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이 세계는 구원되어야 한다(3)
“주, 죽을 예정 어, 없습니다!”
남자는 떨었다. 열은 흐느낌마저 느껴진다. 협박이 통한 것 같다.
사실 통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대로 살해한 채, 쓰레기처럼 버리고 가도 무방하다.
“사, 살려 주십시오!”
남자가 다시 애원한다. 네크론 신사회의 감독관일 거다.
어쩌다 보니 그를 사칭했다.
나와 이 녀석 사이에는 작은 인연이 있는 셈이다. 나는 남자를 다시 한번 내려다본다.
벌어진 재킷 틈으로, 아직도 달려있는 재미있는 물건들이 보인다.
“폭탄인가?”
“예, 그렇습니다! 이걸 이렇게 하면.
“움직이지 말고.”
“앗, 예!”
알지도 못하는 물건을 가지고 장난을 쳐서야 쓰나. 그런 건 전문가에게 일임할 계획이다. 그리고 그 전문가는 나와 멀리 떨어져 있다.
“사실 널 기다린 건 아니야.”
“예! 예! 죄송합니다!”
말 그대로다. 보육원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네가 온다는 사실은 알았지. 하지만 기다릴 건 없다고 생각했어.”
달빛을 받은 녀석의 얼굴에 질린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지금쯤 날 누구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남자가 쓰고 있던 시력 보조 구는 몇 조각으로 깨져 버렸다. 조각난 알이 바닥에 굴러다닌다.
알을 집어서 눈에 박아 줄 이유도,
주워서 보조 구를 맞춰 줄 이유도 없다.
그대로 방치한 채 질문을 던졌다.
“네크론의 감독관인가?”
녀석이 홈칫 몸을 떤다. 몸을 새우처럼 구부린다. 살고자 하는 발작처럼 느껴진다.
“예, 예! 맞습니다!”
“여기 온 이유는?”
“혈석 수취와 판매 감독을 위해서입니다! 지금. 조직은 어떻게든 자금을 모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대답 잘하네.”
“감사합니다!”
“잘하는 이유는?”
“그, 그게.! 사, 살려 주실 것 같아서!”
남자가 필사적으로 대꾸한다. 꽤눈치가 빠른 것 같다.
녀석의 짐작대로다. 순순히 대답하면, 놓아 보내 줄 작정이다.
한 번에 그걸 읽어 내다니 레나급 눈치라고 생각했다.
굳이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 바다에서 소금 한 옴큼 덜어 낸다고세상이 덜 짜지는 건 아니다.
이런 세계에서는 가장 맑은 물도 소금물이, 아니 소금이 되어 버린다.
악취가 심하고 끈끈한 핏물이 배어나는 소금이 된다.
“그래서?”
눈치 있는 대화 상대란 편리하다.
고통을 가할 필요가 없다. 간단히 추임새만 넣으면 된다.
“황제가, 황제가 전쟁을 하려고 합니다! 저희 조직이 돈을 모아서 전쟁을 지원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조직은. 전쟁에 투자해서 지분을 잡으려는 것 같습니다.”
“너희가 배후인가?”
네크론 신사회가 전쟁을 조장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남자는 전혀 아니라는 둣 고개를 저었다.
“그. 그런 건 아닙니다. 저희는 전쟁의 배후가 아닙니다! 다만. 전쟁에서 발생할 노예들을 저희가 꽤먹는 거래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노예 거래에 관한 이런저런 사실을 진솔하게 이야기했다.
“가까운 지부는 어디지?”
“가, 가까운 지부. 지부는. 에라스트입니다! 여, 영주가.
그 외에 남자가 말하는 것은 이 미아는 정보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나가는 것처럼 마지막 질문을 했다. 그저 던지듯이 넌지시 물어보았다.
“너희 우두머리는 누구야?”
“그, 그건.!”
그때였다. 남자의 목에 그려진 무언가가 꿈틀, 하고 움직였다.
‘문신인가?’
가는 선이 조금씩 굵어졌다. 선은 지렁이가 되었다. 지렁이는 점점 두껍고 길어졌다.
꿈틀거림이 지금 막 시작했는지,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는지는 알 수없었다.
목에 칼이 겨눠지고 있는 터라 그런지 남자는 제 목에서 뭐가 꿈틀거리는 지도 모르는 둣했다.
목에 있는 지렁이는 서서히 뱀의 형상을 갖춰 가고 있었다.
“왜, 왜 그러십니까?”
목에 ‘그림’이 그려지고 있다. 좁은 면적에서 일어나는 일이었지만, 나는 그 광경에 압도되어 아무 말도할 수 없었다.
뱀의 머리 부분이 조금씩 커졌다.
남자의 목을 반쯤 뒤덮을 정도가 되었다.
- 스르르르,뱀의 머리에 뿔이 돋아났다.
두 개의 어금니가 길게 자랐다. 그제야, 남자는 무언가 느끼기 시작한 것 같았다.
“으, 으으어어어.! 이, 이게.r그가 목을 손으로 마구 만졌다. 하지만 고개를 아무리 꺾어도 제 목은볼 수 없다.
뱀은 남자의 손에 잡히지 않았다.
기괴한 모양의 뱀이었다.
두 눈이 없었다. 피부에 파묻혀 있었다. 뿔과 어금니만 달린 뱀이 남자의 목을 빙 둘러 조인다.
잘 보이지도 않던 검은 얼룩이, 순식간에 기괴한 뱀으로 변했다.
“히, 흐히, 히이, 흐, 하으아아.r남자가 목을 부여잡고 신음 소리를 냈다. 내 칼이 목을 겨누고 있다는 사실도 잊은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죽지 않도록 칼을 치웠다.
그에게서 한 발자국 떨어졌다.
“크, 되히헉, 흐키익!”
남자는 괴롭게 컥컥거렸다. 더는 호흡을 뱉어 내지 못했다. 혀가 꼬이며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크, 키, 크히히이익.!”
남자가 흙바닥을 마구 뒹굴었다.
피부 위에 그려진 뱀은 마치 발버둥을 즐기는 듯하다가, 잠시 후에 머리를 움직였다.
- 과득!
그런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피부위에 그려진 뱀이 어금니로 남자의 목을 깨물었다. 밤은 고요했고 남자의 신음 소리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디선가 콰득콰득,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밤에 씌워진 얇은 장막 저편에서 나는 소리 같았다.
“끼, 끼히.!”
남자는 목에서부터 천천히 피부가새까닿게 괴사했다. 얼굴이 새까맣게 질려 더는 음직이지 않았다.
발작하던 그의 몸이 축 쳐졌다.
고통에 겨워 온몸의 근육이 뒤틀려있었다.
도와줄 방법 따위는 전혀 없었다.
- 스르르르-
남자의 입과 코에서 까만 연기가 폴폴 홀러나왔다.
목에 남은 뱀 문신이 양옆으로 길게 입을 쫙 벌렸다. 차아아악, 하는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연기는 뱀의 입으로 빨려 들어갔다.
- 부르르!
뱀은 만족한 듯 몸을 한차례 거칠게 떨었다. 그리곤, 그대로 장막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었다.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 파르르르.
달빛이 걸린 나무 위로 날다람쥐가 뛰어갔다. 나뭇가지가 흔들렸다.
가지 위에 하얗게 내려앉아 있던 달빛이 부서졌다.
문득 정신을 차렸다.
- 철컥.
섬뜩함이 느껴졌지만 시체는 조사해 봐야 했다. 칼끝으로 툭툭 건드리며 몸을 조사했다.
은은한 붉은빛을 내는 신분증을 주웠다. 석궁이나 프레쳐의 신분증과달리, 얼굴이 그려진 부분 아래쪽에 묘한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
웬 동그라미인지 궁금했다.
무엇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봐야 할인간은 이미 죽었다.
본인이 예상한 상황이 벌어진 것 같지도 않았다. 그 역시도 놀란 기색으로 목을 부여잡곤 컥컥대며 죽은 것이다.
남자의 품 여기저기를 뒤졌다.
특별한 보물은 없겠지만 단서가 나올지도 모른다.
- 짤랑!
품에 두꺼운 가죽 주머니가 있었다. 안에는 은화가 가득했다. 좀 더뒤지자 인신매매 장부도 나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별다른 건 없었다. 나머지는 폭탄 같은 것들밖에 없었다.
‘이쯤 해야겠군.’
적당히 짐을 챙긴 뒤 보육원으로 돌아갔다. 돌아가자 슬슬 새벽이 되고 있던 참이었다.
- 똑똑.
나는 원장실 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십시오!”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슬라임은 침대에서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라임은 인간의 모든 행동을 흉내 내고 싶어 했다. 대화와 몸짓은 물론이고 먹고 자는 것까지.
물론 실제로 슬라임이 잘 필요는 없다. 그는 잠깐 졸린 척을 했지만 아주 멀쩡한 상태인 게 느껴졌다.
“의뢰한 일은 끝났다.”
“감사합니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번엔 너무 쉬웠다. 날 너무 보호하는 거 아닌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찾아가기도어렵고, 상대할 인간의 숫자도 많았지요. 게다가.
슬라임이 커피를 내리며 천천히 말했다.
“그런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러우셨을 겁니다.”
“그런가.”
“인간이라는 거, 역시 역겹고 기괴하지 않습니까?”
그가 갑자기 꺼내는 이야기가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어차피 인간의 혐오스러운 모습은 질리도록 보아 온 터였다. 고블린 던전에서의 모습이 새삼스러울 건 없었다.
“인간 아이들을 좋아하는 것 같았는데.”
“하핫, 그건 좀 복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