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08화 (108/458)

109화 영양식크라켄의 뱃속 어둠이 환한 초록빛에 젖었다. 빛은 어느 한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게 아니었다. 공간 전체가 찬란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황홀할 정도로 반짝이는 것이 내 눈앞에 있다.

제국 4대 검주인 후작.

그가 전신에서 뿌리는 반투명한 옥빛은 섬뜩할 정도로 강렬했다.

시체가 줄줄이 뿌리는 초록색 빛.

처음 보는 현상이 아니다.

네크로멘서 기스-제-라이.

그녀에게 정수 흡수 스킬을 이식받은 후.

막 죽은 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

단, 위액 위에 부식되어 떠다니는 인어들에게는 일체 그런 빛이 나지 않는다.

그들은 여전이 캄캄하다.

‘능력 차이 때문이겠지.’

내 전반적인 능력이 상대를 한참초월하거나.

딱히 흡수할 만한 가치가 없는 능력만 가졌을 경우.

그럴 때는 빛이 나지 않는 듯하다.

나는 후작을 바라봤다. 여유를 부리고 있을 시간은 없다.

- 치이이익.!

[‘부드러운 소화액’에 의해 3초당0.165%의 체력이 감소합니다!]

[크라켄의 위액은 영양 성분을 조합시키기 위해 뱃속에 들어온 먹잇감을 천천히 녹입니다.]

후작의 시체도.

수녀의 시체도.

내 몸도 크라켄의 뱃속에서 천천히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수압에 몸이 터져 죽은 인어들의 시체처럼.

- 치이이익.

위액에 잠겨 있는 하반신이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한다.

산성 저항.

부식 저항 따위는 갖고 있지 않다.

‘시간이 많지 않아.’

앞으로 30분이면 두개골까지 전부 부식되어 녹아내리겠지.

- 달그락.

단호히 후작에게 손을 뻗었다.

[홉수하시겠습니까? Y/N]

‘흡수한다.’

- 우우우우응!

‘가져가 줘야겠어. 전부 다.’

강렬한 초록색 빛이 나에게 서서히 흘러들어 온다.

‘차가운데?’

빛에도 온도가 있다. 기스-제-라이의 빛이 편안하고 즐거운 온도였다면 후작의 빛은 냉정하고 차갑다.

정수 흡수.

가진 능력을 다 흡수할 수는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내가 기스-제-라이를 흡수했을 때 이미 전설적인 네크로멘서가 되었거나, 근위대를 흡수했을 때 근위대 전체가 덤벼도 이길 만한 검사가 되었을 것이다.

눈앞의 후작을 흡수한다고 해서,

내가 단번에 제국 4대 검주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흡수할 수 있는 능력의 양과 질.

그건 분명히, 상대의 강함에 제대로 비례한다.

_ 스스스스스슷!

강렬하게 빛나는 초록빛이 마치 용암처럼 스멀거리며, 온몸의 뼈 구석구석 스며들기 시작했다.

주위는 고요했다.

크라켄은 이미 죽어 있어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저 천천히 떠오르며 흔들리기만 했다.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은 전부 수압에 몸이 터져 죽은 상태.

첫 번째 스킬이 흡수됐다.

띠링!

[은신 Lv.l을 흡수했습니다!]

지형지물 속에 당신의 몸을 숨길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 경우, 그림자나 안개 속에 원활히 몸을 숨길 수 있게 됩니다.

[은신 Lv.2를.]

[Lv.3.]

[Lv.4.]

[은신 Lv.5를 흡수했습니다!]

은신 중 공격할 경우 200%의 데미지가 가산됩니다. 스킬이 일정 수준에 도달할 경우, 혜택이 생깁니다.

수년.

혹은 수십 년에 걸쳐 수련해야 닿을 수 있는 레벨이지만, 눈앞에서단번에 흡수해 버린다.

스스스스스스슷!

‘은신’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다음 빛이 들어오고 있다.

[제국법 Lv.l을 흡수합니다!]

제국의 인간들 사이에 강제되는 규범입니다. 레안드로 후작은 걸어 다니는 즉결 법정이자 1인 법 집행 기관인 대상조大上造로서, 특히 형법에 통달해 있었습니다.

[Lv.2.]

[Lv.3.]

[Lv.4.]

머릿속에 제국의 법률 체계가 차근차근 들어오기 시작했다.

압도적인 폭력으로 완전히 멋대로 구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는데,  일단알고 있는 지식은 상당한 수준인 것같다.

근위기사단장의 시체에서, 전술 스킬을 흡수할 때보다 훨씬 많은 지식이 머릿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레벨 차이로 인한 건가.’

- 치이이익스킬을 흡수하는 도중에도 하반신이 계속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시간이 없군.’

체력이 떨어진다는 메시지가 연달아 계속 울린다.

후작에게서 발하는 빛은 줄어들 기색을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으로, 가장 환한 빛 덩어리가 몸으로 폭발하듯 스며들려 했다.

빛은 내 몸 근처에 머물고 더 이상나아가지 못했다.

[히어로 스킬: 호신강기護身剛氣의흡수가 저지됩니다!]

[에 픽 스킬: 템페스트 Tempest 의흡수가 저지됩니다!]

[히어로 스킬: 망아지경忘我之境-

뇌雷의 흡수가 저지됩니다!]

[히어로 스킬: 섬예적총I지%的免의흡수가 저지됩니다!]

에픽이나 히어로 스킬들. 이런 걸 하나만 제대로 수련해도, 세상 위에오연하게 군림할 스킬들이다.

하지만 모두 막힌다.

‘.역시 안 되는 건가.’

정수흡수 스킬의 제약 때문.

기스-제-라이는 특수한 경우였다.

- 우우우우응.!

빛은 후작의 몸으로 되돌아갔다.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리고 가늘고 연한 빛이 되어 내뼈로 다시 스며들었다.

[추적 Lv.l을 흡수합니다!]

추적 스킬을 가지게 되면 원하는 상대를 계속 쫓아가며, 흔적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탐지와 함께 사용하면 매우 높은 효율을 보입니다.

몸 구석구석 깊숙이 파고드는 빛줄기가 끝이 없다.

[Lv.2.]

[Lv.10을 흡수합니다!]

추적 Lv.10를 달성할 경우, 한 명의 상대에게, 자신이 살아 있는 한사라 지지 않는 낙인을 심어 넣을 수있습니다. 상대는 거리에 상관없는 추적이 가능하며, 추적할 때 이동속도가 10% 증가합니다.

후작의 스킬이다.

그가 누구에게 낙인을 찍었는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 달그락.

‘.징그러운 인간.’

하지만 메시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추적 Lv.15를 흡수합니다!]

추적 상대의 은신을 간파할 수 있습니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 때마다 이동속도가 증가합니다.

- 치이이이익!

몸이 녹아 간다. 하지만 그것마저 잠시 잊게 될 정도였다.

후작에게서 흡수할 수 있는 스킬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어마어마했다. 입이 벌어질 정도다.

단 한 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얻은 스킬만 해도, 황제의 근위기사 십수 명을 합한 것보다 많은 걸 얻은 듯했다.

- 우우우우옹!

_ 스스스스스스슷!

다음 빛이 들어왔다.

[검술 Lv.7을.]

[Lv.8.]

[Lv.9.]

[.Lv.10을 흡수합니다!]

검술 Lv.10을 달성할 경우, 검기Lv.l의 사용 자격을 얻습니다.

‘.됐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검기劍氣 Lv.O을 흡수합니다!]

- 달그락!

한층 더 놀라서 흠칫 움직였다.

사후경직이 일어난 후작의 손은 아직까지 내 척추를 단단히 잡고 있어 크게 움직일 수는 없었다.

‘검기를?’

에라스트 투기장에서 만난 남자에게서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미쳐 버린 건가? 기氣를 쓰는 수준부터는 이런 거. 아무 의미 없잖아. 검 끝에 마력만 흐르게 해도 강철을 두부처럼 자르는데.>

검기劍氣.

한 인간이 평생을 끙끙거려도 도달하지 못하는 경지를, 나는 후작에게서 단 한 번에 흡수해 버린 것이다.

‘그런데 Lv.O이라고?,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천천히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검기劍氣 Lv.O을 흡수합니다!]

[‘깨달음’ Lv.l이 필요합니다.]

[현재 사용이 불가능합니다.]

메시지는 거기서 끝났다.

‘.깨달음이라고?’

- 치이이이익!

뼈가 녹아들어 가고 있다.

깊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흡수를 계속했다.

그 후로는 모두 스탯 흡수였다.

[지능을 1 흡수합니다.]

[지능 1을.]

[지능 1을.]

[흡수한 능력을 소화하는 중.]

[소화까지 23:59:59.]

빛나던 초록빛이 모두 몸 안으로 사라졌다.

‘.엄청나군.’

하지만.

걱정되는 게 남아 있었다.

‘소화를 다하지 못한 상태로 죽으면. 이 스킬이 전부 보존될 수 있을까?’

모두 흡수하고 탈출한다면.

24시간을 생존한다면 좋겠지만, 크라켄의 뱃속 밖으로 탈출한다고 해도 바다에 어떤 것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몸이 위산에 부식되어 당장 죽는것보다도, 소화 상태의 스킬들이 어떻게 처리될지가 걱정.

어쨌건.

당장의 흡수가 급하다.

- 치이이익.!

[체력이 61.75%로 떨어집니다!]

아직 빛은 장내에 가득하다.

유독 강렬하게 뿜어지던 옥빛 하나가, 내 몸 안으로 녹아 사라졌을 뿐이었다.

- 달그락.

고개를 돌려 수녀를 바라봤다.

여우 가면을 쓴 수녀.

날 엠버로 데리러 온 나의 구원자.

‘기스-제-라이와 특별한 관계였던 것 같은데.,

하지만, 원래는 기스-제-라이를 데리러 왔을 여자.

그 여자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모른다.

정체가 뭘까.

그 가면 아래에는 무엇이 있을까.

여우 가면을 뜯어볼까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정수 흡수는 몰라도, 시체의 가면까지 뜯어내는 건 예의가 아니다.

몸이 부식되어 갔다.

더 망설이지 않고 수녀에게 손을 뻗었다. 언젠가, 그녀도 구해 줄 수 있기를 바라면서.

스스스스슷.

수녀의 목에 난 상처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지렁이처럼 일렁이는 환한 초록빛이 내 몸 구석구석으로 퍼져 나갔다.

[기계공학Lv.l을 흡수했습니다!]

기초적인 기계 시스템의 분석 및유지/보수가 가능합니다.

스킬 레벨 상승에 따라 자체적인기계 설계와 제조가 가능해집니다.

금속 제련 술과 조합될 경우 효과가상승합니다.

‘.이걸 어디에 쓰지?’

어디 써먹을지 짐작하기 어려운 스킬이었다. 이런 게 있다고 수녀 가타던 풍뎅이 같은 걸 만들 수 있을 리는 없으니까.

기계공학 스킬은 Lv.3까지 오른 뒤멈췄다.

그때 였다.

수녀의 가면 근처에서 멈칫거리던빛이, 손을 타고 멈칫거리다 쑥 흘러들어 왔다.

[가면무도회Masquerade Lv.l을 흡수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얼굴에 ‘인간’의모 습을 덧씩 읍니다. 상황에 따라 유지 시간이 달라집니다.]

[직관력이 높거나, 분석이나 간파계열 스킬을 가진 상대에게는 먹히지 않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다양한 모습으로 변장할 수 있습니다. 수준이 낮은 상대일수록 당신이 만드는 가면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호오.’

자세하지 않은 설명이 조금 불안했다. 하지만 이거라면 혼자서도 인간들의 사회에 잠입할 수 있다.

에라스트나 유블람.

그런 장소에 스스럼없이 들어갈 수있다.

인간들과 스스럼없이 얼굴을 마주할 수 있다. 선택지가 크게 늘어나고 있었다.

[체술 Lv.l을 흡수했습니다!]

[체술은 맨손 격투에는 물론, 무기를 사용할 때도 그 진가를 발휘합니다. 스킬 레벨이 올라갈수록, 상상할수 없는 속도와 각도로 공격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Lv.2.]

[체술 Lv.7을 흡수했습니다!]

그걸 끝으로, 수녀에게서는 더 이상 빛이 흡수되지 않았다.

나는 앞을 바라봤다. 후작에게서도 수녀에게서도 더 이상 빛이 흘러나오지 않았지만 아직 공간 전체가 초록빛으로 환했다.

- 치이이이이익!

[체력이 32.5%로 떨어집니다!]

‘공간 전체’가 뿜어내는 빛이니까.

- 달그락!

허공으로 손을 뻗었다.

위액.

타오르는 염소 공기.

전체가 초록빛이다.

‘.크라켄.’

까마득한 저편의 위장 벽을 향해재차 손을 뻗는다.

‘흡수한다.’

스스스스슷.

공간을 가득 채운 빛이 내게 빨려들어 왔다.

하반신이 완전히 녹아내릴 때 즈음이었다.

떠다니던 인어들도 이미 흐물흐물한 죽이 되어 있을 때.

[산성酸性 Lv.l을 흡수했습니다!]

뱃속의 위액뿐만이 아닙니다. 크라켄의 몸을 흐르는 검은 피는 그 자체가 산성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공격에 산酸 속성이 섞여 들어갑니다. 공격 도중에라도 언제든 속성을 해제하고 다시 장착할 수 있습니다.

[산성酸性 Lv.2.]

[-Lv.3'

[산성酸性 Lv.5를 흡수했습니다!]

산은 물질을 녹여낼 수 있는 성질이다. 실질 전투력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아직 검증해 볼 수 없다.

하지만 이게 분명 필요한 상황도 언젠가 나타날 거다.

전장에서 한 명의 마족이 시전한<독액의 늪>에 수백의 인마人馬가한순간에 녹아내린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산성 마법이었다고 들었어.’

얼마나 레벨을 올려야, 그런 위력으로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우 우우우-

[흡착吸着 Lv.l을 흡수했습니다!]

크라켄의 빨판은 웬만한 인간들도 간단히 우그러뜨릴 정도로 강한 흡착력을 가집니다.

당신이 가하는 공격에 원할 때마다 흡착吸着 속성을 섞어 넣을 수 있습니다.

[흡착吸着 Lv.5를.!]

산酸 속성과 같은 단계까지 스킬레벨이 올랐다.

‘이건 활용도가 높겠는데?’

상대를 빨아들이고, 적이 휘두르는 병기를 붙게 해서 끌어들이는 속성.

스킬 레벨이 오른다면, 무기가 부딪혔을 때 서로 붙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상대를 한곳에 붙여 버릴 수도 있다.

혹은 더 나아가서, 아예 우그러뜨려 버릴 수 있다.

‘.크라켄의 빨판처럼.’

우우우우우우우!

빛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다.

[공포 Lv.l을 흡수했습니다!]

크라켄은 바다의 공포입니다. 그 외양뿐이 아닙니다. 실제로 크라켄은 공포의 기운을 뿜어내어, 미천한먹이들을 광망狂妄으로 몰아갑니다.

원할 때마다 언제든 끄고 결 수 있는 패시브 스킬입니다.

액티브 스킬로 사용할 경우, 체력이 소모되며 위력이 증가합니다.

당신과 먹이 사이의 스탯 차이가 스킬의 효력을 결정하게 됩니다.

[흡수한 능력을 소화하는 중.]

[소화까지 23:59:59.]

공포를 마지막으로.

공간을 가득 채웠던 빛이 서서히 잦아든다. 크라켄의 거대한 뱃속이 다시 어둠으로 가득 찬다.

- 치이이익.!

[체력이 1.5% 남았습니다!]

‘ ???후.’

- 달그락! 달그락!

나는 손을 내저어 후작의 팔을 풀려 했다.

이미 몸 대부분은 녹아 있다.

하지만 저 녀석의 손에 쥐인 채 죽는 건 아무래도 피하고 싶었다.

- 달그락!

하지만.

후작은 죽은 상태에서도, 몸 곳곳이 부식되어 가는 상태에서도 나를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았다.

‘.시체도 지독하군.’

막 들어왔을 때와 같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새까만 어둠 속.

- 치이이익.!

[체력이 0.5% 남았습니다!]

나는 곧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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