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벌레들의 무덤 (7)
피와 비로 젖은 갑판 위.
하늘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촉수가 내리꽂혔다.
- 콰직!
“잡아!”
검은 장갑을 낀 손이 나에게 빠르게 뻗어 왔다. 강렬한 반동으로 튕겨져 나가려던 몸이 간신히 잡혔다.
- 과득! 콰드드득!
꿈틀거리는 새까만 촉수가 갑판을 마구 찢었다.
폭발적인 굉음과 함께 배가 미친둣 흔들렸다.
- 쿠구구구.
- 쿠구구구구구_십여 개의 거대한 촉수들이 사방에서 첨벙거리며 배를 타고 올라왔다.
촉수의 곳곳에는 인어들이 매달려있었다.
동료들을 후작에게 잃은 인어들.
그들이 배아래 매달려 크라켄에게배를 끌고 간 것이다.
옆에 서 있던 수녀가 깊게 숨을 내쉬었다.
‘‘ ?1 , ,
? ??아.
절망이 읽혔다.
그녀가 주먹을 쥐고 막 뛰쳐나가려할 때였다.
- 퍼격!
갑판을 쑤시며 꿈틀거리는 거대한 촉수 중앙을 새파랗게 빛나는 칼이 관통했다.
끝에서 2미터가 넘게 새파란 검기劍氣를 줄줄이 뿜어내는 칼.
- 파가아아갓!
굵은 크라켄 촉수가 아래에서부터 폭발하듯 쪼개졌다.
반으로 갈린 촉수에서 새까만 점액이 갑판으로 후두둑 쏟아졌다.
- 첨벙!
돛대보다 굵은 촉수가 양 갈래로 나뉘어 허공에서 버둥거리다 바다 아래로 급히 들어갔다.
다른 촉수들도 흠칫한 듯 수면 아래로 첨벙이며 도망쳤다.
‘쫓아낸. 건가?’
_ 쿵.
허공에 솟아올랐던 후작이 가볍게 갑판에 착지했다.
그리고 나와 수녀를 향해 촉수를 잘라 낸 칼을 겨눴다.
- 철썩!
솟아 오는 물줄기가 배를 한차례 세차게 흔들었다.
후작은 검은 점액으로 질척거리는 갑판을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왔다.
“제국 대상조大上造가 판결한다!”
그는 한 걸음마다 광기 어린 외침을 뱉어 냈다.
“국경단속법 제4조!”
“제국 외의 지역에서 승선한 선박으로부터 제국에 밀항 및 이선離船한 자, 3년 이하의 노역에 처한다!”
“제국 형법 제52조! 외국과 통모하여 제국에 항적抗敵한 자는 사형 또는 무기노역에 처한다!”
“치밀하게 계획된 뒤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아 그 죄질이.
- 번쩍!
- 우르릉! 쾅!
빗줄기를 가르고 새하얀 번개가 내리 쳤다.
번개는 후작이 들고 흔들던 칼에 흡수됐다. 번개가 그의 젖은 몸을 한차례 타고 지나갔다.
후작은 몸을 부르르 한 번 떨었다.
그리고 나와 수녀를 향해 칼을 겨누며 다시 소리쳤다.
“피고 2인은 97인의 인명 살해와 공모했다!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존엄한 가치인 생명을.
‘어울리지 않는 소리를 하는군광기에 젖어 다가오는 녀석을 보고다시 한 번 의문이 깊어졌다.
기사들에게 흡수한 패시브 스킬,
제국 예법에 따르면.
제국 관내후關內候는 자신의 영지에서 완벽한 치외법권을 가진다.
제국 대상조大上造는 공소권을 가진 걸어 다니는 검사檢事이자.
동시에 판관判官이 될 수 있는 터무니없는 지위.
그런 자리에 있는 자가.
황제 암살에 대해서는 별 유감이 없어 보인다.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애초에 추적해 온 게. 황제 암살 때문이 아니었어.’
제국에 의전 서열 20위 안에 드는 후작 본인이, 혼자 움직이는 것도 기괴한 일.
‘개인적이다.’
사적인 원한.
사적인 복수.
근위기사단장과 특별한 사이였는지 물었을 때.
후작의 눈빛이 새파랗게 타오르던 모습이 떠올랐다.
추측이 확신으로 변해 갔다.
내가 죽음을 목격하고 미스릴 갑옷을 뺏은 근위기사단장.
그녀의 복수를 하러 이곳까지 쫓아온 것이다.
‘갑옷, 괜히 건드렸나.
그때 였다.
- 좌르르륵!
물러난 줄 알았던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움츠리며 배 주위의 허공에 똑바로 곧추세워졌다.
그 끝은.
창처럼 날카롭게 오므라진 상태.
수십 가닥 촉수가 빈틈없이 사방에서 동시에 뻗쳐 오는 순간.
곁에 있던 수녀가 내 손을 잡았다.
여우 가면 뒤에서 매끈한 음성이 홀러나왔다.
“동조-투영投影.”
- 파바바바밧!
지옥의 심판처럼 보이는 수십 갈래의 칠흑 촉수가 보이는 모든 공간을 꿰뚫었다.
배 위의 모든 시설물이 먼지가 되어 사라졌다.
바다의 지배자.
크라켄.
분노한 칠흑 촉수들은 감히 어디서 날뛰고 있냐는 듯 모든 걸 꿰뚫고,
다시 꿰뚫고, 조이고, 빨판으로 빨아부수고, 물어뜯어 나긋나긋한 상태로 만들었다.
그리고.
- 촤아 아아악!
바다가 입을 벌렸다.
더 이상 배라고 부르기 어려운, 우리가 간신히 딛고 선 파편을 바다가 통째로 입을 벌려 삼켰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입인지 짐작하기도 어려웠다.
- 과득! 콰드득! 콰드드득!
파편들이 잘게 부서지는 소리.
수천 개의 단단한 것들이 연신 으득거리며 갈려 왔다.
하지만 모든 공격은 우리를 투과해지나갔다.
암흑뿐이었다.
긴 통로를 지나, 안으로 정신없이 홀러 들어갔다.
곁에서 매끈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유산 - 별빛청여우의 충전이 필요합니다. 잔여 배터리 15%. 분절사용 모드를 추천합니다.]
[&여 14.75%??????.]
“.명도 조절.”
가면 뒤에서 수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직도 내 손은 꽉 잡혀 있다. 곁을 바라봤다.
“.입회 실패다.”
여우 가면의 수녀가 중얼거렸다.
“여긴. 어디요?”
“뱃속이야.”
“크라켄의?”
수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닥은 물컹했다. 거대한 부식성높지대 같았다.
- 치이익!
- 치이이익!
배의 잔해들이 크라켄 위액에 타는 소리가 시끄러웠다.
나무와 쇠들이, 연기를 만들며 위액의 파도에 부식되어 갔다.
반쯤은 공기.
반쯤은 출렁이는 늪.
뱃속은 끝도 없이 넓었다.
가면에서 나오는 빛이 주위를 밝혀주고 있었다.
그러나 크라켄의 뱃속은 어디가 시작인지 끝인지, 다른 것들은 얼마나안에 들어가 있을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잔여 배터리 12.5%.]
가면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크라켄의 뱃속에서 울리며 메아리쳤다.
“카아아아아아!”
통째 삼켜진 인어 한 마리가, 주위의 새까만 액체에 온몸이 녹아내리면서도 비명을 지르며 나에게 달려들었다.
몸이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 있다면 누구나 타자를 공격할 수밖에 없다.
공격의 대상은 고통의 원인보다 쉽게 손닿는 누군가가 된다.
- 쉬익!
하지만 휘두르는 손 낫은 그대로 나를 통과했다.
- 치이이익!
달려오는 관성까지 더해, 인어는 크라켄의 위액에 빠져 첨벙거렸다.
온몸이 부식되며 버둥거리며 괴로워했다. 단번에 죽지도 못하는 것같았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인어들이 곳곳에 보였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촉수에 으스러지거나 씹혀서 들어오지 못한 먹이들이 이곳에서 천천히 소화되고 있었다.
“.가엾군.”
[잔여 배터리 10.75%.]
“몇 분 뒤면 우리도 저런 꼴이 되“우린 어떻게 살아남은 거요?”
수녀가 여우 가면을 가리켰다.
“유산의<동조-투영投影>. 너한테까지 영향을 주게 해 놨어.”
“투영이라니.
“공격으로 인식되는 걸 스쳐 지나가게 하는 거야. 먹어서 가두는.
이런 짓에는 대응이 곤란하지만.”
수녀가 나를 보고 말을 이었다. 그건 독백 같았다.
“나는 입회에 실패했어. 제국 4검주도, 탑주급 마법사도 없는 일행에게 기스-제-라이가 당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해골 친구마저 지켜 주지 못할 줄은. 미안하다.”
나는 수녀를 바라봤다.
입을 다무는 대신 이런저런 것들을 좀 더 물어보기로 했다.
“궁금한 게 있소. 후작은 도대체 날 어떻게 따라온 거요?”
중요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오는 대답은 그리 신통치 않았다.
“암살 현장에서 흔적을 따라서 추적했을지도. 아니면 친구가 챙긴 물품에 추적 마법이 걸려 있었거나.
둘 다일 확률이 높겠지.”
“황야를 건넌 건.?”
“쫓아올 수만 있었다면[주의! 연료가 10%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가면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방금 전 배에서 싸워 본 저놈이라면, 기계 부유물들 정도는 검기로 녹여내며 쫓아왔을 거야. 연료를 충전한다고 3일을 걸어 왔으니. 쫓아올 시간은 충분했겠지.”
잠시 멈칫한 수녀가 말을 이었다.
“정보가 잘못됐어. 우리가 검주劍主급과 제대로 격돌해 본 경험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저 녀석은 예상보다 훨씬 강해.”
“절대 4 검주의 말석에, 혼자서 후작의 좌에 있을 놈이 아니야. 힘을 숨기고 있었어.”
수녀가 중얼거렸다.
“저런 녀석과는. 얽히지 말았어야했는데.”
- 달그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동의하오.”
놈과 얽히지 말았어야 한다는 사실에는 열렬히 공감이었다.
[주의! 잔여 연료가 8% 이하로 떨어 졌습니다!]
가면 바깥에서 다시 기묘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때였다.
- 으아아아아아아!
위액이 뿜어내는 염소로 가득 찬 어두운 공기를 뚫고 혼란스러운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크라켄의 입 쪽에서 단단한 것들이부서지고, 깨지고, 찢어지는 소리가 연달아 세차게 울려 퍼졌다.
파괴의 소동은 점점 안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수녀가 중얼거렸다.
“그놈이야. 살아남았어.”
- 쉬이이이이잇!
폭포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어딜 잘못 찔렸나.
제 피에 젖은 크라켄의 참혹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라켄은 온몸으로 요동치며 바다 깊숙이 파고 들어갔다.
- 꾸투루루룩!
측정할 수도 없는 속도였다.
뱃속에서도 지독히 강해지는 수압에, 부식되며 괴로워하는 인어들의 몸이 퍽퍽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볼품없는 내용물들이 빠른 속도로 드러나며 바깥으로 쏟아졌다.
[경고! 경고! 경고! 잔여 연료가1% 이하로 떨어졌습니다!]
“저 꼴이 되느니. 자살이 낫겠군.”
거대한 뱃속에서 마구 휩쓸리던 수녀가 중얼거렸다.
그녀가 갈고리를 들어 순식간에 제목을 그었다.
진한 피가 허공으로 뿜어졌다.
‘사라졌다.’
- 치이이익!
세계가 다시 몸에 ‘닿기’ 시작했다.
고통스럽게 죽어 간 인어들처럼 뼈가 부식되고 있었다.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때 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위장 입구 쪽.
거대한 고함 소리가 메아리쳤다.
마구 번뜩이는 새파란 빛이 거대한크라켄의 위장을, 심장을 끝까지 마구 찢어 놓고 있었다.
꾸룩거리며 바다 깊숙한 곳으로 미친 듯이 헤엄쳐 들어가던 크라켄이 점점 힘을 잃어 가기 시작했다.
크라켄이 멈출 때 즈음.
- 파아앗!
온몸을 새파란 기로 감싼 후작이다가 오기 시작했다.
발에서 기를 뿜어내어 몸을 솟구쳐오고 있었다. 후작은 손을 휘둘러서 나를 잡아챘다.
- 달그락!
후작은 한 손으로 내 척추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수녀의 목을 잡고 외쳤다.
압력에서 미처 보호하지 못했는지,
힘이 다했는지 두 눈과 귀에서 피를 줄줄 홀리고 있었다.
후작이 끈적한 피를 쏟아 내는 입을 열어 말했다.
“나는 너희를 스펠홀드로.!”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지만,
후작의 목이 자연스럽게 꺾였다.
그의 몸에서 더 이상 새파란 빛이 나지 않았다.
‘죽었. 어?’
그러나.
자연스럽다.
나는 그의 손에 잡힌 채 생각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편이 오히려 기괴하다.
시체가 되어 크라켄의 뱃속에 꾸물거리고 있는 편이 옳았다.
원래대로 따지면 배 위에서 수십 가닥의 촉수에 당했어야 할 몸.
폭탄에 터졌어야 했을 몸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계속 데미지가 누적되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다. 후작은 죽어서도 나를,
수녀를 놓지 않았다.
- 우우우웅.
주위가 고요하다.
뼈가 부식되며, 체력이 떨어진다는 메시지가 계속 떠올랐다.
나는 그 와중에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방이 온통 초록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수녀의 시체.
후작의 시체.
그리고, 크라켄의 시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