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56화 (56/458)

57화 세 가지 벽 ⑵

앞서 봤던 행정관이었다. 그가 우리에게 물었다.

“안내가 필요하십니까?”

성벽을 살펴보는 게 달갑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나는 안내인에게 물었다.

“혹시. 도서관은 어디 있지?”

루비아를 생각하고 있던 탓에 나와 버린 질문이었다.

안내인이 당황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도서관. 말씀이십니까?”

“그래.”

토너먼트에 참가한다는 자가 도서관을 찾는 건 낯선 경험일 것이다.

아예 들어가 본다고 하면 어떨까.

안내인은 조금 곤란해 하더니, 늙수그레한 노인을 불러왔다. 노인이 나를 보고 말했다.

“도서관을 물어보셨다고 들었습니다만.

“들어가 볼 수는 없겠지?”

루비아가 많은 시간을 보냈던 곳이다. 거절당하겠지만, 한 번쯤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건 영주님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따로 찾으시는 책이라도 있으십니까? 빌려드리는 것 정도는 가능합니다.”

역시 안 되는 건가. 나는 루비아가 말했던 책 이름을 떠올렸다.

“시간의.

노인은 잠자코 기다렸다.

“.틈바구니에 갇힌 천재 대마법사, 라는 책이 있나?”

“소설이겠군요. 한번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한 시간 뒤.

노인이 책을 찾아서 내 방으로 들고 왔다. 책에는 적색 비늘이 덮인용과, 깨어진 모래시계가 자수 놓여있었다.

“여기 있습니다.”

“표지가 멋지군. 이렇게 빌려줘도 되는 건가?”

“어차피 보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분께서 사라지신 뒤로 장서 관엔 먼지만 쌓여 있지요. 불타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그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노인은 황급히 말을 돌렸다.

‘그분이 라면?’

뻔하다.

루비아를 말하는 것이겠지. 사서노인의 안색이 순간 침중해졌다.

아마, 이자 역시 루비아를 좋아했으리라. 그녀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제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고 성에 있던 사람들이 울면서 이야기하고.

그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자 초면임에도 불구하고, 꽤나친근하게 느껴졌다.

사서 노인은 고개를 돌렸다. 옆으로 살짝 기침을 했다.

“크홈.”

그리고는,

“다 보신 후에 불러 주십시오.”

라고 말하며 사라졌다. 발걸음에서 어딘지 죄책감이 묻어났다. 꽤 가까운 사이였을지도 모른다.

종종 책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이였을지도. 낡은 로브를 늘어뜨린 노인을 일별했다.

자수가 놓인 책을 천천히 펼쳤다.

책 제목과 저자가 드러났다.

<시간의 틈바구니에 갇힌 천재 대마법사 - 캐빈 애슈턴>

- 달그락.

‘캐빈. 애슈턴?’

이게 그 인간이 쓴 책이라고? 루비아에게 이 책 이야기를 들었을때, 저자 따위를 물은 적은 없다.

그저 루비아가 말한 책을, 기억나는 대로 한번 찾아본 것일 뿐.

이건 그저 우연일까? 나는 어느새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책 표지를 몇 번 만지작거리다가천천히 넘겼다.

내 회귀에 대해서 힌트를 줄 가능성이 없는지를 열심히 살폈다.

하지만.

<.그것이 내 서른두 번째 5월 12일이었다.>

<???나는 알고 싶었다. 이 시간은 누구를 위해서 멈추고, 다시 흐르고,

반복되는 것인가?>

<.시간은 실재하는 것인가?>

내용은 알아듣기 어려웠고, 영 와 닿는 게 없었다.

<시간과 공간이 내 인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라면, 나만이 마음을 갖고 있는 것인가? 나로 인해서 구성된 하나의 거대한 착각계인가?>

시간과 공간이 자기 인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거라고? 혼자서만 마음을 갖고 있는 거라고?

- 달그락.

나는 웃었다. 틀렸다. 일단 이 책을 읽는 나부터 마음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다.

<.스스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착각하는 무수한 창조물들은, 누구의인식 속에서 만들어진 것인가.>

‘으음.

마법사라는 종족은 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걸까.

소설이 아니라 무슨 수필처럼 써놓은 책이었다. 마치 실제로 겪었던 일이고, 경험한 일처럼.

‘괜히 기대했나.’

이 소설의 주인공은 시간에 갇혀있는 인간.

내가 루비아에게 처음 내 상황에대해서 토로했을 때, 루비아는 나에게 이 책을 이야기했다.

같은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그때는 소설에 불과한내용이라고 일축했다.

하지만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던 것같다. 이 책에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를.

혹시 힌트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문득, 루비아와 앞으로의 날에 대해 고민하던 때가 스쳐 갔다. 그 여자는 정말 완전히 묻혀 버린 건가생각하면서,

- 탁.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그 순간이었다.

- 띠링!

[동화율이 90% 이하인 상태에서캐빈 애슈턴의 첫 번째 히든 피스를 접했습니다.]

[지혜가 10 상승했습니다!]

[자기 표본 가정에 대해 ‘미약하게’

의식하기 시작합니다.]

[종족 값을 점검합니다: 해골]

[특전: 통찰(E마이너)을 획득합니다!]

‘10. 이라고? 통찰?’

상태창이 뜨는 것과 동시에.

싸한 느낌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흘러내렸다.

머릿속의 샘이 약간은 깊고 넓어진 것 같았다.

답답하던 머릿속 안개가 조금씩 걷혀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먼저 궁금해졌다.

‘대체 캐빈 애슈턴이 누구지?’

그 인간은 대체 누구길래, 그자의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지혜가 상승하게 만들 수 있는가?

게다가?.”.

‘통찰이라고?’

나는 상태창을 열어, 스킬 상세를 확인했다.

[통찰 E마이너 (패시브)]

평범한 인간 수준의 통찰력. 영원히 짓밟히도록 설정된 해골병사로서는 본래 도달할 수 없는 레벨의 통찰력이지만, 수차례의 죽음 끝에 쟁취해 냈다.

주의: <평범한 인간>을 과대평가하지 마시오.

다소 기분 나쁜 문구가 뜬 것 같지만, 뭔가 얻어내긴 한 것 같다.

어쨌거나.

대체 캐빈 애슈턴은 누구길래, 통찰이라는 스킬까지 고작 책 한 권에 심어 놓는다는 말인가?

마법사라는 존재는, 이런 걸 자연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의문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 달그락!

생각을 이어 가자, 몸이 으스스 떨려 오는 게 느껴졌다.

캐빈 애슈턴이라는 자는 마법사 중에서도 매우 놀라운 능력을 가진 자임에 분명하다.

그런 자조차, 반복되는 시간이라는 현상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이 현상의 이유를 알아낼 수 있을까?

문득 두려워졌다.

나는 도망치는 것처럼, 사서 노인에게 책을 반납했다. 그리곤 방으로 돌아갔다.

하룻밤을 묵고,

토너먼트 장소로 들어갔다.

지름 30미터 정도의 공간. 관중이 빼곡하게 둘러싸고 있다. 경기장은성의 한가운데다.

“넓군.”

“원래 연병장으로 쓰이던 곳 같아요. 넉넉하네요.”

주위는 시끄러웠다. 분위기가 뜨거워지고 있었다.

“떠들썩한데.”

“지루한 걸 날려 버리려면. 안전한 곳에서 남의 목 날아가는 걸 보는 게 최고죠. 진짜 흥분되거든요.”

“너도 그런가?”

“전 직접 자르는 쪽이에요.”

단상에 사회자가 섰다.

“그럼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지정된 참가자 분들께서는 제 위치로 걸어와 주십시오!”

참가자들은 함에서 종이를 하나씩 뽑았다. 나는 숫자 6이 나왔다. 관리인이 숫자를 기록했다. 참가자들은 다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참가자용 자리는 따로 있었다.

“영주님께서 입장하시겠습니다!”

높이 마련된 객석에 더러운 인상의 남자가 섰다.

키는 중간 정도. 머리카락은 얇았다. 마른 체형에 배만 나왔고, 눈빛이 음침하게 번들거렸다.

살아온 인생에 의해 얼굴이 망가졌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저놈인가.’

내 손은 칼자루를 잡고 있다. 서서히 힘이 들어갔다. 영주는 루비아를몇 번씩 죽게 만든 놈이다.

삼십 미터 정도 떨어져 있다. 단상위로 뛰어 올라가면 벨 수 있을지 모른다.

루비아의 복수, 아니 내 복수다.

저질러 버릴까.

“어휴, 눈빛이 왜 저래. 시궁창 쥐새끼 같네. 목에 저건 뭐야? 무슨지렁이 같은 걸 그려 놨나.

레나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나는 마음을 억눌렀다. 칼을 뽑지 않기 위해 애썼다. 여기서는 곤란하다. 의미 없는 짓이다.

죽이고 나서 내가 죽는다. 그런 건 한심하다.

영주의 주위로 하이에나처럼 생긴 남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들이 공간을 확보하고 있다.

호위하는 경비병들이다.

“경호는 더럽게 과잉이네. 하여튼 더러운 데가 많은 새끼들이 저런다니까요.”

옆에서 틱틱대는 레나의 반응이,

어쩐지 조금은 마음을 풀어 주었다.

여기서 저지르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칼자루를 쥔 손에서 힘을 풀었다. 하지만 시선은 영주에게서 떼기 힘들었다.

영주는 손을 함에 넣었다. 그리곤 종이 두 장을 뽑았다. 씩 웃었다.

사회자에게 종이를 넘겼다.

사회자는 굽실거리며 종이를 받아들었다. 참가자와 관중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6번, 진네이 가문의 세에레 자간!

17번, 놋쇠 고리 예배단원, 자콧 이삭!”

레나가 콕콕 옆구리를 찔렀다.

“1등이네요. 나가셔야죠.”

“아.

세에레 자간이 나다.

즉석에서 대충 지은 이름이다.

토너먼트 참가를 위해 이름을 지어야 했다.

후대에 인간계에 강림하는 16마왕중 두 놈의 이름을 대충 섞었다.

폭주하는 수소, 자간(Zagan)은 그리 폰의 날개를 가졌다. 달궈진 거대한 쇠발 굽으로 인간을 밟아 뭉큰하게 즙을 잘 짜내던 녀석이다.

붕괴의 세에레(seere)는 눈빛만으로 인간을 얼음덩어리로 만들던 마왕이다. 세에 레는 공간 왜곡 능력을 갖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인간의 신체 일부를, 눈앞에 소환해서 붕괴시키는 것을 즐겼다.

물론 들은 이야기다. 실제로 그랬는지 어땠는지는 모른다.

내가 접할 수 있는 정보엔 한계가 있다. 마왕군 네크로멘서들의 세뇌와, 전장의 소문뿐이다.

실제로는 무력하고, 겹겹이 보호받지 않으면 목이 날아가는 자들이라고 해도 내가 알 도리는 없다.

어쨌든.

남부 전선을 담당하던 두 마왕의 이름을 적당히 섞어 본 것이다.

“세에레 자간!”

호명된 나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별 감흥 없는 척을 하고 있지만 사실 긴장이 된다.

마음의 준비도 안 되어 있다. 하필처음이냐.

인간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을 본다면 대략적인 수준을 알 수 있을 텐데, 내가 처음이라니.

토너먼트.

어느 정도의 녀석들이 참가하는지 모른다. 천천히 검을 휘둘러서, 나를양분한 푸른 갑옷의 기사.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재의 수도회나 사자 기사단에서 평기사 하나만 보내도 내 정체가 드러나는 건 아닐까.

과연 1승이라도 건질 수 있을까.

괜히 나온 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레나를 흘끗 바라봤다. 레나는 방긋 웃었다.

“돈 다 걸었어요. 불려 줘요!”

어젯밤.

캐빈 애슈턴의 책을 읽으며 끙끙거릴 때 어딜 갔는지 영 안 보이더니,

도박판에 참여한 모양이었다.

‘긴장도 안 하나?’

레나는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투구라도 날아가면 내 정체가 드러난다. 같이 온 그녀의 목숨도 위험해질 텐데.

어쩔 수 없다. 죽으면, 레나를 위해 한 번 죽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러면 이제 빚은 없다.

기분이 깔끔해진다.

- 터벅터벅.

바스타드 소드를 어깨에 올렸다.

천천히 결투장으로 걸어갔다.

사회자가 높게 소리쳤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렀다.

“진네이 가문의 참가자, 세에레 자간! 토너먼트 첫 데뷔입니다. 과연진네이 가문의 무명 기사는 어떤 실력을 갖고 있을 것인가?”

“와아-!”

“처음 보는 놈이다!”

“죽든가 죽이든가 해라!”

“우우! 약해 보인다구!”

사람들이 함성을 질렀다.

‘시끄럽군.’

“놋쇠 고리 용병단원, 자콧 이삭!”

- 쿵!

- 쿵!

반대편.

거인이 공쿵 바닥을 울리며 걸어 나온다. 덩치가 내 두 배는 된다.

커다란 망치를 들고 있다.

성문이라도 부술 것 같다. 사람의 몸을 부수기보다, 건축물을 해체하는 데 적합한 무기로 보인다.

“해체자 이삭!”

“화끈하게 짓이겨 줘!”

“끼더?아?아?아?이?시”

정체불명의 고성까지 어디선가 터져 나온다.

“이삭 님! 지면 안 자 줄 거야!”

‘토너먼트라는 게 이렇게 요란한거였나.’

시끄럽다. 이삭이라는 놈은 손을 들어 관중을 향해 휘휘 젓는다.

- 쿠궁!

날 보고 발을 구른다.

뭐지? 몸무게를 과시하는 건가?

사회자가 규칙을 설명했다.

“항복을 받아 내거나, 상대의 무기를 떨어트리면 이기게 됩니다! 항복을 선언하면 즉시 공격을 멈춰 주십시오. 공격할 경우 실격패로 처리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둥둥둥!

북이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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