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화 인간성의 승리 (6)
[질주의 유효 시간이 끝났습니다.]
스킬이 끝났다. 아쉬움은 없다.
상황은 전부 정리됐다. <질주>의유효 시간은 10분. 그 사이 스무 명의 인간을 정리했다.
모두 활을 쏘았고, 화살은 뼈 사이사이 빈 공간을 뚫었다. 놈들이 준비한 무기는 나를 상대하는 데 최악의 상성이었다.
관통 저항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제외하더라도, 해골을 상대하는 데화살은 전혀 좋은 무기가 아니다.
물론 상성의 우위만으로는 이 압도적인 상황이 전부 설명되지 않는다.
그만큼 내가 강해진 거다.
제대로 몸 눕힐 관도 하나 없이,
요행히 부서지고 요행히 다시 일어나던 예전과는 다르다.
평범한 레벨 1 해골병사라면 고블린 하나 이기지 못하겠지만, 지금은그 고블린을 착취하는 인간들을 떼로 쓸어버리고 있다.
바닥에 쓰러진 시체를 훑어본다,
놈들이 석궁이 아니라 메이스와 방패를 들고 달려들었어도 결과는 같았을 거다.
수고롭고 체력은 깎였겠지만, 못이길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 이쪽으로.
항복한 세 남자가 굽실거린다.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가엾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안내한다.
한 시간 전을 생각한다.
잔인한 웃음을 지으며 쇠몽둥이로 다른 산적들을 쳐 죽이던 표정이 그들의 얼굴에 겹쳐진다.
인간의 외면은 복잡하다.
상황에 따라 표정과 태도는 꽤나 다채롭게 변한다.
반면 내면은 단순하다. 작동 논리는 언제나 명쾌해 보인다.
약자에게는 빼앗고 벌을 주고 함부로 부리며, 강자에게는 바치고 빌붙고 굽실거린다.
떠오르는 생각을 슬쩍 정리하며,
안내하는 남자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야기를 좀 듣고 싶은데.”
“예, 예. 뭐든 물어보십쇼!”
놈들이 음찔거리며 대답한다.
슬라임이 나에게 괜히 이 의뢰를 넘긴 게 아니다.
어디서 받은 것도 아니고, 그냥 슬라임 자신이 만들어 낸 의뢰일지도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크론 신사회에 대해 궁금해 하는 나에 대한 배려다.
내가 조직의 말단이 있는 곳을 치게 만든 것이다.
당연히 활용해야 한다.
“<우리>조직에 대해 아는 대로말해 봐라.”
“으으. 그게.
우리 조직이란 네크론 신사회다.
나는 당연히 네크론의 감독관이 아니다. 나도 안다. 놈들도 안다.
그래도 혹시나 했던 걸까?
노골적으로 티를 내며 물어보자 놈들이 쭈햇쭈뼛거린다. 놈들을 슬쩍 부추긴다.
“큰 도시마다 지부가 있는 인신매매 집단.”
“경비대도 장악했고, 고문할 때 귀에 벌레 넣기를 좋아하지. 청부 살인도, 마약 제조도 하고.”
유블람의 전 여관 주인을 만나며 알아낸 정보를 풀어놓는다.
거기까지.
내가 아는 건 그 정도다.
“.히꼭!”
한 놈이 갑자기 딸꾹질을 했다. 다른 놈이 말을 받는다.
“다 아시는 거 같습니다만. 저희도 뭐, 잘 모릅니다요.”
- 스르릉.
나는 칼을 빼 들었다. 놈들의 낯빛이 까맣게 변했다. 눈앞에서 동료 열일곱을 죽였다.
셋 정도는 죽지도 살지도 못하게 만들 수 있다고, 알아서 상상하는 듯한 눈빛이다.
나는 고통을 주는 방법에 대해 자세히는 모른다. 거기에 대해서는 눈앞의 세 인간이 잘 알 거다. 훨씬 풍부한 상상력을 갖고 있겠지.
놈들이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저희는 정식 단원도 아니라서.
정말, 정말입니다!”
“가, 감독관이 머지않아 올 겁니다! 그놈은 뭘 좀 알지 않겠습니까?
놈을 함정에 빠뜨리실 계획이라면저희가, 저희가 돕겠습니다요!”
- 달그락.
나는 피식거리며 물었다.
“감독관은 왜 오는 거지?”
“그, 그게. 혈석 판매 루트를 만들어 주려고 하는 겁니다. 연금술사와 연결시켜 주려고. 콧대 높은 연금술사들이 저희 따위와 직접 만날 리 없으니까요.”
‘연금술사라.
특급 연금술사는 마법사의 의뢰를 직접 수행하거나, 곁에서 보조하는 역할을 맡는다.
본신의 강한 힘은 없지만, 인류의가장 윗줄에게 쓰여지는 만큼 자부심이 자못 대단하다.
아케인 Arcane을 느낄 수 없다면 원천적으로 사용 불가능한 마법과달리, 연금술은 누구나 시도해 볼 수는 있다.
자양강장제나 만드는 거리의 연금술사도 콧대는 제법 높다는 건가.
‘음.
“좋아. 안쪽 놈들은 뭘 좀 아나?”
“열 명이 있습니다. 하지만, 놈들 도아는 게 없습니다. 그. 방화범 출신이. 조장인데, 불 지르고 고문하는 것만 좋아하지. 머리는 텅텅 비었습니다요.”
칼자국이 제 머리를 텅, 하고 때려보이며 말했다.
“조장?”
“예. 10명씩 3교대로 사냥을 합니다. 두 조는 쉬고 있었고, 다른 한조가 지금 들어가 있습니다.”
앞의 두 조는, 이미 차가운 동굴바닥에 누워 단체로 쉬는 중이다.
“가지.”
세 놈을 앞세웠다. 계속 들어갔다.
안쪽에서 서서히 다른 공간이 펼쳐졌다. 위와 좌우가 확 넓어졌다.
하늘은 안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동굴 안쪽에 수풀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학살당한 고블린시체들이 곳곳에 널려 있다.
“시체뿐이군.”
세 남자는 조금씩 떨었다.
저질러 버린 살해를 내가 벌하기라도 한다는 것처럼. 물론 그럴 생각은 전혀 없다.
“아, 아까 말씀드렸던 놈들이 한 짓입니다요.”
괜한 변명은 무시했다.
잠시 더 걸어갔다. 무언가 익으며 타닥타닥 타는 소리,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렸다.
- 피융!
- 퍽!
화살 쏘는 소리다.
- 크아아아!
곧바로 비명 소리가 허공에 메아리쳤다. 심장을 뚫고 나오는 것 같은 비명이었다.
멀리서 그쪽을 바라봤다. 한 명의인간이 나무를 향해 실실 웃으며 활을 겨누고 있다.
나무를 바라봤다. 꿈틀거리는 한명의 고블린이 묶여 있었다.
어깨에 화살을 맞은 고블린은 고통스러운 둣 몸을 뒤틀었다. 붉게 핏발 선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고블린은 주위에 널린 인간들을 사나운 눈동자로 노려봤다.
눈빛에 힘이 있다면 인간들은 모두심장이 꽉 움켜쥐며 죽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눈빛에는 힘이 없다. 고블린은 커다란 나무에 칭칭 감겨 있었다. 움직일 수 없었다.
궁수는 시위를 한 발 더 메긴다.
- 피융!
- 퍽!
“크으아아악!”
양어깨에 화살이 꽂힌다.
- 짝짝짝!
“오, 나이스 샷인데?”
옆에서 고기를 구워 먹던 놈이 박수를 쳤다.
궁수와 고블린은 겨우 스무 발자국 떨어져 있다. 박수를 칠 만한 사격실력은 아니었다.
나는 나무에 묶인 고블린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머리 부위의 살은 찢어졌다. 화살이 꽂힌 어깨는 피를 흘린다. 몸에 상처가 가독하다.
싸우다 난 상처는 아니다. 천천히 느리게 그은 칼자국이다.
‘으음.
사실 상처보다, 전반적인 외모가 먼저 눈길을 끈다.
‘홉 고블린인가.’
나무에 묶인 고블린은 바닥에 널린 시체들과 생김새가 달랐다.
피부는 다른 고블린보다 더 진한진녹색인 데다 치열도 가지런했다.
키도 훌쩍 컸다. 성인 남성에 크게 뒤지지 않았다.
눈동자도 탁하지 않고 맑았다. 고블린보다도, 멸종한 엘프를 닮은 듯한 모양새다.
상위 개체인 홉 고블린. 직접 본적도 있다.
드물게 나타나는 개체다.
지능도 전투력도 일반 고블린보다훨씬 뛰어나다.
자가 치유력을 포함한 전반적인 잠재력에서, 웬만한 고블린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
눈앞의 상황이 그 증거.
보통 고블린이라면?
저 정도라면 이미 몇 번 죽고도 남았을 상처다. 홉 고블린은 트롤 정도는 아니라도,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 주고 있다.
- 크르르크르르르■
나무에 묶인 홉 고블린이 신음 소리를 낸다. 흡 고블린은 지능만큼 언어 습득력이 매우 뛰어나다.
하지만 인간들에게 한마디도 말을 걸지 않는다. 어차피 통하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말로 상대해 봐야 고통과 치욕만더 커질 뿐이라고, 저 고블린의 왕족王族은 판단한 것이다.
- 크오오오! 크오오오!
이번에는 다른 고함이 들린다.
나무 맞은편 커다란 우리에서 들리는 소리다. 안에 열 명 정도의 고블린이 갇혀 있다.
- 크워워워워!!!
그들은 묶여 있는 홉 고블린을 보고 울부짖는다. 그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쉿! 얌전히 있어! 아니면 이번에는 심장에 쓴다? 심장에?”
우리 근처에 서 있는 창잡이가 고블린들을 위협했다. 제 심장을 가리켜 가며 말한다. 그러자 놀랍게도,
소란을 피우던 고블린들이 조용해졌다.
“와, 신기하다. 갑자기 조용해지네.
무슨 고블린 왕 같은 건가?”
“아, 년 새로 와서 모르지? 재한테 화살을 쏘면 다들 아주 발광을 한다. 그러다 죽인다고 위협하면 다시 조용해져.”
“킥킥. 그치. 그게 너무 웃기지.
얌전히 한 명씩 죽어 주잖아. 아까는 저놈 귀를 잘랐었는데.
- 픽!
“야, 이것들아! 닥치고 고기나 제대로 구워. 너무 익혀서 질기잖아!
피 맛이 좀 나야 달달한 거 몰라?”
조장組長으로 보이는 놈이 그들에게 핀잔을 줬다.
놈들은 핏물을 뺀 고블린 고기를 모닥불에 구워 먹고 있었다.
특이한 광경은 아니다. 사냥과 식사는 자주 함께 간다. 막 사냥한 고기는 신선하다.
물론 고블린 고기가 특별히 맛있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 없다.
그냥, 놈들이 고블린 앞에서 어떤 종류의 인간성을 발휘하는 중일 거라고 짐작한다.
“조장님, 저기.!”
언제쯤일까 싶었는데, 연회에 빠져있던 놈들이 그제야 우리를 발견했다.
활을 든 놈은 시위를 반쯤 메긴채, 활을 살짝 아래로 내렸다.
조장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가 칼자국에게 말을 걸었다. 얼굴에 의아심이 떠오른다.
“어, 뭐여? 아직 교대 시간도 안됐는데 왜 오셔? 일찍 일해 주게?”
칼자국이 눈치를 살피며 자연스레 말을 받는다.
“아, 그냥 산책이지, 뭘. 자네들은좀 어때?”
“뭐. 우리야 고기 좀 먹고, 느긋하게 있었지. 사격 연습도 좀 하고.
근데. 왜들 다 빈손이여? 옆엔 누구고?”
나는 신분증을 툭 던졌다.
“감독관이다.”
“에, 감독관?”
놈이 신분증을 받아 들고 인상을 썼다.
“근데. 갑옷에 화살은 다 뭐요,
감독관님? 뭔. 장식이여? 얼굴 좀봅시다.”
고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다가온다.
적의와 경계가 느껴진다.
이런 반응이 자연스럽다. 정체를 확인하는 게 먼저다.
칼자국의 반응과는 다르다.
길가에서 만났던 놈은, 지나치게 친절했다. 날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꼬드겨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 좋은 연기였다. 그는 프레쳐를 알았다. 그리고 프레쳐를 죽였을, 그 신분증을 내미는 내가 만만치 않다는 걸 알았다.
“아, 뭐 하셔. 투구 안 벗나?”
눈앞의 남자는 그런 걸 모른다.
- 스윽.
놈이 내 투구로 손을 뻗어 왔다.
나를 안내한 세 놈이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 툭.
나는 뻗어 오는 손목을 잡았다. 불쾌했다.
정체가 드러나는 건 상관없다.
어차피 모두 처리할 생각이다. 목격자는 없을 것이다.
다만, 루비아가 남긴 유품에 함부로 손을 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뭐, 뭐야?”
“손대지 마라.”
“으, 으웃.!”
놈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팔을 부들거린다. 힘을 쓰는 것 같다. 하지만 반응도 오지 않는다.
힘이 20 이하라는 건 명백하다.
“야! 빨리 포위해!”
다른 놈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무기를 겨냥한다.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포위망이 조금씩 좁혀져 오는 순간이었다.
- 팟!
“우와아아아앗!”
나를 안내한 칼자국이 갑자기 앞으로 냅다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