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10화 (110/458)

Ill화 기분의 문제 (2)

“.혹시 이거 때문?”

갈라진 바위를 가리키며 물었다.

레나가 고개를 깊이 숙였다.

“그렇습니다. 검술을 배우고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가르쳐 주시면 평생 동안,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든 하겠습니다. 죽으라면 죽겠습니다.”

너무 진지한 분위기다.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어. 보고 있었어?”

레나가 부끄러운 표정으로 고개를끄덕였다.

아무래도 씻으러 가지 않고, 풀숲에 숨어 나를 몰래 지켜보고 있었던것 같다.

- 달그락.

어깨를 살짝 으쪽했다.

“이런 것 정도는 그냥 가르쳐 줘도 되는데? 목숨을 바친다니. 네 목숨이 훨씬 소중하지. 이런 거랑 절대비교하지 마.”

진심이었다. 그녀가 다시 나 때문에 죽는다면 견디기 힘들 테니까.

움찔하는 몸짓. 레나의 눈꺼풀이 조심스레 파르르 떨렸다.

그 아래, 내가 스며든 새까만 두호수가 마구 흔들린다.

감정의 풍랑이다.

“왜? 가르쳐 달라며?”

“.맞습니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레나가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일어나 절을 하려고 했다.

- 덥석.

손을 뻗어 그녀를 붙잡았다. 고개를 숙이려다 막힌 레나가 나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봤다.

“고개 숙이지 마.”

“너는 내 동료다. 누구에게도 고개 숙일 필요 없어.”

레나의 눈빛이 더욱 흔들린다.

손까지 살짝 떨고 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이다.

말도 못 하고 있는 그 모습을 보고,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뒤늦게야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지.’

우리가 깊은 사이라고 생각하는 건나 하나뿐이다.

나는 레나와 함께 수많은 던전을 탐험했다. 그녀를 잘 안다.

말버릇을 알고, 기분에 따라 짓는 표정을 안다. 함정을 어떤 식으로놓는지, 어떤 손놀림으로 남자들의 목을 그어 대는지 안다.

죽음까지 두 번이나 함께했다.

푸르손의 제단에 가기 전, 둘이 멀리 도망치자고 애절하게 말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오른다. 우리는 그런 사이까지 된 적이 있었다.

그 모든 게 내 기억에 있다.

하지만 이 순간, 레나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는 하루 전까지만 해도 그녀를 허공에 매달아 놓고 방치한 수상한 해골에 불과하다.

같은 편이 되자는 합의를 마친 지얼마 되지도 않은.

- 달그락.

씁쓸함, 안타까음, 안도감이 뒤섞여갈비뼈 안쪽에서 휘몰아쳤다. 그녀를 똑바로 보고 말했다.

“검술을 배우고 싶다고? 지금이라도 해 보자.”

나는 레나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의 시선이 내가 들고 있는 칼을 향했다.

- 치이이익.

‘이런.,

멍해 있는 사이 칼에는 꽤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칼날에 덧씌운 속성 때문이다.

[산성酸性 Lv.5를 해제합니다!]

‘신경 좀 써야겠군.’

속성을 오래 유지하면 부식되기 쉬울 것 같았다. 속성을 끄고, 연습삼아 다시 켰다가, 꼈다.

이건 금방 익숙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나를 홀린 듯이 바라보는 레나의 저 표정은.

어째 익숙해질 것 같지 않았다.

신기한 걸 보는 표정 같기도 했고,

귀신을 보는 표정 같기도 했다.

묘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끼게 만드는 표정이었다.

산속에서 이틀이 흘렀다. 당장이라도 한번 해 보자고 한 게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다.

레나의 열의는 대단했다.

처음에는 지도해 주셔서 감사하다며 무척 상기된 얼굴이었지만, 수련에 몰입할수록 무표정해졌다.

조금도 쉬지 않고 집중해서 검을 휘둘렀다.

휘두르다 지치면 잠시 차가운 계곡물에 몸을 담궜다가, 다시 수련을 계속했다.

- 쌩!

레나의 칼이 허공을 가른다.

가르치는 건 생각보다 재밌었다.

레나의 높은 열의가 나에게도 전염되었다.

그녀는 산에 머무르는 이틀 동안 놀라울 정도의 검술 습득 속도를 보였다. 타고난 센스가 압도적이다.

‘단검만 잘 쓰는 게 아니었군.

베기뿐만 아니라 유독 찌르기에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 쉿!

레나의 칼끝이 허공을 가른다.

‘깔끔하군.’

마음에 걸리는 건.

일반적인 롱소드나 바스타드 소드보다는, 좀더 얇고 날카로운 검이 적당할 것 같았다.

‘그렇다고 아예 꼬챙이는 아닌데.

이런저런 무기를 들려서 연습시켜보고 싶었다.

‘무기를 사 봐야겠군.’

슬슬 모험 자들에게 빼앗은 식량 도다 떨어지고 있다.

“내려가자.”

“네! 스승님!”

“스승님이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그렇지만.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어떡합니까?”

산에 머무르는 이틀 동안, 나에 대한 레나의 호감도는 무려 29까지 가파르게 올라갔다.

하지만 나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 비슷한 수치의 호감도일 때와 살짝 달랐다.

조금 더 진중한 느낌.

‘이런저런 감정이 합산되어 호감도로 표현되는 건가.,

일단 땅에 묻힌 은괴부터 회수하기로 했다. 레나도 있다. 환전에 별문제는 없을 거다.

우리는 각각 칼 한 자루만 들고,

잡동사니는 전부 산에 아무렇게나 뿌려 둔 채 가볍게 길을 걸었다.

유블람의 행정관들이 가리켰던 장소까지는 금방이었다.

하지만 제법 신경 써서 숨겨 둔덕분인지, 겉으로 봐서는 어디 은괴를 묻었는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어디 숨겨 놨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승님은 아시겠습니까?”

‘스승님이 라니.

저렇게 기대감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못 찾는다면 곤란하다.

물론 찾을 자신은 있다. 이럴 때 쓰라고 스킬이 있다.

‘탐지.’

[탐지 Lv.5]

[활성 상태로 전환합니다!]

[스킬 효율 1,000% 증가!]

[현재 체력 기준, 초당 0.0024%의체력이 소모됩니다.]

황야를 건너며, 무수한 기계벌레를포착해서 꽤 높은 레벨까지 만든 탐지 스킬.

스킬을 활성화하는 순간.

인간들의 발자국과.

한곳에 집중적으로 삽질을 한 자국이 단번에 느껴졌다.

제법 신경 써 흙을 덮고 마구 근처를 어지럽혀 놨지만, Lv.5 탐지스킬을 속일 정도는 전혀 아니다.

- 푸욱!

땅속 깊이 칼을 꽂았다.

- 팅.

어느 한 지점에서 흙과 조금 다른 감촉이 와 닿는다.

“여기다. 파 봐.”

레나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다가,

뭉툭한 단검으로 땅을 살살 파헤치기 시작했다.

잠시 후.

“어? 이거. 이거.!”

“있어?”

“어. 진짭니다! 진짜 있습니다!

스승님은 어떻게 이런 걸. 이런 것까지 아십니까?”

- 번쩍!

레나는 땅에서 나온 은괴 세 덩어리를 들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황제의 인장이 찍힌 금괴를 본 터라 그렇게까지 큰 감흥은 없었다.

하지만 레나가 달밤에 춤을 추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흐뭇했다.

레나는 은괴 세 덩이를 내 앞에 가지런히 놓고 물었다.

“스승님, 이건 어떻게 처리하실 생각이십니까?”

“알아서 해.”

“그 말씀은.

“쓰고 싶은 데 쓰고. 내일 유블람여관 3층에서 보자.”

“내일 말씀이십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할 일이 있거든.”

“으음.

레나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이틀 사이에 꽤나 나에게 정이 들어 버린 걸지도 모른다.

불안하지는 않겠지.

“그런 표정 짓지 말고. 금방 올 테니까 푹 쉬고 있어.”

“.알겠습니다. 꼭 오셔야 됩니다.”

- 달그락.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틀 동안 안 쉬고 수련한 그녀를 쉬게 할 때도 되긴 했고, 혼자 해볼 일이 있었다.

‘질주.’

- 팟!

레나와 헤어져 달렸다.

뒤편을 흘끗 돌아봤다. 가을 달 아래로 산이 펼쳐졌다. 뒤쪽은, 메마른지하 묘지 방향이다.

- 달그락!

한차례 몸서리가 쳐졌다.

메마른 지하 묘지.

일단 그쪽만 피하면, 후작, 여우가면, 기스-제-라이라는 3종 괴물은 피하는 셈이다.

‘좋아. 잘 가고 있어.

목적지는 유블람과 거미굴의 중간지점.

인적이 드문 황야다.

내일 아침 인간 한 무리가 그곳을 지난다.

새로 얻은 스킬을 활용하기에 적합한 녀석들.

바위는 쪼개 봤다.

다른 능력들도 레나를 수련시키며 짧게 발휘해 봤다.

하지만 역시 실전 경험을 쌓아야한다. 쇠붙이와 악의로 덤벼드는 무리들을 상대해 볼 필요가 있다.

‘잘 가고 있겠지.’

레나가 향한 쪽을 바라봤다.

언제나처럼 별 탈 없이 유블람에들어갔을 거다.

혼자 가는 이유에는, 그녀를 쉬게 해 주려는 것 외에 다른 것도 있다.

이건. 루비아에 관한 일이니까.

‘빌어먹을! 대장도 참. 나까지 거기에 꼭 가야 된다는 거야?’

자칭 ‘예술가’ 크로멜은 처음부터이 임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190cm를 넘는 키.

통나무만 한 허리.

하지만 덩치에 걸맞지 않게 세심한손놀림을 가진 그는, 유블람 경비대장 아스포데의 심복 중 하나였다.

고문기술자로서.

‘거미굴 따위, 재미없는데.

유블람의 반항분자들을 엮어 거미굴로 데려가는 일.

이 임무에는 아스 포데 라인의 경비병 전원이 참석해야 했다.

‘어휴.

크로멜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인간들이 산 채로 아삭아삭 씹혀먹는 모습은 관심 없다.

굶주린 거미들은 급하다. 그건 너무 빠른 죽음이다.

‘천천히 해야지. 천천히.’

죽음은 느릴수록 좋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크로멜은 느긋한 고문이 좋았다.

파들파들 떨리는 인간들의 신경과근육이 좋았다.

신발을 할으며 살려 달라고 비는 것도, 꿋꿋한 척 이를 악물고 비명을 삼키는 것도 모두 좋았다.

‘아깝게.

반항분자로서 끌려가는 시민들.

그들은 아직 충분히 더 고통 받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아직 제대로 망가지지 않았다.

크로멜은 그게 너무 아쉽고, 안타까웠다.

‘자원 낭비잖아! 대장이 또 언제인간 사냥을 나가려나? 교육을 맡겨주는 것도 뭐 괜찮긴 한데.

크로멜이 선홍빛 미래를 위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을 때였다.

“어이쿠!”

일행이 갑자기 멈춰 선 탓에, 한참상상에 잠겨 있던 크로멜은 앞에 있는 동료와 강하게 부딪혀 버렸다.

“어쿠, 어쿠.r동료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한심한 행동에 대한, 대머리 대장의 질책도 없었다.

싸늘했다.

‘.분위기가 왜 이래?’

모두가 긴장 상태였다.

크로멜은 당황해 앞을 바라봤다.

‘.잰 누구야?’

도시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법한.

평범한 풀 플레이트 메일을 착용한기사가 황야에 서 있었다.

투구로 완전히 얼굴을 가린 탓에 정체를 확인하기 힘들었다.

낡아 여기저기 이가 빠진 검으로 보아 어려운 상대는 아니었다.

‘검 관리도 제대로 못 하나.

그때 였다.

- 철컥.

갑옷을 입은 기사가 앞으로 한 발자국 다가왔다.

그는 칼도 빼들지 않고.

자연스러운 태도로 경비대장 아스포데에게 말을 걸었다.

“어이? 너!”

‘어? 저놈, 대체 뭐야?’

크로멜은 당황했다.

놈의 말투 때문이 아니다.

눈앞의 기사는.

수많은 경비병 중, 대장 아스포데를 정확히 찍어 부른 것이다.

그가 우두머리임을 처음부터 알고 다가오는 둣.

몹시 자연스러운 태도다.

- 철컥.

검집이 울렸다.

경비대장 아스포데는 경계하는 태도로 칼자루에 손을 가져다 댔다.

주위의 경비들도 일제히 창을 다잡았다. 크로멜도 긴 할버드를 쥔 손에 힘을 줬다.

“어디서 왔어? 누구야?”

대장이 묻고 있었다. 만만해 보이는 놈이면 바로 죽인다. 하지만 대장도 경계하고 있다.

어딘가에 끈이 있는 놈일 가능성도 있었다. 거래 상대인 네크론 신사회의 소속원일지도 몰랐다. 일단 정체를 파악해야 한다.

투구를 쓴 기사가 대답했다.

“나? 그냥 지나가는 나그네지.”

그리고 서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쪽에 아편굴이 있던데. 그거너희 거냐? 신고를 받아서 말이야.”

대장이 손짓했다.

경비대가 재빠르게 움직였다.

크로멜도 엉거주춤 움직였다. 눈앞의 기사가 도망가지 못하게 둘러싸라는 손짓이었다.

대장 아스포데가 말을 이었다.

“뭐? 신고라고 했냐?”

“그래, 신고. 그거 너희 꺼라며?”

- 철컥. 철컥. 철컥.

스무 명의 경비가 포위망을 완성했다. 기사는 한 발자국 더 앞으로 걸어오며 말했다.

“제국 마약관리법 3장 6조 1항. 아편을 수입하거나 재배한 자는 5년 이상의 노역에 처한다.”

- 스르릉!

경비대장 아스포데의 검이 뽑혔다.

“뭐 하는 새끼야! 식구야 뭐야? 투구 안 벗어!”

- 스릉! 스릉!

칼을 가진 경비들이 칼을 뽑았고,

창을 가진 경비들은 창을 겨눴다.

크로멜도 뒤쪽에서 기사에게 할버드를 겨눴다. 하지만 기사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2항. 영리의 목적으로 이를 행한 자는 무기노역. 상습으로 행한 자는 사형에 처한다.”

“이 새끼가. 쳐!”

아스포데의 곁에 있던 세 놈이 일제히 기사에게 창을 찔러 갔다.

그 순간이었다.

- 차차착!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내지른 세 자루의 창이, 전부 기사가 가볍게 들어 올린 검집에 찰싹 붙어 버렸다.

마치 빨판에라도 붙은 것처럼.

“어? 어어?”

“이, 이게 뭐야?”

“대, 대장! 안 떨어집니다!”

- 획! 획!

기사는 세 자루 창이 전부 찰싹 붙은 검집을 좌우로 흔들었다.

세 경비는 그 가벼운 손놀림에 휘둘려 볼썽사납게 우당탕 바닥에 넘어 졌다.

“에, 에이잇!”

그들은 대장의 눈초리를 느끼고 마음이 급해진 둣, 허리춤의 칼을 빼들고 다시 기사에게 달려들었다.

- 차차작!

다시 검집에 칼 세 개가 붙었다.

창칼 여섯 자루가 낡은 검집에 착달라붙은 광경은 몹시 기괴했다.

기사가 중얼거렸다.

“흠. 잘 되네?”

- 스롱!

검집에서 칼이 뽑혔다. 동시에 칼을 쥐고 있던 세 명의 팔이 일제히피보라를 뿌리며 날아갔다.

‘보, 보이지도. 않아?’

팔이 잘린 경비들이 비명을 지르며 흙바닥을 나뒹굴었다.

“천천히 하자고, 천천히. 이것 저것다 해 봐야 되니까.”

반쯤 망가진 바스타드 소드를 한손에 쥔 기사가 경비들을 한 번 숙훌어보고 말했다. 그와 잠깐이나마눈이 마주친 크로멜은 심장이 직접 쥐어지는 공포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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