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70화 (70/458)

슬라임이 머리를 긁적인다.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녹색 점액질을 변형시켜 만들어 낸 것이다.

뭐든지 될 수 있기에, 한계를 가지고 변화하는 아이들이 좋다고 했던 그의 말이 떠올랐다. 조금씩 변하는 게 참 사랑스럽다던.

뒤늦은 의문이 떠오른다. 왜 꼭 인간 아이여야 할까?

이자는 어째서 인간 아이들을 관찰하고 있는 걸까. 뒤늦게 그런 궁금증이 피어올랐다.

한쪽은 붉고, 다른 한쪽은 초록색인 슬라임의 눈동자가 새벽빛 속에서 반짝인다.

눈을 바라본다 하여 그의 의중을 알아내기는 어려웠다. 가지고 온 궁금증부터 던져 놓기로 했다.

“궁금한 게 좀 있는데.

“아, 죄송합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나 보태 버렸군요. 말씀해 주십시오.”

“쓸데없는 소리?”

“인간이 역겹다는 거 말입니다. 궁금한 걸 말씀해 주십시오.”

“.그래. 혹시 이런 현상에 대해 좀 알고 있나?”

오면서 벌어진 일을 설명했다. 슬라임은 가만히 이야기를 듣더니, 인상을 살짝 찌푸리면서 말했다.

“.마법입니다.”

그는 머뭇거리지도, 고민하지도 않고 확답을 내놓았다. 잘 알고 있는것 같았다.

“비밀을 누설하는 자를 곧바로 죽여 버리는 술법이죠. 몸에 심은 각인이 발동되는 방식입니다.”

“놈들에 대해 캐낼 수도 없겠군.”

“그런 방법으로 조직원을 단속하고있다니, 저열하군요.”

“파훼할 방법은 없나?”

각인을 파훼해, 굳이 네크론 신사회를 파헤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라임이 놀랄 정도로 곧바로 확답을내놓아서, 끌려가듯 물어본 것에 가까웠다.

“으음.

문득 슬라임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눈썹을 살짝 늘어뜨리고,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렸다. 고민하는 인간을 흉내 내고 있다.

“.저도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역시 술자의 힘에 따라서 다르지 않겠습니까? 누가 각인을 새겼느냐가 문제겠지요.”

누가, 라는 말에서 묘한 강세가 느껴졌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힘을 가진 존재가 엮인 술법이라면, 결코 풀수 없을 겁니다.”

라임이 옅은 웃음을 지었다. 한쪽은 붉고, 다른 한쪽은 초록색인 눈을 깜빡였다.

“뭔가 알고 있나?”

“글쎄요. 아직 뭐라고 이야기할 때는 아닙니다만.

“아, 레나에겐 금방 소식이 올 겁니다. 연락받는 대로 바로 알려 드리겠습니다.”

“잘될^F?”

“다정하시군요. 역량 테스트는 혼자서 충분히 통과할 겁니다. 그럴만한 아이니까요.”

슬라임이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갑옷을 수리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친절하게 웃는 얼굴이었다.

“그야.

나는 갑옷을 내려다봤다. 관통한 화살은 없었지만, 안쪽까지 박힌 화살들이 빼곡했다. 갑옷을 벗어서 그의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그럼 수리를 시작하겠습니다.”

- 꾸르르르슬라임의 몸 일부가 눈앞에서 녹았다. 갑옷 구멍 사이사이로 흘러 들어갔다. 선택적으로 화살대와 화살촉을 녹여 바깥으로 버리고, 다시갑옷을 봉합했다.

몇 번을 봐도 잘 적응이 되지 않는 광경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슬라임은 태연히 작업을 계속했다.

- 치이이익! 치이익!

슬라임의 초록색 손은 꾸물거리는 녹색 액체가 되어, 갑옷 틈 사이사이로 금속을 용해시키고 있었다.

라임은 힘들거나 지치지도 않은,매우 편안한 표정이었다.

‘강하다.’

이런 곳에 틀어박혀 있을 존재는 아니다. 나에게 잘해 주니 그만이긴한데, 생각할수록 기이한 존재였다.

- 치익!

달궈지고 녹았던 갑옷이 형태를 갖추고 다시 식어 갔다. 화살에 뚫렸던 구멍이 모두 메꿔졌다.

슬라임은 갑옷의 핏자국까지 깔끔하게 제거했다.

방금 만들어진 것처럼 빛나는 풀 플레이트 메일을 완성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떻습니까?”

“역시 대단하군.”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나가려고 하던 참에, 라임이 급하게 나를 불렀다.

기화 이 세계는 구원되어야 한다⑷

“아, 참. 의뢰의 대가를 말씀드리지 않았죠?”

“대가는 이걸로 충분한데.”

빛나는 갑옷을 탕탕 두드렸다.

보상 같은 건 받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레나가 있다면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을지도모르지만, 그녀는 지금 없다.

슬라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손을 내저었다.

“아뇨, 그건 말이 안 됩니다. 의뢰주가 준비한 보상이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 드르륵.

슬라임은 차분하게 뒤편 서랍을 열었다. 흘끗 본 서랍 안쪽에 무언가눈에 익은 게 있었다.

작은 동상이었다. 물론 동상 자체가 눈에 익은 건 아니었다. 사자의 머리를 가진 인간.

- 드르륵.

뭔지 확인하기 전에 슬라임이 부드럽게 서랍을 닫았다.

- 툭.

그리고 꽤 묵직한 은화 주머니 하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제가 안 주려고 해도, 레나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으음.”

“개인적인 선물입니다만,  이것도 받아 주시면 기쁘겠습니다.”

라임이 목걸이 하나를 추가로 건넸다. 작은 트럼펫 모양의 흑색 비취가 달린 목걸이였다. 꽤나 정성 들여 만든 것 같았다.

“착용하셔 준다면 기쁘겠군요.”

라임이 어쩐지 처연하게 웃었다.

조금 이상한 선물이었지만, 그동안 내게 보여 준 호의를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지 싶었다.

“그래, 하도록 하지. 비취로 만들기엔 복잡한 문양 아닌가?”

“작은 재주일 뿐입니다.”

슬라임 스스로 만든 목걸이인 모양이었다. 받아서 주머니에 넣었다.

잠깐 서 있다가 슬라임에게 다른걸 요청했다.

“아, 책을 좀 빌리고 싶은데.”

겨울밤은 길다.

“어떤 책을 원하십니까?”

“추천해 줄 거라도 있나.”

슬라임이 천천히 책장을 훌었다.

“<이 세계의 지배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명의 독서가로서 꽤 즐겁게 읽었던 소설입니다. 좀 한가해지면, 필사라도 시작해 볼까 싶은 문체입니다.”

나는 잠시 고민했다.

”소설도 좋지만, 배경 지식을 좀쌓고 싶어서.”

시와 소설은 서큐버스님의 서재에서 3년간 충분히 읽었다.

그분의 서재에는 바람을 노래하고달빛을 희롱하며, 꽃을 찾고 감정을 탐닉하는 소설로 가득했다.

나는 좀 더, 세계에 대한 인식을 넓혀 나가고 싶었다.

문장은 적막하고 내용은 건조하다해도, 그렇게 지식을 쌓아 나가야누군가를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슬라임의 얼굴에 잠깐 아쉬움이 스쳐 지나갔다. 감정이 읽히는 것은 드문 일이라 흠칫했지만, 그는 곧다시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

“그럼 이 책은 어떠십니까?”

슬라임은 「엠버메어J 라는 책을 건네주었다.

“엠버에 관한 책이군.”

“그렇습니다. 이미 알고 계신 내용도 많겠지만, 기초적인 내용은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책은 얇았다. 간단히 읽기 좋을 것같았다.

“좋아.”

책을 받아서 돌아간 뒤, 누워서 천천히 한 페이지씩 넘겼다.

<???제국과 자유 연합을 이어 주는 좁고 긴 지협地賊. 그 가운데에 서배를 타고 24해리 올라가면.>

하지만 책에 집중하지 못했다.

읽으면서도, 네크론 감독관을 잡아먹던 뱀 문신이 떠올랐다. 그 장면이 계속 신경 쓰였다.

잊혀지지 않았다. 그 문신을 어딘가에서 본 것 같아서 더욱 그랬다.

‘너무 작았어.’

하지만 남자의 목에 그려진 그림이 너무 작았다. 확신이 힘들었다.

‘다시 한 번 보면 뭔지 알아볼 수 있을까? 그 뱀이.

돌아온 지 사흘째.

열 권 정도의 책을 읽었을 무렵,

반납을 위해 그를 찾아갔다.

‘음?’

약간의 한기가 문밖으로 조금씩 새어 나왔다.

- 똑똑.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 끼이익.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원목으로 만든 문이 조금 무거운 소리를 내며열렸다.

안은 서늘했다.

슬라임이 창문을 열고 서 있었다.

겨울 달빛이 여과 없이 방 안으로 들어온다.

“아, 오셨습니까?”

슬라임이 몸을 돌렸다.

창문 쪽에 서 있는 그의 손목 위에는, 회색빛 털을 가진 새 한 마리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털에는 회오리 문양이 나타나 있었다. 슬라임이 쓰는 전서구였다.

“책을 반납하러.

슬라임이 살포시 웃었다.

“그러셨군요. 아,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레나가 테스트에 통과했다는군요. 당연한 일이긴 한데. 이례적으로 빠른 합격이라, 다들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가.”

잘된 일이다.

슬라임이 새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곧 돌아올 겁니다. 그때, 아마 레나가 무언가 말씀드릴 겁니다.”

다음 날, 두 명의 새로운 인간이 보육원으로 들어왔다.

검은 후드를 뒤집어쓴 그들은 원장실에서 슬라임과 무언가를 한참 동안 이야기했다.

보육원은 몇 명의 고용인이 더 추가되었다. 원장에게 들은 게 있는지나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 똑똑.

읽은 책을 반납하기 위해 원장실에 방문했다. 하지만 안쪽에서는 대답이 없었다.

- 똑똑.

한 번 더 노크를 했다. 슬라임은인간의 습성을 흉내 내길 좋아한다.

장단을 맞춰 주는 건 어렵지 않다.

“들어오십시오.”

그제야 목소리가 들렸다. 어딘가 가라앉은 느낌이었다.

원장실 안으로 들어갔다. 슬라임은혼자서 원장실을 천천히 정리하고 있었다.

창문은 잠겨 있었고, 화분은 사라져 있었다. 커피를 내리는 기구는 안이 텅 비어 있었다. 물통도 거꾸로 뒤집혀져 있었다. 뭘 하려는 건지 알기는 어렵지 않았다.

“자리를 비울 셈인가?”

“그렇습니다. 따로 말씀드리려 고했지만. 어딜 좀 다녀올까 합니다.”

“그런가.”

어디를 다녀오냐고 물을 권리 같은건 없다. 그건 이 슬라임의 고유한영역이다.

“금방 또 볼 겁니다.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방을 정리해 가는 모습을 보니 금방 돌아올 것 같지는 않았지만, 따로 캐묻지는 않았다.

“일단 책은 반납하지.”

- 툭.

나는 슬라임의 책상 위에 그대로 책을 내려놓았다. 슬라임이 옅게 웃었다. 그리고 한쪽 벽에 빼곡히 꽂힌 책들을 가리켰다.

“놓아둔 책들은 언제든 자유롭게 보십시오. 마음에 든다면. 가지셔도 무방합니다.”

가져도 된다고? 의아했다. 그는 자신이 가진 책들을 아꼈다.

빌려 읽는 건 내게 얼마든지 허용했지만, 책을 ‘가져도 된다’라는 말은 한 적 없다.

내가 그에게 당한 유일한 거절이‘책을 가지는 건 곤란하다.’는 것이었다.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가져도 된다고?”

“그렇습니다. 원하는 책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니다. 아이들은?”

“내일 아침에 아이들과 인사를 나늘 겁니다. 그리고 떠나겠지요. 그럼 좋은 밤 되십시오.”

나를 마중하는 그의 말이, 어쩐지조금 서늘하게 느껴졌다.

낯선 거리감이 느껴진다.

나는 몸을 돌렸다.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차례 고개를 흔들었다.

착각일 거다.

거리감이라고? 낯설다고? 사실은 우스운 이야기다. 나는 이 슬라임에대해 잘 알지도 못한다.

아침이 밝았다. 창밖을 바라봤다.

슬라임이 아이들과 하나하나 작별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혼자 말에 올라타 출발했다.

마차는 그대로 남겨 둔 채였다.

이틀이 더 지났다.

고용인들은 원장 대신 아이들을 성실하게 돌보는 것 같았다. 내가 할일은 없었다.

나는 방에 머물러 있었다.

슬라임이 사라진 원장실엔 가고 싶지 않았다.

항상 있던 무언가가 사라지면, 그장소만 비는 것이 아니다.

마음 한쪽도 함께 비어 버린다. 틈새가 생기고 그곳에 서늘한 바람이 들어온다.

그날 밤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데,

앙칼진 손길이 뒤에서 내 골반뼈가운데를 꽉 움켜잡았다.

“잡았다!”

- 달그락!!!

나는 그 자리에서 펄쩍 펄 정도로 놀랐다.

“몰랐대요? 몰랐대요?”

갑옷도 벗어 놓은 무방비한 상태.

뒤를 내주고 습격을 당했다.

화들짝 돌아봤다. 하지만 등 뒤의 존재는 나보다 먼저 움직였다.

차가운 손을 등뼈 깊숙이 넣어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시길래?

내가 오는 걸 몰랐을까? 다른 여자생각을 하셨나요?”

척추를 움켜쥔 채 내 뒤를 빙빙 돌던 목소리가 갑자기 살짝 놀란 기색을 띄었다.

“어? 이건 뭐야? 목걸이잖아?”

차가운 손이 쑥 뻗어 갔다. 근처에둔 흑색 비취 목걸이를 잡아챘다.

“감동이네. 선물하려고 놓아둔 거예요?”

척추를 감싸 잡은 손이 그제야 부드럽게 놓아졌다.

- 달그락.

나는 그제야 뒤를 돌아봤다.

레나가 제 목에 비취 목걸이를 걸며 좋아하고 있었다.

“와, 나랑 잘 어울리네.”

슬라임이 준 비취 목걸이다.

강탈당한 걸 다시 빼앗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목걸이는 그냥 내버려둔 채 다른 질문을 던졌다.

“얼굴이 상했군.”

며칠 동안 단단히 고생했는지, 눈아래가 살짝 들어가 있었다.

잠을 제대로 못 잔 건지 핏발도 서있는 게 보였다.

입술이 메말라 살짝 터져 있었고쇄골 옆은 음푹 들어가 있었다.

한차례 목욕을 마친 것 같기는 했지만, 고생의 흔적을 숨길 수는 없었다.

“저, 상해 버렸나요?”

그녀는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쩐지 잔뜩 과장된 장난스러움이었다. 입 꼬리는 억지로 웃고 있었다. 하지만 눈에서는 날카로운 긴장감이 느껴졌다. 걱정을 숨길 여유도 없는 것 같았다. 무심코 그녀가 목에 건 비취 목걸이를 바라봤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레나는 트럼펫 모양의 비취를 손으로 잡아 가슴 안쪽에 넣었다. 그 행동이,

묘하게도 긴장을 좀 더 팽팽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내게 말했다.

“우리. 다 버리고 도망칠까요?”

갑작스러운 말에 놀라 대답했다.

“무슨 소리지?”

“길드나 이런 거 다 버리고, 그냥숨어 사는 거예요.”

“동생이랑 셋이 같이 도망치는 거예요. 전쟁이 일어나든 어쩌든, 우리셋 숨어 살 곳 하나 없겠어요? 아무도 못 들어올 산속으로 가서 살든지, 아니면 들어오는 인간들은 다죽여 버려도 되고요.”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창문으로 새어 들어오는 달빛에 비친 그녀의 눈동자가 찰랑거렸다.

단단하고 01무져 보이는 그녀의 몸안쪽, 어딘가에서 흔들리는 물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황당한 소리다.

나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거절한다.”

레나는 분명히 야망과 목표가 있는 인간이다.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은 걸까? 그녀를 여기서 무너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레나가 내게 따졌다.

“대체 왜 안 된다는 거죠? 돈도 그동안 많이 모았잖아요. 내가. 내가둘 다 지켜 줄 수 있어요.”

인간 여자 따위에게, 지켜지면서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보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그녀의 저의가 궁금했다.

“갑자기 왜 이러지?”

“그냥.

레나가 어깨를 으족했다.

“다 지겨워졌어요.”

황당한 이야기였다. 더 들어 줄 이유가 없었다.

“도망칠 거라면 너랑 함께할 이유도 없지. 서로 이용하자고 하지 않았나? 도망칠 거면 혼자 해라.”

레나가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길드에서 지부장이 되기로 한 거아니었나? 성장해라. 성장해서 내게 도움이 되어야 할 거 아닌가.”

하지만 도움을 받을 생각 따위는 전혀 없다. 그녀는 이미 내게 많은 도움을 줬다.

나는 점점 짐만 되어 간다. 내가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요청할 생각은 없다.

그때 였다.

레나의 손목에서 무언가가 살아 있는 것처럼 스르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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