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85화 (85/458)

86화 황제, 폐하, 만세 (5)

정확히 말하면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기사의 갑옷이다. 재질은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다. 저런 갑옷을 알고 있다.

‘미스릴.’

던전에 쳐들어온 용사.

서큐버스님을 살해한 용사. 그리고 그를 따르는 시종도 저런 미스릴로된 갑옷을 입었다.

‘저런 갑옷을 입고 그녀를.

- 달그락!

“왜 그래? 무슨 불만 있어?”

네크로멘서가 내게 툭 끼어든다.

“무슨 말이오?”

“재한테 무슨 유감이라도 있어? 아는 사이야? 왜 그렇게 뚫어져라 쳐다봐?”

“.그럴 리가.”

알지도 못하는 자다. 유감이 있을 리가 없다. 다만 좋지 못한 장면이 연상되었을 뿐.

어쨌거나.

검도 아니고, 전체가 미스릴로 만I어진 갑옷이라면 그 가치는 희귀 넘어선다. 돈만으로는 갖지 못준아티 팩트 (Artifact) 급이 라고이야 기할 수 있다. 네크로멘서가 기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을 1하는,

“갑옷 예쁘지 않냐?”

확실히 그러했다. 투구까지 내린 기사의 갑옷은 하나의 걸작이었다.

빼곡하게 상감된 룬어와 문양.

하나하나가 강력한 대마법 문양일게 분명하다.

“너, 가져.”

“무슨 소리요.”

“저거 벳으면 너 줄게.”

“빼앗는다고.?”

“그래.”

네크로멘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입던 것보다 저게 낫잖아,

안 그래?”

“내가 입혀 줄게. 좋은 것 좀 입고 다녀라.”

불쾌함에 앞서.

긴장이 온몸을 타고 흘렀다.

이 여자는, 정말 여기서 미친 짓을할 생각일까.

- 사박.

네크로멘서가 한 발을 내디뎠다.

그녀가 백백한 수풀로 이루어진 그늘에서 벗어났다.

- 사박.

풀을 밟는 발걸음 소리가 두개골에 울리는 것 같았다. 세상이 느려졌다.

기스-제-라이가 지금 이 순간, 죽으러 가고 있다.

9년 전쟁을 일으키는 전범戰犯, 제국 황제 엘튼 클레멘스의 행렬을 향해 천천히 걸어 나간다.

그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봤다.

그녀는 계속 걷는다.

두 명의 마법사와, 수십 명의 황실근위대를 향해 단 한 명의 네크로멘서가 터덜터덜 걸어가고 있다.

필패必敗.

필사必死.

황당한 짓이다.

거느린 해골도 하나 없다.

손잡아 데리고 온 해골 하나는, 굳은 채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 휘이이이잉.

늦여름 햇빛이 지나간 자리, 초가을 바람이 분다.

무언가 저에게 홑날려 달라는 둣,이리저리 불며 변덕을 부린다.

잔디가 흩날린다. 미처 피지 않은 가을 꽃씨가 흩날린다. 작은 잎사귀들이 뜯겨져 풀향을 피워 낸다.

하지만 네크로멘서의 머리칼은 혼들리지 않는다.

굽이굽이 컬 진 그녀의 머리칼은 하얀 뼈로 되어 있다.

어느 한순간.

그녀가 투명한 막 같은 걸 지났다고 느꼈을 때였다.

“히이이엉!”

수십 개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를 향했다. 말들이 그녀를 보고 놀라 멈춰 섰다. 기사들이 창을 쥔 손에 일제히 힘을 주었다.

그녀는 아무런 기운도 뿜어내지 않고 계속 걸어갔다. 비현실이 현실을 향해 걸어가는 것 같았다.

‘막혔. 어?’

기스-제-라이는 그저 대로 한가운데에 가만히 섰다.

그것으로 행렬이 정지했다. 선두의 기사들이 멈칫하며 고삐를 당겼다.

필요 없는 짓이었다. 말들은 본능에 따라 이미 멈춰 있었다.

독특한 풍모와 카리스마가 그들을 멈추게 만들었다. 내가 나갔다면 곧바로 창에 꿰였겠지.

혼자 미스릴 갑옷을 입은 기사가,차갑게 명령을 내렸다.

“되다 만 리치인가? 서 록시우스,

서 오즈먼, 치워라.”

메마른 음색은 삭풍처럼 차가웠다.

약간 톤이 높았다. 투구 가리개는 들지 않은 채 그대로다.

‘저자가 단장인가.’

“존명.”

가까이 있는 두 기사가 거대한 창을 높이 들었다.

주위의 다른 기사들과 구분되게,

둘은 특히 긴 창을 들고 있었다.

창날에서부터 50cm 정도가 철로 씌워진 무거운 창이었다.

‘돌격 랜스로군.’

- 다그닥. 다그닥.

두 기사가 가까이 다가왔다.

랜스 끝이 살아 있는 것처럼 파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뾰족한 날에 은은한 기운이 서렸다.

‘저건.

문득 토너먼트에서 만난 남자와 나눈 대화가 떠오른다.

방패와 곡도를 들고, 효율적으로상대를 분쇄하던 남자.

제법 잘 싸웠다. 크리스티나와 대전하기 직전의 상대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나를. 제국 4검주에 비하면 어떠한가?>

남자는 자세를 완전히 홑트리곤,

그 자리에서 폭발하듯 웃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왜 갑자기 헛소리야, 당신?>

<헛소리?>

<미쳐 버린 건가? 기氣를 쓰는 수준부터는 이런 거. 아무 의미 없잖아. 검 끝에 마력만 흐르게 해도 강철을 두부처럼 자르는데.>

남자는 그 뒤 칼을 내렸다. 그리고 기권을 선언했다.

<난 관둬야겠어. 미친놈이랑은 안 싸운다고. 그리고. 이런 데서 싸워봤자, 뭘 하겠어?>

결국 그는 경기장을 나갔다.

관중들의 야유도 그에겐 아무런 자극이 되지 않는 것 같았다.

‘확실히. 저게 바로 검기인가.’

수색대원에 이어, 두 번 연속으로 보니 알 것 같았다.

기 오러Aura.

절삭력과 파괴력을 압도적으로 증폭시켜 주는 힘.

하지만 갸웃한 점이 있었다.

눈앞의 녀석들보다, 푸른 갑옷의 기사나 용사가 훨씬 더 강할 터. 하지만 그들의 무기에서 저런 기운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 따위에게는, 저런 권능을 쓸 가치도 없었다는 걸까.

- 다그닥. 다그닥.

두 기사가 조금씩 말을 몰았다.

비스듬한 각도로 기스-제-라이를 겨냥했다. 3미터가 훌쩍 넘는 랜스로 단번에 꿰어 버리려는 것이었다.

두 기사는 그런 처리를 전문으로 하는 듯했다. 자세와 움직임이 몹시 익숙해 보였다.

폭발적인 움직임을 보이기 직전의잘 가라앉은 차분함이 느껴졌다.

감히 황제의 행차를 막아선 자.

죽음 외에 다른 처벌은 없다.

그들이 막 박차를 가하려는 순간,

“잠깐!”

뒤쪽에서 벽력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히 크게 내지른 목소리는 아니었다.

공기가 진동했다.

기사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

- 다그닥.

단장으로 추정되는, 미스릴 갑옷을 입은 기사마저 말머리를 돌렸다.

그의 시선이 수염 기른 마법사를 향했다.

“왜 그러십니까?”

권능과 권위에서, 결코 경시할 수없는 자의 외침이다.

일행은 일제히 행동을 멈춘 채 마법사의 말을 기다렸다.

수염 기른 마법사는 대로에 난입한기스-제-라이를 바라보고 긴장한목소리로 소리쳤다.

“내가 저자를 안다. 엠버메어를 지키는 3강 중 하나다. 섣불리 공격하지마라!”

- 다그닥! 다그닥!

마법사는 빠르게 말을 몰아 앞으로 나왔다. 하지만 박차를 가하지도, 채찍질을 하지도 않았다.

마치 ‘말이 나오고 싶어서’ 의지대로 달리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타고 있는 자세도 어설폈으나 말 은제 움직임을 마법사에게 맞추었다.

- 다그닥! 다그닥!

초가을 바람에 로브가 흩날렸다.

네크로멘서 앞에 다가간 아쥬라의마법사가 질문했다.

“용건이 뭔가?”

네크로멘서가 대답했다.

“어, 황제 암살.”

“<암살>이라고?”

수염 기른 마법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가만히 네크로멘서를 바라봤다.

그리고 고개를 돌렸다.

뒤를 흘끗 돌아봤다.

그의 시야에 백 명이 넘는 황실근위대와, 함께 파견된 마법사가 들어왔다. 다시 고개를 돌린 마법사가네크로멘서에게 물었다.

“헛소리를 하는군. 암살을 정의해보게.”

기스-제-라이는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이 픽 웃었다.

“목격자가 없으면 암살이지, 뭐.”

“뭐라.?”

마법사의 얼굴이 찌푸려진다.

귀 밝은 기사들 역시 암살이라는 단어를 들었다.

“2격 준비. 3진은 마차를 호위.”

단장이 차갑게 명을 내렸다.

황제의 수레 주위에 있던 기사들의 진형이 변했다.

- 다그닥. 다그닥.

2미터 길이의 미늘창을 든 다섯 기사가 말을 몰아 나왔다. 랜스 돌격이 빗나간 후, 상대를 찍고 베고 찌르기 위해 준비된 진陣 같았다.

차분히 제련된 살기가, 대로를 홀로 걸어온 네크로멘서를 향했다.

나는 엉겁결에 주위를 둘러봤다.

혹시 무언가가, 그녀의 군단이 어딘가에서 도착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숲은 고요했다. 산길은 고요했다. 그 어디에서도 원군은 오고 있지 않았다. 멀어서 보이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다가오는 근위대를 마법사가 손을 들어 제지했다.

“나 혼자 처리하겠다.”

기사들이 탐탁잖은 표정을 지었다.

황제를 암살하겠다는 자다. 근위대가 처리하는 게 당연한 터.

그러나 아쥬라의 마법사를 거역하기는 어렵다. 하물며 자기가 처리하겠다는 데에야.

“.알겠습니다. 모두 물러나라.”

랜스를 든 두 기사와, 미늘창을 든 기사들이 물러났다.

뒤에서 제3격, 4격을 준비하며 살기를 피워 올리던 근위대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입술을 깨물었다.

마법사는 네크로멘서를 보고 말 을이어 갔다.

“군단도 없는 네크로멘서가 배짱도 좋군. 특이한 존재라고는 들었다. 하나. 감히 진짜 마법 앞에서 덤빌 생각인가?”

수염 노인이 슬쩍 지팡이를 들었다. 1미터 정도의 지팡이 끝에는 정교하게 세공된 황색의 케흐리바리원석이 박혀 있었다.

주변 공기와 스스로를 마찰시키는 전기 속성의 보석에 샛노란 기운이강하게 압축되어 있다.

네크로멘서가 피식 웃었다.

“그거 잘 안 되지 않아?”

“안 되는 건 너도 마찬가지일 터.”

마법사 에레포르.

그는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근처는 아케인 이 매우 억제된 곳.

그런 까닭에 기운을 계속 스태프에 축적하고 있었다.

준비는 되어 있다.

눈앞의 네크로멘서는 맨손.

단검 하나 없다. 어떤 기계장치도,

축마蓄魔 장치도 없다. 군단도 없는네크로멘서와 싸워 질 리가 없다.

- 쉬익!

압축된 기운이 뻗어 나갔다.

공기를 압축한 기운에, 일렁이는샛노란 뇌전이 섞였다.

‘아슬아슬한데.,

기스-제-라이는 빠르게 날아오는 공격을 가까스로 피해 냈다.

- 펑!

뇌전을 맞은 바닥에 수십 갈래의전기가 퍼졌다. 넓은 표면의 잔디가 순식간에 재로 변했다.

공격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얼어라.”

노인이 든 지팡이에서 다시 한 번 압축된 공기가 터져 나왔다.

허공을 찢는 공기에 짙푸른 냉기가 섞였다. 네크로멘서는 이번에도 간신히 피해 냈다.

마법을 맞은 바닥의 돌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며 몇 갈래로 쩍 갈라졌다.

아직 마법에 직격 당하지는 않았지만, 네크로멘서에게 그리 큰 여유는 없어 보였다.

지켜보던 근위대는 마법사의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였다.

- 다그닥. 다그닥.

뒤쪽에서 또 다른 마법사가 거들 기위해 말을 몰아 다가오고 있다.

“좀 어떤가? 내 거들지.”

‘이런.’

두 명의 마법사다. 합공은 당해 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 달그락!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도움이 될 수는 없겠지.’

하지만 이대로 도망칠 수도 없다.

루비아가, 전혀 도옴이 되지 않을 텐데도 돌을 쥐고 다가왔던 심정이 이해되었다.

소용없고 무의미하다는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행위들이 있다.

- 달그락! 달그락!

기스-제-라이를 향해 달려갔다.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도착하는 건 금방이었다.

달려오는 나에게 시선이 집중된다.

네크로멘서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봤다.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

“감동인데? 안 가고 와 준 거야?”

“감히 눈을 돌려.!”

계속 공격을 가하던 흰 수염의 마법사가 짜증을 냈다.

- 쩌어어억!

짜릿한 냉기가 기스-제-라이가 서있던 주위 바닥을 하얗게 얼렸다.

마치 포위하는 것처럼 냉기가 나와 그녀 주변을 모조리 얼어붙게 했다.

직선 공격이 먹히지 않으니 아예 피할 공간 전체를 얼린 셈이다.

기사들이 웅성거리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바닥을 얼리면 황제의 마차가 길을 가는 데 지장이 생긴다.

물론 아쥬라의 마법사는 그런 사소한 일 따위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수염 긴 마법사의 스태프에 전격이 맺히기 시작했다.

- 파츠즈즈즈즈즈!

동시에, 단단히 얼어붙은 땅 위에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나, 아쥬라의 에레포르. 여기를 네무덤으로 만들어 주마.”

- 휘이익.

기스-제-라이가 휘파람을 불었다.

반은 뼈로, 반은 살로 된 붉은 입술사이로 어떤 신호가 새어 나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주위를 멀리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고, 코앞에는 강하고 무수한 적의敵意들이 우리를 마주하고 있을 뿐이었다.

기스-제-라이는 자신의 자리를 확인했다.

그녀만 알아볼 수 있는 작은 표식으로부터, 이제 네 걸음 앞이었다.

기스-제-라이가 입을 열었다.

“어휴. 네크로멘서 앞에서 무슨 무덤 얘기를 해?”

- 저벅.

세 걸음.

- 스르록.

그녀는 뼈로 된 손을 들었다.

앞을 가리켰다. 새하얀 손은 어떤 무기도 들고 있지 않다. 어떤 기운도 맺혀 있지 않았다.

곧게 뻗은 하나의 검지 뼈로.

네크로멘서는 두 걸음 앞의 땅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너져라.”

- 쿠구구궁!

거짓말처럼 땅이 꺼지기 시작했다.

균열이 생긴 게 아니다.

원래 텅 비어 있던 것처럼, 무언가가 무리하게 그 아래를 받치고 있었던 것처럼 무너졌다.

깔끔하게 깎인 돌이 촘촘히 박혀있던 도로가, 지반이 신기루처럼 아래로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고작 네크로멘서의 몇 걸음 앞에서 벌어진 일.

짧은 비명 소리도 제대로 뱉지 못했다. 백 명이 넘는 인원이 통째로 떨어졌다.

유성이라도 떨어진 것 같은 구멍.

황당해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런 마법은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어떤 발동 주문도 없다.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지시>했을 뿐.

- 무너져라.

나는 그녀의 곁에 서서 물었다.

“이게. 이게. 대체 뭡니까?”

“공사해 놨다고 했잖아. 기억 안나는 거야?”

“대체.

“아래를 판다. 내 아이들이 하중을 지탱한다. 필요할 때 무너뜨린다. 끝이지.”

“그게. 말이 됩니까?”

“엠버는 공학의 도시란다. 내 해골가운데 토목 공학자가 얼마나 많은데. 여기가 연약 지반 이랬나? 디테일은 개네한테 물어봐.”

상식 밖의 소리.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든 광경. 나는 할 말을 잃고멍하니 서 있었다. 정말 놀라운 모습은, 구덩이 안쪽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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