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02화 (102/458)

103화 벌레들의 무덤 (2)

- 드르륵 드르륵!

장갑을 낀 수녀는 손으로 거침없이뿔을 당긴다. 거대한 풍뎅이가 기괴하게 울부짖었다.

- 부우우응!

짜릿한 진동이 척추로 올라온다. 수녀가 발로 힘껏 아래를 밟았다.

- 파박! 파바바박!

불꽃 튀는 소리가 들렸다. 거대한 풍뎅이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폭력적인 가속에 머리가 뒤로 젖혀졌다. 새까만 의자가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의자는 마치 몸에 정밀하게 맞춰진 것 같았다.

-부우우우우우우우우우!

빠르다. 너무 빨랐다. 달리는 말보다 적어도 다섯 배는 빠르다. 하지만 아직도 가속이 끝나지 않았다.

".!"

-우우우우우우우우웅시야가 빠르게 홀러갔다. 풍경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르다가, 하나의 점點처럼 굳어져 왔다.

수녀는 완전히 몰입해 있었다.

풍뎅이의 뿔을 조작하는 손가락들.

칠혹의 장갑을 낀 얇은 손가락들이 간간히 파르르 떨렸다.

몹시 흥분하고 있음을.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걸, 손가락의 움직임이 보여 주었다.

눈앞에 구부러지는 가도가 보였다.

모퉁이 진입 직전 수녀가 왼발을 살짝 밟았다.

- 끼이이이!

오른쪽 뿔을 살짝 더 잡아당기며, 왼쪽 뿔을 위로 올렸다.

- 드르륵!

앞뒤 바퀴의 진행 방향이 반대로 틀어지며 풍뎅이가 모퉁이를 끼고 부드럽게 돌았다.

- 쉬이이이이익!

모퉁이에서 벗어나며 수녀가 오른발을 더 깊이 밟았다.

바퀴는 같은 방향으로 틀어지며 가파르게 속도를 올렸다.

기적과도 같은 기예였다.

[안내합니다. 현재 속도 400km八!를초과했습니다.]

[안전 운행하세요.]

풍뎅이 내부에서 묘한 음성이 울려 퍼졌다. 무척 매끈하고 세련된 여성의 목소리였다.

뭐가 뭔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속도는 점점 올라갔고, 풍경은 오히려 흔들림 없이 정물뚫物!처럼 단단하게 굳어져 갔다.

멍한 기분이 되며 음이 기묘하게 차분해졌다.

그 안에서 생각했다.

일단은, 내가 알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정리하기로 했다.

‘후작이 죽었어.’

폭탄에 몸이 터져서 죽었다.

사방에 튀어나갔던 피와 고기즙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놈에게 붙잡혀 끌려갈 때.

수십 년 동안 갇혀 있을 걸 각오했는데.

후작에 관한 정보를 떠올렸다.

본인 입에서 나온 말도 있고, 전생에서 레나에게 들은 말도 있었다.

<제국 대상조大上造 겸 관 내후■內候>

<푸른 m 가 시단 출신 최연소 마스터.>

<제국 4대 검주.>

그런 자가 죽었다.

눈앞의 수녀에게.

‘하긴, 황제도 죽었는데.

세상은 너무 넓었다.

내 존재라는 게 지독히 하잘것없이 느껴졌다.

며칠 사이.

제국 4대 검주劍主라는 게, 얼마나터무니없이 강한 존재인지 온몸으로실^^다.

푸른 갑옷의 기사.

래^드로 후작.

그는 범죄자 졸개 수십을 해치우고 우물거리던 나 따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했다.

비집고 들어갈 틈 따위는 애초에 터럭만큼도 없었다.

기스-제-라이가 전해 준 유품을 쓰며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장난처럼 튕겨졌다.

지금은.

그 검주를 간단히 죽여 버린 여자의 도움을 받고 있다.

레드 플레이크의 1인. 하지만 이런 여자의 존재는, 20년을 살면서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

게다가 말보다 열 배는 빠른 마법괴물이라니.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다.

내가 너무나 작고 초라한 존재임을 깨닫고 있었다.

[안내합니다. 현재 속도 500km/h를초과했습니다.]

매끈한 목소리가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다.

어느새 풍뎅이는 가도의 끝으로 향하고 있었다.

끝은, 산의 정상頂上.

‘.죽기라도 하겠다는 건가?’

기묘한 기분.

비참한 기분이었기에, 이대로 끝나도 큰 미련은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수녀를 바라봤다. 하지만 풍뎅이의 뿔을 잡은 수녀는, 전혀 죽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뿔을 잡은 손이 조금씩 떨렸다.

‘들떠. 있어?,

[안내합니다. 현재 속도 550km八!를초과했습니다.]

떨어진^?

3.

2.

- 쌔애애애애애앵!

산꼭대기에서, 거대한 칠흑의 풍뎅이가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아래는 까마득한 절벽.

*.제?,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경고합니다. 직하直下 1,000피트까지 도로 인식 불가.]

[비행 모드로 자동 전환합니다.]

- 차5ㄹ.g륵!

매끈한 무기질의 목소리가 울렸다.

동시에 닫혔던 풍뎅이의 날개가 한순간에 펴졌다. 날개가 넓어지며 몸 뒤쪽과 이어졌다. 날개 끝에 반짝이는 푸른색 불빛이 들어왔다.

풍뎅이는 떨어지지 않았다.

- 휘이이이엉?!

한차례 거친 바람을 받으며.

오히려 더 높이 날아올랐다.

‘날고. 있어?’

수녀는 뿔을 좌우로 조종했다.

- ^륵. 드르륵.

그 섬세한 손짓에 따라 허공에 뜬 거대한 풍뎅이가 움직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앞을 날개가 펼쳐진 이후로.

안쪽에서 보는 시야각이 270도 정도로 활짝 넓어져 있었다.

앞은 구름, 아래는??““.

넓었다.

위에서 보는 풍경은 아름다웠다. 이것이 세계인가 싶었다. 일 초 일 초가 길었다. 펼쳐지는 풍경에 매초마다 몰입했다.

끝도 없이 펼쳐진 밀밭과 가도들, 그리고 중간중간 성을 중심으로 모인 빼^한 가옥들.

‘저게. 유블람인가? 저기는. 에라스트?’

위에서 내려다보는 회색빛 성들은 주먹보다 훨씬 작았다. 가옥들은 손톱크기만 했다.

저 작은 것들 사이에서 꼼지락거리며 괴롭게 살았구나.

몸 구석구석이 꽉 조여 왔다. 무언가 맺히는 것 같았다.

반대로 모두 탁 풀리며, 터져서 허공으로 흩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 끼이이이익!

매들이 한참 아래에서 날아다니며 울었다.

끼마득한 저편에 동부 산맥이 보였다. 녹지 않는 만년설이 보였다.

거대한 성들은 장난감처럼 보이고 인간은 작은 점처럼 보였지만, 그래도세상은 넓었다.

- 피리리리릭! 피리리리리리릭!

수녀는 능숙했다.

양 뿔을 당기고, 벌리고, 앞뒤로 조금씩 움직였다.

거대한 풍뎅이는 수녀의 손짓에 따라 일정한 고도를 유지했다.

구름을 뚫고 잠시 올라갔다.

다시 천천히 내려왔다. 암살교단의소명수녀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유산은 대단해. 그대로 풍경이 내려다보이지? 탄산중합수지로 만들어진 거야.”

“탄산. 중합. 수지.?”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였다. 수녀가 살포시 웃었다.

“헤헤. 나도 잘 몰라. 기록된 대로 읽을 뿐이야.”

가면을 쓴, 암살교단의 소명수녀는살짝 어깨를 으쑥했다. 그때였다.

[페르시우스 V.H.A.-111 활공 중인기체 내부의 어색함을 감지했습니다.

음악을 재생합니다.]

[DUDUD①①① UDUDUN ?!]

[DDUDUN! DDDUN!]

풍뎅이 안에서 거칠고 폭력적인 음악이 울려 퍼졌다.

‘이것도 마법인가?’

어떤 악기도 없는 허공에서, 갑자기울려 퍼지는 음악.

혹은 굉음.

‘음악’은 뜨겁고 우둘투둘했다.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상상해 보지 못한 풍의 음률.

한 박자 한 박자는 진격의 개시를 알리는 북소리처럼 온몸을 저릿하게 울렸지만.

불규칙한 리듬은 기분 내키는 대로 빠르게 변덕을 부렸다.

한 음 한 음을.

뼈를 쪼갠 뒤 그 사이사이에 박아 넣고 흔드는 느낌이었다.

깊숙이 들어오는 한 음 한 음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음악을 들으며 아래를 계속 내려다봤다.

- 피리리리리리릭!

활공은 계속됐다.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풍뎅이는 저 멀리 북동쪽을 향하고 있었다.

에라스독 유블람 같은 도시들을 뒤편에 두고 산맥을 돌<가 나왔다.

아래로 거대한 평야가 펼쳐졌다.

누란 밀밭도 없고, 물들어 가는 가을의 숲도 없었다. 인간이 사는 가옥도 없는 그저 황량한 평야였다.

‘저런 곳이 있었나.’

“저게. 어딤니까?”

륙지.”

음악이 멈췄다.

수녀가 양쪽 뿔을 당긴 채 조심스럽게 조종했다. 활공 때보다 훨씬 더 집중하는 둣 보였다.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현재 고도: 1, 000피트]

[보조 기어를 내리는 중입니다.]

- 쌔애애애애앵!

풍뎅이 바깥에서 들리는 소음이 한차례 더 심해졌다. 황량한 평야가 급격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 쿠구구궁! 쿠구궁! 쿠구궁! 쿵!

풍뎅이가 바닥에 닿으며 몸이 마구 들썩였다. 몸이 오싹하게 내려앉는 감각과 함께 몸에 타격이 전해졌다.

- 덜커덕! 덜컥!

거대 풍뎅이의 몸이 거칠게 흔들리며 평야를 쭉 가로질렀다. 어느새 풍뎅이가 멈췄다.

천천히 정신이 되돌아왔다.

- 지이이이잉!

풍뎅이의 날개가 열렸다.

- 훌쩍!

가면을 쓴 수녀가 먼저 내렸다. 몸놀림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나는 잠시 움직이지 못하고 밖을 바라봤다.

칠흑의 풍뎅이는 처음에 봤던 것처럼, 땅에 바싹 붙어 있었다. 날개가 천천히 정리되기 시작했다.

“.아.”

나는 작게 탄식했다.

밖은 환했다. 아직 새벽에 가까운 아침이었다.

후작에게서 도망칠 때와 비교해도,

별 차이가 없었다.

한 시社 아니 20분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완전히 홀렸던 기분이었다.

- ^그락.

나는 간신히 내렸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흔들렸다. 옆을 바라봤다.

수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마법, 이었던 거요?”

가면 뒤에서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유산이야. 발굴한 옛 시대의 마법이지. 뭐, 비슷하네.”

여우 가면을 쓴 수녀가 풍뎅이에 몸을 기댔다.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그녀가 나에게 물었다.

“어때? 좋았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았다. 황홀했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수녀가 웃었다.

여우 가면이 완전히 얼굴을 가리고있었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빙긋 미소를 짓는다고 생각했다. 가면 뒤를 보고 싶었지만 자제했다.

누군가 가면을 쓸 때는 이유가 있다.

함부로 벗기지 않는 것이 좋다. 게다가 그녀는 암살교단, 레드 플레이크에소속되어 있다. 가면 뒤를 보면 곧바로 죽어야 할지도 몰랐다.

끝도 없이 펼쳐진 평이를 가만히 바^봤다.

그녀와 나는 잠시 침묵했다. 내가 그녀에게 물었다.

“여기서. 쉬어 가는 거요?”

“응? 아니?”

수녀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검은 장갑을 끼었다. 자연스러운 태도로 풍뎅이의 뒤로 돌아갔다.

“이제 밀어야 돼. 연료 아껴야 되거든.”

“어디서 충전할 수도 없어. 한 방울이라도 아껴야 돼. 얼른 밀자구?”

한나절이 지났다.

- 달그락! 달그락!

충실히 풍뎅이를 밀었다. 내가 할 수있는 건 이 정도였다.

처음에는 이걸 밀면서 간다기에 무척당황했지만, 후작에게서 구출해 준 은혜를 생각하면 몇 개월이라도 밀 수^을 것 같았다.

토를 달 일은 아니었다.

옆에서 함께 풍뎅이를 밀던 수녀가 짧게 해설했다.

“이 녀석 이름은 페르시우스야. 수륙양용활공기. 공학의 예술이지.”

공학.

<엠버는 공학의 도시란다.>

기스-제-라이의 말이 떠올랐다.

“엠버에서는 이런 것도 만들어 낼 수있다는 말이오?”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이 정도의 능력이 있었다면.

제국의 침공에, 첫 번째 희생양이 되어 무력하게 멸망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수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잃어버린 기술이야. 깊이 파묻혀 있던 기술들. 지금은. 꿈도 못 꾸지. 장치는커녕, 연료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는데, 뭘.”

“이런 게. 엠버에 얼마나 있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수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물어?”

“제국 황제가*".

제국 황제가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고말하려다, 순간 멈칫했다.

황제는 내 눈앞에서 죽었다. 수녀는그 증거를 가지고 엠버로 돌아가는 중이다.

“응?”

“.아니오. 그냥.

일단은 지켜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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