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59화 (59/458)

60화 세 가지 벽 (5)

요란스럽다. 야유와 휘파람, 드문드문 터져 나오는 박수.

그 사이를 크리스티나는 걷는다.

레나가 내 옆에 몸을 바짝 붙인다.

낮게 속삭인다.

“아마, 오후에 저 여자랑 싸우실 거예요. 크리스티나랑.”

“다음 상대인가?”

“아니요, 다다음이죠. 다음 전투는 지금이거든요.”

- 둥! 둥! 둥!

북이 울렸다. 내 차례였다.

“자간! 자간! 자간!”

군중들이 나를 연호한다.

10년 뒤 그들을 짓밟아 죽일, 그리 폰의 날개를 단 거대한 수소의 이름을 연호했다.

마왕의 것을 따 임시로 지은 이름이다. 내가 만들어 낸 작은 부조리 속을 걸어갔다. 결투장으로.

환호. 그 속에 요구가 섞였다.

“투구를 벗고 싸워라!”

“다들 얼굴 좀 보자! 또 여자가 있는지 보자구! 와하하핫!”

크리스티나의 정체가 드러났다. 그게 군중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녀를 원망해야 할까. 의심의 눈초리까지는 아니지만, 내게도 자연스럽게 관심이 쏟아진다. 물론 조금도 달갑지 않다.

인간의 도시 한가운데다. 정체가 드러나면 곧바로 죽는다.

상황이.

‘빨리 빠지는 게 낫겠군.’

반대편에서 남자가 걸어왔다. 이번전투의 상대다.

방패와 곡도를 들었다. 싸우는 모습을 본 적 있다. 방패는 작고 두꺼운 원형. 손 부위가 둥그렇게 튀어나와 있다.

‘저걸 글러브처럼 썼지.’

제압한 상태에서, 상대의 투구를 두드려 찌그러뜨리던 게 기억났다.

체구는 작지만 힘이 좋다. 기술도 있다. 나는 남자에게 물었다. 세 번째 질문이었다.

“너는 어느 정도지?”

남자는 내 질문에 당황했다. 옆구리에 손을 짚는다.

“너는 어느 정도 강한가?”

그가 피식 웃었다.

“나? 흐음. 그건 왜 묻냐? 아마 너보다는 약할 거다.”

제법 공손한 태도다. 앞서 두 번의내 싸움을 본 것 같았다. 그가 말을이었다.

“네가 때려눕힌 놈들, 나도 대충 아는 놈들이다. 너처럼 한 방에 이길 자신은 없어.”

인간의 칭찬이 낯설다. 어쨌건 내가 원하는 대답은 아니다. 질문을 바꿔 보기로 했다.

“나는. 어느 정도 강하지?”

남자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꾸 웃기는 질문을 하는군. 어디 산에라도 처박혀 있다가 왔나?”

“비슷하다고 해 두지.”

“너 정도면. 초인이다.”

“초인?”

“그래. 어느 영지에 가도 좋은 대우를 받을 거야. 백작가 치안대장정도는 간단하게 꿰찰 수 있겠지.”

그는 내 질문에 순순히 대답했다.

제법 호의적이다. 강자를 알아본다는 건가.

강자라.

문득,

푸른 갑옷의 남자가 떠올랐다.

레나에게 들은 이야기를 되짚어 보았다.

‘.운이 좋으신 거죠. 눈앞에서 제국 4검주劍主 중 하나를 만나고도 살아남으신 거라면.

남자가 점점 더 거리를 좁혀 온다.

슬슬 공격해 들어오려는 듯하다. 제국 4검주라.

나는 툭 던지듯 물었다.

“제국 4검주에 비하면 어떤가?”

단순한 질문이었다.

그 순간.

“푸하하하하!”

남자가 멈췄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폭발하듯 웃었다. 짓쳐 오는 자세를 흩뜨렸다. 입을 열었다.

“미쳐 버리기라도 한 건가?”

“.무슨 소리지?”

“왜 갑자기 헛소리야, 당신?”

“헛소리?”

“그래. 기氣를 쓰는 수준부터는 이런 거. 아무 의미 없잖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검 끝에 마력만 흐르게 해도 강철을 두부처럼 자르는데, 강기로 온몸을 두른 마스터들을 자기와 비교해?

하. 하하하.

‘강철을 두부처럼 자른다고? 그때 그게. 검기였나.’

아주 천천히 휘두른 검으로, 갑옷째로 나를 반으로 쪼개던 남자.

다시 떠올리니 소름이 끼쳤다. 그런 놈이 세상에 얼마나 있는 걸까.

최소 3명은 더 있다는 이야기다.

최소한.

그 순간이었다.

- 털썩.

남자는 칼을 내렸다.

“관둬야겠군. 사회자, 난 못 해 먹겠소. 기권이오.”

‘뭐지?’

병적인 심경 변화가 느껴진다. 나는 별말도 하지 않았는데.

“기권이라니까, 기권. 안 해.”

남자가 연신 말을 반복한다. 사회자가 당황했다.

“참가자 테발드, 정말 기권이 확실한가? 정말로.

테발드라 불린 남자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데서 싸워 봤자. 뭐 하오?

저 미친 자가 이기라고 하쇼.”

그를 바라봤다. 눈빛이 회한에 차있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남자는 터벅터벅 밖으로 걸어 나갔다. 어쩐지 쓸쓸하고 괴로워 보였다.

황당한 승부였다.

“? ? ??rn I I一’r 으“뭐, 뭐야!”

“재미없다-!”

군중들이 일제히 야유했다. 그는 야유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넘겼다. 곧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모르겠군.’

“숭자는.!”

내 승리가 선언됐다. 야유는 계속이어 졌다. 나는 터덜터덜 안으로 돌아왔다.

레나가 눈을 빛내며 물었다.

“무슨 얘기 했어요? 시끄러워서 영안 들렸는데.”

“내가 얼마나 강하냐고 물었다.”

“그래서요?”

“제법 강하다고 하더군. 그래서 검주들만큼 강하냐고 물었지. 검기가 어쩌고 하면서, 이런 건 다 의미 없다면서 관 두자더군.”

“하핫.

레나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히 올리며 웃었다.

“그랬군요. 그래도 저런 반응은 격하네요. 기권이라니.”

“무슨 일이지?”

“글쎄요.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마 상처라도 자극한 게 아닐까요?”

“상처?”

“기氣는 재능이에요. 평생 그걸 못 느끼는 자들이 거의 다죠.”

“그런가.”

“처음부터 포기하면 좋은데. 어중간하게 뛰어난 자들이 있어요.”

“저 남자 같은?”

“네. 그럼 고통스럽죠. 될 것 같기도 한데, 평생 잡힐락 말락, 보일락말락 하는 거예요. 그 경지가.”

“으음.”

“그러면 미쳐 버리는 거죠. 아예 감도 못 잡는 게 낫지.”

알 둣, 말 듯한 이야기였다.

“눈앞에서 넘지 못한 벽인 거죠.

평생 포기하지도 못하고, 생각하면온몸이 파랗게 아파질 거 같고.”

“계속 시도해 보면 되지 않나? 그러면 언젠가는.

“더 고통스러워질 뿐이죠. 차라리그 시간에 근력이나 기술을 키우는 게 낫지. 포기가 늦어질수록 고통은더 커지죠.”

“으음.”

“검주劍主들이 그 정점이죠. 그래도 저분이 무척 예민하긴 하네. 언급만으로 기권이라니.”

레나는 가판에서 산딸기를 입에 넣으며 옆에서 말을 이어 갔다.

“마음에 뭐가 많이 쌓여 있었나 봐요. 뭐, 편해서 우리야 좋죠.”

머릿속이 복잡했다. 가만히 생각하다가, 엉뚱한 소리를 했다.

“.다음 경기는 진다.”

하지만 레나는 즉각 이해한다.

“여기서 빠지시려구요? 하긴.

“그래. 다들 투구 안에 관심이 많더군. 슬슬 끝내고 떠나지.”

“역시 그게 좋겠어요. 전 돈 빼고을게요!”

이해력이 빠르다.

레나가 바깥으로 사라졌다. 도박판이 벌어지는 곳으로 간 걸까.

레나가 떠나자, 누군가가 근처로 다가왔다. 인간 암컷이다.

“어머! 이 갑옷 안은 또 얼마나 단단할지 궁금해지네요.”

입가에 열은 미소를 띤 인간 암컷이, 옆에서 엉덩이를 썰룩거린다.

‘뭐 어쩌라는 것이지?’

“가까이서 보니 좋네요. 방금 그 여성분과는 어떤 사이신가요?”

드레스를 입은 여자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눈가의 화장이 짙었다. 눈을 크게 강조하는 화장이었다. 어차피 눈구멍의 크기는 변하지 다.

두개골은 그대로다. 저런 분칠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의아했다.

한껏 치장한 인간 암컷이 내게 집요하게 치근덕거린다.

인간의 짝짓기는 규칙이 복잡한 것 같기도 하다가도, 아무 규칙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얀 목을 내보이며 제 딴에는 유혹하는 것 같다. 목을 잡고 멀리 던져 버리기에도 곤란한 환경이다.

나는 허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완전히 무시했다.

“쳇. 재미없다아.”

눈에 분칠을 한 여자가 물러갔다.

몇몇 여자들이 더 다녀갔다.

“가요, 간다구요.

반응은 비슷했다. 폭력과 피의 현장에서 잔뜩 흥분한 여자들은 혼자 있는 나에게 치근덕거리다, 완전히무시하자 제풀에 지쳐 사라졌다.

레나가 도착했다.

양손에 든 가죽 주머니에서, 은화짤랑거리는 소리가 청량하다.

“패배에 거는 편이 낫지 않았나?

한 번 더 불릴 수 있었을 텐데.”

“어색하지 않게 질 자신 있으세요?

승부 조작이라고 더 시끄러워질 거예요. 돈을 빼기도, 몸을 빼기도 어려워질 거구요. 빠질 거라면 그 냥돈을 빼는 게 나아요.”

“그런가.”

깔끔하게 빠지는 게 목적이다. 그녀의 말이 현명하다고 생각했다.

다음 경기가 시작됐다.

“세에레. 자간! 그 상대는. 크리스티나!”

사회자도, 관중들도 한차례 와하하핫, 하고 웃었다. 크리스티나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나는 칼을 아래로 내렸다.

“기사 크리스티나.”

내 부름에 그녀가 움찔했다.

투구 사이로 비치는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름을 부른 것뿐이다. 흠칫할 만한 말은 하지 않았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투구사이로 순박한 음성이 새어 나왔다.

“왜. 그러나. 기사 세에레 자간.”

“최선을 다해 봐라.”

나는 강하게 칼을 내리쳤다. 바람소리가 군중들의 환호성을 갈랐다.

- 쨍!

‘제법이군.’

아직 누구도 막지 못했던 일격이 쇠몽둥이 같은 대검에 막혔다. 곧바로 반격이 들어왔다.

- 쌔앵!

그녀의 대검이 공기를 강하게 휘둘러졌다. 날카로운 금속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경기장에 울렸다.

피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강하고,

빨랐다. 순발력도 제법이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내가 더 빠르고 강했다. 서른 합정도를 어울려 줬다. 그녀의 검은 내 몸에 닿지 못했다.

“하압!”

크리스티나가 처음으로 기합을 넣었다. 대검이 빠르게 세로로 내리쳐졌다. 나는 옆으로 비켜섰다. 간신히검 등을 쳐냈다.

제법 아슬아슬했다.

‘맞았으면 위험했겠군.’

투구가 찌그러지고, 모습이 드러났을 거다.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런 힘을 왜 쓰지 않았나?”

그녀가 부끄러운 둣 더듬거리며 말을 꺼냈다.

“기합을. 넣어야 해서.

“넣으면 되지 않나?”

“제가 .인 걸 알아챌 겁니다.”

목소리가 갑자기 작아졌다. 단어가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여자라고 한 건가? 여자인 걸 알아첼 거라고? 이 인간 암컷은 자기를여자라고 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나는 좀 더 도발하기로 했다.

“뭘 어쨌다는 건지 모르겠군. 그런걸 생각할 정도로 여유로운가?”

그녀가 좀 더 힘을 내어 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져 줄 생각이다.

하지만 그것도 상대가 웬만큼 해줘야 자연스럽다.

핀잔에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눈빛이 변했다. 자세가 낮아진다. 작은 침음이 흐른다.

‘됐다.’

나는 칼을 잡은 손에 슬쩍 힘을 했다. 저 정도 힘과 속도라면, 어색하지 않게 무기를 놓칠 수 있다.

“흐압!”

그녀가 달려들었다. 몸을 한 바퀴 돌렸다. 원심력에 기합을 더한다. 대검을 휘둘렀다. 공기가 세차게 찢어졌다.

- 파리릭!

? 쩡!

칼과 칼이 맞부딪쳤다. 하지만 중량과 속도가 달랐다. 내가 가볍게 쥔 칼은 대검에 맞았다. 허공으로 멀리 튕겨 날아갔다.

- 퍽!

계산대로다. 칼이 멀리 떨어졌다.

“이, 이게 무슨.!”

그녀가 당황했다. 힘을 뺀 걸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어깨를 으쪽하고말했다.

“패자는 이만 퇴장하도록 하지.”

옆으로 걸어갔다. 몇 바퀴 돌아가바닥에 멸어진 검을 주웠다. 그리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사회자는 잠시 당황했다. 하지만 큰 망설임 없이, 크리스티나의 승리를 선언했다.

나는 토너먼트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도시 밖으로 나갈 생각이다.

레나가 옆에서 낮게 휘파람을 불며 걸었다. 그녀에게 물었다.

“중간에 그만뒀다. 손해가 큰가?”

“네? 손해요?”

레나가 품에서 꽉 찬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슬쩍 끈을 늦춰 안을 보였다. 짤랑거리는 은화가 안에 가득“손해라구요? 이게 다 이틀 만에번거라구요! 우린 이제 부자예요!”

“ ? ≫

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지만, 즐거운 분위기를 셸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냥 놔뒀다.

대신 생각에 잠겼다. 부딪힌 몇몇 인간들에 대해 생각했다.

‘웬만한 인간은 이기는 건가?“

토너먼트다. 지방 영지이긴 하지만,

꽤 많은 인간이 모였다.

내 상대가 될 만한 자는 없었다.

쭉 갔으면 우승이었을 거다.

자신감을 가져도 될까.

강해진 건 알고 있었다.

이 정도로, 웬만한 인간들을 모아놓아도 상대가 없을 거라는 생각은하지 못했지만.

다만.

기권한 남자의 말은 걸린다.

검기를 쓰는 놈들에 비교하면, 이런 건 전부 다 장난이라는 말.

나를 갑옷째 가르던 녀석이 쓰던 게 검기인 것은 확실하다.

인간들 중에 그런 자들이 얼마나더 있을까. 거기까지는 어떻게 도달해야 하는 걸까.

역시, 빨리 던전을 다녀야 한다. 마음이 조금 급해졌다.

‘으음.

그때 였다.

“자, 잠시 이야기 좀 합시다!”

몇 명의 남자가 나를 둘러쌌다. 반사적으로 칼자루에 손을 가져갔다.

그러나 적의는 없어 보였고, 모두비 전투원이었다.

“뭔가?”

주위를 둘러봤다.

“기사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배가 불뚝 나온, 중년의 인간 수컷들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비단으로 된 옷을 걸친 자들이었다. 얼굴에서는 기름이 흘렀다.

“잠시만 이야기를 들어 주십시오!

에라스트 영주와 계약하지 않으시려고 나가신 거라면, 부디 저희 가문과.!”

남자들이 서로 앞다뤄 자기 얘기를 했다.

모두 비슷한 이야기다. 자신들의 전력이 되어 달라는 이야기였다.

“이미 계약이 되어 있어서.

레나가 남자들을 제지할 때였다.

“어허, 지금 이분에게 이야기하고 있지 않나?”

그때 였다.

“기, 기사 세에레 자간!”

임시로 지은 가명을 애타게 부르며, 누군가가 뒤에서 달려오는 목소리가 들렸다.

크리스티나였다.

갑옷 일부는 벗은 채로 달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투구는 그대로였다.

나는 손을 내저었다.

주위의 유지들과 상인들을 물러나게 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그녀가 내게 물었다.

“왜, 왜 승리를 양보한 거요?”

투구 사이로 보이는 검은 눈동자가 흔들렸다.

“할 일이 있어서. 여기 영주가 어떤 자인지 알고 온 건가?”

“그렇지는 않소. 나는 그저.

“영주를 조심해라. 위험한 무리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게 무슨 말씀이오.?”

“경고는 거기까지 해 두지.”

어차피 그녀에게 대안을 제시할 수있는 처지도 아니다.

짤막하게 뱉은 뒤 그녀에게 물었다. 궁금한 점이 있었다.

”토너먼트 경기장도 아닌데, 투구는 왜 계속 쓰고 있지?”

그녀는 목소리를 낮췄다.

“내 모습이. 보기 흉하지 않소.”

“무슨 기준인가?”

“그거야.

“얼굴을 가리고 다니는 거라면 주위에서 나에게 돈을 제시하던 자들을 바라봤다.

얼굴에는 기름기가 흐르고 배가 나와 뒤뚱거렸다.

덩치는 크지만, 군살 없이 몸 전체가 탄탄하고 두꺼운 근육으로 뒤덮인 크리스티나와 대조적이었다.

“얼굴이나 몸을 가린다면 저들이 가려야겠지.”

“당당해져라.”

크리스티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멍하니 있는 그녀를 남겨 두고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한참을 걷다슬쩍 뒤를 돌아봤다.

크리스티나는 그제야 투구를 벗으려다가, 멈칫하고 있었다.

“투구를 벗지 못하는군.”

“사람은 쉽게 못 변하거든요. 적어도.

“적어도?”

“시간이 좀 필요하겠죠.”

레나는 아무렇게나 지어낸 듯한 곡조로 휘파람을 불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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