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55화 (55/458)

56화 세 가지 벽 (1)

나는 팔짱을 끼었다. 호의에 가득 찬 남자의 오드아이를 바라봤다.

잠시 생각에 잠겼다. 레나를 홀끗 돌아보았다.

“그 의뢰, 이 여자에게 받는 걸로 하면 안 될까?”

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인간의 몸은 재미있다. 눈은 더욱 그렇다. 바라보면 저 아래가 아른아른 비쳐 온다.

“레나의 실적으로 하고 싶으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그녀를 길드에서 빨리 승급시킨다.

그게 현재의 목표였다.

“대신, 보상금은 당신이 가지도록하고.”

남자의 눈에 당혹이 떠올랐다. 그가 얼른 손사래를 쳤다.

“그건 곤란합니다. 보상은 직접 일을 하시는 쪽에서 받으셔야죠.”

“빚지기 싫다. 감정도 거저 해 주지 않았나.”

남자가 후우, 하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걸 빚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의뢰를 수행하는 분이 당연히 보상을 전부 가져가셔야죠. 저는 전달자에 불과합니다.”

“길드를 통하지 않았으면 의뢰를 받을 수도 없었을 거 아니야? 그냥감정료로 치라니까.”

“.보상의 10%만 받겠습니다.”

“내가 10%를 받는 걸로 하자고.

당신이 90%.”

단호하게 말했다.

남자가 가진 감정 스킬의 가치는 최소한 그 정도는 된다. 후려치고 싶지 않았다. 마음의 빚을 더 지고 싶지 않았다. 그게 가장 무겁다.

레나를 승진시키고 싶은 건 전생에 그녀에게 빚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남자에게 신세를 지게 된다면 언젠가 갚아야 한다. 죽음 이후에도 마음의 빚은 이어진다.

그걸 알 리가 없지만, 남자도 어지간하다. 쉽게 지지 않는다.

“90%라뇨. 안 됩니다.”

“나도 안 돼.”

“15%. 제가 그 이상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이들을 키우는 데 돈이 필요하지 않을 리 없잖아?”

일단 양보를 시작하자 어찐지 진심이 되었다. 지고 싶지가 않았다.

“인간 사회에 잘 숨어들어 자리를 잡았습니다. 걱정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까 쳐들어온 인간들 다 봤어.

그 자리, 별로 안정적인 것 같지 않던데?”

우리는 서로 보상을 덜 받겠다고 싸운다. 역시 우습다고 생각한다.

아무렇지 않게 인간을 찔러 죽이고, 녹여 죽이는 괴물들이 인간의 돈을 양보하겠다고 싸운다.

문득 던전에 쳐들어왔던 모험가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이건 네가 해치워.’라거나‘얘한테 나온 건 네가 먹어.’라면서 양보하곤 했다.

가만히 있는 나를 가지고,

가만히 숨어 살던 서큐버스님을 가지고 저들끼리 서로 순번을 정하고 양보를 했다.

우리는 놈들에게 텃밭이고 음식이었다. 맛 좋은 식사를 나누며 함께 즐기둣 양보 놀이를 했다.

나의 것을.

아니, 나 자체를 빼앗아.

서로의 겸양을 즐겁게 과시하던 놈들이 생각났다.

그들은 우리를 분배하며, 공동의 연대를 확인하곤 했다.

언젠가 인간들에게 그 분배 자체를 되돌려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어쩐지 이 양보 놀이에 한층 몰입하게 되어 버렸다.

우리는 결국 50%에서 합의를 보았다. 슬라임이 지쳤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그럼 50%에, 제가 앞으로 의뢰를 계속 구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 주면 고맙겠군. 의뢰에 대한 사항을 알려 줘. 그리고.

“말씀하십시오.”

“션이라는 아이를 잘 부탁하지.”

돈을 더 받을 수 없다는 결의로 가득 찼던 남자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의아한 어조로 그가 물었다.

“그 아이를 아십니까?”

“뭐, 그냥. 다른 아이들과 잘 못 어울리는 것 같길래.”

적당히 얼버무렸다. 원장의 표정이 s부드럽게 풀어졌다. 아까보다도 한층 더 호의적인 표정이었다.

“요즘 특히 신경 쓰고 있는 아이입니다. 예리하고. 따듯하시군요.”

- 띠링!

[라임의 호감도가 9 올랐습니다!]

[호감도가 20에 도달했습니다!]

[라임은 당신이 아이들을 볼 줄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한 오해를 사 버린 것 같지만,

해명할 방법도 없었다. 나는 그냥어깨만 으쓱했다.

토너먼트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었다. 방에 돌아갔다. 레나가 따라 들어왔다.

“무슨 일이지?”

“.왜 저한테 잘해 주시는 거죠?”

“잘해 주냐니?”

“저한테. 실적을.

그녀답지 않게 낮게 깔린 목소리였다. 잠겨 있다.

“그냥 써먹으려고 키우는 거지.”

레나는 반쯤은 잠기고, 반쯤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원장님을 정보원으로 쓰시는 건 어때요? 저보다 훨씬 뛰어나고, 훨씬 유용할.

말이 많다고 생각했다. 입을 좀 막을 필요가 있다.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던져 버렸다.

“년, 좋은 사람이니까.”

“네?”

그녀가 손끝을 떨었다.

“년 좋은 사람이라고 했잖아.”

“제가 지금까지 죽인 사람 숫자가 몇인지 아세요?”

“얼마 안 될걸, 그리고 그게 어쨌다는 거지?

인간의 입장에서 그녀는 성격장애형 범죄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내게는 잘해 줬다.

나 때문에 죽었다. 마지막까지 날 버리지 않았다. 나에게 있어 판단기준은 그것 하나다.

타인들 따위에게 어떻게 대하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특히, 나를 죽이려고 했던 자들이라면 말할 나위도 없다.

좀 죽이면 어떤가? 삶아 먹어도 좋고 살을 발라 먹어도 좋다. 뭐라 고할 생각은 전혀 없다.

레나가 침음을 홀렸다. 말을 잇지못하고 몸이 굳는다.

“왜, 공적 쌓기 싫어?”

싫을 리가 없다.

“.농담도 심하시네요.”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뭔가 민감한 곳, 하지만 본인은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있던 곳을 깊숙이 찔린 것 같은 표정.

저런 모습을 보니 우스웠다. 레나와 어울리지 않는다. 화제를 전환해야겠다.

“아, 궁금한 게 있는데.”

“.예. 뭐든 말씀하세요.”

“2세이론이라는 게 얼마나 되는 돈이지?”

“하핫.”

조금 상기된 채로, 굳어 있던 레나의 표정이 조금 풀어진다.

“역시 그럴 때가 좋네요.”

“그럴 때라니?”

“뭘 좀 모르실 때가 역시 좋은 거같아요. 귀여우시군요.”

“대답이나 하지 그래?”

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던졌다.

솔직히 말해 레나와 깊은 관계를 맺을 생각은 없다.

그녀를 도와주며 살다가 한 번 죽게 된다면, 내 빚은 그걸로 끝이다.

더 얽히고 싶지 않다.

레나가 표정을 조금 회복한 채로 대답한다.

아직 볼은 조금 붉어져 있다.

“좋은 말 세 필을 살 수 있는 돈이에요. 괜찮은 칼 백 자루를 살 수 있고.”

“그리고?”

“사과술은 50통 정도. 한 달에 한통씩 먹어도 4년은 먹겠군요.”

“음. 인간의 물가라는 건들어도 감이 잘 안 잡히는군.”

“뭐 고민하실 거 있나요? 저한테다 맡기시면 되죠.”

레나가 날 보고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씩 웃는다. 역시, 그녀에게는저런 표정이 어울린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에라스트로향하는 마차 안에 몸을 실었다. 원장이 빌려준 마차였다. 밖을 내다보면 레나가 지나가듯 말했다.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 걸까나.”

“나 말인가?”

“네. 토너먼트에서 너무 무리하지마세요. 구경하는 사람들이 너무 놀랄 테니까.”

“3승이 목표다만.”

“너무 쉬울 거예요.”

“우승하면 뭐라도 주나.”

“좋은 전투마나 명검을 주겠지만.

시골 귀족한테 뭐 대단한 명검이 있겠어요, 그저 그렇겠지.”

레나가 말을 이었다.

“원한다면 영주가 좋은 조건으로 우승자를 고용할 거예요. 집도 주고노예도 몇 명 딸려 오죠.”

노예라.

“영 쓸모없군.”

“부랑자들에게는 좋은 조건이겠지만, 돈을 벌려면 다른 걸 해야죠. 진짜 소득은 따로 있어요.”

“뭔데?”

“토너먼트가 개최되면, 항상 비공식적으로 도박판이 벌어지거든요.”

- 짤그랑.

레나가 지갑을 손에 들었다. 가득 찬 은화가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인간들의 시체에서 주워 모은 은화들이었다.

“저도 쫙 당길 거예요.”

“도박에 참가한다고?”

“그럼요.”

레나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스무 배는 불릴 수 있을 텐데, 안하는 게 바보죠.”

“누구한테 걸려고?”

“장난이 심하시네요. 다 이기실 거잖아요?”

“그럴 리가. 인간들이 그렇게 약하지 않겠지.”

“자신을 너무 낮게 평가하시는 거아니에요?”

“글세.

이 여자는 나를 너무 높게 평가하는 것 아닐까. 황금알을 낳는 거위취급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한 푼도 건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내가 그렇게 강한가?’

토너먼트 참가.

레나의 실적만 쌓아 주려는 목적은 아니다. 내 현재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알아보고 싶다.

던전에 침략한 모험가들과 싸워 보긴 했다. 수십 명의 병사를 힘으로 물리쳐 보기도 했다.

하지만 앞에서 기다리던 한 명의기사에게 갑옷 째로 잘라져서 죽었다.

인간의 힘이라는 건 가끔 감이 잘 잡히지 않을 때가 있다.

단계적으로 조금씩 올라가면서, 내수준을 파악하기에 토너먼트만 한것도 없을 거다.

장소도 에라스트다. 루비아가 도망쳐 ^온 도시.

‘삼촌이 랬나.’

루비아의 말에 따르면, 인신매매혐의로 10년 형을 받은 남자.

루비아에게 청부업자 둘을 보낸 놈이 영주인 곳이다.

어떤 놈인지, 얼굴 정도는 확인해두어야 한다. 나는 품에 있던 수첩을 펼쳤다.

- 경비대장과 그 무리(유블람) 0- 영주(에라스트) □

- 망치와 석궁(첫 무덤) 因체크 표시가 보인다.

망치와 석궁은 각각 서너 번 정도죽인 것 같다.

경비대장과 그 무리는 두 번에 걸쳐<불>로 바짝 구워 주었다.

그 비명이 귓가에 아직 생생하다.

남은 건 루비아의 삼촌, 에라스트의영주 하나다.

“토너먼트라면.

“예, 말씀하세요.”

“영주도 참관하는 건가?”

“그럼요. 처음부터 끝까지 있을 거예요. 눈앞에서 싸움이 벌어지는데,

눈을 떼지 않겠죠.”

“일은 안 하고?”

“듣기로는, 그런 걸 영주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남자니까요.”

“영주를 잘 아는 것처럼 말하는군,

그래.”

“여러 가지 소문이 있잖아요?.”

“소문을 다 믿나?”

“세 가지 출처에서 공통적으로 말하는 건 믿어요. 그게 기준이죠. 그 영주한테 관심 있으세요?”

“글쎄.”

얼버무렸다. 그곳에서 영주의 목을칠 수 있을까? 루비아의 복수를 지금 해낼 수 있을까?

‘역시 무리.’

운 좋게 가까이 다가가, 암살을 성공한다고 해도.

레나도 죽고 다 엉망이 될 거다.

슬라임도 곤란해지지 않을까.

이런 식으로 일을 어설프게 망쳐버릴 생각은 없다.

죽인다면 철저히, 압도적인 위치에서 짓밟아이= 한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는 사양이다.

일단 얼굴이나 알아보자. 이번에는그 정도가 적합할 것 같다.

생각에 잠긴 내 어깨에, 레나가 슬쩍 몸을 기대 온다.

몸은 제법 단련되어 있다. 질감은 살짝 단단한 편이다. 물론 나보다는 훨씬 부드럽다.

“궁금한 게 있거든요.”

“말해,

“검술은 어디서 익히신 거예요? 어떻게 그렇게 강하신 거죠?”

“수련을 좀 했지. 동굴에서 혼자.”

반쯤은 솔직히 대답한다.

“동굴에서 혼자?”

“몸이 몸이지 않나. 먹고 잘 필요는 없지. 수련에는 유리하더군.”

“하핫. 인간의 몸이란 건 정말로 거추장스럽긴 하죠.”

“네 몸은 꽤 쓸 만해 보이는데?”

“흐응. 그래요?”

레나가 입꼬리를 올리며 배시시 웃었다. 전투적인 의미에서 한 말이었지만, 실언일지도 몰랐다.

굳이 대화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마차 밖을 바라봤지만 여자는 자꾸 말을 걸어왔다.

적당히 맞장구를 쳤다. 이런저런 사소한 대화를 나눴다.

여자의 들뜬 웃음소리가 종종 마차 안을 떠돌았다. 에라스트까지는 금방이었다.

“벌써 왔네요.”

“이렇게 금방인가?”

“저번에도 와 본 적이 있어요. 그때는 멀게만 느껴졌는데, 참.”

“마차를 탄 탓이겠지.”

“글쎄요. 과연 그럴까요?”

나는 밖을 내다봤다.

우리 말고도, 성문 앞에 길게 줄 을선 사람들이 있었다.

성문 앞에는 경비병이 여섯 명씩한 조가 되어 사람들을 검사하고 있었다.

두 명의 경비는 사람들을 쭉 지나치며 외쳤다.

“따로 초대장이 있으신 분은 말씀해 주십시오! 초대장이.!”

“우리 얘기군요.”

레나가 내 옆구리를 툭 건드렸다.

그리고 마차 밖으로 몸을 내밀며 소리 쳤다.

“여기요! 초대장 있어요!”

경비병이 이쪽으로 다가왔다.

“토너먼트 참가자이십니까?”

“맞아요. 여기 진네이 가문의 초대장이 있어요.”

“확인되셨습니다. 이분들부터 먼저모시라구!”

우리가 탄 마차는 멀리 늘어선 줄과 관계없이, 검사도 받지 않고 쾌속으로 들어갔다.

“편하네, 초대장.”

레나는 고개를 한 바퀴 돌리며 말했다.

나는 밖을 바라봤다. 이곳이 루비아가 웃던 도시, 살던 도시인가.

도로와 다리, 그 아래를 지나가는 깨끗한 물까지도 루비아가 살았던 혼적으로 느껴졌다.

함께한 시간은 짧았다. 내 삶에 커다란 도움을 준 것도 아니다.

그저 내 앞에서 몇 번이고 거듭해죽어 갔던 모습 때문에, 머릿속에깊이 박힌 것일까. 도시 구석구석을 멍하니 바라보자, 레나가 궁금한 둣이 말했다.

“뭘 그렇게 유심히 보세요?”

“별로.”

“전 영주가 도시 관리를 잘해 놨다고 하더라구요.”

영주의 딸로서 살아갔을 루비아를 떠올렸다.

레나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속삭였다. 별반 대꾸하지 않고 조용히 밖을 내다봤다.

초대장을 받은 자들은 영주의 성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었다.

안내받은 곳에 짐을 풀고, 밖에 나가 성벽을 따라 걸었다.

영주의 성은 작았다. 하지만 a자모양의 성벽 어디에서도 도시가 한눈에 들여다보였다.

“기능적인 성이네요.”

레나가 성의 구조를 칭찬했다.

‘이런 성벽 안에서, 칼로 난자되어쓰레기처럼 던져졌다는 건가.’

황제의 뜻에 반하는 레이 백작이 맞이한 최후에 대해 생각했다. 그의 딸인 루비아에 대해 생각했다.

- 저벅저벅.

그때 였다.

일부러 인기척을 내며 누군가 걸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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