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98화 (98/458)

99화 가면 쓴 축복 (12)

나는 앞을 다시 바라봤다.

살짝 몸을 풀던 기사는 막 자세를 낮췄다. 다시 한 번 주먹을 뒤로 당기고 있었다. 투명한 기운이 사방에서 푸른 건틀랫에 집중되는 것 같았다.

‘저게 기氣라는 건가?’

나는 집중했다. 움직이는 공기의결을 느끼기 위해 노력했다. 어차피 잡혀 있는 거라면, 놈의 능력을 감지하는 데 전념할 생각이었다.

토너먼트에서 기권한 남자가 떠올랐다. 그는 ‘기氣를 쓰는 수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잘 본다면. 뭔가 도음이 될지도.’

첫 만남을 떠을렸다. 그때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찢어져 죽었다.

하지만 몇 번 조우하며, 반복해서푸른 기사를 관찰한 탓일까.

무언가 느껴졌다.

분명히.

그의 주위에는.

규칙과 순서, 리듬을 갖춘 흐름이춤을 추고 있었다.

아직은 불가해不可解.

‘느끼기야 하지만. 이해는 전혀 되지 않는군.’

- 쉬이이이익!

무형의 힘이, 기사의 주먹에 다시 한번 빨려 들어갈 때였다.

“.후작 각하!”

성벽 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누군가의 헐떡이는 외침이 아래를 향했다.

기사가 주먹을 멈췄다.

위를 올려다봤다. 나도 그의 시선을 따라 성벽 위를 을려다봤다. 두 명의 남자가 성가퀴에 나란히 서서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칼과 창을 든 무리들이 그 주위로 각각 무리를 이룬다.

‘저자는.?’

앞에 선 두 남자. 그중 한 명은 나에게도 익숙한 얼굴이다. 직접 눈앞에서 불태워 죽였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부진 체격.

철제 흉갑과 망토.

가학적이고 부리부리한 인상.

‘유블람의. 경비대장?’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이었다. 녀석의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지독히공포에 짓늘린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다른 한 명은 초면이다. 머리까지 벗겨진 여우 가죽을 목에 두른 채,풍성한 옷을 걸친 남자였다.

그가 연달아 소리를 치고 있었다.

“후작 각하! 이건. 오해입니다!”

‘후작. 각하라고?’

레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외양을 들으면. 바티엔느 폰 레안드로 후작이겠네요.>

레나는 그렇게 말했다. 푸른 갑옷의 기사에 대해 이야기했을 때였다.

‘정말 그자인가?’

<.푸른 사자 기사단 출신 최연소마스터죠.>

<제국 4 검주의 한 명이.>

확실히, 그런 외양의 ‘후작’이 둘이나 있을 리는 없었다.

레나의 추측이 확인됐다. 여러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쳐 갔다.

‘대단한 녀석에게 당한 거였군.’

푸른 갑옷의 기사. 제국 4 검주의일익은 성벽 위를 흘끗 바라봤다.

아무 대꾸도 없었다.

그가 한 발을 뒤로 디뎠다.

주위의 바람이 그의 발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뚱뚱한 남자가 필사적으로 외쳤다.

“저, 정말 오해입니다! 폐하의 인장이 어, 어떻게 여기 왔는지는 저희도 전혀 모릅니다!”

후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뒤로 디딘 발이 다시 한 번 땅에서 튕겨졌다. 땅이 움푹 파이며, 단단한 바닥이 깨져서 뒤로 흩날렸다.

- 콰과광!

- 쩌엉!

거대한 굉음이 울렸다.

성벽 위에 선 자들의 비명 소리도 묻혀 버렸다.

나는 성문을 바라봤다. 발에 맞은 부위는 이미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져있었다. 안이 들여다보일 정도의 크기로 구멍이 뻥 뚫렸다.

두꺼운 쇠창살이 보였다. 그 안쪽에는 다시 한 겹의 문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두꺼운 건 지금 부서지고 있는 바깥쪽의 문. 주먹질 몇 번에 성域이 뚫리고 있었다.

성벽 위의 남자들은 패닉에 빠져버린 것 같았다.

“후작 각하! 이놈이 멋대로 받은 겁니다! 이놈입니다!”

“뭐야? 영주! 뭐 하는 거지?”

대머리 경비대장이 당황했다. 영주 곁에 있는 남자들이 칼을 빼 들었다. 그에 맞서 경비대장 근처에 있는 남자들도 엉겁결에 칼을 들었다.

영주가 소리쳤다.

“놈이 여행자들을 노예로 잡아 팔아먹었습니다! 이놈은 네크론 신사회의 주구입니다! 인장도 놈이 받았습니다. 제가 이놈을 처벌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레안드로 후작이 고개를 갸웃했다.

- 저벅.

후작은 한 발 물러났다. 찢어 가던 성문을 잠시 방치하고, 노을 아래의두 남자를 바라봤다. 팔짱을 낀 채가만히 그들을 응시했다.

영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영주는 말 없는 후작의 시선이, 하늘에서 내린 동아줄이라도 된 것처럼 붙잡고 열성으로 상대를 고발했다.

“이놈이 성 주변에 던전을 운용했습니다! 거미를 기르며 인간을 먹이로 던져 줬습니다!”

경비 대장도 지지 않고 맞섰다. 그는 대머리가 발갛게 달아오를 정도로 화를 냈다.

“이 새끼가, 제정신이냐! 다 네가 시킨 짓 아니야! 년 성 안에서 마약을 재배했잖아! 후작님! 주민들을 전부 마약에 중독 시킨 게 바로 이놈입니다!”

문득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동업자 아니었나.’

위기 앞에서는 황당할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 동업인 모양이었다. 아니면 저 ‘후작’이 너무 심한 위기라거나.

재해로 취급당하는 후작은 한 발자국 앞으로 갔다.

지겹다는 태도였다.

그는 작은 구멍에 건틀렛 손가락하나를 쑥 집어넣었다.

- 끼, 끼이이익!

소름 끼치는 소리가 허공에 울렸다. 성문이 옆으로 막 찢어져 가는 순간이었다.

“잡아서 바치겠습니다! 모두 쳐라!

제국법을 어긴 반역자를 체포해라!”

영주가 주위의 경비에게 외쳤다.

주먹으로 성을 부수는 남자 앞에서 공포로 머리가 돌아 버린 것이다.

후작은 걸음을 멈췄다. 성벽 위의 놈들이 둘로 갈라져 혈전을 벌였다.

숫자는 영주파가 더 많았다. 하지만 경비대장의 활약이 대단했다. 그는 옛 부하들의 가슴팍에 무참히 칼을 꽂아 넣으며, 숨겨 둔 손망치로영주의 안면을 퍽 으깨 버렸다.

그리고 황제의 인장을 영주의 손가락에 억지로 끼운 뒤, 그 시체를 아래로 던졌다.

“나, 나를 쫓지 마시오! 난 아무것도 모른단 말이오! 정말.!”

애처로운 목소리였다. 성벽 위에서순식간에 열 명을 죽인 남자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다.

- 철퍽!

영주가 죽은 채 떨어졌다. 기사는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시체의 손가락을 잘랐다. 인장을 가져갔다. 사무적인 태도였다. 그는 다시 성문에 다가갔다.

손을 구멍에 넣었다. 찢어진 부위를 잡고 좌우로 벌렸다.

- 끼이이이익!

성문이 확 찢어졌다.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구멍이 났다.

“히, 히이이익!”

내려다본 경비대장의 안색이 새파래졌다. 작은 난리가 일어났다. 서있던 녀석이 성벽 안으로 내려갔다.

도망가는 것 같았다.

- 히히히잉!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성벽 안쪽에서 말발굽 소리가 연달았다.

‘내했군.’

안장에 매달려 생각했다. 유블람에금괴와 인장을 던진 건 나다.

경비대장에게 넘기게 했다. 놈은날 무덤에서 일으켜 준, 루비아를죽인 원흉이다.

두 번 산 채로 구워 주었지만 당연히 미진한 감이 있다.

제대로 사건을 조사한 뒤, 그 뿌리까지 확실히 뽑아내지도 못했고.

‘영주도 관련이 있겠지.’

이번에는 처리할 여건이 안 됐다.

도망 중이었다. 슬쩍 미끼만 뿌렸다.

나대신, 정체불명의 ‘추적자’에게 당해 보라는 마음이었다. 솔직히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이거. 너무 계획대로인데.’

추적자는, 놈들에게 굉장한 관심을 가져 버린 것 같다.

영주는 얼굴이 으깨져 성벽 아래로멸어졌고, 경비대장은 말을 몰아 도망갔다.

‘으음.,

시시했다. 그들이 순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시시하게 느껴졌다. 후작의 뒤편에서 바라보아서 그런 걸까?

마약에 중독된 도시.

유블람의 영주 정도 되면, 탐욕과음모로 뭉쳐진 거악巨惡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토록 시시한 악인이었다.

복잡한 감정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처음에는 고소했지만 곧 허무했고,

조금 씁쓸했다.

앞으로도 회귀回歸가 계속된다면 놈들을 계속 죽여주어야 할 텐데,

벌써 그 민낯과 바닥을 보았다.

‘고문하거나 살해해도. 별 감흥은 없겠군.’

후작을 바라봤다. 그는 내 앞에서‘감흥 없음’을 논하지 말라는 둣 사무적으로 성문을 쫙쫙 찢었다. 그리고 그 안으로 발을 디뎠다.

- 드르르록.!

때맞춰 철창이 올라갔다. 이중으로된 두꺼운 창이 차례로 올라갔다.

망가진 바깥 성문도 삐걱거리며 힘겹게 열리기 시작했다.

때려서 바깥 성문을 부수고, 걸어들어가자 철창이 올라간다. 무슨 환각을 보고 있나 싶었을 때였다. 안쪽 성문이 양옆으로 활짝 열렸다.

주위에 엎드려서 뭔가 중얼거리는영지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후작은 주위를 둘러봤다. 휘파람을 불었다. 말은 나를 매달고, 거만한자세로 성문을 지나기 시작했다.

‘이번엔. 별로 좋은 상태로 들어오지는 않는군.’

유블람은 두 번째였다. 주위를 둘러봤다. 성문을 연 영지 민들은 양옆으로 엎드렸다.

멀리 도망가는 경비대장이 보였다.

후작은 훌쩍 뛰어 말에 올라탔다.

나를 매달았던 창을 다시 들었다.

- 다그닥! 다그닥!

말이 도로를 달려갔다. 성문 바로 앞은 양옆으로 넓었다.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는 구조였다.

커다란 우물을 지났다. 말 두 필이나 지날 만한 좁은 도로가 나왔다.

북쪽으로 달렸다. 길은 다시 네 갈래로 갈라졌지만 혼동은 없었다.

도망가는 경비대장이 멀리 북문을 지나는 게 보였다. 점 몇 개로 보였던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었다.

- 휘이잉!

세찬 바람이 두개골을 마구 흔들고지나갔다. 따라잡는 건 금방이었다.

경비대장이 말을 달리며 소리쳤다.

“나는 아무것도 몰라!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고!”

- 다그닥! 다그닥!

누런 평야 위를 여섯 마리의 말이 달렸다. 따라가는 경비대장을 따라가는 네 명은 하나같이 그의 심복인 모양이었다. 성에 남아 있기에는 집찝한 게 너무 많은 부류인 것이다.

이대로라면 잡힐 거라고 생각한듯, 경비대장이 크게 외쳤다.

“흩어져라!”

뒤쪽의 두 명이 각각 왼쪽과 오른쪽으로 흩어졌다. 후작은 나를 매달아 놓던 긴 철창을 들었다.

처음에는 창이라기보다 좀 이상한막대라고 생각한 무기였다. 창날이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후작이 철창의 어딘가를 누르고 왼쪽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 끼익. 끼이익.

철로 된 창대가 순식간에 길어지기 시작했다. 근위대 기사들의 랜스보다 훨씬 길었다.

2미터가 안 되던 막대가, 순식간에6미터에 가깝게 늘어났다.

? 쌩!

가장 뒤에 있는 녀석을 향해 후작이 강하게 창을 휘둘렀다. 그 긴 창을 휘두르면서도 말 위에서 아무런 반동도 없었다. 허리 힘 하나만으로 간단히 감당한 것이다.

막 좌우로 흩어지던 두 놈이 철창에 맞아 피를 뿌리며 말 아래로 떨어졌다. 그들은 황야 위에서 벌레처럼 꿈틀대다 몸이 축 늘어졌다.

나는 후작이 창을 휘두르는 모습을 자세히 관찰했다.

- 다그닥! 다그닥!

“히야 아압!”

앞에 가던 세 놈 중 하나는 포기하듯 후작을 향해 칼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방금 거하게 약을 했는지, 눈동자가 하얗게 풀어져 있었다.

- 서격!

아직 완전히 솟아나지 않은 창날이 그의 목을 반으로 잘라 버렸다. 시체는 울컥울컥 피를 하늘로 뿌리며 잠시 말 위를 달렸다.

하늘은 이미 노을로 붉었고, 더 이상의 물감은 필요 없었다. 말은 곧주인을 떨어트렸다. 누런 황야가 붉게 물들었다.

- 끼익. 끼이익.

창날이 길어져 있었다. 기괴하게도,

날 끝이 가느다랗게 다섯 개로 분화되어 있었다.

‘혼자 움직인 건가?’

후작이 뭘 건드린 것 같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솟아오른 듯했다.

“징징거리긴.”

一 서걱!

후작은 창을 내질렀다. 경비대장곁에 있는 녀석의 심장을 찔렀다.

그 순간 다섯 개의 날이 사방으로 벌어졌다.

- 아작! 아그작!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났다. 등이 꿰뚫린 남자는 말 위에서 몸을 벌레처럼 버둥거렸다.

비명도 못 내지르고 발작하듯 몸을 꼬았다. 짧은 시간에 지독한 고통을 겪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눈과 가슴, 하체 부분에서긴 창날이 솟아나며 사망했다.

‘저런 게. 가능한가?’

- 차록! 차르록!

늘어진 창날이 새빨갛게 물든 채,

다시 창대 안으로 회수됐다.

빠르게 시체를 지났다. 얼굴이 보였는데, 나도 아는 녀석이었다. 경비대장에게 엉망으로 얻어터진 채로수레를 끌던 놈이었다.

<기껏 잡아 놓은 걸, 입에 쑤셔 넣겠다고 재갈을 풀어서 자살을 하게 만들어? 이 새끼는 진짜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다니까.>

‘.그자인가.’

“으아! 으아! 으아아아!”

경비대장은 지독한 공포심에 사로잡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혼자기 괴한 소리를 내지르며 앞만 보고달리고 있었다.

- 다그닥! 다그닥!

후작은 잠시 그와 나란히 말을 달렸다. 20초 정도였다. 경비대장이지나치게 박차를 가한 나머지, 그의말은 입에서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 툭.

후작은 가볍게 대머리의 뒤통수를 쳤다. 기절한 그를 말 뒤에 실었다.

어디 한 군데라도 안 다치게 곱게 데려가는 모습에 잠시 의아했지만,

곧 그의 운명을 동정했다.

후작은 성에 돌아왔다. 주민들은 성문을 활짝 열어 두었다. 성문 양옆에 두 줄로 나란히 서서 머리를 아래로 조아리고 있었다.

그들은 오들오들 떨면서도 흘끗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아까처럼 후작에게서 살기가 뿜어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같았다.

그 기운이 뿜어진다면 심장이 약한 노약자들은 이 자리에서 숨이 끊어질지도 모른다.

후작은 주민들을 훑었다. 그리고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곧장 흰 수염의 노인을 지목했다.

“너.”

“예, 나으리.”

“제국 대상조(大上造) 겸 관 내후(關內候) 바티엔느 폰 레안드로다.

집무실로 안내해라.”

‘저렇게 긴 말도 할 줄 아는 놈이었나?’

나는 두 번 놀랐다. 첫 번째는 의외로 상식적인 놈의 언행이었다.

두 번째로, 그가 지목한 게 내가아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라스미어의 불을 줬던 노인이었다.

노인은 앞장섰다. 후작을 영주의성으로 안내했다. 인적이 뜸해졌을 때 즈음, 후작이 낮게 말했다.

“너만 아편이 중독 되지 않았더군.

설명해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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