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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52화 (52/458)

53화 감정鑑定과 감정感情 사이⑷

무슨 말을 듣게 될까.

뚜렷이 짐작 가는 건 없었다. 그녀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사실, 지금 가는 곳에 동생이 있어요.”

조금 당황했다.

“길드원이라는 자에게 맡기고 있는 건가?”

“맞아요. 보육원에서. 제가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아주 귀여운 아이죠.”

길드 원에게 맡기고 있다고? 어떤 사람일까?

인간 불신의 상징 같은 여자인데,

누군가에게 동생을 맡기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지금 말하는 투로 봐서는 제법 동생을 아끼는 것 같은데.

“믿을 만한 자인가?”

“네.”

레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녀가 믿을 만한 인간이면 대체 어떤 자일지 궁금했다.

“으음.

어차피 그 인간은 곧 만나게 될 것이다. 레나는 걸으면서 간간히 동생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겉으로는 무척 건조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고 있었지만, 어딘가숨어서 작은 동생을 꼭 안고 우는 작은 소녀가 보이는 것 같았다.

소녀는 어린 동생과 둘이 남겨졌던 거다. 루비아가 간살衰殺당한 바로 그런 거리에.

물론 그녀의 과거나 사정에 대해깊이 알 필요는 없다. 그런 깊은 사이는 아니다. 그냥 적당히 이용하면 그만이지 않나.

애써 그렇게 생각을 돌리며, 잠시 잊고 있었던 걸 떠올렸다.

‘상태창.’

포인트 분배다.

경험치를 나눠 주었다. 저번보다 내가 얻은 양은 적다.

그러나 경비병들과 던전 보스는 모두 독식했다. 레벨은 11이 올라 12가 되어 있다.

체력과 힘, 민첩에 적당히 포인트를 나눠 분배했다.

[체력-46 힘-48 민첩-48 지혜-15]

‘음.’

세 능력치는 50에 가까워져 간다.

인간이라면, 꽤나 인정받고 살아갈만한 힘이다.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무재武才를타고나고, 착실한 수련을 한 뒤,

몇 년 동안 사지死地를 구르며 성장한 용병 정도는 되지 않을까.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는 제법 두려운 존재로 군림하겠지. 하다못해 산 적질을 한다고 쳐도, 제법 큰 무리의 부두목 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러나 나는 해골이다.

주류의 궤執에 서 있지 못한다.

세계는 인간의 것이며, 그들의 인식과 규범을 따른다.

그들의 세계에서.

나는 쓰러뜨릴 마물魔物로 규정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 적은 세계, 그 자체.

마음 놓고 눈에 될 만한 강함은 결코 아니다.

‘역시 던전을 돌아야겠어.’

아직 수련을 할 시간이다.

어느새 비가 그쳤다. 슬슬 유블람의 회색 성벽이 보인다. 가을빛을 받아 조금은 물들어 있다.

도시로 들어가지는 않는다.

레나가 향하는 곳은 그 주변이다.

갑옷을 가리는 로브를 걸쳤다.

커다란 목재소가 있는 마을을 향해 걸었다.

이 층짜리 보육원 건물. 그 앞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보인다.

“와! 예쁜 레나 언니다!”

“내 언니거든?”

“잘 있었어?”

아이들은 깔깔 웃으며 레나를 둘러싼다. 레나는 그중 한 아이를 안아들고 볼에 입을 쪽 맞춘다.

안아 들린 소녀는 얼굴에 빨갛게 붉히며 꺄르르 좋아한다. 아직 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소녀다.

평범하고 예쁜,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여자아이다.

아이는 어디 하나 그늘 없는 맑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에 내 안에 담긴 어둠까지 안개처럼 흩어지는 것 같았다.

“네. 동생인가?”

“닮았죠?”

레나가 밝게 웃었다. 무언가 한 꺼풀 벗겨진 듯한 웃음이었다.

‘으음.’

외모는 분명 레나를 닮았다. 이목구비를 하나하나 빼박았다.

그러나.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살아온 느낌이다.

내 앞에 있는 열아홉의 여자.

레나라는 인간 암컷은, 눈에 칼을 쑤시고 귀에 독을 부어 넣는 세계에서 살아온 것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저 소녀가 ‘평범하게’ 웃는 모습을 지켜 주기 위해서.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모도,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서.

“원장님은 계시니?”

“원장님은 저 뒤에 가셨어요.”

한 아이가 풀숲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누구랑?”

“저. 언니, 이상한 사람들이 왔어요. 원장님은 ‘어른’들끼리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사람들이었니?”

“무섭게 생긴 사람들이었어요. 저는 원장님이 좋아서 원장님만 보고 있어서 알았어요. 다른 애들은 놀기만 좋아하고.

레나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 언제?”

“어, 방금이요.”

레나는 동생과 몇 번의 포옹을 더하고,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언니는 원장님이랑 같이 들어갈게. 잠깐 친구들이랑 기다릴래?”

“응. 나는 착한 아이니까, 기다릴께!”

소녀는 밝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과 함께 건물로 돌아갔다.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위험한 건가?”

“글쎄요. 누가 위험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죠.”

- 터벅터벅.

우리는 풀숲으로 걸어갔다.

“저긴가?”

목과 양손에 수갑이 채워진 남자가서 있다.

목에 매인 사슬은 무척 짧다. 손 도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그를 둘러싸고 칼을 겨눈 인간 다섯이 보였다.

‘얘기를 한다고?’

적어도 ‘얘기’로 끝날 상황은 아닌것 같다. 수갑을 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쩔그렁거리며 사슬이 움직인다.

“부탁대로, 여기에 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에게 험한 꼴을 보이기는 싫었거든요.”

칼을 겨눈 다섯.

그중에서, 검은 얼굴의 뚱뚱한 여자가 킥킥거린다. 그녀는 수갑이 채워진 남자를 향해 소리친다.

“멍청한 놈, 네가 찬 게 뭔 줄 은아나?”

“글쎄요. 수갑 아닙니까?”

“용암 석으로 만든 거다. 목을 통째로 잘라 내기 전엔 빠져나갈 수 없지. 감사하다고? 킥킥킥. 그래, 감사해야지.”

구불구불한 머리칼의 여자가 킥킥대며 남자를 비웃었다. 주위의 인간들도 한 번씩 웃는다.

그 때.

남자가 사람들에게 묻는다.

“아이들은, 참 귀엽지 않나요?”

“뭐?”

“조금씩 변하는 게. 참 사랑스러워요.”

나무 사이로 햇빛이 들어왔다. 남자의 얼굴을 비췄다.

‘무슨 소릴 하는 거지?’

남자의 눈이 보인다.

한쪽은 붉고, 다른 한쪽은 초록이다. 병에 걸린 것 같은 얼굴. 묘하게 부자연스럽다. 보석을 박아 넣은 것 같은 질감이었다.

나는 레나에게 조용히 물었다.

“저 남자인가? 길드원이라던. 구해 주지 않아도 되나?”

레나가 역시 고개를 끄덕인다. 방관하는 건가.

“애들에게 감히 헛바람을 넣어? 조사해 보니 뒷배도 없는 놈 같던데.

우리 애들을 빼앗아 간 건 죽겠다는거지, 그렇지?”

여자가 단검으로 남자의 얼굴을 숙숙 그어 간다. 눈 근처를 위협하듯건드린다.

“누님, 어차피 죽일 거 아닙니까?”

“죽이기 전에 재미 좀 봐야지. 난 이런 새끼들이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하면서 엉엉 울부짖는 꼴이 그렇게 짜릿하더라. 응?”

그 때 남자가 말했다.

“아이들에게 매춘을 시키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남자의 얼굴에 칼을 그어 가던 뚱뚱한 여자가 옆을 돌아봤다.

“어, 그래서?”

“최근에 저희 보육원에 온 어떤 남자아이는, 속이 다 뒤집어질 때까지 술을 마시더군요. 그 기억에서 도망가려고 말입니다.”

남자는 여자를 느긋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뭘 어떻게 생각해, 이 새끼야. 술을 마시든 정액을 마시든 갠 우리 애야. 어? 아주 씨발, 애들 다 빼가고 혼자 장사해 처먹으시려고?”

뚱뚱한 여자는 건들거리며 수갑을찬 남자의 눈 주위에 가져다 댄 단검에 더 힘을 줬다.

단검이 깊이 들어갔다.

남자의 눈 주위에서 무언가가 흐르기 시작했다.

“일단 눈부터 시작해 볼까?”

- 스르록.

‘저게 뭐지?’

단검이 베고 있는,

남자의 눈 주위에서 무언가 흐른다. 붉은 피가 아니었다.

끈적한 초록색 점액질이었다.

“히, 히익! 뭐야 이거!”

“누님! 괜찮으십니까!”

살아 있는 둣한 진 녹의 점액이 차가운 검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말을 섞을 필요도 없겠군요.

- 치이이익.

점액이 닿은 강철의 검신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손님이 오신 것 같으니 빨리 끝내겠습니다.

수갑을 찬 남자의 입에서 목소리가끈적하게 ‘흘러’나왔다.

- 철퍼덕!

한순간 남자의 온몸이 물컹거리며 아래로 ‘흘러’내렸다.

“으, 으아아아악!”

꿈틀거리는 초록색 점액질은 다섯 명이 서 있던 바닥에 순식간에 엉겨 붙었다.

- 치이이악안이 보이지 않는 진득한 녹색 점액질 덩어리에, 다섯 명은 발목부터 천천히 녹아 가기 시작했다.

“끄아아아악!”

“히, 끼히익.!”

“괴, 괴, 괴물! 괴물!”

“신이시여!”

요란한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고 했지만, 바닥에 넓게 퍼져 흐물거리는 진녹색 점액은 ^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그들의 발목은 곧 녹아들었다.

제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발버둥치던 그들은 곧 숨이 끊어져, 녹색 점액 위로 철퍽철퍽 자빠졌다.

나는 레나의 곁에서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봤다.

바닥에 넓게 퍼져, 인간을 녹이며 한참을 꿈틀거리던 그 점액.

점액은 서서히 어떤 형상을 취하고 있었다.

그건 ‘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꿈틀거리는 초록색 점액 덩어리에서, 수척한 문어 같은 모습이 위로 솟아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에 ‘다시’ 고개가 생겼다. 고개가 돌아가 이쪽을 바라봤다.

문어처럼 밋밋한 회색빛 머리에는두 눈이 박혀 있었다. 한쪽은 붉게,

한쪽은 초록으로 빛난다.

- 꾸르르록.

잠깐 사이 회색빛 점액 덩어리엔 코가 생기고, 입이 생겼다.

흐물거려 넓겨 퍼진 아랫부분이 팔이 되고 다리가 되었다.

곧 인간 비슷한 형태가 되었다.

이제 눈앞에서 보았던 남자라는 걸 알아보기에 충분했다. 모든 과정을 코앞에서 보고도 놀라웠다.

<남자>가 내게 깊숙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손님이 오셨는데, 처리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보육원 원장인 라임이라고 합니다. T&T 길드의 회원이기도 하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냐는 표정으로 레나를 돌아봤다.

“이런 걸 먼저 말해 줬어야 하는거 아닌가?”

그녀는 어깨만 으쓱했다.

“직접 봐이^ 재밌잖아요?

“저는 체인질링입니다. 그중에서도슬라임 족族이지요.”

“슬라 임. 인가.”

“예. 슬라임입니다만, 혹시 슬라임싫어하십니까?”

- 달그락.

고개를 저었다.

싫어하고 좋아할 것도 없다.

슬라 임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지성을 가진 슬라임은 무척 희귀하다고 한다. 그저 말로만 들었다.

마왕 군이 발호한다면.

눈앞의 이 남자는 해골병사인 나따위보다 훨씬 높은 계급에 올라갈 것이다. 그럼에도, 슬라임은 시종일관 실로 정중했다.

“같이, 인간 세계를 살아가는 처지라고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다.”

나보다 이 슬라 임이, 비교도 안 되게 잘 녹아들어 있지만.

“비슷한 처지라, 뵙자마자 무척 반갑더군요. 레나를 크게 도와주신다고 들었습니다.”

“뭐. 피차 이용이다.”

우리는 원장실로 향했다.

레나는 따각, 하고 단단한 쿠키를 부쉈다. 원장이 블랜딩한 커피에 찍어 커피만 조금씩 빨아 먹었다.

“그 버릇은 여전하군요, 레나.”

“원장님이 내린 커피인데요. 아껴마셔 야죠.”

“원두는 많이 있습니다만.

“커피는 맛있다고 너무 마시면, 생리통이 심해지더라구요.”

“알겠습니다. 부디 편하신 대로 즐겨 주시죠.”

슬라 임은 이제 내 쪽을 바라보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저는 체인질링입니다. 원하는 대로 모습을 변형할 수 있지요. 같은 해골의 모습이 편하시겠습니까?”

“아니, 그건 됐고. 좀 물어보지.”

“말씀하십시오.”

“슬라임이 어떻게 보육원을 하고 있는 거지?”

“저희는 무성無性의 존재고, 아이가 없지요. 저는 아이들을 매우 좋아합니다. 변하는 게 신기해서요.”

“당신이야말로 뭐로든 변할 수 있는 존재 아닌가?”

“그건 그냥 껍데기뿐입니다. 따져보자면, 결국 뭘로도 변할 수 없는 존재가 저희입니다.”

남자는 씁쓸하게 웃었다. 저런 디테일한 표정을 짓는 메커니즘을 생각하자 뭔가 무서워졌다.

남자가 ‘일어났을’ 때, 다섯 명의 시체는 혼적도 없이 녹아 사라져 있었다.

매우 정중하지만, 이 남자는 눈앞에서 나를 없애 버릴 수도 있는 존재다.

“정체가 발각되면.

“발각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보육원을 오래 할 수 있으니까요.”

남자가 커피를 홀짝이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T&T 길드에 몸을 담았습니다. 정체를 숨기려면, 이것저것 알아야 하는 게 많지 않습니까.”

저 커피는 대체 어디로 넘어가서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하며 남자를 가만히 바라봤다.

남자는 자기가 매여 있던 용암석수갑을 들어, 뒤쪽의 커다란 창고에 넣었다.

‘슬라 임에게 수갑이라니.’

끔찍하게 멍청한 놈들이었다.

“아까 그놈들은 왜 여기로 쳐들어온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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