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95화 (95/458)

96화 가면 쓴 축복 (9)

<@# $%들과 & § 할 것>

책 마지막에 필기체로 쓰여 있는,

알아볼 수 없던 글자들을 앞에서부터 천천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깨진 $%들과 & § 할 것>

<깨진 조각들과 & § 할 것>

<깨진 조각들과 접촉할 것>

그러나 그 글자들이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었다.

‘깨진. 조각? 접촉?’

어떤 조각을 말하는 건지, 접촉하라는 건 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책을 덮지 않고 계속 페이지를 앞으로 넘기며 끙끙댔다.

계속 신경 쓰이던 ‘동화율’이 떨어진 문장이다. 분명히 내게 중요한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과거로 계속 되돌아가는 능력과 관련이 있는 문장일지도 모른다.

다른 페이지를 쭉 뒤지며 ‘깨진 조각’에 대한 기록을 찾았다.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다. 다시 읽어도 책에는 트롤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조각 운운하는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책을 덮었다.

- 띠링!

[지혜가 1 올랐습니다!]

캐빈 애슈턴의 다른 책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오랜만에 상태창을 띄웠다.

[해골병사 Lv.l6(135)]

[체력: 61]

[힘: 61]

[민첩: 62]

[지혜: 33(new!)]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든지, ‘죽음’

을 한 번 경험하면 레벨은 1로 초기화된다.

레나에게서 도망친 뒤.

기스-제-라이와 함께 있으며 레벨이 15까지 다시 올랐다.

황제 암살의 현장에서 기사들의 유해를 홉수해 스탯도 추가로 올랐다.

다시 창을 닫았다.

마지막 페이지를 보고 있던 책을덮고, 다시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조각’이 무슨 이야기인지는 궁금했지만,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산장 곳곳을 샅샅이 뒤졌다.

캐빈 애슈턴의 다른 책이 있을지도 모른다.

‘.없군.’

난잡한 인간의 교미를 생생하게 묘사한 춘 화집만 가독할 뿐, 글자로빼곡한 책은 없었다. 사냥일지조차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대신 지도를 몇 장 발견했다. 산을 자세하게 그려 놓은 지도였다.

지도에는 주변 계곡의 깊이와 물의흐름까지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한 장에 전체가 있는 지도도 있었지만, 몇 장에 나눠서 세세하게 그려 놓은 게 마음에 들었다.

붉은 선으로 구불구불하게 트롤의 동선까지 그린 지도였다.

그 외에는 사냥꾼의 산장답게, 휴대용 덫이 가득했다.

나는 캐빈 애슈턴의 책과, 지도를모조리 챙겨 테이블 위에 놓았다.

덫 가운데 쓸 수 있을 것 같은 것도 챙겨 한쪽에 정리했다.

‘어쩔까?’

고민이다.

지도에는 숨을 만한 동굴이 몇 군데 표시되어 있었다. 여기서 어서 벗어나 그곳으로 갈까?

하지만 산장의 이점을 버리기는 아까웠다. 여기는 산의 정상 근처.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지어져 있다.

어느 방향에서 산으로 올라와도 관찰이 가능하다.

누가 오는지도 모르고 동굴 안에 박혀 있는 것보다는, 시야가 확보된 장소에 있는 게 낫다.

결심을 굳혔다.

‘산장에 있자.’

정리되어 있는 덫을 모아서 들고밖으로 나갔다.

레나가 함정을 설치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내가 직접 놓은 적은 없다.

하지만 곁에서 수십 차례 본 적이 있다.

그 기억을 되살려 산장으로 올라오는 길목에 덫을 하나하나 설치했다.

스무 개 정도의 덫을 설치하는 데세 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다.

- 털썩.

2층 베란다 의자에 앉았다.

망루처럼 올라오는 길목이 쭉 다보 이는 곳이다. 누가 오든지 내가먼저 발견한다. 조금 안심이 되었다.

상쾌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아까 덮어 두었던 책을 펼쳤다. 더 꼼꼼히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역시, <깨진 조각>이나<접촉>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산장으로 올라오는 길을 훑어보았다.

덫을 설치해 둔 곳이다. 사실 그런 초보적인 덫에 걸릴 정도라면 칼을 부딪쳐도 이긴다.

하지만 높은 곳에서 덫을 놓고, 지켜보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은 꽤 중요했다.

- 달각! 달각!

새끼 늑대 해골은 지루한 둣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작은 새끼 늑대’ 해골이 정찰을 가고 싶어 합니다.]

[허용하시겠습니까?]

[예/아니오]

[계속 의사를 무시할 경우]

- 호감도가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 ‘눈치 보고 기죽는 성격’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계속 의사를 받아 줄 경우]

- 호감도가 오를 가능성이 큽니다.

- ‘제멋대로인 성격’으로 변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현재 호감도: 14]

- 당신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가고 싶으면 그래라.”

정찰을 허가했다. 묶여서 죽은 늑대다. 해골이 된 상태에서까지 구속하고 싶지는 않았다.

산장으로 오는 길목에 덫을 놓았지만, 모두 인간이나 올 만한 길이다.

게다가 녀석은 날 따라오며 덫을 전부 확인했다. 위치를 알고 있다.

- 달각! 달각!

작은 늑대 해골은 달각거리며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아, 문을 열어 줘야 하나.’

1층의 문은 내가 열어 줘야 한다.

두껍고 무겁다.

저 작은 몸으로 밀기에는 힘이 벅찰 거다. 캐빈 애슈턴의 책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려 할 때였다.

- 달각!

- 우드득! 우득!

작은 뼈가 움직이더니, 곧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는 아주 짧았다.

- 띠링!

[교감 중이던 ‘새끼 늑대 해골’과의 연결이 강제로 끊어졌습니다.]

‘뭐라고?’

곧이어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 저벅.

동굴에서 꾸준히 나를 향해 다가오던 발소리였다. 그 소리가 첫 번째 계단을 밟았다.

- 저벅.

발소리는 나무 계단을 통해 위를 향해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동굴 안에서부터 들렸던 이 발소리는 명백히 이상했다.

누군가 발을 디디며 어쩔 수 없이 내는 소리처럼 들리지 않았다.

차가운 손가락이 짚는 건반의 한음音 같았다.

- 저벅.

일어나야 했다. 누군지 묻고 소리를 치거나, 칼을 뽑아 들어야 했다.

하지만 지척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몸을 음직일 수가 없었다. 공포가 척추를 타고 차갑게 치솟았다. 머릿속에 축축한 의문이 차올랐다.

‘.어떻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는데.

책을 보면서도 길목 길목을 계속체크하고 있었다.

게으르지 않았다.

오히려 과도할 정도로 자주, 산장으로 오는 길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누가 왔다면 반드시 내 눈에 띄어야했다.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심지어 산장 문을 여는 소리조차나지 않았다. 끼이익 하고 육중한소리를 내야 할 1층 산장 문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 저벅.

발소리가 다시 한 번 울렸다. 마지막 계단을 밟는 소리였다. 나는 돌아서며 칼을,

_ 스,

빼들어야 했다.

- 턱.

칼이 뽑히지 않았다. 가로막혔다.

나는 다시 칼을 빼 들었다.

- 턱.

이번에도 칼은 손가락 하나 길이도 뽑히지 못한 채 가로막혔다.

손가락 하나.

푸른 건틀렛을 낀 손가락 하나가,

칼이 뽑히려 할 때마다 칼자루 끝을톡, 건드려 칼집 안으로 쳐냈다.

힘의 분배가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정확했다. 칼이 칼집 안으로 딱 들어갈 만큼만 손가락이 튕겨졌다.

힘이 과해서 칼집이 밑으로 옴직일만큼도 아니었고, 모자라서 칼을 막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다.

완전히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마치 의지대로 칼을 살짝 뽑았다가,

다시 안으로 집어넣는 것 같았다.

나는 검을 왼쪽 허리에 찬 상태로 앉아 있었다.

고개를 돌려 상대의 얼굴을 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가락’

은 내 왼쪽 뒤에서 뻗어 왔다.

본체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벤다.’

생각이 많으면 검이 느려진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그저 집중해서 베어 버리자.

이 자세에서 공격을 가하려면.

나는 수만 번 연습한 자세 그대로,

왼발을 축으로 오른발을 박찼다. 팽이처럼 뒤로 돌며 일어나 검을 그대로 휘둘렀다.

<발도拔刀>

동굴에서 수만 번 연습했던 동작이다.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마음가짐으로 은백색 검을 뽑아 휘둘렀다.

칼은 고맙게도 마음을 따라 주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고, 정확하고,

강하게 칼이 휘둘러졌다. 무아지경으로 이루어진 완벽한 발도였다.

- 서걱!

검은 그대로 상대가 있는 자리를 치고 지나갔다. 날카로운 파육음이들렸다. 손끝이 묵직했다.

‘걸려들었다.’

성공이었다. 뒤에 서 있던 상대는 반으로 갈라져 쓰러졌다.

- 철픽!

두 동강 난 고깃덩어리가 눈앞에서좌우로 쓰러졌다.

피보라는 없었다.

내장도 바닥으로 쏟아지지 않았다.

갈라진 고깃덩이에서, 방부액 젖은 축축한 솜들만 힘없이 뱉어졌다.

나는 바닥을 바라봤다.

누덕누덕 철사로 꿰어져 있던 암컷트롤 박제는 깔끔하게 절반으로 갈라져 그 속을 보이고 있었다.

칼로 벤 것은 1층에 있던 암컷 트롤이었다. 이미 9개월 전에 죽은 그녀의 박제였다.

‘발자국’은 2층으로 트롤 박제를 들고 온 것이다. 의도는 명백했다.

무거운 조롱이 뼈 위로 내려앉았다.

갑자기 세상이 몹시 좁게 느껴졌다.

딛고 선 바닥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다른 건 없나?”

목소리는 차가운 물방울처럼 떨어졌다. 떨어진 물방울이 머릿속에 그대로 고여서 흩어지지 않았다.

말소리는 등 뒤에서 들려왔다.

돌아보는 순간, 머리 위로 칼이 천천히 떨어졌다.

검집째 휘둘러지는 공격은 궤적이보일 만큼 느렸다. 흐느적거리며 질질 끌고 오는 것처럼 느렸다.

기억에 남을 만큼 느렸다.

같은 환경.

같은 상대였다.

같은 식으로 죽는다.

바닥에는 부서진 늑대 해골이 떨어져 있었다. 갑옷째 반으로 갈라지려는 순간이었다.

- 우우우응!

‘죽여라.’

허리에서 강한 진동이 느껴졌다.

꽉 조였던 공간에, 칠흑 단검의 떨림으로 미세한 균열이 생겨났다.

새까만 균열을 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를 악물었다. 허리에 찬 단검을 빼 들고, 내려쳐지는 새하얀검집을 향해 맞받아쳤다.

“호오?”

푸른 갑옷 기사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커졌다. 나를 향한 반응은 아니었다. 단검을 향한 반응이었다.

- 파지지직.!

검집 주위를 감싸고 있던 투명한 막이 보이기 시작했다.

허공에 파직거리며 하얗게 균열이 일었다. 있는지도 몰랐던 막이 칠흑단검의 힘에 의해 드러났다.

단검이 울었다. 흑탄처럼 검은 날에 떠돌던 글자 하나가 살아 있는 것처럼 꼿꼿이 일어났다. 한 번 도보지 못한 상황이었다.

글자는 꿈틀거리며 투명한 꺼풀 안으로 파고들려 했다. 몸을 곧추세워 뚫으려 했다.

마구 할퀴어진 것처럼, 허공에 새하얀 균열이 생겼다.

- 사각! 사각!

칼날에 살고 있던 다른 글자들이 움직였다. 만들어진 하얀 균열 사이로 달라붙었다.

투명한 막에 접착하듯 몸을 붙인 채 갉아먹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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