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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57화 (57/458)

58화 세 가지 벽 (3)

7북이 울렸다.

갑옷 안에 들어 있는 내 하얀 뼈가 울린다. 별다른 감흥은 없다. 살짝 진동이 느껴질 뿐이다.

심장이 있는 인간들은 다르다. 피가 끓는다는 둣 고함을 지른다. 주먹을 쥔다. 하늘 위로 흔들어 댄다.

사회자가 선언한다.

“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 부응!

상대는 바닥을 쿵쿵 딛는다. 망치를 거세게 휘두른다. 건물도 부술 것 같다.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놈이 헛바닥을 놀린다.

“세에레 자간이라고? 거참 병신 같은 이름이군. 곧 병신이 될 이름일테니, 어울리나?”

남자가 키득키득 웃어 댔다. 나는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붕괴의 세 에래. 폭주의 자간.

십 년 후, 두 마왕의 이름은 모든 인간이 알게 된다.

눈앞에 선 남자의 수준으로 보면,

십 년 후까지 살아남을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이지만.

남자는 무기를 휘둘렀다. 수준이한 번에 파악된다. 그에게 물었다.

“너 정도면 얼마나 강하냐?”

“뭐야? 크하하하! 널 부술 수 있을 만큼은 충분히 강하지.”

그가 과장되게 웃었다. 주먹을 꾹쥐어 보이곤, 한 손으로 거대한 망치를 높이 든다. 헛점밖에 없다.

- 툭.

나는 아예 칼을 늘어뜨렸다. 그런 채로 물었다.

“선심 쓰는 셈 치고 대답 좀 해봐. 너 정도면 얼마나 강한 거냐?”

“몸으로 겪어 봐라.!”

- 부응!

남자는 망치를 거세게 휘둘렀다.

머리 위로 똑바로 날아오는 망치를 피한 뒤, 남자의 안쪽으로 돌아 들어갔다.

- 퍽!

그의 손목을 향해 바스타드 소드를강하게 내리쳤다. 피에 열광하는 인간 군중들의 열기를 더해 주기 싫었다. 검면을 썼다.

- 쨍!

“끄아악!”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망치를 손에서 놓았다.

- 쿵!

뒤로 자빠졌다. 거대한 망치를 발로 밟은 채 물었다.

“너 정도면 얼마나 강한 거냐?”

“으. 으으으 아아.

이 녀석은 방금 전의 격돌에서 수준 차이를 제대로 읽어 내지 못한 것 같았다.

다시 망치를 잡으려 들었다. 건틀렛을 낀 손을, 발로 콱 밟아 버렸다.

“끄익! 끄우어어어!”

“너 정도면 얼마나 강한 거냐?”

이번에도 대답은 없다. 머리가 모자란 놈인 것 같다.

一 퍼걱!

칼을 휘둘렀다. 망치 자루를 잘라버렸다. 이제 긴 나무 자루와 거대한 끄트머리만 남았다.

인간들이 제대로 달아오르기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채 십오 초가지 나지 않았다.

사회자가 황급히 손을 들어,

“세, 세에레 자간, 승!”

내 승리를 선언한다. 커다란 대진표에서 나를 한 단계 위로 올렸다.

잠시 침묵이 있었다.

하지만 잠시 이어진 침묵을 덮듯,

관중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와아아아!”

“멋지다!”

“엄청 세잖아!”

군중들은 금방 내 존재에 익숙해져환호했다. 피를 뿌리지 않은 것에 불평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존중할 만한 의견은 아니었다.

피는 지겨울 만큼 뿌려지게 된다.

주위를 쭉 둘러봤다. 타인의 피와 폭력에 탐욕스런 군중이 보인다. 나는 저들의 운명을 안다.

9년 전쟁은 곧 일어난다.

눈앞에 보이는,

제국 평민들의 피.

자유연합 시민들의 피. 엠버 아나키스트들의 피가 뿌려진다.

군중 자신의 피를 뿌린다.

혹, 인간들 간에 벌어지는 9년 전쟁에서 살아남더라도.

이후에는 16마왕이 강림한다.

그때도 살아남는 건 더 적은 숫자가 될 거다.

내가 그들에 대해 갖는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와아 아아아.!”

새로 부상한 강자를 향해 응원과환호성이 쏟아진다. 내 쪽에 줄이라도 서는 것 같은 환호성.

내 승리는 저들의 삶에 어떤 도옴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환호한다. 내 편이 되어 즐거워한다.

이때만이라도, 승자의 입장에 이입하고 싶은 걸지도 모른다.

물론, 명백한 패자들도 많다.

“아이고, 내 돈!”

방금 쓰러진 녀석의 승리에 걸었는지, 내 돈 내 돈 하면서 입을 쩍 벌리고 울부짖는 도박사들도 있다.

나는 압도적인 환호와 비적비적 새어 나오는 유를 모두 무시했다.

곧바로 레나에게 돌아갔다.

“생각보다 너무 쉽군.”

여자는 나를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배당이 40 : 1 이었어요! 50로티를 걸었으니까. 20세이론이 우리 거예요!”

돈 좀 벌어다 줬다, 이건가.

“전부 다 저 덩치에게 건 건가?”

“아, 그건 4 : 1 이었구요. 우승배당이 40 : 1 이에요.”

“뭐라고?”

“다 이길 거잖아요, 그렇죠?”

레나가 씩 웃었다. 이걸 정말 어떻게 하나.

하지만 일부러 지는 것도 만만치는 않다. 지는 것도 적당해야 져 줄 수가 있는 법이다.

- 투둑!

반으로 동강 난 할 버드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검면으로 얻어맞은 두 번째 상대의 투구는 슬쩍 찌그러져 있었다. 제대로 힘을 줘서 쳤으면 맞아서 죽어버렸을 거다.

사망자가 나오면 시끄러워진다. 물론 관중들은 열광한다. 그런 게 싫었다. 적당히 패 주기만 했다.

“끄. 끄으으.

남자는 몇 번 뒷걸음치다가,

- 털썩!

홁바닥에 그대로 주저앉았다.

‘별거 아니로군.’

싸움은 쉽게 끝났다. 거대한 덩치고, 허공에 할 버드를 획획 휘두르던 남자도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사회자가 숨을 몰아쉬며 외쳤다.

“승자! 세에레. 자간!”

“와아아아!”

간단히 2승을 챙겼다.

군중이 함성을 질렀다. 박수 소리가 울렸다. 몇몇은 발을 굴렀다. 둥둥둥 북이 쳐졌다.

‘수준 떨어지는군.’

그날의 싸움은 그 두 번으로 끝이었다. 나를 보고 인간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레나가 돌아오는 나를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밤에 연락이 올 거예요.”

“무슨 연락?”

“저는 다른 방에 있을게요. 한번 느긋하게 즐겨 보세요.”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레나는 먼저 슬쩍 빠져나갔다. 도박판에서무언가를 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혼자서 거리로 걸어 나갔다.

“일합一合의 자간이다!”

날 부르는 건가?

갑옷에 둘러싸여 있었음에도, 나를알아보는 인간들이 많았다.

“오오, 저 사람이 바로.

“활약이 대단하던데. 두 상대 모두 한 번에 제압해 버렸어.”

“와아아!”

몇몇 아이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어떤 어린 남자아이는 어미의 손을 뿌리치고 내게로 달려온다.

부모가 말릴 새도 없이, 작은 손이내 차가운 건틀렛을 잡는다.

“멋있어요!”

남자아이의 눈이 반짝인다.

멋있다고?

뭐가 멋있다는 걸까? 속이 조금 울렁거리는 기분이 들었다. 인간이란 이런 종족인가.

적당히 손을 놓아 버리곤 영주의성으로 돌아갔다. 안내인이 황급히 나에게 다가왔다.

“자간 님, 한참을 찾았습니다.”

“나를?”

“예. 무희들과 저녁 만찬이 준비되어 있으니, 부디 참석을.

“싫다.”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안내인은 제법 끈질겼다.

“오늘 벌써 16강이 정해졌습니다.

부디 자리를 빛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밖에서 식사하시는 게 꺼려지신다면, 무희만이라도 따로 방으로 보내 드릴까요?”

“됐다니까.”

“부디. 사람 하나 살린다고 생각하시고, 부탁드립니다. 모시지 못하면 영주님이 제 목을 칠겁니다.”

안내인의 표정은 제법 진지했다.

이 안내인이라는 자도, 루비아를 좋아했던 ‘성안 사람’ 가운데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현 영주에게 빌붙어 근근이 살아가고 있겠지만.

나는 끝까지 거절하려다가, 오히려그편이 귀찮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옷은 입고 있겠다. 화상이 심한편이라서.”

적당한 핑계를 댔다. 납득한 것 같다. 안내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며,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안내인을 따라 연회장으로 걸어갔다. 영주에게서 가장 떨어진 자리,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칼을 차고 있어도 별다른 제지는 없었다.

상석에 앉은 영주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를 흘끗흘끗 바라보다가, 참석자들을 향해 말했다.

“자,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 딩딩디딩 딩딩딩디리리?? 리리리리?? 리~ 딩디리딩딩딩?

영주의 말과 함께 음악이 시작되었다.

안이 다 비치는 옷을 입은 여자들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춤을 추면서 연회장을 맴돌았다.

이게 인간의 연회라는 건가.

다 같이 떠들썩하게 즐기는 게 아니었다.

딱딱한 자세로 눈치를 보아 가며 음악을 연주하는 악사들.

안이 다 비치는 옷 아래로 손을 넣어 엉덩이와 가슴을 주무르는 손길들에, 싫은 기색도 못 내비치고 몸을 제공하는 무희들.

명백히 즐기는 쪽과 즐김 당하는 쪽이 나누어져 있었다.

식탁 위에 통째로 구워진 새들, 짐승들의 시체에 대해서는 말할 나위도 없었다.

몹시 인간다운 연회였다. 슬쩍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몸을 빼려는데영주가 나를 불렀다.

“기사 자간! 본 영주가 주최한 토너먼트에 참가해 주어서 영광이오.

어디서 수행했는지 물어보아도 되겠소?”

개기름이 흐르는 얼굴을 씰룩거리며 녀석이 짐짓 뭐라도 되는 둣, 내게 물었다.

‘베어 버릴까?’

곤란하다.

놈과 나는 거리가 멀다. 놈의 주변에는 경비병 여덟이 흐트러지지 않고 서서 호위하고 있다.

참가자들이 언제 영주를 공격할지모른다는 듯한 자세로, 각각 칼자루에 손을 얹고 상황을 날카롭게 주시하고 있다. 이 장소에서 취하지 않은 것은 오직 나와 그 여덟 명의호위뿐이었다.

나는 호위들을 얼굴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토너먼트에서 단상을 호위하던 하이에나처럼 생긴 놈들이다.

풍기는 분위기는 유블람의 경비병들과 비슷하다. 어디서 저런 놈들을 찍어 내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다.

“특별히 수행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혼자서 익혔지요.”

나는 적당히 존댓말로 대꾸했다.

슬슬 짜증이 나긴 했지만, 여기서다 뒤집어엎을 생각이 아니라면 대립 각을 세우는 건 멍청한 짓이다.

“하하하! 정말 대단하구려. 도시에 들어온 이후에도 줄곧 경계를 풀지 않고 있다고 들었소. 대단한 태도요.

흠모하는 마음이 생길 정도야.”

왜 나한테 친한 척인가 싶었지만,

영주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연한 것이었다. 제 형을 죽이고, 그 혈육을 쫓아내고 차지한 영주 위位다.

정통성 따위는 없다. 불안정하다.

힘과 공포로만 유지해야 한다.

애초에 토너먼트를 연 것도, 쓸 만한 칼을 영입하려는 의도겠지.

나는 영주에게 적당히 대꾸하며 자리를 빠져나왔다. 방에 막 들어갔을 때였다.

“누구냐.”

나는 칼자루에 손을 얹었다.

침대 옆에는 투명한 옷을 입은 여자가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암살자인가?’

“영주님의 명을 받고 모시러 왔습니다. 부디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해주시길.

나는 영주의 수작에 헛웃음이 지어졌다.

이게 아마, 영주라는 자가 다른 인간 수컷들과 유대 관계를 구축하는 방식일 거다.

그들의 마음을 사는 방식이겠지.

“꺼져라.”

안이 다 들여다보이는 옷을 입은 여자는. 무릎을 꿇은 채 오들오들 떨기만 했다.

“저, 저 잘하는데요.

- 똑똑.

그 순간 뒤에서 문이 열렸다. 레나였다.

“적당히 재워 주고 보내요. 그냥 쫓아 보내면 성하지 못할 테니까.”

“성하지 못한다고?”

“죄, 죄송합니다.r여자가 고개를 조아렸다. 레나가여자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그럴 거 없어요. 남 일 같지 않아서 그래요.”

레나는 여자의 옷을 벗겨서 내게 등을 보여 줬다. 둥에는 채찍질로 살이 찢어진 자국이 가득했다.

레나가 말을 이었다.

“손님을 제대로 못 모셨다고 쫓겨나면, 최소한 이런 꼴을 당하죠. 더심한 꼴을 당할 때도 많고.”

이곳저곳 여자의 몸을 살피던 레나가 혀를 쯧쯧 찼다.

“어휴, 이곳저곳 많이도 고문했네.

침대 다 차지하고 자도 돼요. 어차피 여기 이쪽은, 잠 안 자거든요.”

여자는 눈치를 보며 떨기만 했다.

나는 레나를 보고 물었다.

“왜 갑자기 왔지?”

“이런 일이 있을 거 같아서 왔죠.

전 다시 가요. 수익 극대화를 위해서. 좋은 시간 되세요!”

레나가 다시 방 밖으로 사라졌다.

여자는 침대에 눕지 않고,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떨고 있었다. 레나가 벗긴 옷도 올리지 못한 채 그대로였다.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누워라.”

“.네.”

여자가 가만히 침대에 누웠다. 나는 이불을 덮어 주고 말했다.

“이제 자면 되겠군. 나는 없는 셈치고 편하게 자라.”

이 여자에게 루비아에 대해서 물어볼까 했지만, 역시 찝찝한 일이라 관뒀다.

그녀 본인에게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생면부지의 여자와 함께, 어색한밤이 지나갔다.

침묵 속에서 여자가 몸을 잔뜩 굳히고 있는게 느껴졌다. 당연하다면당연하겠지만, 잠들지 못하고 있는것 같았다.

벽에 기대어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한심한 기분이 들어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식 는?”

“죄, 죄송합니다.!”

한층 더 긴장한 기색이 느껴진다.

무슨 말을 못 걸겠군.

어쩐지 그녀의 처지가 예전의 나와 비슷하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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