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벌레들의 무덤 (5)
- 덜컥.
나는 살짝 입을 벌렸다. 그건 상상하지 못한 루트였다.
“바다는.!”
“헤헤. 포악한 녀석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다고?”
“당신도 알고 있소?”
“그럼. 내가 직접 건너왔는데.”
“그런데도 바다로 나간다는 말이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20마일 정도의 근해를 넘어가면,
바다는 상상을 뛰어넘는 포악한 악의로 넘쳐 난다고 들었다.
그건 죽은 지식이 아닌 단단하고 검증된 상식이었다.
무수한 증인과 기록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었으니까.
그때 였다.
“친구.”
수녀는 얇은 장갑을 낀 손으로 내어깨를 덥석 잡으며 말했다.
“이 풍뎅이, 대체 왜 밀고 있다고 생각해?”
“나중에 달리려고. 당신 말대로 충전하고 있는 거 아니오?”
“달릴 거면 지금 달리면 되잖아.
틀렸어. 달리기 위해서가 아니야. 바다를 가르기 위해서라고.”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혹시. 기계 벌레들을 쫓던 것처럼, 흉포한 바다 녀석들도 쫓을 수있다는 이야기요?”
“그래. 너무 큰 놈은 어렵지만.
개네도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야. 그리고 지금은, 큰 놈들 대부분이 북쪽에서 먹이를 찾을 시기고.”
“북쪽?”
“크라켄이 제일 좋아하는 클램토푸스(Clamtopus)가 지금 산란기거든.
배에 알을 잔뜩 채우고 북쪽으로 가고 있을 거야.”
여우 가면이 쏟아 놓는 지식에 놀라서 얌전히 듣기만 했다.
그녀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대화룰, 아니 수강受講을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사실을 사흘 만에야 비로소 분명히 깨닫고 있었다.
조금 더 일찍 깨달았다면 더 많은걸 배울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도 늦은 건 아니었고,
나는 수녀의 말을 귀 기울여 들었다.
샤크월 Sharkworm.
오클리 언 Orkallion.
모칵스 Moqax.
스코그모어 Scogmowr.
이름도 생소한 녀석들의 특징에 대해 하나씩 배워 나가고 있을 때.
- 철썩. 철썩.
파도 소리가 뼈에 닿았다.
눅눅한 습기가 닿은 게 먼저인지도 몰랐다.
“도착한 것 같은데.
“그래. 5km 정도 남았네.”
탐지 스킬은 이미 Lv.5.
무수한 기계 벌레들을 끊임없이 포착해 왔던 덕분이다.
‘최대 포착 숫자를 유지하면. 숙련도가 가파르게 오른다는 걸 처음 알았지.’
- 철썩. 철썩.
파도 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진다.
소금기를 머금은 짠 바람이 뼈마디사이사이로 불어온다.
우리를 반기듯 해안에서 흔들리는 배가 보였다.
어선이 있을 만한 위치는 아니다.
정박된 배는 단 한 척.
하지만 크기는 충분했다.
‘스무 명은 탈 것 같은데.
수녀가 외쳤다.
“선장-!”
“아, 오셨습니까?”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하늘.
그 아래로.
거친 질감의 진청 코트를 입고, 커다란 항해용 모자를 쓴 남자가 배에서 걸어 나왔다.
‘인간.!’
- 달그락.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아예 내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오직 여우 가면의 수녀만 똑바로 바라보고 다가올 뿐이었다.
가까이 온 그가 모자를 벗어 살짝 고개를 숙였다.
거칠거칠한 질감의 진청색 코트를입고, 검은색 모자를 쓴 중년 남자가 우리를 향해 걸어왔다.
“아, 이제 오셨습니까?”
“응! 출발하자구.”
남자가 하늘을 슬쩍 바라봤다.
“날씨는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 딱 좋네. 선장은?”
“저야 근해까지만 데려다 드리니괜찮습니다만, 손님께서 내리실 때좀 어두울 겁니다.”
“상관없어. 가자구.”
선장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모자를 벗자 짙은 금발이 흩날렸다.
나이는 40대 초반 정도.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였다.
어깨가 넓다. 슬쩍 드러난 팔뚝에서 근육이 잔물결처럼 움직였다.
상체만이 아니었다. 몸 전체가 균형 있게 발달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뱃일로 만들어진 근육 같았다.
‘특이한 인간이군.’
수녀에게 가면을 벗기를 요구하지도, 움직이는 해골인 나를 보고 공격하려 들지도 않았다.
심지어 묻지도 않는다.
선장이 가교를 내릴 때, 곁에 선 수녀에게 물었다.
“.저자는 누구요?”
“선장이지 누구겠어? 근해近海는 엄청 평화로우니까, 괜히 연료 쓸거 없이 남의 배 타고 가자고.”
“근해까지라면.
“응. 해안에서 20마일.”
“고작 20마일인데.
저런 배를 끌어들일 필요가 있었냐는 물음이 생략되어 있었다. 수녀는 풍뎅이를 톡톡 두드리며 대답했다.
“이거 충전하기 엄청 어렵거든? 아껴야 잘살지.”
“그리고 한참 더 가야 돼.”
수녀가 친절하게 설명을 이어 갔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허공을 죽그었다.
“후작에게서 널 여기까지 직선으로 데려왔잖아. 엠버는 위도 상으로 좀더 아래야. 배 타고 일단 남쪽으로좀 더 가야 돼. 해안 따라 6시간은 탈걸?”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교를 내린 선장이 다가왔다.
“짐 옮기겠습니다, 손님.”
그는 근육질의 몸과 어울리지 않는 살가운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타고 온 풍뎅이를 번쩍 들어 갑판 위에 올려놓았다.
“서비스 좋네. 잔금 먼저 줄게.”
- 짤랑!
수녀가 건넨 돈을 받아 든 선장이 더없이 밝은 표정를 지었다.
“오늘도 저희 크루즈 서비스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수녀는 그 말에 즉즉 대며 웃었다.
“와, 그거 어디서 봤어?”
“저번에 이용하신 교단 수사修士분 책자에 나와 있던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 사용하는 거라더군요. 그럼 운항 준비하겠습니다.”
선장은 갑판 가운데로 다가갔다.
쇠막대가 교차로 박힌 원뿔 막대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뿔은 다 자란 소나무 정도의 굵기였다. 쇠막대의 길이는 1미터가 넘었다.
- 끼기기긱. 끼기기긱.
네 명은 달라붙어야 할 만한 뿔이 간단히 돌아갔다. 뿔에 감긴 줄이 당겨졌다. 쇠닻이 올라왔다. 혼자 닻을 올린 선장은 돛도 혼자 폈다.
- 파라락!
‘.평범한 인간은 아니군.’
수상한 배가 출발했다.
순풍을 받은 돛이 펄럭였다.
키를 잡은 선장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바람이 조금 쌀쌀하다.
선장이 걸친 진청색 레인코트가 날씨와 어울린다. 다시 고개를 돌려수녀를 바라봤다.
“저 인간. 왜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요?”
수녀는 세이론을 꺼내 손가락으로한 번 튕겼다.
팅, 하는 경쾌한 소리가 나며 제국의 금화가 허공에서 돌았다. 햇빛이 어지럽게 반사됐다.
“반짝이는 걸 믿으니까. 상당히 세련된 인간상이지.”
아직 가면을 벗지 않은 수녀는 제국의 금화를 내 손에 쥐여 주었다.
“거래하기 좋은 상대야. 실제로 단골이기도 하고.”
햇살을 받았기 때문인지, 수녀가쥐고 있었기 때문인지 금화에는 약간의 온기가 남아 있었다.
나는 세이론 하나를 손에 쥔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수녀는 객실로 들어갔다.
능숙하게 키를 다루는 선장을 멍하니 서서 잠시 바라봤다.
어느 쪽에게든.
무언가 말을 걸어 묻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하지만 나는 침묵으로 절제를 지켰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3일 동안 황야에서 풍뎅이를 민 터라 피곤했는지 수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자고 있는 건지 눈만 감은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나도 근처에서 몸을 기대고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항해는 순조로웠다.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지만, 심한 풍랑은 치지 않았다.
부슬비가 살짝 내리는 정도였다.
一 쿵.
작은 소리와 함께 배가 흔들렸다.
큰 흔들림은 아니었다.
수녀가 곧바로 눈을 떴다. 나는 그녀를 따라 갑판으로 나갔다.
진청색 레인코트를 입은 선장은 굳건히 키를 잡고 있었다.
선장이 뒤를 돌아보고 말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파도에 살짝 부딪혔습니다.”
수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 날씨는 조금 험하네.
투둑. 투두둑 갑판에 비가 조금씩 쏟아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내게 수녀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페르시우스의 항해능력은 엄청나니까.”
객실에 돌아간 지 이십 분쯤 지난 뒤였다. 빗줄기가 점차 굵어졌다.
갑판에 빗방울이 거세게 튀는 소리가 울렸다. 파도가 본격적으로 거세지고 있었다.
수녀가 소리쳤다.
“선장!”
- 쿠궁!
뱃전에 부딪치는 파도 때문에 듣지못했는지, 선장의 대답은 없었다.
“우리는 이쯤에서 내린다! 날씨가생각보다 험하네. 수고했어.”
- 투두둑! 투둑! 투두두둑!
- 콩! 콩! 콩!
빗방울 부딪히는 소리에 무언가 괴상한 소리가 섞여 들렸다. 수녀가 객실 밖으로 나가며 소리쳤다.
“어이, 선장! 키 안 돌려? 당신은 돌아가야지?”
- 번쩍!
- 우르르롱!
천둥이 약하게 쳤다.
진동이 울렸다. 배가 휘청거릴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수녀를 바라봤다.
“이 정도는 뭐. 괜찮아. 안심해.
어이! 선장! 용감하네?”
선장은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여전히 바깥에 키를 잡고 홀로 서있었다.
- 콩. 콩. 콩.
빗방울이 갑판에 부딪히는 소리도,
뱃전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도 아니었다.
선장은 돌아보지 않았다.
진청색 레인코트 안에, 몸을 조금 움츠린 채로 여전히 서 있었다.
‘키를 한 손으로. 잡고 있나?’
작은 파도가 갑판 위를 휩쓸었다.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선장의 머리를 가리고 있던 커다란 항해용 모자가 공중으로 날아갔다.
그 아래로 회청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 손은 가느다란 회청색머리칼을 뒤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저건.!’
나는 화들짝 놀랐다. 그때였다. 선장이 뒤로 몸을 돌렸다.
- 번쩍!
새파란 빛줄기가 반응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코앞까지 날아왔다.
- 달그락!
몸이 거칠게 위로 솟구쳐졌다.
옆에 있던 수녀가 나를 잡고 객실지붕 위로 올라가 섰다.
“이런 개 같은 경우가.
수녀의 입에서 연달아 험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객실 지붕에 올라가자한눈에 상황이 파악됐다.
- 콩. 콩. 콩.
피가 뚝뚝 흐르는 금발 남자의 시체가, 닻줄에 묶여 키 아래에서 덜렁거리고 있었다.
“선장은 죽어서도 배를 인도한다.
시적이지 않나?”
- 우르릉! 쾅!
천둥이 울렸다. 바람이 점점 거세졌다. 기분 탓일지도 몰랐다.
- 파르륵!
후작은 안쪽이 피로 범벅이 된 진청색 레인코트를 벗어서 폭풍우에 멀리 날려 보냈다.
수녀의 입에서 심각한 욕설이 연달아 튀어나왔다.
‘어떻게. 살아남았지?’
수십 마리 풍뎅이가 후작의 주위에서 폭발했다.
연기가 자욱하긴 했지만, 걸레처럼터져 나간 고기 파편과 핏자국을 분명히 확인했다.
찢겨진 파편은 충분히 많았다.
‘충분히. 오히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많았는데.’
키를 등지고 선 인간이 천천히 위를 올려다봤다.
화상을 처음부터 입지 않은 건지,
포션으로 치유한 건지 얼굴은 번듯했다. 피부가 타지도, 어딘가 떨어져나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의 주변을 맴도는 공기는 매우 기괴했다.
후작은 무표정했다.
얼굴 곳곳에 피가 묻어 있었다. 눈 밑에 깊게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고 입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마치 어딘가 심하게 일그러져, 함부로 녹아내리다 멈춘 듯한 분위기가 풍겼다.
후작은 가만히 수녀를 노려봤다.
둘 사이에서 일어나는 차가운 긴장감에 완전히 압도당한 나머지, 몸을움직일 수가 없었다.
거칠게 갑판을 때리는 빗방울 소리하나하나가 아주 느리게 들렸다.
긴장의 농도가 점점 짙어졌다.
주위의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는 것같았다.
- 우르릉! 광!
천둥이 쳤다.
배가 한차례 크게 흔들렸다.
갑작스러운 폭풍우를 받은 배는 점점 원해를 향해 가파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수녀가 주먹을 꽉 쥐었다.
오른쪽 소매에서 후작의 심장을 뜯어냈던 갈고리가 홀러내렸다. 갈고리는 반투명했다.
- 팟!
여우 가면의 수녀가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후작은 검을 뒤로 당겼다.
칼이 빛을 내며 달아올랐고, 하얀섬광이 수녀를 향해 날아갔다.
- 파지직!
수녀는 피할 생각도 하지 않고 최단 거리로 갈고리를 휘둘렀다. 하얀빛줄기가 수녀의 허리를 절단했다.
하지만 양쪽의 공격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잘린 수녀의 허리는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것처럼 합쳐졌고, 후작은 섬광을 날리는 순간 이미 몸을 옆으로 피하고 있었다.
- 광!
수녀의 갈고리를 맞은 키가 폭발하둣 반으로 갈라졌다. 선장의 시체를 매단 키가 바다로 빠졌다. 배가 휘청 이며 반 바퀴 돌았다.
어느새 스무 걸음 떨어진 위치에서난간에 몸을 기댄 후작이 비웃듯이 말했다.
“물질투과의 권능. 너희들이 말하는 ‘유산’이겠군.”
그가 검으로 수녀의 여우 가면을 가리켰다.
“그건가?”
후작의 두 눈동자가 새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 팟!
그는 달리는 자세 그대로 칼을 휘둘렀다. 칼이 여우 가면을 가르고 지나갔다.
목을 쳤고, 다시 반대로 되돌아와허리를 잘랐다. 하지만 이번에도 파육음은 없었다.
검붉은 갈고리가 반격했다.
빠르게 움직여 후작을 노렸지만,
이미 바닥을 굴러 몸을 뺀 뒤였다.
‘.후작이 더 빠르다.’
후작은 수녀의 모든 공격을 원천적으로 피해 내고 있었다.
나는 끼어들 타이밍을 재고 있었지만, 도저히 틈이 나오지 않았다. 레벨이 지나치게 다른 싸움이었다.
“어이, 엘릭서 많아? 너라도 두 병은 절대 없을 텐데. 심장 한 번 더뜯기면 바로 죽어. 알지?”
변조된 목소리가 가면 뒤에서 튀어나왔다.
이미 수녀에게 멀리 떨어진 후작이무표정하게 대꾸했다.
“밀도 조절이든, 위상 조정이든 상관없다. 모든 유산은 소모성이지.”
“하. 나 참. 진짜 별 스토커 같은 새끼 다 보겠네. 야, 너 여자한테 인기 없지?”
후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번에는 그의 칼이 청백색으로 빛났다. 아까보다 훨씬 더 환한 빛이었다. 후작 근처의 빗줄기가 즉시 증발해서 타올랐다.
- 번쩍!
내리친 번개마저 후작의 칼에 빨려 들어가며 연료가 되어 타올랐다.
빛을 모은 칼이 당겨졌다가, 반동을 주는 것처럼 앞으로 휘둘러졌다.
아침을 세 시간쯤 당길 정도로 환한 청백색 빛이 여우 가면을 향해 세차게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