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79화 (79/458)

80화 재밌는 걸 할 수 있게 될 거야 (5)

해골이 인간을 보고 놀란다는 건 우스꽝스럽다. 하지만 둘 가운데 어느 쪽도 아닌 그녀의 모습은 감탄과 경악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이런. 존재였나?’

어둠 속에서 나타난 여자. 그녀는 압도적인 미인이었다. 외모 구석구석, 가장 작은 단위에서 정밀하게 조형된 아름다움이 있었다.

그 유려한 황금비에는 단 한 치의오차마저 없다. 압도적이고 잔혹하다. 그렇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다만.

몸의 반은 해골, 반은 인간일 뿐.

반인반골半人半骨.

그녀는 인간도 해골도 아니다.

머리칼마저 그렇다.

컬이 져서 굽이진 하얀 뼈들이 귀뒤로 넘어가 있다. 이마 앞에서 우아한 컬을 연출한다.

입 주위, 가늘고 깊은 세 가닥 선이 각각 턱과 목까지 이어진다.

“으응.

그녀가 입술을 달싹인다. 반은 붉다. 반은 하얗다. 뼈로 된 부분과 살로 된 부분이 공존한다.

입 주위의 선이 벌어졌다. 깊숙이,

안쪽의 하얀 뼈가 드러난다.

- 스르륵.

그녀가 손을 든다.

한 손은 인간. 한 손은 푸르스름한 사기邪氣로 빛나는 하얀 뼈.

양손을 내 어깨에 얹는다. 툭툭 두드린다.

- 띠링!

[강력한 사령술에 접촉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합니다. 시나리오 활성화가 불가능합니다.]

‘뭐라고.?’

나는 상태창을 확인했다. 정말로,

레벨이 무려 2나 올라 있었다.

동굴의 해골들과 싸우며 조금씩 올라 8이 되어 있던 레벨이 다시 두단계 상승한 것이다.

‘고작 어깨를 두드렸다고, 레벨이올 라?’

기가 막힌 상황이다.

게다가 시나리오 운운하는 창도 신경 쓰인다.

[조건을. 시나리오 활성화가.]

반투명한 푸른 창을. 창 너머의 여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하지만.

정작 이 상황을 만들어 낸 눈앞의여자는, 허공에 뜨는 창을 전혀 보지 못하는 듯하다.

그녀가 말을 이었다.

“놀랐잖아! 내가 그렇게 유명해?”

‘맞아 들어간 건가.’

“정말 신경 쓰이는 아이네.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았을까?”

멈칫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기스-제-라이.

서큐버스님에게 이야기를 들었던 전설의 네크로멘서. 애초에 루비아와 함께 그녀를 찾아가려 했다.

반복 회귀 현상에 대해, 그녀가 도와줄 가능성을 생각하면서.

그렇다.

여기서는 솔직히 말해야 한다.

“나는 지금껏 여덟 번을 죽었소.

첫 번째 삶에선 지금부터 20년 후에 죽었지. 20년을 해골병사로 살다죽은 뒤, 돌아온 거요. 당신 이름은 한참 뒤에 알았지.”

있는 그대로 말했다.

물론 진실은 자주 배려가 없다. 여자는 당황했다.

“으흥?”

“한참 전이라고 해야 하나? 나는 시간 속에 갇혀 있소.”

“세상에.

그녀의 눈이 동그래졌다.

얼굴의 반이 갑각과 같은 해골이고- 그 해골은 정말로 ‘피부 같은’ 해골이었다. 살이 파내어진 것이 아니었다. - 반은 인간인 여자가 진심으로 감탄하는 표정을 지었다.

더없이 진귀한 보물이라도 손에 쥔둣. 잃어버린 혈육을 수십 년 만에 상봉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다. 하얀 뼈 눈썹 아래 커다란 눈동자가 흔들렸다.

감격과 흥분.

‘뭐지?’

여자가 꿀꺽 침을 삼켰다.

반은 뼈로, 반은 살로 덮여 있는 가녀린 목울대가 움직였다.

그녀가 말했다.

“세상에. 미친 해골이라니!”

- 띠링!

[네크로멘서 기스-제-라이의 호감도가 15 올랐습니다!]

[-15 올랐습니다.]

[현재 호감도: 3到나는 당황했다.

‘왜 호감도가 오르지? 그리고 왜 벌써 35나 되는 거야?’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지 못했다. 하지만 두 번째는 곧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쓸모없다고 여겼던 영응급 특전.

나는 상태창을 띄웠다. 다시 한 번 특전을 확인했다.

[특전: 네크로멘서의 연인 (활성)]

- 모든 사령술사(네크로멘서)와의관계에서 기본 호감도 20을 얻고 시작합니다.

- 사역 관계를 맺은 사령술사의호감도가 추가로 10 상승합니다.

- 당신의 존재는 사령술사의 영감을 자극합니다. 당신 근처에 있는 사령술사의 네크로멘시 숙련도가5% 빠르게 상승합니다.

- 영웅급 특전입니다. 다른 영웅급 특전이 활성화될 때까지 강제로 이특전이 선택됩니다.

계속 강제로 선택되어, 실은 별로신경 쓰고 있지 않던 특전.

네크로멘서의 연인.

이 특전이 작용하고 있었던 거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모든 네크로멘서의 호감도를 강제로 사 버리는 특전이다.

처음에 납치당한 것도, 사실 이 특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솔직히 내가 한 행동이라고 해 봐야 특별할 것도 없는 것들이다.

너무 과한 관심이라고 느꼈는데,

결국 특전 때문이었다고 생각하자수수께끼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 덥석.

기스-제-라이가 손을 뻗어 온다.

두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다. 피가 흐르는 따스한 손이 내 손목을 잡는다.

“???뭐요?”

“아하 하하하하. ”

따듯한 손은 내 손목을 잡고.

차가운 손은 제 배에 얹은 채.

전설의 네크로멘서가 몸을 들썩거리며 웃는다.

“여기 신사분은, 이게 자기 아홉 번째 삶이란다!”

- 달그락! 달그락!

여자는 나를 잡고 유쾌하게 웃으며 춤을 췄다.

나는 반항도 못 하고 그 손에 끌려 인형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다를 건너온 여행자! 파도에 고생해 건너왔네!”

- 달그락! 달그락!

한 손으로는 내 경추를 받치고, 한손으로는 내 손목을 잡고 흥에 겨워 마구 스템을 밟는다.

그녀는 멋대로 음을 지어내 노래마저 부르고 있다.

“철썩! 철썩! 파도가 뱃전을 갈겼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았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네!”

- 달그락! 달그락!

“나는 네크로멘서! 조용한 녀석들을 일으켜서 시끄럽게 만든다네! 여기엔 용의 뼈를 찾으러 왔지!”

‘용의 뼈라고?’

- 달그락! 달그락!

손목이 잡혀 마구 흔들리면서도,의문을 가졌다.

용 같은 건 이 세상에 없는데.

당연히 뼈 따위도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네크로멘서는 내 반응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다. 계속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춘다.

“이를 어째! 비슷한 것도 못 봤네!

하지만 괜찮아! 대신 찾았거든! 죽고 나서까지 미친 해골을! 이런 건 처음이야! 오늘은 축하의 날!”

- 달그락! 달그락!

정신에 구멍이 뚫릴 것 같았다. 이걸 상처받았다고 하는 걸까? 내 진실된 호소는 철저히 무시당했다.

나는 억지로 손목이 잡혀 춤추는 와중에 외쳤다. 아플 리가 없지만,

손목이 ‘아프게’ 느껴졌다.

“.그만 놓아주시오.”

네크로멘서가 춤을 멈췄다.

“아하하하?. 아하하하핫. ”

하지만 손목은 놓아주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허리에서 손을 땐 채, 처음처럼 자기 배를 잡고 다시 웃었다.

“앙탈 부리는 것도 귀엽잖아? 어디서 이런 게 생겼지? 누가 만든 거야, 진짜? 아하하핫.

어떻게든 이 여자의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 아니면 그냥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정신 나간 취급은 사양이다. 경고라도 하면 좀 나을까?

“말할 게 있소만."

미치광이로 취급받고 있다. 무슨 말을 하든 광기로 취급받는다면 거리낄 것은 없다. 최악의 경우라도 죽으면 그만이다.

“해 봐.”

“당신이 믿든 말든 나는 회귀자요.

그리고 당신은 곧 죽을 거요.”

“뭐?”

그녀의 인상이 확 찡그려진다.

“얼마 남지 않았지, 기스-제-라이.

당신이 접골 시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아쥬라의 마법사들은 그걸 위험하게 생각하고, 당신은 그들에게 곧 살해당할 거요.”

마구 내질렀다.

기스-제-라이가 눈을 깜빡였다.

내게서 완전히 손을 땐다. 짝, 하고박수를 쳤다. 손 떨림을 숨기기 위한 움직이었다.

명백한 당황의 기색이다.

“어디서. 듣고 온 거지?”

역시 믿지 않는 걸까.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거든.”

우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네 두개골에 혹시 심안(心眼) 같은 게 내재되어 게 있는 건가? 분해해 봐야겠는걸.”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말릴 겨를도 없이, 그녀가 내 두개골로 손을 뻗는다.

춤을 추기 위해 일으켰을 때와는 또 다른 손이다. 갑각처럼 하얀 뼈가 덮인 손을 내민다.

- 툭.

그녀의 손이 내 두개골에 닿는다.

모든 움직임이 정지됐다.

시야가 흐릿해진다.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았다. 마음대로 정신을 놓을 수도 없다.

- 서걱.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통제할 수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 서격.

머리뼈라도 벗겨지는 걸까.

위쪽이 허전하다.

네크로멘서는 내 머리에서 뭘 긁어간다. 제 머리에 입힌다.

내 머리에는 뼈밖에 없다. 뼈를 긁어 가는 거다.

- 서걱제 해골들에게 내 뼈를 붙여 본다.

해골들이 달그락거리며 움직인다.

여자는 그들을 한참 관찰한다.

흐릿한 시야. 그녀의 실망한 표정이 하나하나 또렷하게 잡힌다.

- 서걱 서걱서걱.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네크로멘서는 영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떻게 된 거야? 뭐 이런 평범한 스킬밖에 없어? 광기와 저주는 다 어디로 간 거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며 시야에 온통 안개가 낀 상태로, 나는 그녀를 가만히 바라본다.

‘광기와 저주라고?’

그런 걸 기대했나.

누구에게도 효과는 없었던 모양.

당연한 일이다. 내게 특별한 광기는 없다. 가진 건 고작해야 두려움과 불안 정도다. 그런 건 광기라고 부르기엔 약하고 흔하다.

‘광기를 찾나.’

나보다는, 눈앞의 당신이 훨씬 미쳐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삼킨다.

삼키고 싶지 않아도 어차피 입을 움직이지 못한다.

“어떻게 된 거야! 응?”

추궁한다. 이제 와서 물어봐도 할말은 없다.

그나저나.

두개골을 너무 많이 긁힌 걸까.

의식이 점점 더 흐려져 간다. 어둡다.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야가 한점으로 서서히 좁아진다.

‘끝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답답했다.

이번 생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죽었다.

몇 번을 다시 태어났다.

그러나 제대로 된 강자를 만나면 항상 죽는다.

장난감처럼 무력하게 짓밟히는 자신을 확인하고 죽는다.

“왜. 아무 효과도 없는 거지?”

네크로멘서가 탄식한다.

‘처음부터 내 말을 믿지 그랬나.’

그 말을 해 주지 못하고,

의식이 꺼져 버렸다.

- 우르릉! 광!

一 쏴아아아.

눈을 떴다. 이 소리는.

‘무덤인가?!’

아직 시야가 돌아오지 않는다.

“루비아!”

나는 허공에 소리를 질렀다. 다시무덤으로 돌아왔다.

‘영영 못 보는 게 아니었나?’

한동안 계속 동굴로 돌아왔다.

언제 또다시 무덤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

이번에는 지켜 줄 수 있을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 루비아??? 루비아. 루비아.

메아리가 울렸다.

‘환청.T빗소리는, 다시 들리지 않는다.

천둥소리도.

번개 소리도 없다.

바람도 불지 않는다.

몸을 움직였다. 주위를 더듬는다.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다.

주위가 뚫려 있다.

‘동굴인가?’

다시 레나에게 돌아간 건가.

‘잠을 깨웠겠군.’

민망했다. 내 외침에 곤한 잠을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쪽도 아니었다.

“어휴. 이제야 정신이 드네.”

네크로멘서가 나를 바라봤다.

“머리뼈 다 뜯어 가서 미안해. 아,

실은 두정골 정도지만.”

‘죽은 게 아니었나?’

“머리뼈를 다 뜯었다고? 그랬으면 죽었을 텐데.”

“뜯은 다음 내 껄 좀 붙여 줬어.

어때, 살 만해?”

- 톡톡.

그녀가 뼈로 된 머리칼을 친다. 끝에, 꽤 뜯겨져 나간 부분이 있다.

머리칼이 짧아졌다.

“루비아 꿈 꿨니?”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네크로멘서가 씩 웃었다. 그 웃음조차정밀하게 조정된 황금비였다.

지나치게 정밀한 수학적 아름다움이라, 동물인지 정물인지 알 수 없는 느낌마저 주었다.

“뼈는 좋은 거야. 잘 자라. 정수도 심어졌고. 내가 왜 이렇게 잘해 주는지. 모르겠다니까. 그냥 폐기해버려도 됐을 텐데.”

태연자약하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한다. 여자가 말을 이었다.

“재밌는 걸 할 수 있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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