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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66화 (66/458)

67화 인간성의 승리 (7)

우렁차게 고함을 지르며 달린다.

“우아 아아아!”

그 뒤를 따라 두 놈도 도망갔다.

방향은 우습게도 고블린 거주지 쪽이다. 동굴 입구 쪽으로 도망가는 게 자연스럽다.

다만 그쪽은 내가 서 있는 방향.

사냥하던 동료들을 나와 자신들 사이에 두고, 숲속으로 도망가는 걸 택한 것이다.

사냥을 통해서, 안쪽 지형에 나름대로 익숙하다는 계산도 있겠지.

‘숨을 생각인가.’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차는 태도. 여기로 오며 차근차근 계획을 세워 놓았던 것 같다.

칼자국뿐만 아니라, 다른 두 놈도 마찬가지. 제법 빠른 움직임이다.

“왜 갑자기 도망쳐?”

“재네, 뭐 하냐?”

손목을 잡힌 놈이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허리에서 짧은 칼을 빼 들었다. 칼을 투구의 좁은 눈틈에 찔러 넣으며 외쳤다.

“야! 일단 쳐!”

- 철컥.

하지만 그가 손끝으로 느낀 것은 물컹한 수정체의 파열이 아니었다.

텅 빈 감촉이었다. 좁은 투구 틈을 타고 칼날이 들어가다 멈췄다.

그가 당황한 얼굴로 칼을 마구 움직였다. 칼둥으로, 손잡이 쪽으로 갈수록 두껍고 무거워지는 디자인이다. 해체용 칼이었다.

- 끼긱. 끼긱.

쇠 틈에 쇠가 끼어 움직이는 소리가 허공에 울린다. 그 소리는 제법 기괴했다.

무기를 든 인간들이 눈만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 끼긱. 끼긱.

우리에 갇힌 고블린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시선에서 두려음과 의아심, 기대감이 동시에 느껴졌다.

“히, 히이익!”

조장이 놀라서 칼을 떨어트렸다.

나는 왼손으로 칼을 받았다.

고블린을 해체한 뒤 제대로 닦지도 않았는지 초록색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

그대로 놈의 목을 찔렀다.

“끄, 끄어어.!”

찌른 칼을 다시 뽑았다. 목에서 세차게 피가 뿜어졌다.

칼에 묻은 초록색 피가 붉게 씻겨 내려갔다. 고개를 돌렸지만 피가 투구에 부딪쳤다. 더러운 피가 갑옷에 묻는다.

“어, 어어!”

고블린을 겨냥하던 궁수는, 외마디소리를 치며 활을 들려고 했다.

- 피릭!

나는 손에 든 칼을 던졌다. 칼은 똑바로 날아갔다.

- 퍽!

심장에 칼이 박힌 궁수는 비명도못 지르고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수풀에 시체 두 구가 추가됐다. 처음으로 인간의 것이었다.

나무에 묶인 고블린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이쪽을 쳐다봤다. 인간 여덟 명이 나를 에워쌌다.

“저, 저 미친놈들이 뭘 데려온 거야.!”

남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들이밀었다. 긴 창과 칼, 날이 넓적한 도끼,

전투용 철제 곤봉이 한 번에 겨누어졌다.

“흐아압!”

처음은 긴 창이었다. 누군가 기합을 지르며 옆에서 찔러 왔다. 어설프고 느리다. 언제나 안전한 거리에서만 찔러 왔던 창인 것 같았다. 우리에 갇히고, 묶인 자들에게만.

- 덥석.

찔러 오는 창날 아래를 건틀렛으로 잡았다. 그대로 뒤로 힘을 줘서 강하게 밀어 버렸다.

“으어어어!”

힘에서 완전히 밀린 남자는 뒤로 자빠져 바닥까지 몇 번을 굴렀다.

- 툭!

“으으으.

그는 무언가에 부딪힌 뒤에야 간신히 멈췄다.

- 크르르르르.!

그건 고블린들이 갇힌 우리였다.

우리의 쇠창살엔, 팔이 뻗어 나올 만큼의 간격은 있었다.

“끄아아아아!”

남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얼굴은 금세 피범벅이 되었다.

어떤 놈은 뒤를 돌아보며 당황했고, 다른 놈들은 기합을 지르며 칼을 휘둘렀다. 하지만 나도 이미 칼을 뽑은 뒤였다.

- 챙!

인간이 휘두른 칼은 반대 방향으로 튕겨졌다. 주인의 목을 뚫었다.

“흐아아압!”

옆에서 도끼가 떨어졌다. 오른쪽으로 한 발을 디뎌 피한 뒤, 가볍게 칼을 다시 휘둘렀다.

“끄, 꼬, 해, 히.!”

~ 푸슈슛!

동맥이 잘린 남자는 유언으로 무언가를 남기려다 그대로 죽었다. 유언은 궁금하지 않다.

놈을 죽였을 때 오른 경험치는 두자릿수에 불과했다. 유언을 들어 줄 가치 따위는 없었다.

자리는 금세 정리됐다. 다들 비숫한 수준이었다.

조장의 시체를 뒤졌다. 열쇠 꾸러미를 발견했다. 레나가 함께 있었다면 시체를 하나하나 다 뒤져 로티는 물론 위젯까지 털었겠지만, 내게 그 정도의 열정은 없었다. 나는 고블린우리를 힐끗 쳐다봤다. 열쇠를 들 고우리 가까이로 걸어갔다.

“크르르.!”

놈들은 한껏 긴장한 기색이었다.

붉은 피를 갑옷에 끼얹은 인간이 걸어온다. 자신들을 학대한 인간을 죽이긴 했어도, 같은 편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실제로, 녀석들의 편 같은 건 아니다.

고블린들이 우리 한쪽에 몸을 바짝 붙이며 나를 경계한다.

“취익.! 취익.!”

스트레스가 심한 듯하다. 하나씩 끼워 보자 금방 들어맞는 게 있었다.

- 철컥.

자물쇠가 풀렸다. 우리를 확 열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났다. 녀석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두리번거렸다.

- 툭.

나는 녀석들에게 열쇠를 던졌다.

“취익.! 취익.!”

고블린들이 열쇠를 받아 들었다.

그 순간이었다.

이쪽을 보는 홉 고블린의 눈빛이 느껴졌다. 다른 고블린들의 미약한호감도 상승 메시지가 몇 번에 걸쳐서 떴다. 고블린들은 나를 경계하며 나무에 묶인 홉 고블린에게 몰려갔다. 역시 녀석이 우두머리인 듯했다.

그쪽을 바라보자, 고통으로 가득했던 녀석의 눈이 반짝거리며 빛난다.

- 투둑.

녀석의 몸을 옥죄던 밧줄이 칼로 전부 끊어졌다. 열쇠로 수갑이 풀렸다. 홉 고블린이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왔다.

“인간. 이세요?”

능숙한 공용어가 입에서 흘러나왔다. 말투가 조금 앳된 느낌이다. 물론 고블린의 나이 따위를 짐작하는 능력은 없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흡 고블린 직스키세스 붐텅이라고 합니다. 직스라고 불러 주십시오. 다시 한 번, 저희를 구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직스가 머리를 꾸뻑 숙인다. 다른 고블린들은 취익취익 하는 소리를 내며 주위를 돈다.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고블린 어語다.

“뭐라고 하는 거지?”

“인간들을 쫓아가서 죽이고 싶어 합니다.”

직스가 그들의 언어를 통역했다.

“그리고?”

“함께 가자고 하고 있습니다.”

그 때였다. 홉 고블린 앞에, 메시지가 떴다.

[던전 보스: 직스키세스 붐텅]

[랭크: F마이너]

[플레이어의 레벨: 33]

[적정 클리어 레벨: 5]

[난이도 판정: 매우 쉬움]

‘.이 던전의 보스라는 건가?’

문득, 칼자루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인간들을 정리하라고 했다. 고블린을 구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살려 둘 필요는 없다.

죽인다면 던전 포인트를 얻는다.

메시지가 뜬 이상 확실하다. 그만큼 강해지는 것이다.

F마이너 랭크의 보스. 매우 약하다.<어려움>이하의 상대가 뜬 적은 지금이 아예 처음이다.

정말 얼마 되지 않는 포인트겠지.

하지만 그런 포인트라도 마다할 이유는 당연히 없다. 얻을 수 있는 건다 얻어야 한다. 베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저, 이름이라도 들을 수 있을까요.?”

직스가 나에게 묻는다.

이름.

“.이름 같은 건 없다.”

있다고 해도 벨 상대에게 알려 줄 이유는 없다. 심장을 찌를까? 목을 벨까? 단번에 끝낼 수 있다.

여기서 이 녀석을 베고, 다른 고블린들도 모두 베면 깔끔하다.

“저.

마음과는 다른 말이 튀어나왔다.

“빨리 꺼져라.”

“네.

“숲 속으로 꺼지라고. 인간들을 안 쫓아갈 생각인가?”

“아, 예.!”

심장을 찔러야 할지, 목을 베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

그게 고민이었다. 결국 칼은 결국 뽑지 못했다. 칼자루를 쥔 손에서 힘이 빠졌다.

“취익! 취익!”

고블린들이 무기를 들고 눈을 빛냈다. 홉 고블린도 결국 칼 한 자루를 들었다. 그는 몇 번씩 나를 돌아보며,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칼을 늘어뜨렸다. 놈들이 들어간 숲을 바라봤다. 동굴 안쪽에 조성된 숲은 고요했다.

나는 고블린을 죽이지 않은 내 판단에 대해 생각했다.

E랭크 던전. F랭크 보스.

죽이면 레벨이 오른다.

포인트를 준다.

스킬이 생기고, 시체에서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

보상이 주어진다. 반응이 생긴다.

상태창이 제공하는 지침은 언제나 명쾌하다. 폭력으로 빼앗아라. 더 많이 욕망해라. 그럴수록 보상은 클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블린을 죽이지 않았다. 그 건에 관해, 멍하니 상념에 빠져 있었다.

연민? 동정?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그런 단어들을 애써 지워 버렸다.

역시 F마이너 랭크라는 건, 지나치게 약하기 때문이겠지.

- 달그락!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위화감을 느꼈다. 그리고 곧 위화감의 정체를 깨달았다.

‘너무 약하다.’

던전 랭크 .

안쪽에 있던 고블린들은 하나하나가 약해 보였다. 별 볼일 없는 인간들에게 간단히 사냥당하고 있다.

하지만 인간들이 쳐들어오기 전,잔뜩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랭크가 전혀 납득이 안 되는 건 아니다.

문제는 보스라고 뜨는 홉 고블린.

. 던전 랭크와, 보스의 랭크가 너무 차이 난다.

‘수상한데.’

던전 안에 숨겨진 무언가가 있을 거다. 없는 편이 이상하다.

나는 거주지 안쪽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감독관이 머지않아 온다고 했다.

인간들은 커다란 홀에 몰아넣고 죽였다. 기관 장치도 움직여서 일단 닫아 놓았다.

감독관의 입장에서 여기는 첫 방문일 거다.

하지만 던전 내부 지도라도 갖고 올지도 모른다. 시체들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이 안쪽까지 와 볼지도 모른다. 그리고 초소에 잔뜩 죽어있는 시체들을 보겠지.

그걸 본다면 뒤도 안 돌아보고 도망갈 거다. 그 뒤, 조직의 정예들을 잔뜩 데리고 온다면 곤란하다.

그런 마음으로 나는 서둘렀다.

그 덕분일까.

‘여긴가?’

5분도 채 걷지 않아서, 나는 걸음을 멈췄다.

인간 시체 세 구를 발견했다.

싸운 흔적이 있었다. 시체들은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물어뜯긴 것인지 목 근처가 너덜너덜했고, 신체 몇 군데가 없었다.

무기가 아니라 발톱에 의한 단면이었다.

‘짐승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짐승에 의한 살육이었다.

인간에 의한 것도, 고블린에 의한 것도 아니었다.

고블린에 의한 단체 린치라도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이럴 만한 힘이 없다.

신체를 뜯어내고, 너덜너덜하게 만들 수 없다. 기껏해야 약한 부위를 괴롭힐 뿐이다.

나는 바스타드 소드를 쥔 손에 조금씩 힘을 주었다. 시체들의 일그러진 자세가, 죽음의 단말마를 몸으로 외치고 있었다.

걸음을 서둘렀다.

안으로 계속 들어갔다.

사고가 생겼다.

이런 일이 발생할 줄 알았다면, 바로 쫓아갔어야 했다.

바닥을 살폈다. 고블린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들 모두 어딘 가로물려 간 것인지도 모른다.

혹은 성공적으로 도망치고 있는 중이든가.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걸었다.

이 숲에는, 인간 셋을 너덜너덜하게 물어뜯은 짐승이 있다.

언제 어디에서 뛰쳐나올지 모른다.

멍청하게 습격을 허용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차가운 긴장감이 뼈마디를 타고 홀렸다. 가깝다. 짐승은 가까이에 있다. 직감으로 느낄 수 있었다.

뜨거운 피를 가진 무언가가 근처에 있다. 나는 바닥과 나무를 한 번씩전부 다 훑어봤다.

- 철컥!

한쪽 나무에서 어떤 기척이 느껴졌다. 재빨리 돌아보고 칼을 겨눴다.

하지만 작은 다람쥐였다. 나는 긴장을 풀었다. 그 때였다.

- 크르르르르.!

굵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울음소리가 주위를 빙그르르 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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