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11화 (111/458)

112화 기분의 문제 (3)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다.

경비병들의 피 냄새가 허공에서 씻겨 사라진다.

이 정도면 새로 얻은 스킬들은 모두 충분히 실험했다.

체술. 검술. 참격. 산성. 흡착.

스무 구의 시체들은 서로 다른 사인으로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으음.’

뒤에 주저앉아 지켜보는 포로들을 흘끗 바라봤다. 눈앞의 참상을 보고도, 두 손에 수갑이 차인 그들의 얼굴에는 흠칫 희망이 스친다.

- 서걱.

마지막 남은 경비의 가슴팍에 박은 칼을 빼냈다. 칼에 묻은 피와 연기를 털어 냈다.

- 치이이익.!

산성 속성을 해제하려 할 때였다.

- 털썩! 털썩!

수갑 찬 인간들이 앞다뤄 내 앞에 엎드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중에 나이 많은 노인 한 명이 살짝 고개를 들고, 조심스럽게 내게 질문했다.

“전前 유블람 수석 행정관 유라드카젤이 감히 여쯤니다. 공께서는 혹시 제국 상조上造십니까?”

머릿속에 제국 예법이 번뜩였다.

상조上造는 소상조라고도 불리며,수사권과 형법 집행권을 가진다.

제국 20품계에서 후작보다 한 단계 낮은 작위.

‘뭐라고 해야 되나.

노인을 바라봤다.

꽤 카랑카랑한 목소리였다. 백발이 성성했으나 표정에서 강단이 느껴졌고, 말도 더듬지도 않았다. 제 아비가 끌려가 죽었다는 젊은 행정관과 얼굴선이 비슷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공께서는 수사 결과를 가지고 죄인들에게 형을 집행하셨습니다. 또한 검기를 태연히 사용하고 계시니,

필시 9품계 이상의 관작이실 터J- 치이이익!

나는 아직도 부식되고 있는 칼날과 노인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거 검기 아닌데.’

노인이 말을 이었다.

“젊었을 적 수도에서 수학한 적이 있었습니다.<피닉스의 방패>기사단장의 칼에서 타오르던 기운을 보았지요. 지금 보여 주신 것과 같은 검기 입니다.”

‘본 적 있다고? 근데 이걸 검기라고 한단 말이야?

당황했다. 혹시 저자는 어떤 상황을 유도하고 있는 걸까. 어떻게 해야 되나?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오해를 하고 있다면 아예 확 키우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떤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면, 내가 올라타고삐를 쥔다.

[가면무도회Masquerade 활성화!]

[짧은 시간 동안 얼굴에 ‘인간’의모 습을 덧씩 읍니다.]

[최근에 본 가장 인상적인 인간을가장합니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이 부분이 좀곤란했다.

[변신: 바티엔느 폰 레안드로]

[65% 흡사합니다.]

[남은 부분은 무작위 처리됩니다.]

[제한 시간: 10분]

[다음 사용까지: 6시간]

마스커레 이드.

수녀에게 흡수한 스킬이다. 처음해 보는 건 아니다.

산속에서, 레나를 수련시키는 도중혼자서 사용해 보았다.

얼굴 부분만 덧씌워진다. 목 아래는 그대로 해골.

그렇지만 몸은 갑옷이 감싸고 있다. 물에 비춰 보니 그럭저럭 한 명의 인간 남성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거기엔 치명적인 문제가 하나 있었다.

‘왜 하필 이 녀석인 거야.

그것도 몹시 어설프게 닮았다. 후작을 아는 사람이 본다면 절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얼굴.

하지만,

- 철컥.

- 휘이잉.

머리카락 색은 제법 그럴듯하다.

투구를 벗자 회청색 머리카락이 바람이 흩날렸다.

나는 고개를 든 사형수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쳤다.

“그. 머리칼은! 설마.

처음 말을 걸었던 노인이 기겁하는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거침없이 말했다.

“제국 대상조大上造 바티엔느 폰레안드로가 명한다.”

“관내후關內候를 뵙습니다! 감히 정체를 떠보려 했던 소인의 무례를 죽음으로 벌해 주십시오!”

노인이 외쳤다.

주위가 크게 웅성거렸다. 인간들이 일제히 나에게 거듭 예를 갖췄다.

‘.이렇게 가지, 뭐.’

어차피 여기에 후작 얼굴을 제대로 아는 이가 있을 리 없다.

아까 제국법 습득을 시험할 겸 후작 말투를 따라한 게 오히려 잘됐다싶었다.

기억에 남지 않는 평범한 얼 굴이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선택권이 없었다.

언젠가 스킬 레벨이 오르게 되면,

꼭 다른 모습으로 변해 보리라.

- 툭.

경비대장의 시체를 뒤졌다. 열쇠를 꺼내 수갑에 묶인 인간들에게 던지며 말했다.

“유블람 영주에게 전해라. 자살할 이틀의 여유를 주겠다. 이틀 후에도 목숨이 붙어 있으면 본인이. 직접아편굴에 던져 준다고 해라.”

일행이 잠시 웅성거렸다. 기쁨의 옹성거림이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의 눈빛이 반짝였다.

“반드시 전하겠습니다!”

일행은 서로를 부축하며 조심스럽게 물러갔다.

그들이 보이지 않게 될 때 즈음.

“음. 잘한 건가?”

나는 경비대장의 시체를 털었다.

녀석의 안주머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고 있다.

- 반짝!

예전에 뒤질 때는 반쯤 녹아내려있었던 금화가, 지금은 온전한 형태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이거지.’

세이론. 초대 황제의 이름을 뜬 주화.

90%의 금과 10%의 미스릴로 만들어진, 가장 커다란 주화가 나를 반겼다.

레나와 두 번의 생을 함께한 이후 나도 반짝이는 걸 보면 챙길 생각부터 하게 된 것 같다.

경비대장의 주머니만 챙기고, 다른녀석들의 자잘한 은화는 그대로 놓아뒀다.

누군가 주워 가겠지.

썩어 가는 시체를 뒤질 만큼 절박하다면 몇 푼의 은화를 가져갈 자격은 있다.

‘아까 녀석들한테 줄 걸 그랬나.’

하지만 이미 끝난 일이었다.

내가 만들어 낸 스무 구의 시체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 정도면.

이제 웬만한 인간들에게 비해도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강하다.

무장한 스무 명의 경비대.

인간 사냥을 주로 하는, 전투에 능숙한 패거리를 장난처럼 가볍게 몰살시켰다.

‘음.,

고양감이 서서히 사라지자, 그 자리로 작은 걱정이 올라왔다.

‘후작을 사칭했는데. 쫓아오진 않겠지?’

엉뚱하게 떠오르는 문구가 있었다.

<제국 형법 93조, 신분사칭죄.>

<신분과 자격을 사칭하여, 그 위력을 행사한 자는 5년 이하의 노역에 처한다.>

- 철컥.

스무 명을 살해해 놓고 고작 신분사칭죄를 떠올리는 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생각하며, 나는 작게 실소를 홀렸다.

‘안 쫓아오겠지, 뭐.’

원래대로라면 후작은 유블람에 들르지도 않는다.

게다가 이런 자질구레한 일에는 별신 경을 쓸 것 같지 않다.

놈의 분노는 근위기사단장 이사벨시몬느와, 애마 미유가 살해당한 건에 집중되어 있다.

‘이제. 은괴나 얻자.’

- 팟!

Lv.4의 질주!

은괴를 묻은 곳으로 달려갔다.

3.5배의 속도로 풍경이 빠르게 스쳐갔다. 은괴가 묻힌 나머지 두 장소까지는 금방이었다.

‘여기인가.,

첫 번째 장소처럼 위장에 제법 신경을 써 놓았다.

하지만.

[탐지 Lv.5를 활성화합니다!]

‘아무 쓸모없다니까.’

두 번째에 이어, 세 번째 장소에서은괴를 캐낼 즈음에는 벌써 달이 뜬 저녁이었다.

- 반짝!

순도가 무척 높아 보이는 은괴가 달빛을 받아 은은히 반짝였다.

‘레나가 보면 좋아하겠군.’

전부 집어서 주머니에 챙겼다.

인간을 사냥하고 강제로 아편에 중독 시켜서 만들어 낸 은괴다. 하지만 은에는 죄가 없다.

은과 금은 중립적이다. 거기에는 선도 악도 없다.

별빛청여우를 기다리던 선장을 본 뒤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 인간. 왜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요?>

<반짝이는 걸 믿으니까. 상당히 세련된 인간상이지.>

선장은 해골인 나를 보고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공격하지 않았다.

인간들 중에서도, 내 생각과 달리정말 종족을 초월해서 ‘돈만 보는’

녀석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은과 금으로 만들어진 저울.

인간들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그 저울은 나를 해치기보다 돕는 쪽에 훨씬 더 가깝겠지.

‘선장, 다음번에는. 한번 제대로 만나보고 싶은 녀석이었어.’

아까운 인간이다. 배에 숨어든 후작에게 살해당해, 키에 매달려 콩콩거리던 모습이 떠오른다.

한번 거래해 보고 싶은 상대다.

일단 선장과 거래를 뚫어 놓으면,

비슷한 가치관의 친구들을 많이 소개받을 수 있을지도.

- 휘이이엉.

가을밤이 흔들린다. 낙엽도 없는 황야. 홁먼지만 조금 안은 채 밤바람이 이리저리 불어 댄다.

회상에서 벗어났다.

유블람에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할 일이 더 떠올랐다.

‘바로 근처네?’

거미굴이 가까이 있다.

- 팟!

밤에 오는 건 처음이다.

얽히고설킨 죽은 나무들이 달빛을 받으니 한층 더 으스스해 보였다.

안으로 발을 디뎠다.

안에 있는 거미들이라고 해 봐야,경비병보다 조금 강한 수준.

‘탐지.’

일정한 반경.

움직이는 거미들이 느껴졌다. 앞뒤좌우뿐만이 아니다.

곳곳에 난 구멍 안.

길고 좁은 통로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모두 느껴졌다.

구球 형태로 완전히 적의 존재를 파악한다는 것.

5레벨의 탐지 스킬에 의해, 그동안과 한 단계 다른 차원의 전투가 가능해 진다.

- 키긱! 키기긱!

나를 감지한 거미 한 마리가, 구불구불 긴 구멍에서 뛰쳐나올 준비를 하며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낌새는 이미 입구에서부터 감지한 터.

‘하나씩 처리하기도 귀찮군.

[은신 Lv.5를 발동합니다!]

내 기척을 완전히 죽였다.

- 끼긱? 끼기기긱?

나에게 집중하고 있던 녀석이 당황하는 게 느껴진다.

피식 웃으며 걸어 들어갔다.

조무래기 몇 마리를 은신으로 지나안으로 들어갔다.

<그라스미어의 불>을 써 가면서 힘겹게 진행했던 던전이지만.

이젠 그런 게 전혀 필요 없다.

칼 한 번 휘두를 때마다 간단히한 마리씩 처리해도 되고, 지금처럼은신 스킬을 사용하면서 아예 무시해도 된다.

- 끼이이익.

앞으로 계속 나아가 철문을 열자협곡 같은 공간이 펼쳐졌다.

- 키기기긱! 키긱! 키기기긱!

그 순간 철문 앞뒤로 여섯 마리거미가 한꺼번에 달려들었다.

‘아직 어쩔 수 없나.’

문을 열면서까지 은신을 유지할 정도의 수준은 아니었다.

철문을 열면서 그대로 사뿐히 협곡 아래로 뛰어내렸다.

- 쿵!

[체술 Lv.7의 영향을 받아 낙하 데미지가 55% 감소합니다!]

[체력이 4.5% 감소했습니다!]

‘좀 아프군.,

뛰어내린 순간.

나를 놓치고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던 입구 쪽 거미들과, 협곡 안쪽에 있던 굶주린 거미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 티디디딕! 티딕! 티디디딕!

‘구태여 죽겠다면야.’

[레벨이.]

[.올랐습니다!]

순식간의 5 레벨 업.

경비들을 죽인 뒤에는 주로 민첩에스탯을 분배했고, 거미들을 죽이며얻은 스탯은 전부 힘에 몰아넣었다.

- 철컥.

“.조용하군.”

협곡 안쪽.

무너진 사원 곳곳에 세워진 거미조각들을 둘러봤다.

밤에 와서 그런 걸까?

조각들이 이상하게 조금 더 생생해보였다. 가만히 노려봤다. 움직이지는 않았다. 조각들은 그대로였다.

협곡 안쪽으로 더 들어갔다. 울퉁불퉁한 검은 바위 위를 걸었다.

나올 녀석은 아까 다 나왔는지 이제 거미는 없었다. 저 멀리 깊은 구덩이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웹슬링거 이 녀석. 벌써 세 번째 만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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