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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89화 (89/458)

90화 가면 쓴 축복 ⑶

빛나는 미스릴 풀 세트.

신화에 나오는 기사가 악롱을 무찌를 때 입을 법한 아름다운 갑옷이었다.

황실 근위기사대에 대대로 이어져내려오는 갑옷이라고 해도 믿을 법한 느낌.

석궁은커녕, 풀 차지로 박히는 랜스나 최대의 힘으로 휘둘러진 스파이크에도 뚫리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이런 걸. 입어도 되나?’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빼앗아 줄게.>

문득 네크로멘서가 하던 말이 떠올랐다. 가슴 안쪽에서 알 수 없는 느낌이 뼈를 타고 올라온다.

잿빛 기사가 나타났을 때.

<도망쳐라.>

그녀가 뼈로 된 촉수 하나를 뻗어 나를 멀리 쳐내던 장면이 다시 떠올랐다.

- 달그락.

루비아가 준 갑옷을 네크로멘서가 어디 놔뒀는지 알 수 없다.

일단 여기서는 이 갑옷을 입어야할 것 같다. 두 자루의 마법 지팡이를 잠시 옆에 내려놓았다.

一 철컥.

조심스럽게 플레이트 갑옷을 몸에 걸쳤다.

장갑과 신발까지 장착했다. 역시,

주인이 아닌 자가 입었다고 몸이 불타 버리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다행인가.’

미스릴 재질에, 대對마법 문양이 빼곡하게 그려진 갑옷.

이 정도로 좋은 갑옷이라면, 정체를 가려 주는 건 그저 부수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마지막으로 투구를 썼다.

잘려서 굴러다니는 단장의 목을 바라봤다. 그녀의 부릅뜬 눈을 손으로슥 내려서 감겨 주었다.

‘당신도. 잘 싸웠다. 쉬어라.’

특이하게도 단장은, 몸이 아니라 잘려진 머리에서 빛이 반짝였다.

환한 초록색 불빛을 흡수했다.

- 띠링!

빛히 흡수되며 효과음이 울렸다.

[전술(지상) Lv.l을 흡수했습니다!]

- 우회기동을 익혔습니다.

- 포위섬멸을 익혔습니다.

- 기마 돌격을 익혔습니다.

- 사선 대형을 익혔습니다.

[익힌 전술의 레벨에 따라 효과가 달라집니다.]

[전술 레벨: 1]

[기초적인 효과를 발휘합니다.]

‘음?’

특이한 스킬이다. 대단한 활약을 벌이던 여자였다. 검술이나 창술 같은 걸 얻게 될 거라 예상했는데, 정작 홉수를 시작하자, 전술 지식이 머릿속에 조금씩 홀러 들어온다.

마법사 같은 초월적인 존재들이 전장을 지배한다.

그 탓에 오밀조밀한 전술을 천시하는 게 인간의 풍조였다. 하지만 여자는 꽤 깊이 공부한 것 같았다.

<모든 전쟁은 기만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방어 회전의 양상에 대해서 고찰해 보자.>

<병력의 은폐와 엄폐는.>

<후퇴 기동을 지연시키기 위해서 .>

<요새의 이점을 향유하는 적의 전역을 고립시킬 때.>

처음 접하는 개념들이 하나하나 머릿속에 새겨졌다.

그녀가 즐겨 읽었던 책들, 연구한 전투들이 머릿속에 스며들었다.

흡수 레벨이 1이기 때문일까?

들어오는 지식은 대부분 기초적인수준에 불과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써먹어 보고 싶었다.

첫 번째 생에서는 전쟁을 오래 경험하긴 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약한 해골병사였다. 아주 좁은 시야만을 가졌다. 내가 대체 어디로 움직이는 건지, 전황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전혀 듣지도 못했고 감도잡지 못했다.

하지만 이런 지식을 계속 흡수한다면, 굳이 군대를 통솔하지 않아도분명 전장에서 도움이 될 거다.

‘언젠가 써먹을 수 있겠지.’

기스-제-라이에게서 얻은 뼈 지배스킬과 결합한다면.

나만의 군대를, 전술 스킬로 효과적으로 통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기회가 을지는 모르겠지만.

- 툭.

빛을 다 뿜어낸 단장의 머리를 몸곁에 고이 놓았다.

단장에게서 떨어져 다른 자들을 연달아 흡수해 갔다.

이미 죽은 지 오래된 듀라한이나기스-제-라이의 다른 해골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초록빛을 쁨고 있었다. 나는 환한 빛에 어지러음을느낄 정도로 계속 녀석들을 흡수해갔다.

[경갑 착용 Lv.l을 홉수.]

[중갑 착용 Lv.l을.]

[제국 예법 Lv.l을.]

[참회의 여신, 예메라의 교리 Lv.l을 흡수했습니다!]

[불의 여신, 비르폰의 교리 Lv.l을 홉수했습니다!]

[기사도 Lv.l을 흡수했습니다!]

[승마 Lv.l을 홉수했습니다!]

[창술 Lv.2를 홉수했습니다!]

[회계 Lv.l을 흡수했습니다!]

갑옷을 어떻게 착용해야 하는지,어떤 식으로 예를 취해야 하는지가머릿속으로 조금씩 흘러들어 왔다.

다양한 종교의 기초 교리가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말을 타는 방법도, 창을 쓰는 방법도, 심지어 영지에서 돈을 걷고 관리하는 방법까지도 머릿속에 느릿느릿하게 쌓여 가고 있었다.

[소화 완료까지 23:57:32.]

쌓여 가는 스킬들은, 큰 그림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는 듯한 기분으로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완료된 뒤에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겠군.’

스킬 레벨이 올라간다. 높은 레벨이 될수록, 한 단계를 올리기까지 많은 이들을 흡수해야 했다.

스킬은 점점 더 느리게 올랐다.

- 띠링!

[질주 Lv.4를 홉수했습니다!]

근위대 전투마 수십 마리를 흡수한뒤에야, 비로소.

질주 스킬 Lv.2에서 3을 거쳐, 4를흡수하게 되었다.

반짝이는 질주 Lv.4라는 글자를 건드렸다.

그러자 추가 상태창이 떴다.

[15분 동안 350%의 속도를 낼 수있습니다!]

[다음 사용까지 50 : 00]

[24시간 내 사용 가능 횟수 3/3]

E급 던전, <피 묻은 승마자의 쿼터>에서 얻은 스킬을 두 단계나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물론 황실 근위대의 명마들이기에 가능한 일이겠지.

웬만한 말들은 아예 홉수할 빛 자체가 보이지 않을 거다.

‘15분 동안 350%.,

쿨타임 동안도 몸이 느려지는 건아니다. 이제 웬만한 상대에게는 따라잡힐 일이 없을 것 같았다.

흡수를 거듭한 지 두어 시간이 지녹색 머리칼의 기사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머리칼과 같은 초록색기운을 홉수하기 시작했다.

- 띠링!

[용량을 초과했습니다.]

[소화 중인 능력이 50개 이상입니다.]

[더 이상 흡수할 수 없습니다.]

‘끝인가.’

조금 아쉬웠다.

더 아까운 건.

기스-제-라이에게 빨아들인 스킬을 제외하고는, 홉수한 스킬들이 모두 일반 스킬이라는 점.

마법도, 오러 능력도 흡수할 수 없었다. 상태창을 열고 정수 흡수Lv.l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50 이하의 스탯.]

[Lv.5 이하의 스킬.]

[흡수 레벨(1)에 의해, 일반 스킬로 흡수가 제한됩니다.]

[죽은 지 48시간 내.]

‘이 제약 때문인가.’

터무니없는 능력이긴 하지만.

아예 제약이 없는 건 아니다.

<소화 중>으로 표시되는 50개의능력을 쭉 훑어봤다.

근위대에게 홉수한 다양한 스킬과,

기스-제-라이에게서 흡수한 스탯이주르륵 보였다.

‘24시간만 지나면.’

이걸 다 흡수한다면.

지금까지와는 한 단계 다른 세계에발을 디디게 될 것 같았다.

빼곡한 목록을 보고 있자니 있지도 않은 심장이 뛰는 것 같았다.

공기가 새롭게 느껴졌다. 아직 쓸 수 있는 능력들도 아니지만, 이미 강해진 듯한 기분이었다.

스킬과 스탯을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비슷한 레벨의 상대들에 비해 훨씬 높은 스탯이 있다.

갈 길은 멀어도 희망은 충분하다.

- 우드득!

몸을 이리저리 돌렸다.

‘가야겠군.’

아쉬운 마음도 있다.

몇 시간이 더 지나면.

능력을 흡수할 자리가 조금 빈다.

불운한 그라스미어의 공자와, 외곽수색대 녀석들에게서 얻은 능력이 소화된다.

좀 아쉽기는 하다. 아직 초록빛을 내는 자들은 많으니까.

하지만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이미 자리를 벗어나야 할 시점을 한참 넘어섰다.

지금도 충분히 오래 있었다.

- 달그락.

위를 바라보았다. 태양이 뜨겁게 내리쬐고 있다. 마법사의 지팡이 두 자루를 다시 챙겨 들었다.

황제의 시체에 다가가 한 번 슬쩍보고는, 반지도 빼냈다.

무려 제국 황제의 인장印章이다.

쓸모가 없을 리 없다. 기스-제-라이가 죽었는데 이거라도 받아 가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주위를 살폈다.

‘이런 것도 있군.’

수레를 들 때 떨어졌는지, 네모난 작은 금괴와 금화들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다. 돈이 필요하면 환전해서 쓰는 용도인 것 같았다. 금괴는 손가락 한 마디만 했다. 들기 부담스러운 크기는 아니었다. 금괴에는 황제의 인장과 일련번호가 찍혀 있었다.

일단 보이는 다섯 개를 주머니에 넣었다. 금화도 쓸어 넣었다.

이제 떠날 생각으로 근위대의 시체들, 그 수배가 되는 해골 사 이를지나 올라갔다.

하지만.

여전히 아까웠다.

지팡이에 인장, 금괴에 금화까지 챙겼다. 그래도 더 가져갈 게 많다.

널려 있는 칼 하나하나가 명검.

전설의 보물 정도는 아니라도, 무력의 한 정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황실 근위대가 쓰는 무기들.

듀라한들이 쓴 마검들도 심상치 않아 보이는 게 많다. 자루에 알알이보석이 박힌 칼도 있었고, 스스로 은은하게 빛나는 문양이 그려진 방패도 있었다. 다 버리고 가기엔 역시 아깝다.

‘레나한테 옮은 건가.’

확실히 그녀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어떻게든 이것들을 챙길 방법을 찾았겠지.

어쨌건 이대로 가는 건.

좀 아니다.

‘음.

나는 곧 방법을 떠올렸다.

가까이 있는 칼을 들었다.

기스-제-라이 근처에 떠 있는 ‘공간’에 그걸 집어넣어 보았다.

된다.

들어간다.

역시나 칼은 아무런 저항 없이 공간 안으로 쑥 들어갔다.

공간이 칼을 빨아들이는 게 아닌가싶을 정도. 자루까지 완전히 들어간검은, 바깥에서 보기에 10cm도 되지 않았다. 1/10 정도로 크기가 축소된 것이다.

‘마흔 자루는 넉넉히 넣겠군.’

나는 다른 칼도 안에 하나씩 집어넣었다.

특별히 검을 보는 안목은 없다.

하지만 자루에 박힌 보석만 슬쩍봐도, 한 자루면 인간 하나가 평생 먹고살 명검들이 널려 있다.

일단 다섯 듀라한의 마검과, 기하학적인 문양이 새겨진 방패를 주워 넣었다.

미스릴 갑옷에 새겨진 것과 비슷한 문양이 있는 방패였다.

‘대마법對魔法 문양인가.’

처음 기스-제-라이를 공격하려던 두 기사의 랜스도 안에 넣었다.

- 쪽!

길이 4미터가 넘는 굵고 거대한랜스였지만 문제없이 안으로 쑥 들어갔다.

그래도 이건 밖에서 보니, 다른 칼보다 크다는 게 티는 났다.

검은 망토가 달린 갑옷도 하나 벗겨서 안에 집어넣었다.

특이하게 어깨 부분에, 작게 사슴쁠 같은 게 솟아 있는 갑옷이라 눈에 띄었다.

그 외에 칼 스무 자루를 안에 더집어넣었다.

단장이 쓰던 칼은 아무런 장식이 없이 매끈한 은색의 칼이었는데, 이건 내가 쓰기로 하고 따로 옆에 내려놓았다.

‘음.

슬슬 공간이 거의 찬 것 같다.

오밀조밀하게 들어간 작은 무기들을 가만히 바라봤다.

‘다른 자의 눈에 보이려나?’

사실 이 공간이 나에게만 보인다는 보장은 당연히 없다.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인다면 기껏 넣은 게 쓸모가 없다.

하지만 이제 와 누굴 붙잡고 물어볼 수도 없는 일이다. 일단 이렇게 해 놓고, 여기를 벗어날 뿐.

나는 마지막으로 기스-제-라이를 가만히 바라봤다.

고민은 길지 않았다.

결론은 금방 났다.

그녀를 군단 가운데에 내버려 뒀다.

‘흙 속에 묻는 관습 따위, 한심하게 생각하겠지.’

고개를 다시 돌리려 할 때, 문득무언가가 눈에 밟혔다.

반으로 갈라진 기스-제-라이의 손이 무언가를 쥐고 있다.

’저것도. 가져가야 하나?’

황제에게서 뽑은 혈액.

투명한 관 안에 담겨져 있는 피.

재질을 알 수 없는 관은, 손가락 뼈마디 하나 정도의 크기다.

‘쓸모가 있을까? 저걸로 본인이 증명됐다고 했는데.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결국 다시 기스-제-라이에게 걸어갔다.

손에서 엠플을 꺼내 들었다.

가지고 있으면 어딘가는 쓸모가 있을 거 같았다. 의외로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본인을 확인했다는 혈액 샘플을 챙기는 순간.

연달아 의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황제가 죽었다.

전쟁을 일으켰던 엘튼 클레멘스 2세가 내 눈앞에 죽어 있다.

‘미래가 바뀐 건가?’

내 존재 때문은 아니다.

이 시점까지, 나는 사실 아무것도한 게 없다.

기스-제-라이가 계획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다 했을 뿐.

‘어떻게 되는 거지.,

전쟁은 안 일어나는 걸까? 다른 후계자가 전쟁을 일으킬까? T&T의간부들은 암살에 실패했다고 했는데. 앞으로의 일을 도무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지켜보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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