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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09화 (109/458)

110화 기분의 문제 (1)

후작의 검집에 날아갔던 오른손이 보인다. 이리저리 뻗으며 정수를 흡수했던 왼손이 보인다.

마디 하나하나를 천천히 확인하듯이 양손을 쥐었다 폈다. 다 부식된 내 몸을 세심하게 만져 봤다.

- 톡. 토독. 토도독.

모두 온전히 붙어 있다. 크라켄의위액에 천천히 녹아내렸던 몸이 원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 털썩.

동굴 벽 한쪽에 몸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중얼거렸다.

“다시. 돌아왔나.”

죽은 뒤 다시 살아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익숙한 일이었다.

관건은.

어디로 돌아왔냐는 것.

눈앞에는 초췌한 모습의 인간 여자가 째근쎄근 자고 있었다.

눈이 움푹 들어가 있지만 워낙 미인인 탓에 추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시 주위를 돌아본다.

온몸으로 새파란 검기를 뿜어내던 후작은 없다.

물체를 투과하는 갈고리로, 그런후작의 심장을 반쯤 뜯어냈던 수녀도 없다.

마법으로 작동하는 거대한 기계 풍뎅이도. 몸이 터져 떠다니던 무수한 하피와 인어도.

부식성 위액으로 가득 찬, 크라켄의 거대한 위장도 없다.

기스-제-라이도 없다.

이 작은 동굴에는 나와 레나뿐.

그녀가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반가옴과 편안함을 느꼈다.

‘.힘들었다.’

저번 생은, 측정할 수 없는 레벨의 강자들에게 온통 이리저리 치였다.

정신이 비명을 지르고 싶을 정도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동굴 벽은 딱딱했지만 그마저 편하게 느껴졌다. 머릿속에 이번 생의첫 번째 목표가 빠르게 떠오른다.

‘후작은 만나지 말자.’

결코 다시 얽히고 싶지 않았다.

시체가 되어서도 내 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던 그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질 때.

- 띠링!

반투명한 푸른 창이 떠올랐다.

[계승되었습니다!]

[해골병사 Lv. 1(135)

[체력: 61]

[힘: 61]

[민첩: 62]

[지혜: 50]

‘역시 레벨은 1부터 시작이군.’

초기화된 레벨.

스탯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게 있었다.

‘스킬은 어떻게 된 거지?’

이게 급했다. 흡수는 모두 마쳤지만, 소화가 끝날 때까지 살아남지 못했다. 도중에 죽어 버렸다.

만약 흡수 스킬이 없던 게 되면,

후작과 수녀, 크라켄이 내 앞에서 동시에 죽은 행운이 아무런 쓸모 가없게 되어 버린다. 나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창을 내렸다.

‘제발.’

아래로 스킬 목록이 펼쳐졌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스킬들이 먼저 주르륵 나열되기 시작했다.

[질주 Lv.4]

[발도 Lv.5]

‘여기까지는 확인됐고.

그리고 스킬창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반짝거리는 새로운 스킬들을 모두 확인할 수 있었다.

[은신 Lv.5](new!)

[제국법 Lv.4](new!)

[추적 Lv.l5](new!)

[검술 Lv.lOKnew!)

[검기貪lj 氣 Lv.OKnew!)

[기계공학 Lv.3](new!)

[가면무도회 Lv.l](new!)

[체술 Lv.7](new!)

[산성텔‘性 Lv.5](new!)

[흡착吸, , Lv.5](new!)

[공포 Lv.lKnew!)

‘.됐다!’

다행이었다. 스킬 하나하나를 설명까지 전부 다시 확인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면 정말 괴로웠겠지.

죽기 전 흡수한 스킬들이 전부 소화되어 있었다. 소화에 필요한 시간도 표시되지 않는다.

‘시간을 건너뛰어 버린 건가?’

소화 시간이 사라져 있다.

‘흡수한 뒤 죽으면. 지연 없이 곧바로 소화되는 건가.’

새로 입수한 빼곡한 스킬들.

하나하나가 비범한 스킬들이다.

당장에라도 밖으로 나가 그 위력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눈앞에 계속 창이 떠올랐기 때문에 곧장 동굴 밖으로 걸어 나갈 수는 없었다.

- 띠링!

[사망기념관]

[계승된 이후 여덟 번째 죽음을 달성하셨습니다!]

‘이것도 여전하군.’

아래로 선택지가 펼쳐진다.

1. 네크로멘서의 연인5. 산성 저항플러스 (new!)

5번 특전에 플러스가 붙어 있다.

[크라켄의 소화액에 천천히 녹아죽으셨습니다.]

- 산성 저항이 20 상승합니다.

- 착용한 모든 아이템에 추가로 5의 산성 저항이 적용됩니다.

괜찮은 특전. 하지만 별 의미는 없었다.

띠링!

[특전을 자동으로 선택합니다.]

특전: 네크로멘서의 연인영웅급 특전입니다. 다른 영웅급 특전이 활성화될 때까지 강제로 이 특전이 선택됩니다.

이걸로 강제 고정이니까.

- 달그락.

‘네크로멘서. 기스-제-라이.’

그녀를 생각하자 복잡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도와줘야 하나.

결과만 놓고 보면 갚기 힘든 은혜를 입었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에픽스킬을 심어 주었다.

그러나.

사실 지금 도와줄 방법이 없었다.

내가 끼어들 레벨이 아니다.

가 봤자 노리개가 되어 실험당하다, 암살 현장에 끌려가 똑같은 일을 보게 되겠지.

<얼마 남지 않았소. 당신이 접골시술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소.

아쥬라의 마법사들은 그걸 위험하게 생각하니, 당신은 그들에게 곧 살해당할 거요.>

<어디서 듣고 온 거지? 아무한테도 말한 적 없거든.>

<네 두개골에 혹시 심안心眼 같은 게 내재되어 있는 건가? 분해해 봐야겠는걸.>

- 서걱. 서걱.

나를 무력하게 만든 채, 두개골을긁어내는 소름 끼치는 소리가 다시한 번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일단 만나면 돌이킬 수 없어.’

기스-제-라이는 황제를 죽이고,

근위대를 몰살시킨다.

이어지는 잿빛 기사.

후작.

별빛청여우.

위험이 너무 큰 상황들.

하지만.

사망이라는 결과가 변하지 않을지라도. 기스-제-라이를 그대로 방치하기는 미안하다.

기스-제-라이에게 간다.

가지 않는다.

- 달그락.

머리를 감싸고 고민하다가, 한숨을내쉬고 레나를 바라봤다. 멍하니 한참 바라보니 상태창이 떴다.

- 띠링!

[이름: 레나]

[호감도: 11]

[호감도 상한: 60]

[도적 Lv.5]

[트릭스터 Lv.l]

[사냥꾼 Lv.l]

[체력: 21]

[힘: 19]

[민첩: 25]

[지혜: 19]

[특성]

- 탁월한 손재주: 대부분의 무기를 다룰 수.

- 범죄 친화: 그녀는 인간의 도덕률을 전혀 믿지 않.

스탯과 스킬은 예전 그대로였다.

한 번 강화되었던 대로 여전하다.

이전 생의 시작과 별다른 차이는 없었다.

측정할 수도 없었던 괴물들에 비한다면 무척 평범한 그녀의 상태창.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무심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좋아.”

좋았다.

이 순간.

나는 이번 생의 초반은 레나와 함께 행동하기로 결심했다.

‘괴물들은 좀 피해 가면서, 며칠이라도 평범하게 살아 봐야겠어.!’

그때 였다.

“후아아암. 뭐가. 좋아요?”

- 달그락!

흠칫 놀라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레나가 하품을 하며 눈을 떴다.

굶주림과 피곤으로 살짝 꺼져 있으면서도, 앞을 똑바로 응시하는 속 깊은 눈빛이 나를 향했다.

“.뭐가 좋다고 하신 거예요?”

- 톡톡.

손가락으로 팔뼈를 두드리며 멈칫했다.

‘.깨어나 버렸군.’

그녀는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조금 흔들리는 손으로 품에서 펜던트를 꺼냈다. 펜던트를 눈빛에 얹어내게 건넸다.

“저. 이건.

손을 내저었다.

“아니. 네가 갖고 있어.”

받지 않았다. 함께하더라도 받을 자격이 없는 물건이다. 펜던트를 지켜내지도 못했다.

기스-제-라이에게 빼앗기게 된다.

처음에 펜던트를 거절할 때 했던 말을 적당히 늘어놓자 호감도가 3올라갑니다, 라는 메시지가 떴다.

어찐지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잠시 망설이다가, 할 일을 정했다.

“나가지. 따라와.”

하나하나 정보를 말해 줄 필요는 없다. 그녀와 함께 있을 생각이다.

내가 안내하면 그만.

“네!”

레나가 힘차게 대답하며 물건을 챙기려고 했다. 흘끗 그것들을 바라보고 말했다.

“필요 없어. 몸만.”

“어. 그래도 되나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굴 안에 있는 거라고 해 봐야 모험가들의 잡동사니 정도.

그런 걸 모을 필요는 없다.

유블람 영주와 경비대가 아편을 팔아서 생긴 은괴 덩어리.

그걸 파내 가면 저런 잡동사니는집 몇 채를 가득 채울 정도로 살 수 있으니까.

레나는 살짝 머뭇거렸지만, 별다른토 없이 순순히 나를 따라왔다.

나는 걸어가다 공터 가운데 섰다.

그녀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으으, 삼 일 동안 씻지도 않은 상태로 도시에 들어갈 순 없잖아요.

좀 봐주세요.>

아직 그녀는 내가 어색할 거다. 먼저 말해 주는 편이 좋겠지.

“산을 내려가기 전에. 일단 좀 씻지. 그리고 다시 여기서 만나자.”

레나가 눈을 깜빡였다. 띠링, 하는소리와 함께 그녀의 호감도가 1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어떻게 아셨어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냥.”

그녀를 보낸 뒤 주위를 둘러봤다.

괜히 보낸 건 아니다. 나도 잠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일단 검술부터 실험해 볼까.’

인간 허리 두께 세 배 정도의 단풍나무를 잠깐 바라보다, 다른 대상을 찾기로 했다.

나무 정도는 원래도 간단하게 베어 넘길 수 있었다.

‘이게 낫겠군.’

높이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암석이보였다.

나는 머리 위로 칼을 들었다.

예전보다 한 단계 높은 검술의 경지로 접어든 게 확연히 느껴졌다.

바위는 단단함의 대명사다. 칼날로 바위의 표면을 후려친다면 불꽃이 튀고 날이 나가게 된다.

하지만.

- 스르릉.

그저 가만히 들고만 있었음에도.

칼날에 서린 예기가 저 스스로 울음소리를 낼 정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칼과 내가 완전히 하나가 된 것 같았다.

칼의 기분과 강도가 느껴졌다.

‘???이거지!’

순간 바위를 가를 수 있는 선이 보이는 것 같았다.

[산성酸性 Lv.5를 발동합니다!]

[공격에 해당 속성이 섞여 들어갑니다.]

[무기에 따라 부식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 치이이익.!

칼날에 새로운 기운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걸로 부족했다.

[일도양단 Lv.l을 발동합니다!]

[참격 Lv.l을 발동합니다!]

잿빛 기사가 나를 공격하자 생긴 스킬들. 저번 생에는 제대로 활용해볼 기회가 없었다.

칼 한 번 제대로 휘두를 기회가 없었으니까.

- 쌩!

명검도, 마법검도 아닌 평범한 F급모험가의 바스타드 소드가 세차게 바위를 내리쳤다.

- 쩌억!

2미터가 넘는 거대한 바위가.

별것 아닌 칼에 반으로 쩍 쪼개져버렸다.

- 퍼버벅!

주먹만 한 다양한 크기의 돌조각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내렸다.

나는 눈앞에서 내가 만들어 낸 광경을 보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직경 2미터짜리 바위를, 단 한 번의 칼질만으로 반으로 가른 뒤.

부스러기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사방에 피어오르는 돌먼지를 감상하며 멍하니 서 있을 때였다.

- 털썩.

갑자기 옆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옆을 바라봤다.

레나가 어울리지 않게 무릎을 꿇고, 새카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얘, 왜 여기 있지?’

씻으러 가라고 했는데.

- 꿀꺽.

레나가 침을 삼켰다.

쇄골 위에서 끝나는, 갈색에 가까운 더티 블론드가 조금 흔들렸다.

그녀가 단호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

“스. 숭님?”

나는 당황해서 그녀를 바라봤다.

레나는 단호하게 소리쳤다.

“검술을.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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