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68화 (68/458)

69화 이 세계는 구원되어야 한다⑵

이 시대의 마법은 인간의 것이다.

인간은 특별하지 않다. 그러나 마법사는 특별하다. 그리고 대부분의마법사는 인간이다.

물론 마왕군 강림 이후 상황은 달라진다. 몇몇 마왕은 카르마karma라고 불리는 힘을 썼다.

그 힘으로 마법사를 능가하는 신비를 발휘했다. 폭풍과 지진을 일으켰다. 인간의 정신에 간섭했다.

일부 고위 마족도 그러했다. 얼음과 불을 부리고 허공을 디뎠다.

하지만 그건 9년 뒤의 일이다. 비인간 가운데 마법을 쓰는 자들은 극히 적다.

그런 자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들을 가치가 있었다.

“마법사가 어쨌다는 거지?”

그가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어떤 경외와 신비가 밝혀질지 기대했다.

“종족의 비밀입니다만.

“누설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면 이야기해 봐라.”

홉 고블린 직스가 입술을 살짝 깨문다. 무언가 결심하는 태도였다. 하지만, 주제는 조금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유일한 고블린 마법사 머드캐쉬는 금화의 치명적인 유혹에 완전히 매혹되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의 생애를 전부 바치기로 결심하지요. 아무것도 금화에 대한 그의 사랑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금화라고?

나는 잠시 맥이 빠졌지만, 적당히맞장구를 쳐 주었다.

“금화라면 세이론 말인가?”

“그는 제국의 세이론도, 자유 연합의 두갓도 모두 사랑했습니다. 미스릴이 섞인 세이론은 요망하다고 좋아하고, 순금으로만 만들어진 두갓은 정숙하다고 좋아했지요.”

“그래서?”

“금화의 숨 막히는 유혹에 마주한머드캐쉬는, 세상의 금화를 전부 다모아 버리기로 결심합니다.”

“그건 참 급진적인데.”

“그렇습니다.”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직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마법사였습니다. 그의 정결한 욕망은 결국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는.

옛된 얼굴의 홉 고블린이 꿀꺽, 하고 침을 삼킨다.

“금화들의 주체성을 전부 억압해버리기로 결심합니다. 이런 주머니에 전부 다 넣어 버리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직스는 옆에 차고 있던 주머니를 들었다. 내 눈앞에 대고 흔들었다.

짤그랑, 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안에 든 건 먼지와 보푸라기밖에 없는 듯하다.

직스가 상기된 채 말을 이었다.

“그는 금화를 전부 다, 여기에 넣어 버릴 수 있는 주머니를 만들었습니다. 끝도 없이 안에 집어넣을 수있는 겁니다.<머드캐쉬의 공간 주머니>. 그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는 힌트를 알려 드리겠습니다.”

“.내부 공간이 왜곡된 건가?”

“예. 주인의 의지에 라라 끝없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활용도가 놀라울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공간이 있다면 타자의 침해에서 자유로워진다.

세상으로부터 숨을 수 있다.

내 목표는 원하는 것을 지킬 수 있을 정도로, 인간의 침해를 받지 않는 내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다.

무작정 강해지지 않고도, 그런 게된다면.

“고블린도 들어갈 수 있나? 인간이라든지.”

하지만 직스가 고개를 저었다.

“금화만. 됩니다. 다른 건 넣으면 다시 뱉어 낸다고 합니다.”

“으음.”

“그리고, 주머니 입구보다 큰 건 넣을 수 없습니다.”

아쉬웠다. 하지만 쉽게 단념하고 싶지 않았다.

금화를 넣을 수 있다면, 다른 것도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관심이 가는데. 그 마법사를 만날 수는 없나?”

이런 홉 고블린의 소개라면, 그도무작정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다.

직스가 말한 고블린 마법사의 공간왜곡이 그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도모른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야기에 몰입하는 태도를 취했기 때문인지, 직스는 무척 뿌듯한 표정이었다. 추가로 소모 충성도가 올랐다는 메시지가 떴다. 그 가나만 들으라는 둣 속삭였다.

“동부 산맥으로 가십시오. 거기서취이이익, 휙, 취익! 이렇게 소리치고 돌아다니시면 됩니다. 마법사 머드캐쉬가 당신을 발견하는 순간, 접촉해 올 겁니다.

“.따라 하기 힘든데.”

취익과 휙 사이의 미묘한 어감을 알아채는 재주는 없다. 배운 언어는 인간의 언어뿐이다.

배울 필요가 없기도 했다.

어차피 마왕이 강림한 이후에, 마물의 언어는 전부 통합된다.

이종의 언어들은 두 마왕, 로노베Ronove와 부네Bune의 주술에 의해전부 하나로 엮인다.

“몇 번이고 들려 드릴 수 있습니다. 취이이익, 휙, 취익! 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정도는 말해주지 그래?”

“인간의 언어로, 돈 좋아? 좋아!

라는 뜻입니다.”

“.그거 참 직설적이군.”

“그렇지요? 저도 들은 지 오래된 전설일 뿐입니다. 머드캐쉬의 시험을 끝까지 달성하면 그 주머니를 준다고 합니다.”

“이종異種에게도 그런가?”

“.사실 그걸 모르겠습니다. 다른고블린들도 안 되고, 홉 고블린만자격이 있다든가. 으으음.

직스가 급격히 자신 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걸로 이야기는 끝이었다.

이 이야기가 녀석에게는 어지간한비밀이었는지, 소모 충성도가 150이나 줄어들었다.

고블린들에게 반짝이는 금화만큼 중요한 건 없을 거고, 무한정 금화를 넣는 주머니에 관한 이야기도 그럴 것이었다.

나는 홉 고블린 직스를 성의껏 마중했다. 서두르는 편이 좋을 거라고,

손을 한껏 흔들어 주었다.

직스는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다시 한 번 나와 멀어져 갔다.

흡 고블린 직스가 들려준 이야기에 대해 생각했다.

무한정 금화가 들어가는 공간 주머니라니, 레나가 들으면 무척 좋아할 것 같은 이야기였다.

레나는 고블린 못지않게 까마귀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한다.

동화도, 은화도 좋아하지만 가장 좋아하는 게 금화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 이야기를 전해 주면, 좋아서 팔짝팔짝 뛰면서 당장 동부 산맥으로 가자고 할지도 모른다.

- 달그락.

그런 모습을 생각하니 경추가 가볍게 들썩거렸다.

물론 그런 짓을 할 생각은 없다.

동부 산맥은 하나의 산이 아니다.

제국 동부 전체가 얽히고설킨 거대한 산맥이다.

그곳을 헤매며, 고블린 어를 마구외치고 다닐 의향은 없다.

게다가 홉 고블린이 나름대로 종족의 비밀이라고 말해 준 내용은 레나에게 말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는 다시 길을 되짚어갔다. 지도는 다 타 버렸지만 지나온 길이기에기억하고 있었다.

감독관이라는 녀석을 기다렸다가정보라도 캐낼까도 했지만, 그럴 가치까지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기약이 없다. 오늘내일이면 오는 것 같았지만, 사실 반드시 만나서 캐내야 할 정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고블린 던전에서 수십 명을 죽였지만 레벨이 1도 오르지 않은 게 나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요즘 슬라임과 레나가 나를 과보호하는 둣한 느낌이 들었다.

손쉽게 해결할 수 있는, 쉬운 일만 부탁하고 있다. 하지만 그만큼 레벨은 더디게 오른다.

나는 걸음을 서둘렀다. 이 정도면 된 것 같다. 이 건을 마지막으로 슬라임, 그리고 레나와 이별을 하고혼자 움직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에게 지나치게 얽매여 있었던것 같다. 보호받는 입장이 된다면 곤란하다. 이대로라면 그녀의 발목이나 잡을 것이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화살 박힌 갑옷에 노을이 묻었다.

인간의 피와 노을은 어느 색이 더진한지 잘 구별되지 않았다. 그늘 아래로 들어가 노을을 닦아 내고,

갑옷에 묻은 인간의 피도 닦아 냈다.

천천히 해가 졌다. 석양과 함께 날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길가에는 아무도 오가지 않는다. 이미 인간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는지, 여행자들도 이 길을 피하는 것 같다.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날벌레 소리도 고요해졌을 때였다.

- 다그닥. 다그닥.

멀리서 땅을 딛는 말발굽 소리를 깨닫는다. 앞쪽에서 인간의 행렬이다가 온다. 말 탄 인간 하나와 걷는 인간 둘이었다.

달빛은 무척 환했다. 그들의 모습이 또렷이 보였다.

말 위에 뚱뚱한 남자가 앉았다. 손발은 짧고 가늘다. 허리만 불룩 튀어나와 있다. 반백의 머리칼은 가운데 가르마를 탄 채로, 양옆 위로 휘말려 있었다.

나이를 꽤 먹은 인간인 듯하다.

전투에 적합한 몸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무기를 쥐어 본 적이 없는 인상이었다.

인간은 금속과 동그란 유리알, 고무줄이 결합된 시력 보조 구를 얼굴에 걸치고 있었다.

옆에는 수행원 두 명이 남자의 양옆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놈들이 더욱 가까이 다가온다.

“누구냐!”

이제야 나를 본 것 같다.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두 수행원이 나를 양옆으로 포위했다.

길에서 마주치는 상대를 보고 곧바로 누구냐고 묻다니, 마치 주거침입이라도 당한 듯한 태도다.

“이런 고얀 놈이! 여기는 우리가 관리하는 던전 구역이다! 칼을 내려놓고 신분을 밝혀라!”

말 위에서 소리치는 인간은 제법 독특한 말투였다.

대답하지 않았다. 그냥 지나갈 생각이다.

- 좌르록.

내 말에, 양쪽에서 두 수행원이 무기를 꺼내든다. 둘 모두 무거운 추가 달린 쇠사슬이다.

“이런 건방진 놈!”

두 인간이 곧바로 추를 허공에 돌리기 시작하더니, 곧 빙빙 돌던 추가 두 방향에서 동시에 뻗어 왔다.

하나는 발목을 향해서, 하나는 손에 든 무기를 향해서 날아왔다.

무기에 힘을 주는 사이에, 발목에사슬이 감겨 넘어지게 만드는 합격合擊이다.

효율적인 공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가볍게 발을 움직이며, 칼을휘둘러서 두 추를 전부 바스타드 소드에 휘감았다.

“으, 으으으웃!”

놈들이 힘을 줬다. 이마에 핏줄이 돋아 올랐다. 나는 칼에 감긴 추를 바라봤다. 네 방향으로 날카로운 갈고리가 붙은 추였다.

끝에 살점과 피 같은 게 미세하게 붙어 있었다. 오래 놀아 주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쇠사슬을 강하게 당기며, 앞으로 뛰쳐나갔다.

두 놈의 목에 칼을 박았다. 시체두 구가 풀썩 주저앉았다.

그때 였다.

- 퍼버버버벙!

주위에서 작은 폭음이 수차례 들렸다. 몸이 살짝 뜨는 게 느껴졌다. 하얗고 까맣고 노란 연기가 주위를 가득 메웠다. 연기가 갑옷 틈으로 가득 스며들어 왔다.

- 피리리릭!

보우건 을 연사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적으로 몸이 붕 뜰 정도의 충격을 받은 데다, 지독한 연 기속에서 이런 화살까지 받아칠 수는 없었다. 몸이 다시 한 번 화살에 뒤덮였다.

- 풀썩.

나는 뒤로 나가떨어졌다.

체력이 20% 깎였다는 메시지가 떴다. 이런 메시지가 뜨는 건 오랜만이었다. 연기 사이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하하하하핫! 나 다이로르 르주님께 저항하면 오직 죽음뿐이다”

들려오는 목소리는 멀리 있다가 조금씩 가까워졌다.

나는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직 연기는 가시지 않았다.

내 주위의 땅은 쑥대밭이 되어 있었다. 두 수행원이 죽자 당황한 녀석이 뒤로 빠져 각종 폭탄을 한꺼번에 던진 것 같았다.

- 쾅!

작은 폭탄이 또 한 번 던져졌다.

폭탄이 내 몸 위에서 터졌다. 체력이 5% 감소했다.

순간 엉뚱한 생각이 났다.

‘한번 해 볼까.’

[죽은 척하기 Lv.l 스킬 발동!]

[종족: 해골]

[특성이 반영되었습니다!]

[보정: 죽은 척이 5배의 효과를 발휘합니다.]

“크하하하하! 확실히 죽은 것 같구나. 칼 좀 쓰나 본데, 호홉기가 다뒤집어져 죽는 맛은 어떠냐?”

‘화학탄이라도 쓴 건가.’

죽은 척하기 스킬은 잘 먹히고 있었다.

[스킬 숙련도가 상승합니다!]

“히히 힘!”

인간은 말에서 내렸다.

연기가 전부 가신 뒤 인간이 천천히 다가왔다. 연기가 사라진 뒤 보는 인간의 모습은 꽤 색달랐다.

그는 재킷을 풀고 있었다.

배에 붙어 있는 것은 살이 아니었다. 거기엔 거대한 보우건 이 장착되어 있었다. 그는 실제로 가는 손발과 어울리는 작은 체구의 남자였다.

“받아라앗!”

- 피리리리릿!

십여 발의 화살이 발사되어 몸 곳곳에 맞았다.

이 정도면 어디까지 하는지 관찰해보고 싶기도 하다.

커다란 자켓 안쪽에는 빼곡하게 폭탄이 매달려 있었다. 반쯤은 방금 나를 공격하는 데 사용한 것 같았다.

“죽어라랏! 아, 이미 죽었지? 하하하하핫!”

놈이 내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 덥석.

“구와 아아악!”

멱살을 잡자, 놈이 인간답게 비명을 질렀다. 나는 남자에게 궁금한걸 물어보기로 했다.

“다이로 르 루주.”

“히, 끼힉, 끼히익!”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보우건을 배에 매달고 있는 작은 몸이 파르르 떨린다.

“오늘 특별히 죽을 예정 있나?”

“히이, 히익! 아, 아닙니다! 살려주세요! 살려 주세요!”

남자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발버둥쳤다.

- 퍽!

나는 남자를 바닥에 처박았다. 그리고 자켓을 벗겼다.

목 근처에 가늘게 그려진 지렁이가보였다. 얼핏 뱀 같기도 했다.

“그럼 몇 가지 묻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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