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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골병사는 던전을 지키지 못했다-115화 (115/458)

116화 기분의 문제 (7)

편지를 남겨 둔 채 슬쩍 성문 밖으로 나갔다. 밤인데도 성문은 잠겨있지 않았다.

‘후작을 두려워하는 건가?’

그가 온다고 경고했는데, 감히 성문을 걸어 잠근 역적이 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가을 하늘이 서서히 푸른빛으로 동터 오고 있었다.

세상이 밝아 오고 있다. 아름다운광경이었다. 기스-제-라이의 죽음이막을 길 없이 가까워져 오는 신호이기도 했다.

질주를 써서 밀밭 사이를 달리고,

가도를 내달렸다. 잠시 후 살해하고살해당할 자들의 모습을 생각했다.

스쳐 가는 풍경이 피를 홀리고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극히 이기적으로, 죄책감을짊어지기 싫다는 이유로 모든 계획을 어그러뜨리고 기스-제-라이에게 달려가고 있다.

어디까지 막을 수 있을까.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까.

그런 것보다도, 결국 아무것도 책임지기 싫다는 마음으로 행하는 짓에 불과하다.

일찍 나와 밀밭에 서 있던 노인 몇몇이, 질주하는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뒤로 몇 발자국 물러난다.

나는 이런 세계에서 도망쳐 진짜괴물들의 세계로 간다.

내 선택이 결과를 바꾸지 못하는,

뭘 해도 상관없는 세계로 도망치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삼거리가 나왔다. 세 방향으로 길이 갈라지는 곳이다.<메마른 지하묘지>방향으로 접어들었다.

말 탄 병사 네 명과, 챈들러가 마주쳤던 장소를 지났다. 작은 냇가를건녔다. 폭포가 보인다.

‘이 즈음인데.,

기스-제-라이가 나를 기절시켰던 장소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고요했다.

주위를 휘휘 둘러보아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탐지.’

사실 기스-제-라이 수준의 네크로멘서를 내 탐지 스킬로 잡아내는 건 완전히 무리였다.

‘일단 묘지 쪽을 봐야겠군.’

<메마른 지하 묘지>쪽을 직접 들어가 보는 편이 좋을 듯했다.

一 .

폭포 안쪽 동공으로 들어가 계속계단을 내려갔다. 닫혀 있는 철문을 그대로 밀었다.

- 쿠구구궁.!

저항감 없이 철문이 열렸다.

‘없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던전에 처음 가 봤던 때처럼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전부 밖으로 나간 건가? 벌써?’

늦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기스-제-라이는 나를 데리고 정오쯤에 밖으로 나갔고, 지금은 아직 아침이다.

하지만.

나를 만나지 않는 세계선에서는,

그녀가 이 시간에 이미 밖에 있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나를 만난다는 사소한 사건이, 기스-제-라이의 시간 축을 조금 바꿔놓은 건가.’

안쪽 곳곳의 방을 빠르게 훌어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E급 던전,<메마른 지하 묘지>에결 계를 구축하고 있던 ‘군단’.

그들은 모두 이동한 상태였다.

‘언덕으로 가 봐야겠어.’

- 팟!

빠르게 달렸다. 거리는 금세 좁혀졌다. 얼마 가지 않아 바닥에 살해의 흔적이 보였다. 시체는 없었지만 발자국이 그러했다.

각기 다른 세 명이 움직였다. 그리고 셋이 한 번에 죽었다.

‘제국 수색대인가.

외곽을 수색하던 상당한 실력자들이었다. 창을 들어 나를 나무에 박아 넣고 죽이려 하던 놈들.

그들 가운데 한 명은, 무리해서 검기 비슷한 것까지 잠깐이나마 사용할 줄 알던 녀석이었다.

‘살해자의 흔적은 없어.’

하지만 무흔無疫이 무엇보다 뚜렷한 흔적이다.

증거가 없는 게 증거다.

‘기스-제-라이.’

그녀 혼자, 수색대원 셋을 간단히 꺾어 죽이고 이 장소를 지나쳤다.

‘여길 지났다면.

지금 황제에게 똑바로 가는 중. 나는 다시 앞으로 강하게 바닥을 박찼다.

‘언덕이다!’

기스-제-라이가 황제의 행렬을 오연하게 내려다보면 언덕이 보인다.

그녀가 그늘에 서 있던, 아직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커다란 나무가 보인다.

앞은 조용하다. 아직 황제의 행렬이, ‘함정’을 지나가기 전이다.

그녀를 만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무슨 말을 해야 믿어 줄까?

기스-제 - 라이가.

뒤를 돌아봤다. 그녀가 손가락을 들었다.

- 쿠옹!

거대한 힘이 나를 덮쳤다.

공간을 비틀고, 시간을 비틀 정도의 인력引方이 나를 탐욕스럽게 잡아당겼다. 비명이나 저항 따위는 생각해 볼 여지가 없었다.

단숨에 수십 미터가 좁혀졌다.

보이지 않는 손이 허공에서 나를 서서히 우그러뜨리고 있었다.

- 철컥.

투구가 벗겨졌다. 반인반골伴人伴骨의 네크로멘서는 허공에 나를 띄운 채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으음. 나한테도 좋아하는 해골타입이라는 게 있었구나.”

그녀가 나를 빤히 바라봤다. 갑옷안쪽의 뼈가 격한 긴장으로 달그락거리는 것 같았다.

“어디서 이런 물건이 나타났을까.

영웅 묘역에서 일어났다고 해도 믿겠는데?”

- 스르륵.

기스-제-라이는 천천히 손을 위에서 아래로 내렸다.

측정할 수 없는 랭크의 탐색, 혹은감정鑑定 마법이.

“아주 마음에 들어. 나도 몰랐던 내 취향을 이제야 알겠네.”

나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살살이훌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 좌르르록.!

이후,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허공에 꽁꽁 옭아맨다. 투명한 수십 가닥의 촉수들이, 몸 구석구석으로 깊숙이 파고드는 것 같은 느낌이다.

- 철컥. 철컥. 철컥.

이음새로 파고든 무형無形의 촉수들이 갑옷을 하나하나 벗겨 낸다.

보자마자 이런 짓인가.

미리 적절한 대사를 준비해 두지 않은 탓인지, 거친 말이 튀어 나가버린다.

“.원래 다 이런 식이오?”

“응? 이런 식이냐니?”

“당신 마음에 들면, 보자마자 기절시키거나 끌고 와서 구속하시오? 그리고 아무렇게나 유린하고?”

“뭐? 언제 기절을 시켰다 그래?

너. 너, 나 알아?”

대화가 처음부터 완전히 망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 준비성 없음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지만, 뭘 준비해왔더라도 이 네크로멘서 앞에서는 먹히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엉뚱하게도,

띠링!

[기스-제-라이의 호감도가 3 올랐습니다!]

호감도가 올라갔다. 나는 되는 대로 뱉어 버리기로 했다.

레나를 버리고, 편하고 쉬운 길을 버리고 내 스스로 히드라 아가리로 머리를 밀어 넣었다.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다.

경고.

그것만 해 주면 할 일은 끝이다.

기스-제-라이는,  허공에 매달린 나를 뚫어져라 계속 훌어보고 있다.

“너. 놀라지도 않네?”

“이 정도로 놀라야 된단 말이오?”

나는 몸을 꽁꽁 옭아맨 투명한 힘에 슬쩍 저항하며 말했다.

“마법은 좀 아끼는 게 낫지 않겠소? 이왕 아케인 이 잔뜩 억제된 땅으로 골랐을 텐데. 힘들 거요.”

“허. 얘 뭐야? 재밌네? 이런 애처음 봐.”

“할 말 있어 보인다, 너. 얘기해.

되게 재밌는 얘기 할 거 같은데. 뭐 없어?”

하면 뭘 하나.

다 자기 마음대로 할 텐데.

하지만 말하러 왔다.

“쐐기돌 기념 공원.”

그 단어가 나오는 순간.

기스-제-라이는 흠칫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흑요석 언덕 공원.”

“너.!”

두 영웅 묘역의 완전한 활용권이,기스-제-라이가 암살의 대가로 요구한 보상이다.

세계의 절반을 자유 진영으로 만들어 준 영웅들. 그 영응들의 시신을 넘기는 조건으로 연합 의회는 기스-제-라이와 계약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수상하기 이를 데 없단 말이지.’

전쟁은 반드시 진행된다.

푸른 갑옷의 기사는 죽은 황제를‘인형’이라고 불렀다.

자유연합 의회는, 오늘 죽는 황제에 대해 뭘 얼마나 알고 있을까? 왜의뢰를 했을까?

기스-제-라이가 나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며 묻는다.

“???너, <교단>에서 왔니?”

암살교단 레드 플레이크.

현재 황제 암살의 계약 조건을 아는 측은 의뢰를 제시한 연합 의회와, 당사자인 기스-제-라이.

그리고 계약 입회자인 레드 플레이크밖에 없다.

기스-제-라이의 물음은 타당하다.

나는 자연스럽게 대꾸했다.

“내가 입회 자는 아니오. 별빛청여우가 근처에 기다리고 있겠지.”

“뭐? 여우가? 여우는 지금 쉬는 기간인데.

“뭐, 여우는 당신을 좋아하니까. 페르시우스에 탄 채, 여기서 사흘거리에 대기하고 있소.”

나는 되는 대로 마구 말을 던져 버린다. 어차피 이 판에 끼어들기로한 이상 제정신으로는 힘들다.

그녀의 손끝에서,  생생한 경악이 내게 전달된다.

“너, 대체. 이걸. 당장 뜯어볼 수도 없고.

나는 속으로 허무하게 웃었다.

‘적절한 때 왔나.’

기스-제-라이는 지금 황제의 행렬을 기다리고 있다.

해가 떴다. 마법사와 기사들이 정찰을 오고, 곧이어 본 행렬이 도착할 때가 머지않았다.

그녀가 내 머리뼈를 뜯어낸 뒤, 여기저기 부하들에게 이식해 볼 정도로 시간이 남아돌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본다.

흔들리는 눈동자가 이색적이다.

기스-제-라이가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 철컥.

손가락을 들었다.

저 아래, 평야 전체에 걸쳐 설치된 함정을 가리켰다.

“내가 뭐라고 해도, 당신은 저걸 무너뜨릴 생각인 거요?”

“너, 이 자식.

“길라우트.”

“오웨인. 안드레이. 펜리르. 하멜라인. 그들 모두 오늘 살해당하오.”

듀라한들의 이름을 하나씩 읊어 줄때마다, 그녀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 상황을이해할 수 없다는 혼란이, 남은 여백을 소비하고 있었다.

“.도망치시오. 잠시 후 저곳을 지나갈 황제를. 방관하시오.”

하지만 내 이야기는 결국 먹히지 않았다. 믿어지지 않게도, 기스-제-

라이는 곧 침착을 되찾았다.

그녀가 반쯤은 뼈로 된 머리카락을 손가락에 빙빙 감으며 말했다.

“뭐, 다 죽인 다음에 널 천천히 연구해 보면 되겠지. 소중히 다뤄 줄게. 왜 이렇게 급할 때 나타나서.

슬프게. 한동안 너만 갖고 놀아도 안 질릴 것 같아.”

실패인가?

나는 허공에 매달린 채 그녀에게 소리쳤다.

“기스-제-라이! 대체 무슨 말을 하면 행동을 바꿀 거요? 무슨 말을들으면, 황제를 공격하지 않을 거난말이오!”

기스-제-라이가 고개를 들었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무슨. 말을 듣는다고 내 계획을 바꾸겠어? 내 계획은 완벽해.”

그리고 그녀가 손가락을 뻗어, 내가 가리켰던 평야를 짚었다.

“네가 어떻게 저 함정을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말을 이었다.

“저 아래 있는 아이들은 수십 일을 고생하며 땅굴을 팠어. 몇 날 며칠을 저 아래에서 황제가 오기만을 기다렸지. 내 가장 소중한 아이들이야.

처음 보는 네가 무슨 말을 한다 고해도.

- 달그락.

반인반골의 네크로멘서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저 아이들과 나를 믿지. 우리가세우고 실행한 계획을 믿지, 네 말을 믿지 않아. 우리는.

- 털썩.

기스-제-라이가 나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오늘, 황제를 죽일 거다.”

갑옷을 우그러뜨리는 것 같던 압박이 풀어졌다. 흔들리던 기스-제-라이의 눈동자가 다시 가라앉았다.

‘참관하겠나?”

- 달그락.

대답 대신 손을 들었다.

“그럼 한 가지만, 한 가지만 부탁드리오.”

기스-제-라이의 죽음은 이걸로 확정이다. 잿빛 기사에게 그녀와 그녀의 군단은 모두 살해당한다.

그렇다면.

“뭐지?”

네크로멘서가 나를 바라본다.

‘당신의 죽음을 못 막는다면.’

나는 제2의 안을 떠올린다.

“계획을 취소하란 이야기는 안 하겠소. 황제를 죽이지 말란 이야기는 아니오. 그냥.

“근위대 가운데서, 내가 말하는 딱한 명만 살려 주시오.”

“그래? 스켈레톤 나이트가 아니라,

생생한 인간 그대로 살려 달라는 부탁인가?”

“.그렇소. 부탁드리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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