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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77화 (77/458)

78화 재밌는 걸 할 수 있게 될거야 (3)

맨손으로 상대해야 한다.

- 휘익!

다시 한 번 주먹이 휘둘러졌다.

一 빡!

팔을 들어 급하게 막았다.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고통은 전혀 없었지만, 막은 팔이 뒤로 훅젖혀졌다.

주먹이 한 대 더 날아왔다. 같은 팔로 막았다. 어깨가 잘 움직이지 않는 느낌이었다.

? 딱딱, 딱딱I녀석은 세차게 이를 부딪쳤다. 나름 큰 턱으로 세차게 이를 부딪치니 위압감이 느껴졌다.

객관적으로 봐서 녀석은 <망령의 납골당>문지기 정도 수준이었다.

그런 수준의 녀석에게 위압감을느끼다니, 정말 상상해 보지도 못한 일이다.

‘대체 몸이 어떻게 된 거지?’

능력을 억제하는 결계라는 게, 정말 가능한 거란 말인가.

하지만 반투명한 푸른 상태창.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상태창은 한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다.

그리고 내 몸도, 상태창이 설명하는 그대로다.

능력이 엉망으로 떨어져 있다.

- 휙!

- 빠각!

생각에 빠져 있는 사이, 다시 한번 두개골을 맞았다.

- 탁!

[경고! 체력이 75% 이하입니다!]

다시 한 번 암벽에 등이 부딪힌다. 몸이 더욱 느려지는 것 같았다.

녀석의 공격력은 형편없다.

하지만 지금의 내 체력도 그렇다.

벌써 25%가 깎였다. 계속 맞다보면 머지않아 머리가 쪼개질 거다.

이대로 맞을 생각은 없다. 어차피말이 통하는 상대는 아니다.

‘패턴은 읽었다.’

녀석이 단단히 그러쥔 오른손을 뒤로 잔뜩 젖혔다.

나는 앞으로 발을 내딛었다. 아무준비 동작 없이, 놈의 커다란 콧구멍 뼈를 향해 곧바로 왼 주먹을내 뻗었다.

- 딱!

작은 소리가 났다. 녀석은 주먹질을 하기 애매한 자세가 되었다.

나와 녀석의 팔 길이는 비슷했다.

잔뜩 뒤로 당긴 주먹을 내지를 수없는 상황. 놈은 얼굴로 내 주먹을 밀어붙이려 했다.

- 턱!

하지만 내 뒤는 암벽이었다.

나는 암벽을 등으로 세게 밀면서,왼 주먹을 당기고 오른 주먹으로 녀석의 눈구멍 뼈를 향해 강하게 주먹을 날려 버렸다.

- 빠각!

경쾌한 소리가 났다. 녀석이 굴러 넘어졌다.

주먹으로 처음 해 보는 공격이다.

처음 해 보는 ‘제대로 된’ 공격이라는 표현이 더 가까웠다.

날 공격한 녀석의 팔다리를 뽑아바닥에 던져 버렸다.

하지만 나도 성하지는 않았다.

양쪽 팔뼈가 덜그럭거렸다. 손가락 뼈 마디마디에 금이 갔다. 경추가 삐걱삐걱 흔들렸다.

갈비뼈는 몇 군데가 나가 있었다.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항상 모험가들에게 당하던, 고작해야 문지기 해골 정도밖에 안 되는 녀석과 처절하게 싸운 것이다.

비참하다면 비참한 상황.

하지만 온몸에 기묘한 고양감이느껴졌다.

저번 삶을 생각했다.

철저하게 계산된 루트, 슬라임이배려해 준 루트만 줄곧 밟아 왔다.

잘 준비된 상태에서, 충분히 이길 상대와만 싸워 왔다.

그러다 이런 사투를 벌이니 온 뼈에 전율이 흐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 달그락! 달그락! 뚜둑! 뚜두둑!

내가 사지를 분리한 녀석의 뼈가 차곡차곡 결합되기 시작했다.

‘어떻게 된 거지?’

하지만 녀석은 다시 나에게 덤벼들지 않았다. 어둠 속으로 터벅터벅 걸어서 사라졌다.

그리고.

나 역시,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손을 바라봤다. 갈라졌던 뼈가 이미 전부 다 붙은 상태였다.

의아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 달그락!

- 달그락!

- 달그락!

세 구의 해골들이, 동시에 나에게다가 오고 있었다.

‘피곤한데.’

한 손에는 검을 들고, 한 손에는 낡은 나무 방패를 든 채 삐거덕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안타깝게 볼 만한상황. 내 상대가 되지 않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결계에 납치된 지금 상황에서는, 천천히 걸어오는 저들이 트롤 세 마리에 버금가는 위협으로 느껴졌다.

온몸의 뼈 곳곳이 다 떨어진 채로, 간신히 셋을 물리쳤다.

一 중! 쿵!

다음으로 나타난 녀석이 발을 구르며 다가온다.

커다랗다. 머리 크기는 내 두 배정도. 입도 무척 크다.

턱뼈도 네 배는 될 것 같다. 훨씬 발달되어 있다.

종種이 다르다.

‘오크 해골?’

오크는 명예를 아는 전사들이다.

실은 아는 정도가 아니다. 그들은 전투와 명예밖에 모른다. 인간들의 침략에도 결코 도망가지 않았다.

숨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끝까지 맞서 황야에서 싸웠다. 자신들의 땅을 절대로 내어주지 않았다.

게다가 싸움이 벌어지는 곳이라면 앞장서 나타났다. 자신의 힘을 시험하기 위해서, 라고 말하며.

그렇기^1.

인간의 세계에서 오크가 멸종의위기에 놓였던 것은 당연하다.

옛날에는 한 손에 꼽힐 정도로 수가 많은 종족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마왕군 강림 전까지 나도 오크를 거의 보지 못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그들은 식용으로, 실험용으로, 학대용 혹은 전투용 노예로 인간에게 잡혀 들어갔다.

어쨌건, 순수한 체격으로 보았을 때 인간보다는 훨씬 우월하다.

녀석이 거대한 주먹을 휘두른다.

- 빠각!

뼈로 만들어진 주먹이 내 두개골을 때린다.

- 붕!

몸이 위로 떴다. 다시 한 번 주먹이 휘둘러졌다.

- 데구르르!

녀석 쪽으로 급하게 몸을 굴렸다.

길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양손으로 놈의 발목을 잡았다. 뼈를 분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힘이 한참 부족했다.

- 덥석!

오크는 내 팔뼈를 잡았다.

- 콰득!

맨손으로 부러뜨렸다. 팔뼈가 뚜두둑 소리를 내며 꺾여 나갔다.

부러진 내 팔뼈를 녀석이 잡아 아무렇게나 휘둘렀다.

녀석의 손에 들린 내 팔뼈가 바닥을 마구 때렸다. 뼈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몸을 굴려 아득바득 피했다.

- 달그락! 달그락!

차가운 돌바닥에 뼈 구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오크 해골 하나를 상대로 하며,압도적인 열세 속에서 생각했다.

사실은 이게 원래의 내가 아닐까? 루비아와 레나와 있었던 일들은, 모두 환상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이게 내 현실이다.

잠깐 꿈을 꾼 게 아닐까.

- 퍽!

녀석이 든 ‘왼쪽 팔’이 오른쪽 팔을 때렸다.

모두 내 팔이었다. 나는 옆으로 바닥을 몇 번 굴렀다.

오크는 제 손으로 끝내겠다는 듯내 ‘왼쪽 팔’을 바닥에 집어던졌다.

‘저걸 잡아야 해.’

나는 필사적으로 바닥을 굴렀다.

왼쪽 팔을 잡았다.

[검술 Lv.5가 발동됩니다.]

[적합도가 떨어지는 무기입니다.

효율이 70% 감소합니다.]

이걸로 승부를 봐야 했다.

- 휙!

녀석의 두개골에 벌어진 툼이 보였다. 손이 들어갈 정도로 커다란툼이었다. 그곳에 팔뼈를 끼웠다.

강하게 비틀었다.

- 뚜두둑!

뼈 뜯어지는 소리가 나며 오크해골이 그 자리에 쓰러졌다.

- 털썩.

뒤로 주저앉았다. 탈골된 왼팔을 억지로 몸에 끼워 넣었다. 왼팔은반쯤 부서져 있었다.

‘이것도. 회복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 구구구구구궁.!

바닥 한구석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 쿠구구. 쿵!

움직임이 멎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조금씩 빛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빛이 허공에 글자를 만들었다.

<알아서 골라 봐>

‘이건.?’

용사 포인트를 안내하고 레벨과스탯을 알려 주던, 반투명하고 푸른 상태창은 아니었다.

‘마법인가?’

빛으로 글자를 쓴다.

이런 효과는 몹시 낯설다.

내 수준에서 마법사들을 접할 일은 극히 드물었으니까.

하지만, 글자 아래 은은하게 비치는 것들은 제법 익숙하다.

내가 들고 휘두르던 것들. 혹은 거기에 부서지던 것들이다.

차가운 금속으로 만든 무기들.

빛나는 글자 아래, 새롭게 돌출된 바닥. 그곳에 놓인 무기들을 하나씩 천천히 훑어봤다.

양손으로 들어야 할 철퇴.

잘 제련된 소형 철제 방패.

한손 검과 메이스.

철이 씌워진 그레이터 쉴드,길다란 양손 검과 할 버드.

랜스와 츠바이핸더까지 있었다.

‘.골라 보라고?’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공들인 무대가 마련되었다. 관객석이 없을 리 없다.

우리에 갇혔다. 갇힌 짐승은 재롱을 잘 떨어야 살아남는다. 여기서 순순히 죽을 생각은 없다.

설계자의 장난에 충실해야 한다.

- 덥석.

나는 조심스럽게 한손 검을 잡아들었다. 저번 생에서 바스타드 소드를 주로 쓰긴 했지만, 가장 익숙한 건 역시 이런 형태의 칼이다.

잠시 고민했다.

‘또 뭘 들지.’

한 손이 빈다.

양손 무기는 탈락이다. 방패와 메이스 사이에서 갈등했다. 하지만 이런 동굴이라면 역시 방패가 옳다.

무슨 함정을 설치해 놓고, 이런장난을 치는지 모를 노릇이니까.

땅에서 커다란 방패를 집었다.

그 순간.

[전능 억제가 해제됩니다.]

[시야 감소가 사라집니다.]

라는 메시지와 동시에,一 파바바바박!

빛으로 빚어진 <알아서 골라봐>라는 글자가 터졌다. 어둠이 사그라졌다. 사방으로 빛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보인 것은.

‘뼈.’

뼈. 뼈. 뼈. 뼈. 뼈.

뼈뼈뼈뼈사방을 온갖 뼈가 메우고 있었다.

말의 뼈.

인간의 뼈.

오크의 뼈.

트롤의 뼈.

오우거의 뼈.

알 수 없는 뼈.

그리고 뼈 무더기 속에서, 달그락거리며 서서히 무언가가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뼈 무더기 속에서, 커다란 망치를 든 오크 해골 다섯이 나타났다.

‘.젠장.’

동굴 속의 거대한 공터.

반경 20미터 정도의 넓이, 거대한 뼈 무더기로 둘러싸인 무대 위에서.

의도를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가학적 관음이 한창이었다.

- 달그락.

나는 사방에 널브러진 수없는 해골들을 내려다봤다.

셋 다음에는 다섯, 일곱이었다.

오크 해골 일곱이 나온 다음에는 트롤 해골이 등장했다.

놈은 거대한 도끼를 들고 덤볐다.

커다란 방패는 간단히 반으로 쪼개졌고, 칼을 던져 시간을 번 뒤철제 소형 방패를 주웠다.

_ 크르르르.!

트롤 해골이 울부짖었다. 양쪽에서 트롤 해골 둘이 더 나타났다.

‘망했군.’

트롤을 셋이나 한 번에 당해 낼 수는 없었다. 뼈밖에 남지 않은 해골들은 전투력이 한참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놈들은 무슨 마법이라도 걸린 건지, 살아 있는 트롤에 뒤지지 않았다.

내 능력은 전부 되돌아온 상태였다. 그래도 상대는 힘들었다. 놈들 하나하나가 무척 빠르고 강했다.

뼈에서는 은은한 흰빛이 나고 있었고, 가진 도끼는 서늘하게 날이 살아 있었다.

- 피릿!

도끼가 내리쳐졌다.

두개골이 쪼개지는 걸 막기 위해 급하게 방패를 들었다.

? 쨍!

강한 충격이 덮쳐 왔다. 버틸 수가 없었다. 방패를 놓쳐 버렸다.

- 데구르르!

찌그러진 방패가 바닥을 구른다.

도끼가 방패를 쳤는데, 철제 방패가 상해 버렸다.

- 스릉!

트롤은 아직 하나도 잡지 못했다.

양쪽에서 두 녀석이 도끼를 아래위로 휘둘러 온다.

나는 무방비한 상태다.

두개골이 쪼개진다면? 다시 레나를 만나게 되겠지.

하지만 기적을 바랄 수도 없다.

실력 차이는 압도적.

아무것도 알 수 없는 동굴.

뼈 무더기에서 해골로 된 적들이 계속 쏟아져 나왔다. 잠시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소멸이 코앞이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다.

나를 납치한, 관람자가 바란 게 정말 이런 것인가?

기껏 이런 무대를 마련해 놓고서?

- 데구르르!

나는 방패를 향해 바닥을 굴렀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하지만.

희망은 없어 보인다.

- 쾅!

가장 빠른 녀석이 찌그러진 철방패를 멀리 차 버렸다. 아무것도알 수 없는 이런 장소에서,

나는 정말 죽고 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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