 선 순간.

- 띠링!

[파멸된 거미의 볼트]

[던전 랭크: D]

[절대 클리어할 수 없는 레벨의 던전입니다.]

[적정 레벨: 3卜40]

[적정 클리어 인원: 4?6]

내 앞에 반투명한 메시지가 떴다.

망령의 납골당에 이어 두 번째로 보는 메시지다. 납골당의 던전 랭크는 F. 적정 레벨은 15까지였다.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름 : ]

[해골병사 Lv.l(70)]

[체력-34 힘-40 민첩-39 지혜-13]

[스킬]

- 검술 Lv.5내 레벨은 1이다.

푸른 갑옷의 기사에게 살해당한뒤, 여기까지 오며 인간을 사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던전의 메시지는 현재의<레벨>을기반으로 나타난다. 레벨만 본 다면이건 확실히 미친 짓이다.

“전보다 높은 랭크의 던전인데, 입구는 상당히 좁죠. 한동안 좁고 긴 통로가 이어질 거예요.”

“지도를 외웠나?”

“물론이죠. 숫자가 적은 우리에게유리해요. 만나는 대로 불을 뿜으면,

놈들은 반항할 새도 없이 죽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였다. 레나가 나를 보고 말했다.

“이번엔 저도 좀 나설게요. 불이 있으니까요.”

레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녀의 재능은 압도적이다.

레벨을 올려 간다면, 오래 지나지 않아 나를 추월할 것이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경계했다.

하지만 지금은 믿을 수 있다.

그저 인간들에게 나온 장비나 돈을 처분시키는 역할로 끝내서는 안 된다. 그녀가 성장한다면, 굉장한 전력이 될 것이다.

‘키워 줘야 하겠지.’

그녀에게 경험치를 몰아주어도 좋을 것이다.

물론, 여건이 된다면 말이다.

- 철컥.

허리에<불>이 담긴 통을 찼다. 한손으로 칼을 뽑아 들었다.

- 스르릉.

칼 뽑히는 소리가 싸늘하다.

다른 한 손으로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 쿠르르르.!

철문이 작게 울부짖는다.

구멍은 좁고 길게 아래로 이어져있다. 하지만 인간이 지나가기에 어렵거나 답답할 정도는 아니다.

애초에 이 던전을 디자인한 이가인간 마법사이므로,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구불구불한 통로를 한참 내려갔다.

통로에는 천장에 눈처럼 박힌 야광주夜光珠 외에 아무것도 없다.

오른쪽으로 한참을 내려가고, 다시왼쪽으로 한참을 내려갔다.

“여기는 거주지가 아닌가 보군.”

“네. 한참을 내려가야 해요. 통로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경비병들이. 사형수를 거미에게 먹이로 던져 준다고 했나?”

“맞아요. 그래도 일단 깊이 내려가야죠. 여기에 놓아두면 굶어 죽을 뿐이니까요.”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레나가 고민하듯 말을 잇는다.

“거미에게 산 채로 먹히는 것과 굶어 죽는 것.”

그녀는 작게 속삭인다.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요?”

“생각에 깊이 잠길 만한 주제는 아닌 것 같은데.”

“잡아먹히는 쪽이 더 나을 것 같지 않아요? 꽁무니에 달린 침에는 최음성분이 있대요.

나는 내려가는 길에 집중했다.

한참을 더 내려가자 바닥에 모래가 조금씩 밟히기 시작했다.

더 내려가자 작은 공터가 나왔다.

“저기요!”

레나는 한쪽을 가리켰다. 바짝 탄 거미 시체 세 구가 있다.

몸길이가 적어도 1미터 정도는 될 것 같은 거미였다.

“거미 안 무섭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거미가 왜 무섭죠? 굳이 기를 생각까지는 없지만. 혹시, 거미 무서워하세요?”

“일반론 아닌가? 인간들은 거미를 무서워한다더군.”

“배수구에 숨어 있는 커다란 녀석이나, 옷이랑 시트 안쪽에 있는 것들은 싫겠죠.”

그녀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 곳에 있으면, 뭐든 싫고 징그럽지 않겠어요? 아, 기사님은 제시트 아래에 있어도 좋아요.”

레나는 허무한 농담을 하며 공터곳곳을 돌아봤다. 그녀의 시선을 따라갔다.

자세히 보니, 공터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거미가 간신히 기어 나올 수 있을 법한 구멍이다.

“저기로 가기는 어렵겠군.”

“네, 거미 전용이네요.”

결국 내려가는 길은 한 군데였다.

“이리로 오세요.”

계속 동굴 아래로 더 내려갔다. 쓰러진 거미의 시체와, 묶인 채로 상반신만 ‘거미 구멍’에 처박혀 있는 인간 서넛이 보였다.

구멍 주위에, 요란하게 피가 튀어있다. 안쪽에서 상반신만 거미에게파먹힌 것 같다.

레나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 경비라는 놈들, 계속 아래로 들어갔네요. 정말 보스라도 공략할생각인 거 같은데요.”

“그거, 안 좋은 건가?”

“아래로 내려가면 공간이 넓어지거든요. 우리에게 썩 좋은 구성은 아니죠. 좁은 통로에서 만나야 유리할 텐데.”

- 키기기긱! 키기기긱!

그 순간이었다.

인간의 상반신이 쑥 들어간 구멍하나에서, 피 칠갑을 한 새까만 거미 두 마리가 기어 나왔다.

“빠져라.”

레나부터 뒤로 물리고 내가 뛰어들었다.

- 키기긱! 키기기긱!

중형 거미들은 기괴한 소리를 내면서 내게 달려든다.

여덟 개의 다리 하나하나가 각자장검 정도의 길이다. 굵기는 인간여자의 허리 정도.

- 퍼걱!

가까이 있는 거미의 몸통에 바스타드 소드를 꽂아 넣는다.

힘에서도, 속도에서도 내가 우위에서 있다. 바깥에 있는 이 거미들은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꼬치처럼 칼에 꿴 채, 그대로 구멍에 다시 밀어 넣어 버린다.

여덟 개의 다리를 버둥거리지만,

내 힘을 당해 내지 못하고 다시 구멍에 처박힌다.

- 끼기깅!

방패로 검신을 긁어내는 소리가 섬뜩하다.

옆에 있는 다른 거미를 곧바로 꿰어, 연속으로 구멍에 밀어 넣었다.

- 광!

방패로 구멍 입구를 막는다. 바스타드 소드를 털어 냈다. 초록색 피가 동굴 바닥으로 화록, 떨어진다.

- 키기긱!

놈들은 그 와중에도 인간의 시체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피를 흘렸으니 영양을 보충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느긋하게 식사 시간을줄 생각은 별로 없다.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 속담을 읽은 적이 있다.

물론, 나는 내가 개보다 낫다고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불>을 1/20로 희석한 통을 잡는다. 뾰족한 관을 구멍에 댔다. 수동식 펌프를 세차게 돌려 버린다.

- 화르르!

- 화르르륵!

- 키기이이이익!

- 키키기기이!

작은 구멍으로 화염이 쏟아진다.

‘확실히 불에 약하군.’

불태워지는 거미들이 몸부림치는 소리가 안쪽에서 섬뜩하게 울린다.

물론 저들에게 특별한 죄가 있는 건 아니다.

그냥 자기들의 보금자리에 나타난무언가를, 만들어진 본능에 따라 공격했을 뿐이다.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일이다.

내 침략을 변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나는 방어자의 정당한 요격을 가혹한 불길로 진압했다.

나는 인간들에게도 악이며, 이 던전에 사는 거미들에게도 악이다.

물론 아무래도 상관없다.

20년 후의 누군가를 지킬 힘을 얻기 위해서라면, 나는 뭐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구멍 안쪽이 조용하다. 안쪽에 다시 쑤셔 넣은 거미 두 마리가 모두 죽은 듯하다.

몇 초가 걸리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거미들의 다리를 잘라 내고, 몸통에 몇 번이고 바스타드 소드를 찍어야 했을 것이다.

그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다.

거미줄과 독액으로 범벅이 되어 한참 동안이나 발버둥을 쳐야 했을지도 모른다.

적절한 무기를 가지고 온 덕에 큰 수고를 아낀 것이다.

자만은 금물. 게다가, 바깥에 있는이 거미들은 조무래기에 불과하다.

안쪽에 있을 보스와는 비교도 되지^는다.

‘레벨이 4나 올랐군.’

민첩과 힘에 각자 2를 투자했다.

[체력-34 힘-42 민첩-41 지혜-13]

힘과 민첩, 모두 40을 넘겼다. 휘두를 수 있는 힘도, 속도도 빨라진 게 느껴졌다.

“곧 문이 나올 거예요.”

레나가 옆에서 말했다.

“문?”

“네. 좁은 통로는 슬슬 끝이에요.

더 가실 건가요?”

“그래야지.”

무심코, 그녀를 너무 깊숙이 데리고 와 버렸다. 보호해 줄 수 있을지확실하지 않다.

몇 분 정도 더 걸어가니 레나의 말대로 작은 철문이 나왔다.

- 끼이이익.

문을 열자 작은 협곡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고대의 콜로세움 같은 느낌이네요. 마법사들의 취향이란 건 참협곡 곳곳에 거미줄이 가득했다.

온몸이 새까맣고 눈만 새빨간 거미들이 거미줄을 타고 다닌다.

새하얀 거미줄 곳곳에는 동그랗게 말린 인간들이 있었다.

레나도 나와 비슷한 때 허공에 매달린 인간들을 발견했다.

“저기에 던져 놓았군요. 아직 살아있어요.”

“쾌적해 보이지는 않는군.”

완전히 거미줄에 감기지 않은, 여자의 하얀 다리가 저편에서 경련하둣 버둥거린다.

나는 그 모습을 잠깐 바라봤다. 살아 있는 건가 싶었다. 하지만 자세히 보니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이 새빨갛다.

거미가 산 채로 머리만 아삭 베어 먹은 것이다. 버둥거리는 하얀 다리는 그냥 거미줄에 매달려 흔들리고 있던 것에 불과했다.

나는 시선을 내렸다. 계곡 아래를 천천히 살펴봤다.

불타 죽은 거미들과 깨어진 화염병조각이 낭자하다. 끈적한 타르과 기름이 타고 남은 흔적이 계곡 곳곳에 가득했다.

“아래로 내려갔군.”

“네. 사형수는 대부분 여기에 다던져 놓은 것 같아요.”

“불 좀 빌려주실래요?”

레나는 희석한<불>이 담긴 통을 내게 받아 들었다. 그리고 계곡 저편의 하얗게 둘둘 감긴 거미줄을 겨냥하고 펌프를 돌렸다.

- 화르르록!

불길이 마구 뿜어졌다.

계곡의 거미줄에 달라붙어 허공의거미들도, 꽁꽁 감긴 인간들도 모두 태워 버린다.

- 키기기이익!

- 키이이이익!

거미들이 마구 뛰어내린다. 계곡을 지나 이쪽으로 다가온다.

크게 위협적이지 않다. 이미 한차례 경비병들의 화염병에 쓸린 뒤라 그런지 몇 마리 남지 않았다.

‘하나, 둘. 다섯이군.’

- 화르륵!

- 희?르르르르!

레나는 별 감정 없는 눈빛으로 거미들을 향해 불길을 쏘아 냈다.

세 마리는 오는 도중 불길에 휩싸여 죽었다.

화염병에 담겨 있던 액체가 바닥에남아서인지, 계곡 곳곳이 폭발하며 새롭게 불길이 솟아올랐다.

계곡을 기어오르는 한 마리를 칼로푹 찔렀다. 머리에 칼이 박힌 거미가 몸을 부르르 떤다.

크게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휘둘러서 절벽으로 털어내 버렸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또다시 레벨이 올랐다. 내 레벨보다 중요한 게 있다. 나는 레나를 바라봤다.

그녀의 머리 위에도 비슷한 창이떠 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진짜 올랐잖아?’

[이름: 레나]

[도적 Lv.lO(new!)]

[체력-13 힘-11 민첩-17 지혜-11]

[잔여 포인트: 20(new!)]

[호감도: 35]

- 당신은 레나의 취향입니다.

- 그녀는 당신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이 캐릭터는 당신과 관계를 맺지 않았습니다.]

[포인트를 임의로 분배합니다.]

[체력-19 힘-17 민첩-20 지혜-16]

[각색완우(角色抗偶)의 아나픽시아(an요pxia)를 시작합니다.]

[동화율이 내려갑니다.]

[92.49%->90.14%]

세계가 한차례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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