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화가면 쓴 축복 (1)
기스-제-라이가 눈을 치떴다.
“응? 얘, 방금 뭐라고 했지?”
못 들었을 리가 없다.
똑똑히 들었기에 묻는 것이다.
황제 폐하 만세. 그 외침이 황제본인에게서 나왔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스스로 가리켜 황제 폐하 만세라고외치는 녀석은 없다. 덜떨어진 광대나 그런 짓을 한다.
엘튼 클레멘스는 짧은 시간에 황위를 계승받고 제국을 휘어잡았다.
자유 연합의 의원들은 입버릇처럼,
세습 군주의 9할은 구멍가게도 운영못 할 위인이라 비아냥거린다.
하지만 그런 비난은 엘튼 클레멘스에게 유효하지 않다.
그는 뛰어난 수완가다.
정박아나 광대와는 거리가 멀다.
나는 머릿속으로 몇 가지 가정을 세웠다.
“가짜. 황제인 거요?”
기스-제-라이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맞는데.
그녀가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나보다도 놀란 표정이었다. 그녀는이 남자가 황제라고 확신하고 있다.
“혈액 반응이 동일인으로 나왔어.
외모도 내가 알고 있는 것과 같아.
가짜 따위가 아니야.”
- 덥석.
그녀는 황제의 시체를 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손에서 인장을 빼냈다.
옥관을 벗겼다.
30대 중반 정도의 서늘한 인상의 은발 미남자가 그녀의 손에 잡혔다.
그때 였다.
_ ? ? ? ? ? O-t기 I~I I Io ?
허공이 나팔꽃처럼 입을 벌렸다.
그 안쪽에 무언가가 새까맣게 뭉쳐있다. 질척한 반죽 같은 것이 마구 뒤섞여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벌어지는 공간은 점점 커졌다.
“.뭐야?”
기스-제-라이가 움직임을 멈췄다.
눈을 가늘게 뜨고 힘을 끌어 모았다.
그녀가 바짝 긴장할 정도의 기운이주위에 깔리기 시작했다. 본능적인거부감이 휘몰아쳤다.
기스-제-라이는 안쪽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명령을 내렸다.
“.모두, 도망쳐라.”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촉수처럼 수십 가닥의 뼈를 생성하더니 벌어지는 공간을 구속했다. 공간이 잠시 구겨지는 것 같았다.
- 지이이이이잉!
하지만 곧 다시 공간이 활짝 벌어지기 시작했다.
- 뚜둑! 뚜두둑!
촉수처럼 수십 갈래로 뻗어 나가,
공간을 구속하던 네크로멘서의 뼈가 연달아 부러지기 시작했다.
“도망쳐라! 마지막 명령이다.”
네크로멘서는 자신의 군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하지만 누군가를 특정해 부르거나,
볼 정신도 없는 둣했다. 명령을 강제할 힘이나 집중력조차, 벌어지는 공간을 억제하는 데 쓰고 있었다.
- 달그락.
심상치 않은 상황.
나는 무심코 한 걸음 물러섰다.
하지만 한 걸음 물러선 뒤, 몸이움직이지 않았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끝까지 보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아니, 실은.
공포로 몸이 굳어서 도망가지 못하는 것에 가까웠다.
그때.
- 저벅! 저벅!
새까만 기운을 텅 빈 목에서 뿜어내는, 기스-제-라이의 듀라한들이앞으로 뛰어나와 그녀를 감쌌다.
“주군!”
“주군!”
길라우트, 오웨인, 안드레이, 펜리르, 하멜라인이 그녀를 둘러쌌다.
그들 역시 무시무시한 압박감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망인t:人의 넋이 어디로 도망간단 말씀이오.”
다섯 듀라한이 그녀를 오망성처럼둘러쌌다.
그때 였다.
- 쨍그랑!
허공이 박살났다. 공간이 파편처럼 깨졌다. 날카로운 파편이 다시허공을 찢었다. 응고되다 뭉개진 핏덩어리 같은 색으로 세계가 칠해졌다.
- 파삭!
기괴하게 깨진 허공에서 무언가가 뛰쳐나왔다. 2m는 훌쩍 넘을 것 같은 칠흑의 대검이었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탓에 제대로 인식할 수 없는 ‘무언가’가 대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 서걱!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진 칠흑의 대검에<민첩한 펜리르>가 반으로 갈려 죽었다.
아래로 떨어진 대검은 땅을 치지 않고, 270도로 아래에서 비스듬히 위로 휘둘러졌다.
- 퍼걱!
<견고한 오웨인>이 사선으로 갈려죽었다. 살아 있을 때 토너먼트 우승을 함께 독점하던 그의 애마와 함께 통째로 두 동강 났다.
<동방의 길라우트>는 평행하게 베여 죽었다.
<심장을 부수는 안드레이>는 단칼이 몸이 터져 죽었다.
<창백한 하멜라인>은 검면으로 내리쳐져 몸이 터져 버렸다.
‘뭐, 뭐가 어떻게 된.!’
대체 무슨 일인지, 아무것도 알 수없었다.
공간이 벌어질 때, 만들어 낸 뼈촉수가 대부분 부서진 기스-제-라이가 분노로 두 눈을 번뜩이며 다시몇 가닥의 촉수를 만들었다.
- 쳐라.
수십 가닥의 뼈가 바닥에서 솟구쳐회오리처럼 ‘무언가’를 공격했다.
- 퍽!
촉수 가운데 한 가닥은 길게 뻗어 나와 나를 멀리 쳐냈다. 나는 촉수에 얻어맞아 허공을 날아갔다.
‘도망. 치라는 건가?’
하지만 쳐낼 힘도 부족했던 둣, 나는 기스-제-라이로부터 고작 십여 미터를 날아가는 데 그쳤다. 그리고 주저앉아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 광!
칠흑의 대검과 수십 가닥의 촉수가한차례 격돌했다.
수십 톤의 화약이 한 번에 폭발하는 소리가 나며 땅이 흔들렸다.
닿는 건 모조리 두 동강 내던 마검이 허공에서 떨렸다. 나는 그제야‘그것’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균열에서 뛰쳐나온 ‘그것’은, 세상을 검붉은 개펄로 만들어 버릴 듯한 기운을 갈기갈기 뿜어냈다.
그 모습은 그리 특이하지 않았다.
- 터벅. 터벅.
두 발로 걸었다. 갑옷을 입은 인간의 형태에 가까웠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방식으로 세공한, 진회색 갑주를 입고 있었다.
갑옷 전반에 걸쳐 기하학적인 회로가 번쩍였다. 그가 붉은 망토를 펄럭이며 걸어왔다.
칠흑의 대검이 아래에서 위로 쳐내려졌다.
? 쨍!
기스-제-라이의 남은 몇 가닥 뼈촉수가 모두 바스러졌다.
“끈질기다.”
그는 투핸디드 소드를 당겼다.
그리고 기스-제-라이의 아래에서위로 거대한 마검을 다시 쳐올렸다.
쨍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막지 못했다.
- 팍!
처참한 소리와 함께. 기스-제-라이는 정확히 양분雨分되었다. 낭자하게 찢겼다.
- 달그락.
- 달그락.
- 달그락.
주위의 다른 해골들도 부서졌다.
마검의 기사는 그들에게 손도 대지 않았다. 그저, 기사가 쁨어내는 마기에 짓눌려 부서져 버렸다.
‘이럴 수가.’
흡입적 정적.
경악이 소음을 빨아들인다.
검을 거둔 기사가 차갑게 나를 내려다본다. 투구 저편에 검붉은 빛이 이글거린다.
[? f 公 rt // 7r ? pco v a tc公v(? air r) a rj]
기스-제-라이를 양분했던 마검이다시 한 번 허공에 들린다.
- 광!
‘죽은. 건가?’
나는 앞을 바라봤다. 하지만 풍경은 그대로다.
무덤도 동굴도 아니었다.
대신 눈앞에 푸른 창이 떴다.
[양손검술 Lv.l을 습득했습니다!]
[양손검술 Lv.2를 습득했습니다!]
[양손검술 Lv.3을 습득했습니다!]
陷?격 Lv.l을 습득했습니다!]
[일도양단 Lv.l을 습득했습니다!]
‘무슨.?’
나를 의미를 알 수 없는 상태창 너머를 바라봤다.
잿빛 기사의 투구에 붉은 회로가 반짝인다. 얼굴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회로가 새빨갛게 달아오른다.
분노? 경악?
어찐지 그런 감정이 읽혔다.
- 좌르륵!
그의 뒤쪽.
아무것도 없던 허공에 날개처럼 수십 자루의 칼이 떠올랐다.
- 우우우응!
칼이 울었다.
허공에 뜬 수십 자루의 칼이 나를 향해 폭사됐다. 잔상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날아온 칼들은,
- 쌩!
그대로 나를 통과했다.
그 순社- 뜻뚜루?!
[동화율: 84.68%]
라는 글자와 함께, 허공에 텅 빈 무언가가 떠올랐다.
길이 2미터, 폭 1미터 정도 되는 투명한 창이었다.
어떤 글자도 쓰여 있지 않았다.
잿빛 기사의 전신 회로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허공 전체가 이유 모를 분노로 물드는 것 같았다.
\.A Z V U ndp X 8 L 公 /Of 公 rs pa x p61/ o !!]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 지이이이이잉!
허공이 입을 벌렸다. 질척한 반죽 같은 세계의 이면程面이 열렸다.
활짝 벌린 공간으로, 기사가 발을 디뎠다. 공간이 찌그러지며 다시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
멍하니 굳어 있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무언가에 단단히 씐 기분이었다.
환각이라고 믿고 싶을 정도로.
- 달그락.
한참이 걸렸다.
가까스로 몸을 움직이기까지.
폭력이 지나간 자리를 둘러봤다.
마법으로 얼어붙은 땅 위에.
황실 근위대가 단체로 시신이 되어 쓰러져 있다. 명망 높은 아쥬라의두 마법사는 핏자국이 되어 터졌다.
사인死因은 간단하다.
기스-제-라이.
그리고 그녀의 군단.
완벽한 매복이었다.
아래로부터의 공습은 성공적.
‘하지만.’
군단 역시 전멸했다. 허공을 찢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적이 나타났다.
‘단 한 명에게.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가루처럼 으스러졌다. 명예롭게 제 이름을 대던,
다섯 듀라한은 단번에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군단의 주인.
기스-제-라이의 몸 역시 깔끔하게 절반으로 찢어졌다.
혼란스럽다.
머릿속에서 의문들이 주절거렸다.
갈피를 잡기 힘들었다. 찢긴 네크로멘서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부끄러움이 울컥 솟구쳐 올랐다.
처음에는.
황제의 행렬이 두려웠다.
아쥬라의 마법사와, 황제를 호위할 근위대를 두렵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스-제-라이는 네크로멘서가 어떤 건지 내게 보여 주었다.
두려음의 대상이던 마법사와 황실근위대를 몰살시켰다.
발끝에서 일어난 전율은 두개골로 올라왔다. 내심 생각했다.
곁에 있고 싶다고.
그리고 그녀는,
어디선가 뛰쳐나온 정체불명의 존재에게 농담처럼 찢겨 죽었다.
정신을 차릴 틈도 없었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그녀가 만든 거대한 구덩이 안에 가만히 서 있다. 그런 채 그녀의 시체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이루 말하기 힘든 혐오감을 느꼈다. 혐오감의 유일한 대상은 나 자신이었다.
무력감에 한참 굳어 있던 머릿속에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난 살았지?’
마검의 기사는 나 역시 공격했다.
칠흑의 대검으로, 허공에서 소환한 수십 자루의 검으로.
주변의 수많은 스켈레톤 나이트들이 일제히 부서진 마기魔氣에도 나는 상하지 않았다.
분노로 갑옷에 새겨진 회로를 번쩍이더니 사라져 버렸다.
‘도무지. 알 수가 없군.’
- 달그락!
고개를 흔들었다. 어차피 당장 해결할 수는 없는 의문이다.
눈앞에 닥친 다른 문제가 있다.
‘곧 인간들이 들이닥치겠지.’
황제의 행차. 대로를 비워 놓아 목격자는 없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황제가 오지 않는다면, 기다리던영주는 군대를 파견하리라.
당연한 순서.
영주 본인이 직접 병력을 이끌고 올 확률이 높다.
‘일단. 음직이자.’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깨닫는다.
주변이 온통 은은히 빛나고 있다.
구덩이 안은 초록의 일색一色.
모든 시체가 팔다리, 가슴, 머리에서. 반투명한 옥빛을 내고 있다.
“아.
가볍게 탄식을 뱉었다.
여기 있는 존재들은 강하다.
‘아니, 강했지.’
가장 말단의 기사조차도.
어쨌거나 근위대다.
말 그대로 상위의 존재들.
본신의 능력이 나보다 뛰어나다.
곳곳의 초록색 불빛들을 다시 바라본다. 마치, 먹어 달라고 아우성치는 것 같은 수많은 불빛.
산처럼 쌓인 시체 중에서도.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나는 게 있다.
‘기스-제-라이.!’
네크로멘서의 시신이다.
- 저벅. 저벅.
그녀에게 다가갔다.
반으로 갈라진 그녀를 하나씩 안아든다. 갈라진 몸을 가져다 댔다.
한쪽은 뼈로 뒤덮여 있고,
한쪽은 피와 살이 흐르는 인간.
아름다웠던 그녀를 생각한다.
물론, 갈라진 틈은 붙지 않는다.
_ ? ? ? ?기 I?_Iu ?
그 틈에서 뿜어져 나오는 환한 빛.
나는 그곳에 손을 가져다 댄다.
예상한 메시지가 뜬다.
[홉수하시겠습니까? Y/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