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01화 (101/458)

102화 벌레들의 무덤 (1)

‘별빛. 청여우? 입회 활동?’

기억이 번뜩였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는지 떠올리는 데는.

‘기스-제-라이.’

반인반골伴人伴骨의 네크로멘서에게 들은 말들이 떠올랐다.

자유연합의 의회가 황제 암살의 대가를 치르지 않을 거라고 걱정하자,

그녀가 내게 말해 주었다.

<이 암살의 입회인으로서.>

<레드 플레이크 전체가, 이 계약을 증명하고 집행한다.>

암살 집단, 레드 플레이크가 황제살해를 입회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괴한은 그 일원이다.

‘하지만.

기스-제-라이는 이미 죽었다.

‘그러면 끝인 거 아닌가?’

암살을 수락하고, 수행한 자.

대가를 받아야 할 자가 사라졌다.

그런데 나타났다.

무엇을 위해서?

답은 나오지 않았다.

- 달그락! 달그락!

시야가 마구 흔들렸다.

여우 가면을 쓴 괴한은 한 손에는가방을, 한 손에는 나를 든 채 숲을 마구 내달렸다.

- 팟! 팟!

바닥이 폭발하듯 흙이 튀었다.

짐을 잔뜩 가지고 있었음에도 달리는 속도는 경이로울 정도로 빨랐다.

- 흘끗.

괴한이 고개를 돌렸다.

‘뭘 보는 거지?’

괴한의 시선을 따라갔다. 쓰러져입가에 피를 홀리고 있었지만, 몸이천천히 황금빛으로 회복되는 후작이보였다. 괴한이 투덜거렸다.

“엘릭서를, 방울도 아니고 병째로 처먹어.? 저런 과소비는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구!”

- 휘이이이이!

나는 기묘한 소리가 나는 가면을 바라봤다.

‘안에 뭐가 있는 건가?’

그때 였다.

- 차드드득! 차드드드드득!

곳곳에서 차드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아까의 풍뎅이?’

사방을 바라봤다.

곳곳에 나타난 수십 마리의 황동색풍뎅이를 바라봤다.

빛이 나고 있었다.

- 차득! 차드드득!

수십 마리의 풍뎅이는 얇은 칼날이 겹쳐지는 소리를 내며, 후작을 향해 날아갔다. 세 번째 보고 나서야 알수 있었다.

‘뭔가 달라.’

그냥 ‘풍뎅이’가 아니었다.

저렇게 등딱지의 색깔이 선명한 건 이상하다.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인간을 향해 날아가는 건 이상하다.

‘날갯소리도. 기괴해.’

한참 멀어지는 저편.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수십 마리풍뎅이를 보고.

짙푸르게 두 눈을 부릅뜨는 후작과 얼핏 시선이 얽혔다.

심장이 반쯤 찍혀 나간 그 눈빛이 흉흉해 살짝 시선이 흔들렸을 때.

- 과과과과과광!

자기가 쏟아 낸 피 웅덩이 속 꿈틀대는 후작 주위에서, 수십 마리풍뎅이가 연쇄적으로 폭발했다.

‘저럴 수가.!’

수십 마리 풍뎅이.

저 작은 몸뚱아리들에서 일어날 수있는 폭발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살아 있는 폭탄이라고?’

굵은 나무들이 아예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냇가 근처의 바위가 가루가 되어 뿌옇게 흩어졌다.

- 화르르!

폭발의 여파로.

넓은 반경에 불길이 옮아 붙었다.

시선이 멸어지지 않았다.

폭발의 원점을 바라봤다. 화염과 연기로 자욱했다.

또렷이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죽었군.’

터져 나간 증거인 참혹한 인간즙이, 후작이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으니까.

- 팟! 팟!

여우 가면은 나를 가볍게 든 채,

이미 그 장소로부터 한참 먼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에구. 내 아까운 풍뎅이들.!”

충분히 도망쳤다고 생각했는지 발걸음이 조금씩 느려지며, 여우가 아쉬운 듯 중얼거렸다.

여우 가면이 나를 흘끗 바라봤다.

“아참, 내 정신 좀 봐.”

여우 가면이 품에 손을 넣었다.

검은색 장갑을 낀 손에는, 후작이뽑아 갔던 내 턱뼈가 들려 있었다.

‘.가져온 건가?’

“짜잔! 우리 해골 친구를 위해서 특별히 챙겨 왔지.”

- 뚝!

장갑을 낀 손이 아래턱뼈를 끼워 넣었다.

“됐어? 됐어?”

- 딱딱.

나는 이빨을 부딪쳐 봤다.

“됐네! 됐어!”

여우 가면은 손뼉을 치며 매우 좋아했다.

“밝은. 성격이군.”

“맞아! 난 밝은 성격이야! 그리고 널 도와줄 거야.”

여우 가면은 배낭을 뒤졌다. 열쇠를 꺼냈다.

“돌아앉아 봐.”

말만 그렇게 하곤 나를 들어서 돌아 앉혔다.

- 철컥.

- 투둑.

수갑이 풀렸다.

- 철컥.

- 투둑족갑이 풀렸다.

K.r뒤로 꺾인 채 며칠 동안이나 묶여있던 수갑과 족갑이 풀렸다.

자유다.

수십 년 동안 묶인 채 고통 받을걸 각오했는데.

팔다리가 다시 움직인다.

아찔할 정도의 해방감이 가슴 깊은 곳에서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한참동안 현기증을 느낄 정도였다.

- 우두둑! 우두두둑!

나는 팔다리를 천천히 돌리며 몸을 풀었다.

굳은 뼈를 다시 돌렸다. 도취될 정도의 후련함이 밀려들었다.

“.정말 고맙다.”

나는 여우 가면에게 깊이 감사를 표했다.

이 괴한이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는 모르지만, 지금 내가 느끼는 짜릿한 해방감만 해도 이런 감사를 표하기에 몹시 충분했다.

원하는 게 있다면 뭐든 들어준다.

궁금한 게 있다면 전부 말해 준다.

그런 기분이었다.

“.고맙다.”

다시 한 번 감사를 표했다.

“헤헤.”

가면 뒤에서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달빛에 비치는 상대의 가면을 가만히 바라봤다.

어쩔까.

‘나를 구해 줬어.’

직설적으로 나가자.

시간을 아껴 보기로 했다. 나는 살짝 이를 딱딱거리다, 내가 이해하는 상황을 그대로 표현했다.

“혹시 내가, 당신들. 레드 플레이크에게 뭔가 해 줄 만한 게 있나?”

꽤나 건방진 질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나가는 편이 이야기가 빨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 휘리릭.

그 순간 여우 가면이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원이 두 개 겹치는 모양의 사인을 그렸다.

의외로 호의적인 느낌이었다.

가면이 어깨춤을 췄다.

“해골 친구가 날 위해서 뭔가 해주고 싶다고 했어!”

“아무도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었는데!”

“으음.

내가 여우 가면의 말투에 조금 당황하고 있을 때, 여우가 말을 이었다.

“해골 친구, 뭘 해 줄지 생각할 필요는 없어. 친구가 뭘 받을지에 대해 생각해야지.”

“받는다니, 그게 무슨.?”

- 사르록.

여우 가면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장갑을 벗었다. 왼손은 남겨둔 채 오른손만 장갑을 벗었다.

얇고 검은 장갑을 꼼지락거리며 빠져나온, 매끄럽고 새하얀 손이 나를향해 뻗어 왔다.

악수를 청하는 몸짓이었다.

나는 엉겁결에 여우 가면의 악수를 받았다. 여우 가면이 아래위로 손을 흔들며 경쾌하게 말했다.

“소개부터. 암살교단(레드 플레이크) 소명수녀 (S命修女), 엘윈 에사우. 코드네임 별빛 청여우.”

‘.수녀라니.’

암살자에 어울리지 않는 호칭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검고 얇은 장갑에서 사르륵 손을 빼는 그 동작은, 분명히 어떤 신성함에 가까워 보였다.

“이름 없는 해골이오.”

“헤에, 좋아. 해골 친구, 만나서 반가워. 적당히. 수녀라고 불러.”

“???좋소.”

수녀가 말을 이었다.

“입회 중인 황제 암살의 종료를 확인했어. 하지만.

여우 가면을 쓴 수녀는 깊게 한숨을 쉬고 말했다.

“기스-제-라이가 죽었잖아?”

“.그렇소만.”

수녀가 어깨를 으쪽하며 말했다.

“일은 됐지. 증거도 있지. 그런데 하나가 없네?”

“???뭐가 없다는 거요?”

“대가를 받을 사람이 없잖아.”

“당신들, 레드 플레이크가 받으면 되는 거 아니오?”

“우린 그렇게 일 안 해. 기스-제-라이가 교단을 탈퇴하면서 받은 의뢰인걸? 우리가 갖는 건 잘못됐지.”

“그럼 뭘 어떻게 하겠다는.

- 툭.

수녀가 장갑을 벗은 손을, 내 어깨뼈에 얹었다.

- 달그락.

순간 몸을 움찔했다.

수녀가 짧게 말했다.

“네가 있잖아. 기스-제-라이의 마지막 병사. 황제 암살의 증거까지네 가 가지고 있었잖아? 네가 권리를 계승해야지.”

나는 손을 내저었다. 그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아니, 내가 받을 수는 없소.”

자격이 없다.

“에? 왜 안 돼?”

“나는 암살에 참여하지 않았소.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고. 그녀의 군단이었던 것도 아니오. 탐나는 물건 몇 가지를 갖고 도망쳤던 것뿐. 나에게는 그녀를 계승할 그 어떤 자격도 없소.”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수녀는 전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리고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해골 친구, 내가 널 어떻게 쫓아갔는지 아니?”

“모르오.”

“기스-제-라이와 나는 친구였어.

그녀가 황제 암살을 한다고 했지.

끝나고 만나기로 했어. 그런데 약속장소에 나타나지 않더라고. 그래서 혼적을 쫓았지. 암살 장소를 봤고,거기서 기스-제-라이의 마력흔魔刀疫을 쫓았어. 그게. 바로 너야.”

“그건.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수녀의 하얀 손이 광대뼈 밑으로들어와, 두개골 안쪽을 스르록 스르륵 문지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야. 아주 신경 쓴 구속흔拘束疫이 남아 있지.”

그 손길은 집요하고, 반복적으로두개골 구석구석 이어졌다.

수녀의 손길에는 알 수 없는 짙은 감정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의 흔적을, 애써 거듭거듭 느끼려는 손길이었다.

‘질. 투?’

수녀가 입을 열었다.

“너 말이지, 그녀가 좋아했던 다섯 안에는 간단히 들어갈 거야.”

“.그 정도요?”

“모르는 척하는 거야? 너도 아파서 잊고 싶은 거야?”

뭘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한 상황이었다.

회귀를 거듭하며 얻은 영웅 특전,

<네크로멘서의 연인>으로 인한 결과라고 하면 역시 미친 취급밖에 받지 못하게 된다.

나는 침묵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동이 터 오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계속 길을 가던 나와,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곤충이 나타났다.

“???풍뎅이?”

내 중얼거림을 들은 수녀가 피식 웃었다.

“풍뎅이긴 풍뎅이지.”

새까만 풍뎅이는 무척 날렵했다.

그리고 무척 기괴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고, 아래쪽에 거대한 바퀴두 개가 장착되어 있었다. 마차의 바퀴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앞뒤로 하나씩 붙은 바퀴의 직경은내 팔 길이만 했고, 바뒷살은 특이하게 은빛 별 모양이었다.

살아 있는 건지, 어디에 쓰이는 건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박제 같은 건가?’

흠칫하는 사이.

- 지이이잉.

풍뎅이의 날개가 열렸다. 그 안에는 의자가 있었다.

“마법. 생물이오?”

“글쎄. 비슷할걸?”

수녀는 날개 열린 풍뎅이 위에 올라탔다. 새처럼 가벼운 몸짓이었다.

“의자라니.

등껍질 위치에 있는 의자를 멍하니 바라봤다. 수녀는 풍뎅이의 안쪽 뿔을 잡았다. 뿔의 위치도 잡기 편 한곳에 있었다.

- 부롱! 부릉!

갑자기 풍뎅이가 기묘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수녀가 나를 흘끗 보고 말했다.

“얼른 타. 아무나 안 해 주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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